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42화 (142/225)

# 142

第二十九章 지멸(地滅) (2)

“이놈들, 생각보다 빠르군.”

촌장은 급히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

촌장이 세 걸음을 물러설 동안에 시부독의는 한 걸음 정도 거리를 좁혀 왔다.

수십, 수백, 수천 마리가 일시에 쏴아 몰려든다.

기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지만…… 시부독의가 검왕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부독의는 검왕 곁을 지나면서 달려들지 않았다.

이것은 아주 이상한 예외다.

시부독의는 가부(可否)밖에 모른다. 하나와 둘, 이 두 가지 중에서 하나만 선택한다. 가(可)로 판단되면 진행하고, 부(否)로 판단되면 피한다.

앞으로 나아갈 때, 집을 찾아갈 때, 먹이를 찾을 때, 동료들과 의사소통을 할 때…… 개미의 모든 삶은 가부로 진행된다. 항상 맞냐, 틀리냐를 떠올리고 선택한다.

먹이 선택에서 육식은 가(可)다. 무조건 가다.

죽은 고기, 산 고기 가리지 않는다. 썩은 고기도 가리지 않는다. 고기만 맞닥트리면 무조건 ‘가’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어 있고, 달려들도록 만들어졌다.

한 마디로 단순하다.

이렇게 단순한 판단으로 매우 조직적인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니 이 또한 불가사의하다고 할까.

어쨌든 고기는 무조건 먹이로 판단한다.

시부독의는 검왕을 만났다. 고기를 만났다. 무조건 ‘가’라는 판단을 내렸고, 달려들어야 한다.

여기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

하물며 시부독의는 나무와 풀도 뜯어 먹는다.

식물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생물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면 무조건 먹는다.

먹을 수 있는 것을 만났을 때, 시부독의는 무조건적으로 ‘가’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검왕은 ‘가’다.

검왕은 시부독의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촌장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시부독의가 밀려들기 전과 마찬가지로 편안하게 맞은 편 어둠을 쳐다본다.

촌장이 뒤로 네 걸음 더 물러섰다.

이제 검왕과 촌장은 상당히 떨어졌다. 몸을 솟구쳐야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벌어졌다.

촌장이 말했다.

“부인천멸공(不人天滅功)은 쓸모가 별로 없으면서도 내공 소모는 극심해. 차라리 뒤로 물러서는 게 속 편하지. 언제까지 앉아있을 셈인가?”

시부독의가 검왕에게 달려들지 않는 이유가 부인천멸공인 것으로 단정한 말투다.

사실 그 말이 맞다.

시부독의는 검왕과 맞닿지 않는다. 검왕에게 다가서기 전에 ‘부’라는 판단을 하게끔 되어있다. 검왕 주위를 미지의 기류가 감싸고 있으니까.

부인천멸공이 일으킨 효과다.

부인천멸공은 검왕 주위로 일정한 막을 형성시킨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막이다. 또한 시부독의에게는 ‘부’라는 오판을 일으키는 막인 듯하다.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우욱! 부우우우욱!

마치 거대한 비단을 천천히, 아주 느리게 찢는 듯한…… 아니, 바위가 매우 미세하게 균열을 일으키는 듯한.

부웅!

그중에 파편 하나가 툭 튀어나와 촌장 이마에 꽂혔다.

촌장은 검지와 중지로 파편을 잡았다. 그리고 다소 놀란 어조로 말했다.

“이건 남만(南蠻)에만 존재한다는 혈갈잔봉(血竭殘蜂) 아닌가?”

“아!”

“산 넘어 산이군.”

검왕은 말이 없다. 증평주는 나직이 탄식을 토해냈고, 마군은 저도 모르게 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혈갈잔봉도 시부독의처럼 ‘가부’밖에 모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시부독의는 먼저 독기로 상대를 마비시키고 달려드는 반면에 혈갈잔봉은 촌각의 여유도 주지 않고 급격하게 달려든다는 점이다.

이 차이만 있을 뿐,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땅은 시부독의가 차지하고…… 그러니 땅속으로 숨는다는 것은 무의미하지. 허면 허공으로 뛰어올라야 하는데, 허공은 이놈들이 차지하고 있군.”

촌장이 손에 잡힌 혈갈잔봉을 꾹 눌러 죽였다.

그들의 생각은 처음부터 다시 수정되어야 한다. 시부독의를 피하기 위해서 절벽으로 뛰어내려도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그때는 혈갈잔봉이 허공에서 낚아챈다.

