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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146화 (146/225)

# 146

第三十章 장사(長絲)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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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처럼 청초한 아름다움을 한껏 풍기는 여인과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미공자가 산정에 올라섰다.

누미와 화천이다.

“아! 살 것 같아!”

누미가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쭉 켰다.

누미의 모습은 매우 싱그럽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이마는 매우 보송보송해서 금방이라도 꽃가루를 흘려낼 것 같다.

“좋죠?”

“음! 좋아.”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화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화천은 경치를 감상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매의 눈으로 넓은 산 곳곳을 살펴봤다.

“긴장 풀어요.”

“긴장 안 해.”

“하고 있어요.”

“알았어. 긴장 풀지.”

“크게 숨 한 번 들이켜봐요.”

화천은 누미가 시키는 대로 크게 숨을 들이켰다.

“좀 괜찮죠?”

화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미가 말했다.

“이 산에서 많은 사람이 죽을 거예요. 이미 죽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우리가 조금 늦게 왔으니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그 싸움판에 끼어들어야 하는데, 정말 자신 있어요?”

“자신 있고 말고 할 게…….”

“군말은 필요 없고, 자신 있어요?”

“자신 있어.”

화천이 순순히 대답했다.

지금 누미의 겉모습은 예전에 화천이 누미를 겁박해서 혈루마옥으로 끌고 갈 때와 똑같다.

순수하고 맑다.

그녀는 혈루마옥에서 요부(妖婦)의 본성을 드러냈다.

그녀는 요미검체다.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본성이 요부의 기질이다.

그런 본성은 혈루마옥의 가공할 무공과 함께 활짝 피어났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여인처럼 앳되고, 순수하고, 맑다.

그녀는 아이를 낳은 여자 같지 않다.

그녀와 화천이 나란히 서 있지만 두 사람에게 부부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화천의 동생이나 아는 사람 정도로 여길 것이 분명하다.

누미는 너무 순수해서 세상 물정은 물론이고 남녀 간의 정리조차도 알지 못한다.

화천은 그런 누미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그녀는 부인이 아니다. 그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가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던 누미는 이미 죽고 없다. 그의 곁에 서 있는 누미는…… 그가 두려움을 느껴야 할 무림고수다.

그녀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다.

헌데 아이…… 갓난아이…… 그가 안고 있는 아이도 그의 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혈오는 혈루마옥 모든 사람의 아이다.

자신의 씨를 받고 태어났으니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의 아이이련만 결코 자신의 아이가 아니다.

누미가 티 없이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한 번뿐이에요. 그 한 번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영원히 무림 언저리에서 겉돌아야지 돼요. 그리고 그런 상황이 되면 전 결코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자신이 없더라도…… 목숨은 걸어요.”

화천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누미의 말은 사실이다. 그녀는 용서를 하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실력도 있다.

요미검체!

화천은 요미검체의 실체를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정확하게 알게 된 사람 중 한 명이다. 아니, 요미검체를 아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호호호! 가요.”

누미가 먼저 신형을 쏘아냈다.

그녀는 혈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혈오는 계속 누미만 쳐다보고 있건만.

“어떻게 여기를!”

누미와 화천을 본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녹천은 기린산에 여장을 풀었다. 중원 곳곳에 퍼져있는 녹천 무인들이 한 명, 두 명 기린산으로 모여들었다.

녹천주가 기린산에 있다.

녹천주는 촌장과 증평주의 근황을 궁금해한다. 곧, 조만간 그들이 소식을 전해올 것이기에.

그런 상황에서 전혀 예상치 않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천주님은?”

“못 들어가십니다.”

녹천 사람 중에 한 명이 화천의 앞을 가로막았다.

“날 막을 셈이냐? 네가?”

화천을 막아선 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화천 앞에 굳건히 버티고 선 채 묵묵히 쳐다보기만 했다.

화천이 검을 뽑으면 그도 뽑는다.

물론 그는 화천을 이기지 못한다. 화천은 녹천에서 녹천주 다음 가는 고수다.

그래도 그는 맡은 일을 한다.

누미가 화천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천주님을 뵙고 싶어요.”

“촌장님께 맡은 일이 있는 줄 알고 있소만.”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왔어요. 제가 무슨 일을 맡았는지 아세요?”

그가 알 리 없다. 누미는 촌장에게서 직접 명을 받았다. 그렇기에 명을 받은 사실만 알뿐이지 어떤 명령인지는 알지 못한다. 설혹 녹천주를 죽이라는 명령이라고 해도.

“전갈을 전해주세요. 저희들이 찾아왔다고.”

누미가 화사하게 웃었다. 마치 어린 동녀(童女)가 예쁜 나비를 보고 웃는 듯이 밝다.

그때, 안쪽에서 큰 웃음소리와 함께 한 녹천주가 나타났다.

“하하하! 안으로 모셔라. 우리에게 자유를 준 귀한 분이 아니시더냐. 찬물이라도 대접해야지.”

“저는 누산을 죽여야 해요.”

누미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 명이었나?”

“네.”

“누산을 죽여라…… 흠! 누산은 이 기린산 어디에 숨어있는 것으로 아는데.”

“맞아요.”

“찾을 수 있나?”

녹천주의 눈빛이 반짝였다.

누산은 적벽검문의 총사 역할을 했다. 더불어서 중원에서 알아주는 거부이기도 하다.

누산을 잡으면 평생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 그것이 설혹 나라를 경영하는 일이라고 해도. 하물며 중원을 호령하는 일쯤이야.

“누산을 살리고 싶으신가 봐요?”

“허허허!”

녹천주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누미를 쏘아봤다.

파파파파팟!

