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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144화 (144/225)

# 144

第二十九章 지멸(地滅) (4)

‘아! 안 돼!’

마군은 증평주의 의도를 눈치챘다.

증평주가 신형을 쏘아낸 이유, 결과를 보지 않아도 짐작한다. 증평주의 마음을 헤아린다.

순간, 그야말로 부지불식간, 마군은 불길한 예감에 휘감겼다.

증평주가 하려는 일을 알고, 이치적으로 증평주가 하는 일이 맞는데도 뭔가 틀리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이 느낌은 너무나도 절대적이라서 항거할 수 없다.

쉬익!

마군도 쾌속하게 신형을 쏘아냈다.

“아, 안 돼! 안 돼!”

마군은 증평주가 검왕에게 다다르기 전, 다급하게 소리 질렀다.

그는 증평주보다 늦다. 더군다나 그는 증평주보다 뒤에 서 있었고, 신형도 뒤늦게야 쏘아냈다.

그가 전력을 다해도 증평주를 따라잡지 못한다.

“안 돼! 안 돼!”

무엇이 안 되는지 알지 못한다. 무조건 검왕을 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 든다.

증평주가 마군의 외침을 들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검왕을 지척에 두고 있었다.

검에 내력이 가득 담겨있다.

그녀는 검왕의 무공을 정확하게 견식했다. 촌장과 싸워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무기를 봤다.

그녀가 전력을 다해도 많이 모자란다.

그녀는 마군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마군의 말에 신경쓸 여유는 더더욱 없었다.

쒜에에에엑!

검광이 검왕을 가른다. 곧바로 정수리부터 갈라간다. 순간,

텅! 텅! 퍼억!

여러 가지 소리가 복합적으로 울렸다.

검왕은 끈 떨어진 연처럼 뒤로 훌훌 날아갔다.

증평주는 정반대로 쏘아져갔던 속도 그대로 뒤로 퉁겨나왔다.

촌장은 비틀거린다. 앞에서 무엇인가가 확 끌어당겼을 때처럼 앞으로 두어 걸음 비틀거리면서 딸려나갔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타앗!

마군은 쏘아져 가던 신형을 멈추지 않고 계속 쏘아냈다.

검왕! 검왕!

검왕이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만장단애 저 밑으로 끝간 데 없이 떨어져 내린다.

그때다!

위이이이잉! 사사사사삿!

혈갈잔붕이 날아오른다. 시부독의가 성을 내며 달려든다.

두 독물들은 세 사람을 완벽하게 확인했다. 먹잇감으로 골라냈다. ‘가’라는 판단을 내렸다.

타앗!

촌장이 증평주를 받아들고 뒤로 훌쩍 물러섰다.

마군도 급히 뒤로 물러서서 혈갈잔붕을 대비했다.

“무엇이냐?”

촌장이 급히 물었다.

“이상했습니다.”

마군을 장삼을 벗어 허공에 휘두르며 대답했다.

타탁! 타타탁!

혈갈잔붕들이 장삼에 휘말려 나가떨어진다. 하지만 이런 수법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쉬이이익!

그들은 급히 잔교가 걸려있던 곳으로 물러섰다.

그나마 그곳에는 혈갈잔붕이 몰려있지 않다. 시부독의도 그쪽 방향에만은 없다.

이것은 분명한 함정이다.

정상 부근 전체에 독물들이 쫙 깔려 있는데 건널 수도 없는 철삭 부근에만 독물이 없다는 것은…… 그래도 그쪽밖에 갈 곳이 없으니 간다.

“검왕은 이곳에 오기 전에 증평주부터 잡았습니다.”

마군은 ‘잡았다’는 말에서 힘을 뺐다.

왠지 증평주가 나포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입으로 말하기가 꺼림칙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말을 가릴 형편이 아닌지라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증평주를 먼저 잡은 이유…… 증평주가 이곳에 꼭 필요하다는 말이 아닐까 싶어서요.”

“증평주가 달려들 것까지 생각했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으음!”

촌장이 신음하며 무기를 끌어냈다.

파아아아아!

