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49화 (14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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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十章 장사(長絲) (4)

비수가 등줄기를 쑤시고 들어오는 듯한 통증, 숨을 쉴 수 없는 답답함, 명치 부근이 꽉 얹힌 듯한 묵직함, 그리고 창자가 비틀리는 격렬한 아픔.

촤르르르륵!

진기를 휘돌려 아픔이 일어난 곳을 어루만진다.

등을 토닥이고, 가슴에 뭉쳐진 기혈을 풀어내고, 창자의 뒤틀림을 감싸 안는다.

그런데도 아픔이 가시지 않는다.

등은 더욱 심하게 아파 온다. 허리를 곧게 펴지 못할 정도로 극심하게 아프다. 명치에는 묵직한 철추가 걸려있는 듯하고…… 창자는 비비 꼬이고 있다.

마군 정도 되는 고수는 진기로 신경을 차단할 수 있다.

아픔이 일어나더라도 실제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그래서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눈썹 한 올 까딱하지 않고 싸울 수 있다.

물론 마군이라면 진기로 신경을 차단시키지 않아도 웬만한 아픔쯤은 참을 수 있다.

무인의 독기는 무공이 강해질수록 깊어진다.

그런데 이번 아픔만은 참을 수 없다. 진기로 신경을 차단시켜도 아픔이 뼛속까지 스며든다.

‘제길!’

마군의 이마에 굵은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입이 바싹 마르고, 속이 토할 듯이 더부룩해지고, 현기증까지 심하게 치민다.

무공을 모르는 평범한 사람이 심하게 아팠을 때와 똑같다.

마군은 촌장을 쳐다봤다.

촌장의 안색도 하얗게 탈색되어 있다. 이마에는 굵은 땀이 맺혀있기도 하다.

꼿꼿하게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지만 촌장도 힘들어한다.

“무엇인지 짐작 가는 게 있으십니까?”

마군이 물었다.

독에 당한 것은 분명한데…… 자신을 이토록 무기력하게 만드는 독이 무엇인가 싶다.

촌장이 꽉 다문 입술 사이로 저미하게 음성을 흘려냈다.

“환상이다.”

“네?”

“지금 우린…… 환상이란 독에 당했다.”

“……?”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몸으로 느끼는 모든 아픔, 고통, 어질어질한 현기증까지…… 모두 거짓이다.”

마군은 이빨을 꽉 악물었다.

그는 촌장의 말을 알아듣는다. 촌장이 ‘환상’이라는 독에 당했다고 말할 때부터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직감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거짓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감각으로 느끼는 모든 것이 거짓이다.

후각도 거짓이다. 코로 맡아지는 모든 냄새가 가짜다. 촉감도 가짜일 것이고, 귀로 전해지는 소리들도 가짜다. 오감이 모두 망가진 상태다.

“현음자, 얼굴 한번 보고 싶은 자입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 후후!”

촌장이 웃으면서 자리에 털썩 앉았다.

마군도 촌장을 따라서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진기를 일으켜서 일주천시켰다.

이 순간, 누군가가 기습을 가해온다면 꼼짝없이 당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통각이 일으키는 아픔을 감쇄시키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촤르르륵!

어둠 저쪽에서 아주 날카로운 파공음이 일어났다.

‘륜(輪)!’

마군은 단박에 소리가 어디에서 흘러나왔는지 알았다.

회륜(回輪)일 수도 있고, 참륜(斬輪)일 수도 있다. 허공을 날아와 육신을 갈라낼 것이다.

스읏!

마군은 즉시 운공을 풀고 몸을 이동시켰다. 헌데!

“윽!”

마군은 몸을 움직이자마자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아픔에 휘감겼다.

“큭! 큭큭!”

마군은 툴툴거리면서 웃었다.

자신이 들었던 소리 역시 환청이었다. 어둠 저편에서는 무엇도 날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진의 무서움이다.

앞으로 이런 일, 이런 착각이 한두 번쯤 또 일어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착각일 수도 있을 것이고, 대여섯 번쯤 지속될 수도 있다.