녹천주의 눈에서 살기가 흘러나온다. 차디찬 살기, 몸서리쳐지는 살기가 뿜어진다.

허나 누미는 태연히 그 눈길을 받는다. 여전히 맑은 눈으로.

녹천주가 살기를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

“살리고 죽이는 것은 차후 문제고…… 누산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나?”

“알죠.”

“이 산에 있는 것은 맞나?”

“맞아요.”

“하하하하! 거짓말!”

녹천주가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너는 누강과 검왕밖에 모르지 않나? 적벽검문의 실체조차도 알지 못할 터인데? 솔직히 문주의 얼굴도 보지 못한 것으로 아는데, 그런데도 누산을 알아?”

누미는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호호호!”

그녀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눈앞에서 티 없이 맑은 소녀들이 시름 근심 없이 마음껏 뛰어노는 것 같다.

녹천주의 살기가 저절로 누그러진다.

‘이런!’

녹천주는 깜짝 놀라 누미를 쳐다봤다.

그는 살기를 지울 생각이 없었다. 물론 누미를 죽일 생각도 없지만, 위협은 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화가 끝날 때까지 살기를 피워낼 심산이었다.

그런데 살기가 녹아버린다. 웃음소리에.

“무공이 상당히 깊어졌구나.”

“둘 중에 하나예요. 같이 움직이실래요, 아니면 혼자 움직일까요?”

“네가 요구하는 것은?”

“우리 낭군의 복귀.”

누미가 아이를 안고 있는 화천의 팔을 껴안으면서 배시시 웃었다.

“화천을 다시 받아달라?”

“예전처럼 녹천에 대한 전권을 주세요.”

“겨우 그 정도는 아닐 텐데?”

“하실 수는 있으시고요?”

“으음!”

녹천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누미를 가지고 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누미에게 끌려가고 있다.

기분이 좋지 않다.

화천에게 녹천을 다시 맡기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화천의 권한은 촌장이 거둬갔다. 녹천주의 명령이 아니라 촌장의 명령이다.

즉, 그가 화천을 복귀시킨다는 것은 촌장의 명령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반역!

허나 누미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촌장은 그녀에게 누산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그녀는 명령을 쫓아서 이곳까지 왔다.

그녀는 누산을 죽여야 한다.

하지만 살릴 수도 있다. 녹천주가 한 마디만 하면. 그리고 그런 행동을 저지르고 나면 녹천주와 누미는 촌장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 된다. 둘이 공범이다.

화천의 복귀에는 ‘숨은 결단’이 담겨 있다.

녹천주는 머릿속으로 기린산 절봉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곳은 현음자가 만든 곳이다. 절봉 위로 올라간 사람은 현음자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살아나온다.

현음자는 이곳에 든 자, 모두를 죽일 심산이다.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살고 죽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산할 수 있는 게다.

촌장은 하산할 수 없다.

증평주도 하산할 수 없다.

아직 확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머뭇거릴 이유도 없다.

어차피 촌장이 하산하면 녹천주는 산정에 오르지 않은 책임을 추궁받는다. 물론 그에 대한 답변은 이미 준비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누미의 말을 쫓으면 그 변명도 무색해진다. 완전히 촌장과 등을 져야 한다.

녹천주는 결단을 내렸다.

그가 얼굴에 살기를 풀고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좋다.”

“누산이 이곳에 있나?”

화천은 누산에 대한 말을 처음 들었다. 누미가 누산을 죽일 생각이라는 것, 아니 이제는 누산을 포획하여 이용할 생각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가가는 아무 생각하지 말고 녹천이나 장악해요.”

누미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이럴 때의 그녀 모습은 영락없이 풋풋한 소녀다. 이제 막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한 풋내기 소녀다. 너무 풋풋해서 욕기(慾氣)마저 치밀지 않는다.

요염함이 완전히 빠져나간 순수 결정체.

‘무서운 여자…….’

화천은 더 묻지 못했다.

지금부터 그는 녹천을 완벽하게 장악해야 한다. 녹천주에게 검을 겨눌 수 있을 정도까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미에게 버림받는다. 버려질 것이라고 이미 언질 받았다.

자신 있어요? 자신 있어.

자신이 없어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녹천을 장악하는 일에 전력으로 달려들어야 한다.

그는 자신 있었다. 예전에 이미 한 번 장악해 본 무리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한 곳에서 태어나 같이 자란 사이이기 때문에 속속들이 잘 안다.

싹수가 노란 자는 과감하게 쳐낸다.

어떠한 이유로도 녹천주를 배신할 수 없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도 미련없이 쳐낸다.

이런 일들을 녹천주가 알지 못하게 진행시켜야 한다.

문제는 기한이다.

누미는 녹천을 장악하는 시간으로 단 사흘만 제시했다.

지금까지 녹천주에게 충성하던 자들, 녹천주와 혈연관계에 있는 자들을 단 사흘 만에 자신 쪽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아무리 화천이라고 해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하지 않으면 버려진다.

“내가 알기로는 누산과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래요. 사실 얼굴도 몰라요. 누산이라는 이름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아요.”

누미는 적벽검문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사부이자 양부인 누강에게 들은 것이 전부다. 적벽검문에 입문했다고 하지만 적벽검문의 무공조차도 전수받지 못했다.

누강은 평범한 자였고, 그런 자에게 전수받은 무공이라고 해봐야 내세울 게 없다.

무림에서야 검성 당주라고 하면 ‘와!’하고 감탄을 하겠지만 혈루마옥에서는 콧방귀만 뀐다.

그러니 누산에 대해서 알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누미는 아주 가볍게 말했다.

“내일쯤 누산을 만나볼 거예요. 소문처럼 돈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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