노을이 번져간다. 아름다른 무지개가 산 정상을 어루만진다. 독물들을 다독인다.

혈갈잔봉이 날개를 거둬들였다.

그렇다고 잔봉들이 날아간 것은 아니다. 정상에 자리를 잡고 언제든지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시부독의도 전진을 멈췄다.

츠으으으읏!

촌장은 끊임없이 진기를 뿜어낸다.

검왕이 없어서 독물들을 다독이기가 한결 편하지만 그렇다고 진기를 거둘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상태는?”

촌장이 증평주를 마군에게 건네며 물었다.

“기식이 엄연합니다.”

“음!”

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증평주는 죽지 않은 것만도 용하다. 증평주는 검왕의 무공에 촌장의 무공까지 같이 상대해야만 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촌장이 내력을 비틀었지만…… 그래도 증평주는 잔기(殘氣)를 고스란히 얻어맞았다.

그 힘은…… 그 타격은…… 장정 백여 명이 일시에 장작으로 두들겨 팬 것과 같을 것이다.

증평주는 오장육부가 뒤틀렸을 것이다.

기혈이 마구 엉키고…… 원정까지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음!”

마군이 신음만 할 뿐, 말을 하지 못했다.

“말하라.”

“심각합니다.”

“…….”

“간신히…… 숨만 붙어 있습니다. 내상은 치유될 수 있겠지만…….”

‘두 번 다시 무공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겁니다.’

마군은 말을 미처 마치지 못했다.

쉬잇!

촌장이 거름종이에 싸인 단환을 던져주었다.

“복용시켜라.”

마군은 단환을 증평주의 입에 넣고 천돌혈(天突穴)을 꾹 눌러주었다.

꾸르르륵!

단환이 목구멍 안으로 넘어가며 향긋한 내음을 풍긴다.

‘이것으로는 안 돼.’

마군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촌장이 건네준 단환은 내상 치료에는 요긴하지만 무공을 되살릴 수는 없다.

촌장도, 마군도, 검을 쳐낸 증평주도 이 정도까지 손상을 입을 것이라는 것은 예상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숨이 붙어 있지도 못할 줄 알았다.

촌장이 말했다.

“길을 살펴봐라.”

“네.”

마군은 십마 중에 일인이다. 하지만 촌장 앞에 서니 마치 부하라도 된 것 같다.

촌장이 주는 심리적인 압박은 대단히 크다.

마군은 철삭을 살피기 시작했다. 저 쪽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건너가도 혈갈잔봉은 피하지 못하겠지만.

“길이 없습니다.”

마군이 반 시진을 뒤진 끝에 말했다.

현음자의 기관진식은 매우 복잡하다. 사방에 미로처럼 길을 뚫어놓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마공관에 검왕이 거주했던 동굴이 좋은 사례다.

마군이 누강의 이목을 속이고 마공관으로 스며들었던 통로도 비밀 통로 중에 하나다.

그런데 이곳에는 일체 그런 통로가 없다.

이곳이 정말 현음자가 만든 곳이 맞나?

솔직히 현음자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절곡 밑에서부터 회오리쳐 올라오는 강풍뿐이다.

아직도 두 절벽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강풍은 분명히 비정상이다.

이곳에는 저만한 강풍이 불지 않는다. 기련산 밖에서 보면 조그마한 미풍조차 느끼지 못한다. 오직 이곳 정상에서만 강한 강풍을 보게 된다.

그 밖에는…… 시부독의와 혈갈잔봉은 기관진식보다는 오히려 독공 쪽에 가깝다.

현음자가 독공에도 일가견이 있었나?

그것보다도 다른 점에 의문이 생긴다. 현음자가 죽은지 얼마나 오래 됐는데 아직까지 저런 독물체가 살아있는 것인가. 저 독물체들이 대를 이어서 생존해 왔다는 결론이지 않은가. 그런게 정말 가능한 것인가.

‘어쩌면 현음자라는 이름만 빌린 게 아닐까?’

마군은 그런 생각까지 했다. 그때,

“으음!”

촌장이 옅은 신음을 흘렸다.

