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53화 (153/225)

# 153

第三十一章 불가해(不可解) (3)

푸욱! 푸우우욱!

검을 깊게 찔러 넣는다.

녹천주는 석상이라도 된 듯 움직이지 않는다. 얼굴 표정에도 변화가 없다.

살을 찢는다.

장기를 갈라내고, 뼈를 가른다.

그럼에도 녹천주는 움직이지 않는다.

녹천주는 운공을 너무 깊이 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밑바닥까지 경험하고 있다.

그런 깊이로 운공을 하면 육신을 잊게 된다.

마음을 잊고, 감각을 잊는다.

육신이 불바다 속에 떨어져도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한 채 운명을 달리한다.

지금 녹천주가 그런 상태다.

푸욱!

심장을 갈라냈다.

그러자 비로소 녹천주가 반응을 보였다.

입가를 슬그머니 일그러트린다. 웃음 같기도 하고, 조롱 같기도 하고…… 어쨌든 분노는 아니다.

녹천주는 의식을 잃은 것이나 진배없다. 그런 사람을 찌른다.

녹천주는 의식이 매우 선명하다. 너무 맑아서 아무런 때도 묻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찌른다.

스읏!

검을 빼내자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녹천주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육신은 죽음을 향해 떠났는데.

‘이거 대단하다!’

화천은 피로 물든 검을 쳐다보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혈오가 도와주니 온 세상이 그의 것이다. 모든 사람의 무공이 환히 읽힌다.

물론 그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 혈루마옥 무인들만 읽을 수 있고, 그것도 혈오를 통해서 마옥의 저주를 풀어낸 사람에게만 한정된다.

중원에 나온 모든 사람을 읽을 수 있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촌장조차도 눈 아래로 둘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혈루마옥을 움켜쥐었다.

‘이건 정말 대단하다!’

평소의 그라면 녹천주를 죽이지 못한다. 녹천주를 에워싸고 있는 그림자도 해결하지 못한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이 모든 일을 해냈다.

“후후후후! 후후후!”

웃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피곤해.’

누미는 혈오가 하는 말을 들었다.

혈오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이제 그만, 제발 그만!

혈오는 심성이 악하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약하기까지 하다. 어처구니없지만 실제로 그렇다. 그래서 생에 대한 의욕을 빨리 거둘 수 있는 것이다.

툭 하면 자진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혈오는 눈을 감으려고 한다. 피곤해서 잠을 자는 것인지 영면을 하려는 것인지.

“눈 떠야지?”

누미는 혈오를 안아주었다.

혈오가 포근한 듯 고개를 기대왔다.

“그래, 열심히 사는 거야. 호호호!”

누미는 혈오의 상태가 금방 호전되었다는 것을 감지했다. 손과 발에 힘이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네 아빠라는 위인이 오늘 이곳을 접수했구나. 호호호!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그녀의 눈길이 깊은 산으로 향했다.

저곳 어딘가에 누산이 있다. 중원에서 가장 큰 부를 이룩한 자가 숨어있다.

그자를 거둘 생각이다.

죽일 생각이 아니다. 거둬서 수족으로 쓸 생각이다.

오른팔에 누산을 둔다. 왼팔에 화천을 둔다. 돈과 힘을 한 손에 쥐고 무림을 호령한다.

이 모든 게 꿈이 아니다.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다.

* * *

“괜찮은 게냐?”

“괜찮아요.”

“어디.”

촌장이 손을 내밀어 증평주의 완맥을 움켜쥐었다.

츠으으읏!

촌장이 증평주를 살핀다.

진기의 흐름을 면밀하게 주시한다. 내공의 강약을 살핀다.

“음!”

촌장이 신음했다.

진기를 오래 살필 필요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완맥을 잡는 순간에 이미 증평주의 상태를 눈치챘다.

그녀는 완벽하다.

그와 검왕의 기(氣)를 한 몸에 받고 전신경맥이 박살났는데, 무공을 사용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사는 것만도 요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찌된 게냐?”

“몰라요.”

“정신을 차리고 이곳까지 들어온 시각은?”

“반 각 정도요?”

“반 각…… 후후! 그때군. 그때였어.”

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증평주가 되물었다.

그녀도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너무도 완벽하게 복원된 무공이 놀랍던 참이다.

어떤 기연이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인가.

“혈오인 것 같다.”

촌장이 침중하게 말했다.

“이곳은 현음자가 만든 사지다. 검왕이 자신있게 사지라고 말한 곳이기도 하고. 허허! 저것봐라. 저놈, 자신이 죽을 줄 알고 무공을 적어놓기까지 하지 않았느냐.”

증평주가 촌장의 말을 쫓아서 검왕을 쳐다봤다.

검왕 앞에 두루마리 한지가 놓여 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사용했음직한 지필묵도 보인다.

촌장이 말했다.

“저놈이 여기서 우리 모두 죽는다고 할 때…… 묘한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죽지 않겠구나. 살아나가겠구나. 누군가가 도와주려고 오는구나.”

촌장이 그런 느낌을 받을 때, 증평주는 혼절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사람에게 영향을 받았다. 두 사람을 이어주는 끈…… 적어도 무공의 기운을 연결시켜 줄 수 있는 도구라면…… 혈오밖에 없다.

“혈오가 제 무공을 복원시켰다고요?”

“나에게 희망도 주었고.”

“그럴 수가!”

“덕분에 현음자의 절진도 깨졌구나. 완벽한 사지에 굴이 생겼으니. 굴…… 허허허! 정말 생로로군.”

