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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一章 불가해(不可解) (4)
날이 밝아온다.
지금쯤 검왕은 죽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촌장을 죽일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지 않은가.
촌장은 천하무적이다.
검성주도, 혈천성주도 촌장에게는 속수무책이다.
여러 방면에서 혈루마옥의 무공을 타진했다.
검왕처럼 직접 부딪치기도 하고, 맞은 편 산정에서 연공하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했다. 혈루마옥의 무공을 염탐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다 했다.
일부는 직접 혈루마옥으로 침투했다.
물론 그들은 살아나오지 못했다. 혈루마옥의 일부도 되지 못했다. 혈루마옥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들 역시 저주에 휘감겼고,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무슨 놈의 저주가 그렇단 말인가.
기관진식의 달인들, 풍수학자들, 날고 긴다는 의원들이 혈루마옥을 연구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저들에게 휘감긴 저주의 정체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저들도 저주를 풀어낼 것이다. 그리고…….
혈루마옥이 두려운 것은 저들이 폐쇄된 환경 속에서 생활해 왔다는 점이다.
혈루마옥 사람들은 성격이 모났다. 외골수다. 세상의 모든 중심을 자신들에게 맞춘다. 자신들과 다르면 적이고, 같으면 아군이라는 단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다.
당연히 중원은 저들의 성격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피바람이 몰아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저들이 혈루마옥의 저주를 풀어내는 순간, 중원은 엄청난 피바람에 쓸려나갈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런 날이 왔다.
저들은 이제 막 살육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었다. 백여 명이나 되는 절정고수들이 무림을 난자하기 직전이었다.
헌데 홀연히 그 앞에 아주 탐스러운 먹잇감이 나타났다.
적벽검문과 유지자문.
이 두 신비집단은 혈루마옥 입장에서는 가장 껄끄러운 상대였는데, 너무도 쉽게 정체를 드러냈다.
적벽검문, 유지자문…… 그들이 괜히 나타난 줄 아는가.
무림은 그들의 희생에 감사해야 한다. 그들이 시간을 벌면서 저들의 전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는 사실에 두고두고 존경을 표해야 한다.
헌데 웃기게도 지금의 중원은 자신들에게 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일부가 시간 벌이에 목숨을 내놨다.
소림과 무당파의 전대기인, 기승들이 기꺼이 한 목숨을 던졌다.
그들은 일부로 죽기 위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서 싸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은 여한의 없는 일전이었을 게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이 혈루마옥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적벽검문과 유지자문이 당했다는 말을 듣고는 절반은 포기한 상태였지만.
차근차근 한 명씩 두 명씩 목숨을 잃어가면서 혈루마옥의 진면목을 캐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결전이다.
검왕이 촌장과 증평주를 죽음의 동반자로 이끌었다면, 승산은 반반이다.
‘이곳은 너희들의 사지가 될 것이야.’
누산은 사방을 둘러보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 세상,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다녔지만, 이곳만큼 완벽한 곳은 보지 못했다. 이 사람, 저 사람 날고 긴다는 사람을 모두 보았지만 현음자만큼 완벽하고 똑똑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현음자의 기관진식은 틀어지려야 틀어질 수가 없다.
산정을 휘감았던 시부독의와 혈갈잔봉이 제 역할을 다하고 뚝 떨어져 내린다.
두 독물군이 저들을 포위할 것이다.
그렇다.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사람은 단언하지만 한 명도 없다.
살 생각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다. 죽을 생각으로, 모두 죽는다는 생각으로 들어왔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죽는 사람도 있고 모르고 죽는 사람도 있지만.
이 정도로 혈루마옥을 막을 수 있다면 다행인 게다.
‘검왕, 곧 보세.’
누산은 검왕이 최후를 마친 절벽 중간 어름을 지긋이 응시했다.
“우리 단단히 잘못된 것 같은데.”
“아무리 마신천강기라고 해도…… 너무 많아.”
음악오귀는 꾸역꾸역 밀려드는 무인들을 보면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자신들이 고수라면 저들도 고수다.