마군이 주변을 뒤지는 동안에도 촌장은 끊임없이 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촌장의 무기는 평화롭다. 날카롭지가 않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무공을 쓰고 있지만 쓰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사실, 촌장은 고개도 돌리지 못할 정도로 집중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촌장의 내공 소모가 매우 극심하다는 뜻이다.

‘단지 독물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뿐인데…….’

이 싸움은 몇 번을 생각해도 저쪽 우세다.

시간이 흘러서 촌장이 무기를 뿜어내지 못할 정도가 되면, 혈갈잔봉과 시부독의는 다시 움직일 게다.

증평주를 혼절시켰다.

촌장의 내력을 말끔히 소진시키고 있다.

마군 정도는 눈에도 차지 않는다.

앞으로 한 시진만 지나면 승패의 추는 저쪽으로 기운다. 만약 검왕 같은 자가 한 명이라도 나타난다면…….

검왕!

검왕이 정말 죽었나! 검왕이 정말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나!

마군은 섬뜩한 생각이 들어서 절벽 아래를 쳐다봤다.

그곳에는 새까만 어둠 뿐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밑에서 쳐올라오는 강풍에 얼굴이 찢어져 나갈 것 같다.

‘죽었겠지.’

마군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미간을 찡그렸다.

이 난관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이 다음에 닥쳐올 위기는 무엇인지.

스읏! 털썩!

촌장이 손을 거두고 털썩 주저앉았다.

촌장의 이마에서 굵은 땀이 흘러내렸다. 등에도 땀이 축축하게 배었다.

“괜찮으십니까?”

“반다경만 막아라.”

촌장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혈갈잔봉을 눈앞에 두고 운기조식을 취해야 할 만큼 상황이 나빠졌다.

마군은 급히 장삼을 둘둘 말아감고 앞으로 나섰다.

다행스럽게도 혈갈잔봉은 움직이지 않는다. 시부독의도 움직이지 않는다.

휘이이잉!

절벽 밑에서 몰아쳐온 바람이 사납게 살을 할퀸다.

“허! 허허! 허허허!”

촌장이 웃었다.

마군은 촌장이 웃는 뜻을 알아채지 못했다. 상황은 바뀐 것이 없는데 왜 웃는 거지?

“현음자.”

촌장이 현음자를 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군은 촌장에게 눈길도 주지 못했다. 그는 혹여 촌장의 웃음소리에 혈갈잔봉이 깨어날까봐 그게 더 불안했다.

촌장이 증평주를 안아 들면서 말했다.

“잘 곳을 준비해라.”

“네?”

마군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저놈들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달려들지 않을 테니까.”

“네?”

마군은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반문했다.

그러자 촌장이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캄캄했을 때는 알지 못했는데……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땅에 그려진 선이 보인다.

철삭이 있는 곳에서부터 십여 장쯤 공간이 있고, 그 바깥쪽으로 청색 선이 그어져 있다.

시부독의는 딱 그곳까지 달려왔다.

혈갈잔봉도 청색 선 앞에서 날개를 접었다. 촌장이 무기로 다독인 점도 있지만 그들 스스로 멈춰선 것이다.

그러고보니 마군은 싸우지 않았다. 혈갈잔봉이 날아들면 정말 피곤한 싸움이 되었을 텐데…… 참 요행히도 달려들지 않는구나, 촌장의 무기가 꽤 효험있구나 하는 생각만 했다.

촌장이 말했다.

“우린 갇혔다. 이곳에. 그러니 당분간은 머물러야 될 것 같고, 잠자리나 준비해라.”

마군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청색선과 혈갈잔봉들만 번갈아 쳐다봤다.

그들이 건너왔던 철삭은 끊어지고 없다.

한쪽은 벼랑이요, 다른 한 쪽은 독물들이 머물러 있다. 꼼짝 없이 이곳에 갇히고 말았다. 이곳을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검왕처럼 절벽 밑으로 뛰어내리는 것인데, 그것마저도 혈갈잔봉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갇힌 것이다.

촌장 같은 초절정고수가…… 한낱 독물과 벼랑 따위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으음!”

마군은 나직히 신음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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