땅과 하늘이 모두 막혔다.

화약으로 산정을 붕괴시킨다면 빠져나갈 틈이라도 찾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절망밖에 없다.

스릉! 스릉!

증평주가 검을 뽑았다. 마군도 뒤따라서 검을 뽑았다.

두 사람은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이심전심(以心傳心), 서로가 할 바를 알고 있다.

두 사람이 나무를 긁어모은다. 큰 나무도 검으로 쳐서 잘라온다.

두 사람은 잘라온 나무들로 둥글게 원을 그리고 불을 붙인다.

탁! 타타탁!

불이 피어나면서 뜨거운 혈기가 사방을 휘감는다. 그리고 허공으로 솟구친 혈기는 절곡에서 불어온 바람에 휘날려 미친 듯이 엉클어진다.

부우우우웅!

혈갈잔봉이 불길을 넘어 세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증평주와 마군은 불붙은 나무를 휘둘러서 잔봉들을 쳐냈다.

잔봉들이 불에 타기도 하고, 나무에 맞아서 기절하기도 하고…… 좌우지간 첫 번째 돌입은 무마시켰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사방이 캄캄한 어둠뿐이라서 잔봉들이 얼마나 많은지 파악되지 않는다. 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다. 아마도 절곡을 빼곡히 메우고 있을 것이다.

구우우우웅! 구구구궁!

사방에서 바위 떨어지는 소리가 울린다.

한낱 벌이 날고 있을 뿐인데…… 봉군(蜂群)이 일으키는 날갯짓 소리가 하늘이 무너질 때처럼 무겁다.

저 벌이 일제히 달려들면 모닥불이고 뭐고 초토화되어 버린다.

이제야 검왕이 말한 뜻을 알겠다. 이곳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는 말을.

힘이 빠진다. 무기력해진다. 자신들에게 닥친 상황을 타개할 방책이 전혀 없다.

그런데 촌장은 한술 더 뜬다.

“현음자가 한 일이니 이 정도 가지고는 안 되겠지. 몇 개나 더 남았나?”

“현음자는 법(法)을 중시합니다.”

“법이라…….”

“억지로 일으키는 것이 아니죠. 일어날 때가 되면 일어납니다. 일어날 상황이 되면 일어납니다.”

“후후! 우선 이 상황부터 타개하라 이건가?”

“…….”

“그럼 그러지.”

촌장은 시부독의와 혈갈잔봉을 보면서도 평화로웠다. 고요했다. 일점 동요도 일으키지 않았다.

촌장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합장했다. 순간,

우우우우우웅!

촌장의 몸에서 기이한 울림이 일어났다.

촌장이 운공을 하고 있다. 입공(入功)을 하면서 진기를 사방으로 뻗어낸다.

안으로 갈무리하는 운공이 아니라 기력을 떨쳐내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드러내는 운공법이다.

구구구구궁!

혈갈잔봉이 운기의 영향을 받았는지 미친 듯이 출렁거린다. 금방이라도 수천만 마리의 혈봉들이 확 하고 달려들 것처럼 보인다. 어둠이 일렁거린다.

스으으으읏!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기류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검왕과 싸울 때 펼쳤던 바로 그 기운이다. 자신을 잊어버린 상태에서, 그러나 망각한 것이 아닌, 자신이 뚜렷하게 지켜보고 있는 그런 기운이 번져나간다.

스스스스스! 파파팟! 구구구궁!

기운은 제일 먼저 시부독의와 부딪쳤다. 시부독의를 훑는다. 그리고 계속 나아가 혈갈잔봉을 건드린다. 혈갈잔봉 사이를 마구 누비면서 나아간다.

기류는 날개가 필요 없다.

기류는 장소도 연연하지 않는다. 펼쳐져 나갈 수 있는 모든 것으로 나아간다.

헌데…… 효과가 있다.

시부독의가 전진을 멈췄다. 혈갈잔봉이 성난 날갯짓을 멈추고 고요히 잦아든다.

물론 아주 잠시, 잠깐뿐이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혈갈잔봉이 먼저 일어섰고, 그 뒤를 이어서 시부독의도 전진을 계속한다.

이쪽에 촌장이 있다면 저쪽에는 검왕이 있다.