촌장을 말을 하면서도 얼굴을 밝게 펴지 못했다.

그도 검왕이 말한 뜻을 감지했다.

검왕은 이제부터 중원은 몰락한다고 말했다. 절대적인 힘으로 뭉개진다고.

누가 그 일을 하는가?

혈오!

이제 막 태어나서 말도 하지 못하는 갓난아기가 중원을 멸망시킨다. 그리고 그 일은 가능하다. 웃기는 말이지만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

촌장도 이제 막 혈루마옥 무인들의 무공이 혈오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혈오의 힘이 증평주의 무공까지 회복시킬 정도로 강하다면.

‘내가 느낀 그 느낌…… 누군가 일을 저지른거야. 혈오가 매우 큰 힘을 쓴 것이니. 화천! 네 이놈!’

촌장은 확실하지만 않지만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짐작했다.

화천이 녹천을 손아귀에 넣었다. 그 일을 하면서 혈오를 이용했고, 그 힘이 자신에게까지 뻗쳤다. 죽은 듯이 혼절해 있던 증평주까지 살렸고.

이 세상에서 혈오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이다.

누미! 그녀다!

화천은 누미의 시종일 뿐이다. 누미가 양해했고, 도와주었기 때문에 화천이 혈오의 힘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누미가 악의 본심을 드러냈다.

촌장도 증평주도 참담한 심정으로 침묵했다.

혈오가 부르면 그들 역시 가야 한다. 혈오의 지시에 따라서 중원을 피로 물들여야 한다.

혈오의 지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혈루마옥으로 다시 돌아가면 된다. 그곳에서 예전처럼 저주에 휘감긴 채 살아가면 된다.

중원을 떠돌고 싶으면 혈오의 명령을 받들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죽은 듯이 살아야 한다.

검왕은 그런 점을 말한 것이고, 촌장은 증평주를 진맥한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누미가 본격적으로 살육을 저지르려고 한다.

“혼자서 막을 수 있겠나?”

촌장이 검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검왕이 여전히 머리를 숙여서 자신이 써놓은 두루마리를 보면서 말했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귀선부와 어떤 관계입니까?”

“귀선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정확하게 말하면 이령과의 관계겠지.”

“…….”

“말해줄 수 없네.”

“…….”

“이령, 아니 이제는 검성주지. 검성주에게 전하게. 검왕을 도와서 혈루마옥을 치라고.”

“네엣?”

마군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도 이 사람은 이 싸움에서는 폐물이나 마찬가지인 것…… 마옥으로 들어가 있는 게 편하겠지. 우리는 마옥에 있을 테니, 힘껏들 싸워봐.”

촌장이 검왕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휴우!’

검왕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촌장이 혈루마옥으로 물러서지 않는다면, 혈오의 수족이 되어서 중원을 무너트리는데 한 팔 역할을 톡톡히 한다면, 그때는 정녕 막을 방도가 없다.

“십마를 모아줘.”

“내가 네 부하냐?”

“혈루마옥이 제일 먼저 향할 곳은 검성이다.”

“……?”

“누미는 이령을 질투한다. 지금은 그런 감정이 사라졌겠지만 이럴 때는 싫어하는 사람을 제일 먼저 치고 싶겠지. 장담하는데 검성으로 향할 거다.”

“십마를 모아봤자…….”

“일단 모으기나 해.”

검왕이 일어섰다. 그리고 발로 툭 차서 자신이 쓴 두루마리를 모닥불 속에 넣었다.

화르르르륵!

그의 무공이 불살라진다.

* * *

누미는 누산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묘한 느낌인데, 아주 친근한 기분이 속삭이듯이 부드럽게 다가온다.

‘저기야.’

누미는 산속을 응시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누산의 냄새가 아니라 누강의 냄새일 것이다.

그래도 한때는 사부로 모신 적이 있어서 누강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는 것일 게다.

지금은 다 필요 없다. 모두 죽이고 가뿐한 마음으로 떠난다. 누산만 움켜쥔 채.

“한 시진이면 될까?”

“충분해.”

“저기 강한 놈들도 있어. 검왕이 키운 놈들인데…….”

“검왕 자신이 직접 나타나도 우리 상대는 안 돼.”

화천이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주위에는 녹천 무인 이백여 명이 둘러서 있다.

이들은 최절정 고수들이다. 개개인이 한 문파의 장문과 버금간다. 개개인이 십마와 버금간다.

누가 이들을 막겠는가.

더군다나 이들에게는 혈오가 있다.

혈오가 서로의 무공을 읽어주고 있는 이상…… 두 명이 손을 합치면 그 연수합격은 천하의 그 어떤 절기보다도 뛰어날 게다. 아무나 손을 합쳐도 말이다.

“누산은 생포해.”

“나머지는.”

“말해 뭐해. 모두 죽여. 아! 유화아라는 그 계집이 탐나서 그래? 하기는 강남제일미녀라고 하니까.”

“그냥 죽이기는 아깝지.”

“하룻밤쯤 끼고 자는 것은 봐줄게.”

“하하하하!”

화천이 웃었다.

화천은 유화아를 살릴 생각이 없다. 죽일 것이다. 다만 누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

적어도 남자와 여자라는 관계로는 티끌만 한 미련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철저하게 도구일 뿐이다.

화천은 내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은 자신 역시 혈오에게 묶여 있고, 혈오를 조정하는 유일한 사람은 그녀이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언젠가는…….

화천이 말했다.

“한 시진이다. 한 시진 안에 누산을 데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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