어쨌든 자신이 더 이상 착각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생각에 대응을 하지 않으면…… 그때는 진짜 병기가 튀어나온다. 목숨을 단박에 끊을 수 있는 살상병기가.

환상으로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

몸에 아픔이 일어나지만, 가짜 감각에 휘둘리고 있지만, 이 상태가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프기는 한없이 아프더라도 죽지는 않는다.

결국, 목숨을 빼앗을 것은 살상병기다.

착각, 착각, 착각, 그리고 진짜 살병!

마군이나 촌장은 가짜를 구분해 낼 능력이 없다. 어둠 저편에서 어떤 소리가 일어나면 즉시 그 소리에 대응하는 병기가 연상되고, 몸이 움직인다.

위험을 느끼면 바로 반응하는 것이 무인의 몸이다.

이때의 움직임은 의식과는 관계없다.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어떤 때는 자신이 이렇게 움직일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기도 한다.

위험을 느끼고도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다가 진짜로 위험이 닥치면 당하는 수밖에 없지만, 어쩔 수 없다.

츠으으읍!

마군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운공에 몰입했다.

툭! 투툭! 툭!

이번에는 아주 위험한 자가 달려든다.

한 명이 아니다. 적어도 대여섯 명은 됨직한데…… 하나같이 절정고수들이다.

몇 명이나 달려오나?

감각이 말한다. 다섯 명…… 아니, 세 명!

다섯 명으로 느꼈는데, 한순간 다시 찾아보니 세 명밖에 되지 않는다.

역시 환상이다. 착각이다.

본능이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위험에 끊임없이 반응한다.

마군은 반응을 무시하려고 애를 써야 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운기에 집중이 안 된다.

‘끄응!’

마군은 흩어진 정신을 수습해서 다시 운기에 몰입했다. 헌데,

툭!

무엇인가가 목을 건드린다.

지금까지의 위험은 주로 기(氣)의 탐지, 혹은 소리에 의한 현혹이었다. 특정한 기운이 뻗쳐오거나 익숙한 병기 소리가 들려왔다. 반응하지 않을 수 없도록.

이번에는 촉감이다.

‘목을!’

일어나서 반응해야 한다.

하지만 마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방금 전, 다섯 명으로 느껴지던 움직임이 세 명으로 줄었다. 그리고 지금은 세 명 중에 한 명도 느껴지지 않는다.

목을 건드린 촉감, 누구인가? 누가 목을 건드렸는가? 촉감은 느껴지는데, 목을 건드린 자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에 목만 건드린다.

‘이놈의 진법…… 대단하긴 해.’

마군은 다시 운기에 집중하려고 했다. 헌데 그럴 수 없었다.

꾸욱!

목을 건드리던 촉감이 견갑골 위에 있는 견중유(肩中兪)를 건드린다. 견중유는 등뼈를 중심으로 좌우 한 혈(穴)씩 있다. 두 혈을 모두 짚는다.

이놈의 착각이 어디까지 깊어질 것인가.

목을 만지는 착각에 이어서 혈을 누르는 아픔까지 생생하게 감지된다. 너무 생생하게.

꾸욱!

혈이 눌러진다.

그리고 마군의 몸에 혈을 누른 것과 동일한 현상이 일어났다.

천식(喘息)이 멈춰지는 것 같다. 가슴에서 치밀던 헐떡거림이 잔잔해진다. 눈도 맑아지는 느낌이다. 운기를 하느라고 눈을 감은 상태이지만, 눈이 맑아진다는 느낌이 든다.

촉감이 옆으로 이동하더니 곡원혈(曲垣穴)을 눌렀다.

이곳은 손으로 압박만 가해도 통증이 느껴지는 곳이다. 헌데 손길이 매우 깊이 누르고 있는데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이곳 통각이 마비된 듯하다.

‘역시 착각인데…… 너무 생생해.’

촉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군은 더 이상 진기를 일으키지 못했다. 진기를 일으키려고 해도 단전이 의식되지 않았다. 모든 감각을 읽어버린 듯, 기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이건!’

착각이 아니다.