촌장은 시부독의와 혈갈잔봉을 고요히 가라앉혀야 하고, 검왕은 성질을 북돋기만 하면 된다.

이치상으로 검왕이 훨씬 유리하다.

실제로도 그렇다. 촌장은 집중해서 진기를 운용하는 반면, 검왕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유유히 앉아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매우 대조적이다.

헌데 촌장은 달리 생각하는 듯하다. 촌장이 여전히 합장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부인천멸공을 언제까지 유지할 듯싶은가?”

“…….”

“거기에 극살(極煞)까지 가미시키면 진기 고갈이 두 배는 앞당겨질 터. 허허!”

“아직은 버틸 만합니다.”

“한 가지 더, 자네는 내가 자네를 고이 깨웠다고 생각하나?”

“…….”

“금제를 가했네.”

“알고 있습니다.”

“어떤 금제인지도 알고 있나?”

“…….”

“내공이 일정 한도를 넘어서면 마성(魔性)이 일어나도록 했지. 한 마디로 정말 마인이 되는 것이네.”

“…….”

“허허허! 마공을 수련했으면 마인이 되어야 마땅한 것이지. 헌데 자네는 그 이치를 어겼어. 적벽검문 심공으로 마성을 억누르고 있는데, 그것을 제거해 버렸으니.”

검왕은 말을 하지 못했다.

촌장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진심이다. 굳이 촌장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 사실은 검왕 자신이 먼저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무공을 일으키자 살심이 일어난다.

내공을 전개하자 기쁨이 일어난다. 헌데 그 기쁨은 곧 살인충동으로 이어진다.

세상이 아름답다. 무슨 짓을 해도 용납해 줄 것 같다. 미친 듯이 날뛰어도 좋을 것 같고…… 아니, 꼭 그러고 싶다. 미친 듯이 날뛰고 싶어진다.

환각, 환청이 일어난다.

나쁜 환각이나 환청은 아니다. 아주 거대한 기쁨을 몰고 오는 이상 증상이다.

물론 이것은 마성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지금 일어난 환청과 환상을 쫓다 보면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제정신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공을 수련하면 마성이 신장한다.

심성이 올바른 사람이라고 해도 마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마공이라고 한다.

수련하면 반드시 마인이 되기 때문에 수련하지 말라고 한다.

검왕은 그런 마공을 절정으로 수련했다. 그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 마공관 마공을 모두 섭렵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검왕이 펼치고 있는 부인천멸공 역시 마공이다. 마공관에 소장되었던 마공 중에 하나다.

인위적으로 인간의 기운을 소멸시키는 무공이 어떻게 정공이 될 수 있겠는가.

적벽검문 심공으로 둑을 쌓고, 그 안에서 마공을 운공해 왔는데…… 촌장이 둑에 금을 냈다. 둑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검왕 자신이 스스로 느끼고 있다.

지금 상황은 촌장보다 검왕이 불리하다.

촌장이 유기(遊氣)로 두 독물군을 다독이고 있는 이상, 두 독물은 극성으로 날뛰지 않는다.

동물은 배가 고파야 움직인다. 아니면 특정한 목적이 있어야만 움직인다. 또는 자신들의 종족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되어야만 움직인다.

한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꿀을 모으는 꿀벌도 겨울철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촌장이 만들어 놓고 있는 상황이다.

촌장은 두 독물군에 편안함을 제공한다. 유기로 성질을 다독여서 고요함을 이끌어낸다. 평화의 힘으로 쓰다듬어서 배고픔까지 망각시켜 버린다.

검왕은 누그러진 성질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강렬한 마기를 토해낸다. 극살의 기운을 토해내서 적이 침범했음을 알린다.

두 기운이 두 독물군을 다독이기도 하고 건드리기도 한다.

결국, 이 싸움은 촌장과 검왕의 싸움이다. 둘 중에 누가 먼저 나가떨어지느냐 하는 싸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촌장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다만 촌장이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마성 발작!

촌장은 검왕을 마인으로 만들려고 한다. 마공만을 수련한 인간이 아니라 진정한 마인으로 탈바꿈시켜 놓을 생각이다. 또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마성이 발작한다면 그 결과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할 게다.

검왕은 이성을 완전히 놓을 것이다.

츠으으으읏!

검왕이 마기를 쏟아낸다. 더욱 강렬하게.

“후후후! 좋네. 좋아. 하하하!”

촌장은 벌겋게 치솟는 마기를 보면서 웃음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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