마공관의 마학이 중원을 지배하지만, 저들의 무학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겨우 일대일의 승부나 예견할 수 있으려나?
“자신을 가져요.”
유화아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래, 네 느낌은 어때?”
일귀가 대도를 어깨에 걸치며 물었다.
“좋아요.”
유화아는 여전히 차분한 안색으로 말했다.
그러자 대뜸 이귀가 말했다.
“좋지 않군. 좋지 않아. 정말 좋으면 네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는데, 지금은 경련이야. 아주 좋지 않아.”
“…….”
유화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귀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투살진기를 허(虛)를 탐지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공격은 가장 강한 힘으로 가장 약한 곳을 칠 때 일어난다.
투살진기는 그 요점을 잡아채는 공부다.
투살진기로 저들의 약점을 살펴봤을 때…… 그냥 철벽이 느껴진다. 마치 마신천강기를 대했을 때처럼…… 마음만 답답해진다. 숨이 턱 막힌다.
저들과의 싸움은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물론 자신들은 합격술을 연마했다. 마신천강기가 철벽이 되어주고, 투살진기가 창이 된다.
이 연습은 수천 번도 더 해서 지금에서는 뜻만 가지고도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도 답답하다.
“그때 일, 항상 미안했는데…… 이제 사과 좀 받아주지?”
삼귀가 유화아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래, 이제 사과 좀 받아주라.”
일귀도 퉁명스럽게 말했다.
“알았어요. 받아줄게요.”
유화아가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들은 악연으로 만났다. 음악오귀가 본성을 드러내서 강남제일미녀를 취할 생각이었다.
검왕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게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간다. 음악오귀는 여전히 어느 구석에서 여인이나 겁탈하고 있을 게고, 자신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서 복수의 검을 닦을 게다.
그들은 처음 인연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 섞였다.
음악오귀는 여전히 음악오귀다. 여인을 좋아하고, 취하고 싶어하는 본성은 어쩌지 못한다. 그러나 최소한 유화아 앞에서는 정인군자 뺨칠 정도로 단정하다.
애써서 노력하고 있는 게다.
유화아가 그런 점을 모를까. 지금까지는 모른 척 해왔지만 상황이 좋지 않으니.
유화아가 두 손을 들어 가슴 높이로 올리면서 말했다.
“약속들 해요. 기련산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모두들 장가가기로. 아무래도 음악이라는 말을 떼어내려면 옆에 여자가 있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쳇!”
사귀가 혀를 찼다.
“왜요?”
“널 봤는데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겠냐? 앗차!”
사귀가 급히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유화아는 못 들은 척 대답하지 않고 손을 수평으로 올린 채 고요히 운기를 시작했다.
츠으으으읏!
진기가 일어난다. 양손에 운집된다.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에서 기류가 교차한다.
문득, 유화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상해. 진기가 폭증하고 있어.’
천천히, 급히, 느리게, 빨리…… 여러 방면으로 진기를 운공해 봤지만 결과는 늘 한결같다.
진기가 두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과거, 검왕은 음악오귀와 그녀에게 천력파혈단을 건네준 적이 있다. 일신의 진기를 잠시일지언정 급증시키는, 천하제일의 내공 소유자로 만들어주는 독단이다.
그때의 느낌과 똑같다.
무엇을 복용하지도 않았고, 어떤 기연을 만난 것도 아닌데, 진기가 크게 일어난다.
유화아는 곧 그 이유를 알았다.
‘땅! 이 땅!’
진기를 일으키자 발바닥 용천혈을 통해서 미지의 기류가 스며든다. 그리고 그녀의 진기와 섞여서 그녀도 처음 겪어보는 막강한 진기를 형성한다.
그녀는 비로소 누산이 이곳에 들어온 이유를 알았다.
누산은 이곳에 숨으려고 들어온 것이 아니다. 이곳의 힘을 빌려서 저들과 싸울 생각이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어쩌면…….’