목을 만지던 촉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목에 손길이 닿았다. 그리고 그 손길은 혈을 눌러갔다. 서둘지 않고 천천히, 마군의 전신대혈을 낚아챘다.

마군은 자신의 모든 것을 적에게 맡기고 있었던 것이다.

‘누, 누구……!’

마군은 소리쳐 말하려고 했다.

헌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혈(啞穴)이 단단히 짚여서 턱조차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니, 목구멍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성대까지 장악되었다.

혈을 누르던 촉감이 멈췄다.

‘촌장!’

마군은 눈을 뜨지 못했다. 운기를 하던 상태 그대로 점혈이 되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반송장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촌장이 당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직감한다.

으으! 으!

촌장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촌장은 조금 반항이라도 하는 것 같다. 적극적으로 손발을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의식으로 정신으로 대항하는 느낌이 명확하게 전달된다.

그러나 늦었다. 촌장의 신음 소리로 미루어보아 촌장도 이미 절반 이상을 제압된 상태다.

잠시 후, 촌장의 신음 소리도 멈췄다.

스읏! 스읏! 스으읏!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만 든다.

상대는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촌장의 혈을 꼼꼼하게 제압하고 있다. 역시 서둘지 않고 천천히.

화악!

눈앞이 환하게 밝아졌다.

어둠 속에 있다가 갑자기 밝은 세상으로 나온 것 같다.

마군은 눈을 떴다.

눈이 떠진다. 그리고 밝은 빛의 실체가 보인다. 눈앞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이 보인다.

마군은 모닥불 저쪽에 앉아있는 검왕도 봤다.

마군을 주위를 두리번거리려고 했으나, 고개는 돌리지 못했다. 눈은 뜰 수 있지만 몸은 움직이지 못한다.

츠으으읏!

진기를 일으켜서 어떤 혈이 제압됐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역시 진기가 일어나지 않는다. 단전조차도 느낄 수 없고, 경맥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그는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검왕!”

마군의 옆에서 침중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서 쳐다볼 수는 없지만, 촌장의 음성인 것만은 틀림없다. 촌장도 자신과 같은 꼴이 되어서 옆에 앉혀진 것 같다. 모닥불을 마주 보고.

검왕이 모닥불 너머에서 고개를 쳐들었다.

검왕의 얼굴이 보인다.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흑발 사이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보인다.

검왕이 말했다.

“우리 모두 죽습니다.”

“후후! 그런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여기에서 죽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우릴 죽일 수도 있었는데 죽이지 않았군. 이유를 알 수 있나?”

“현음자는 마공관에 마학을 남겼습니다.”

“알고 있지.”

“우리도 잔재주나마 남겨야 하지 않습니까.”

순간, 촌장이 말을 멈췄다.

촌장은 그제야 무릎 앞에 놓여 있는 지필묵을 발견했다.

마군도 마찬가지다. 마군 앞에도 지필묵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도 잘 안다. 마공관에 마학을 남기듯, 자신들의 절학을 남기라는 뜻이다.

“거부한다면?”

마군이 촌장 대신 물었다.

검왕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미 붓을 들고 종이에 자신의 절학을 남기는 중이었다. 그의 옆에는 지금 쓰고 있는 것 외에도 상당히 많은 종이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검왕이 글을 쓰면서 말했다.

“이 모닥불은 공기를 갉아먹을 거요.”

‘공기를 갉아먹어?’

마군은 일순, 검왕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곳은 꽉 막혔소. 탈출할 곳도 없고, 빠져나갈 수도 없지. 우린 땅속 깊이 묻혀 있는 거지. 다시 말해서 이곳 공기가 사라지면 우린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해.”

“이런!”

“이 모닥불은 공기를 갉아먹고, 우린 이 모닥불을 보면서 우리 생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을 뿐.”

“…….”

“절학을 안 남긴다고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다만 난 이러고 싶은 거니까.”

검왕이 말을 끝내고 종이에 글을 써내려갔다.

사각! 사사삭!

붓이 종이에 닿을 때마다 눈을 밟는 듯 사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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