갑자기 자신감이 솟구쳤다.
“모두 운공해요.”
“천천히 하면 안 돼? 싸우려면 아직 멀었잖아.”
“손 한 번 맞춰봐요.”
“굳이 그럴 필요…….”
삼귀가 중얼거리다가 유화아의 매서운 눈길을 접하고야 말았다.
그는 곧 말을 멈추고 운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운기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중단하고 눈을 떴다.
“이건!”
“손을 맞춰봐야 해요.”
“땅의 힘인가?”
“그런 것 같아요. 기관진식의 힘일 수도 있고요.”
“헌데 왜 우린 지금까지 그 사실을 몰랐지? 운기는 어제도 하고 오늘도 했잖아.”
츠으으으읏!
유화아는 어느새 진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녀도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은 땅에서 솟구치는 힘을 적절하게 받아들이고, 공수에 이용하는 게 중요하다. 그 일만 해낸다면 몸에 무리 가는 일 없이 싸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역시 천력파혈단을 복용한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저들이 가까이 다가서기 전까지 운기의 묘를 수련해내야 한다.
“벽(壁)!”
지금까지는 그리고 앞으로도 그녀가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시작을 알리는 의미에서 일갈을 토해낸다.
촤아아아아!
음악오귀가 오방(五方)을 점하며 진기를 일으켰다.
추욱!
오방 사이를 뚫고 한 줄기 검이 뻗쳐나간다. 헌데 역시!
꽝! 퍽! 쿠웅!
그들은 서로의 연수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방으로 퉁겨나갔다.
투살진기가 마신천강기를 친다. 마신천강기가 투살진기를 밀어낸다. 밖으로 뻗어 나가지 못하고 가로막는다.
서로의 힘을 가늠하지 못한 결과다.
스읏! 스으읏!
유화아가 즉시 제자리로 들어섰다. 음악오귀도 사태의 중요성을 깨닫고 즉시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이거 곤란해졌네.”
“해낼 수 있어요. 약 반 시진 정도 남았는데, 그 시간 동안 어떻게든 이 힘을 이용해야 해요.”
“한다!”
촤아아악!
마신천강기가 둘둘 말리면서 철벽을 형성했다.
유화아는 투살진기로 마신천강기를 틈을 열려고 했다. 헌데 마신천강기가 투살진기를 적으로 알고 막아서 버린다.
꽈앙!
굉음이 일어났다.
누산은 사방으로 나가떨어지는 유화아와 음악오귀를 보면서 빙긋 웃었다.
저들은 검왕이 선택한 인재들이다. 어떻게든 해낼 게다.
저들이 괜히 한자리에 모였던 것 같나? 하필 봉황선자는 그즈음에 유화아를 고향으로 보낸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것들이 모두 우연인가?
저들은 선택받은 것이다.
현 중원에서 마신천강기를 수련해 낼 수 있는 최고 적합체는 음악오귀였다. 투살진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유화아였다. 그래서 그들이 한 자리에서 만난 것이다.
음악오귀가 본성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얻어맞지는 않았겠지만…… 마신천강기를 수련한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유화아 역시 그녀의 결단과 상관없이 투살진기를 수련했을 게고.
저들은 그때부터 오늘을 위해서 양성되었던 것이다.
‘오늘 이 한 수, 이 한 번의 싸움을 위해서…… 유지자문의 고수와 겨뤄봤을 것…… 저들과의 싸움은 그때의 싸움을 연상시킬 터이니…… 허허허!’
유지자문의 고수는 철모르는 풋내기들에게 엄청난 무공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런 세계의 싸움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저들이 수련한 무공으로는 어림도 없는, 그래서 지금보다 배 이상의 내공을 필요로 하는…… 그래서 이 땅이 필요한 것이다. 이 땅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힘을 사용해야 한다.
꽈앙! 꽝!
땅이 들썩거린다. 먼지가 분분히 피어난다.
음악오귀와 유화아의 호흡이 점점 맞아떨어진다. 서로가 서로를 아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