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41화 (141/225)

# 141

第二十九章 지멸(地滅) (1)

“컥!”

검왕의 입에서 숨통 트이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검왕이 깨어날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깰 자신이 없었다면 촌장이 손을 쓰지도 않았을 게다.

촌장이 손을 쓸 때, 검왕은 산 것이다.

검왕이 깨어난 것은 전혀 신기하지 않다. 다만 그가 어떤 상태인지가 궁금하다.

촌장은 해혈과 점혈을 동시에 펼쳤다.

검왕에게 금제가 가해졌다는 것은 분명한데, 어떤 금제인지…… 무공을 전혀 사용할 수 없는 것인지, 일부 제한을 가한 것인지가 궁금하다.

검왕은 즉시 일어서지 않았다. 몸을 뒤척여서 땅에 편히 누워 하늘을 쳐다봤다.

촌장이 손을 거두고 맞은편 절벽을 보면서 말했다.

“혈선이라…… 좋군.”

그래도 검왕은 대꾸하지 않았다. 벙어리라도 된 듯 하늘만 쳐다봤다.

“무공을 펼칠 때는 너와 나 둘 중에 한 명은 즉사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죽일 수 없더군. 그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동안 마땅한 상대가 없었던 탓이지.”

촌장의 무공에 견줄 만한 상대가 없었다.

촌장은 자신이 깨달은 최후최대의 비학을 펼칠 수 있는 대상을 찾지 못했다.

촌장은 나무와 바위를 상대로 무공을 펼쳤다.

천지자연이 상대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둥번개도 겨룸의 대상이었다.

인간으로서 그와 마주 선 사람은 없었다.

그는 마주 선 모든 것을 부쉈다. 나무도 부수고, 바위도 부수고, 백 장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번개조차도 가닥을 내버렸다.

그가 생각한 일선은 파괴의 무공이었다.

헌데 일선과 혈선이 부딪치니 파괴가 일어나지 않는다. 말랑말랑한 떡과 떡이 부딪쳤을 때처럼 탄력 있게 밀어낼 수는 있지만 파괴할 수는 없다.

일선이나 혈선이나 파괴의 무공이 아니었다.

둘 중에 어느 하나라도 파괴의 무공이었다면 당장 파괴가 일어났을 것이다. 강과 강, 힘과 힘, 세기와 세기가 부딪쳐서 약한 쪽이 박살 났을 것이다.

촌장이 물었다.

“적벽검문 무공인가?”

“…….”

“혈영마공이 원공이라고 했지만…… 마공의 극(極)은 언제나 파괴지. 파괴를 넘어서지 못해. 파괴를 넘어선 것은 결코 마공이 아니라는 방증이고.”

“…….”

“후후후! 적벽검문의 무공에서 혈영마공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적벽검문으로 돌아선 게군. 하하!”

촌장이 웃었다.

검왕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촌장은 침묵 속에 숨은 말을 알아들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촌장의 눈에는 검왕이 무공을 배우던 입문부터 지금까지의 성장 과정이 한눈에 읽혔다. 세세한 것은 알 수가 없지만 커다란 굴곡 정도는 환히 보였다.

스읏!

검왕이 일어나 앉았다.

“왜 그랬습니까?”

다짜고짜 한 말이다.

“…….”

이번에는 촌장이 침묵했다.

검왕도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물음을 던질 때부터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른 말을 했다.

“이렇게 끝나는 게 섭섭하지 않으십니까?”

“허허! 끝이던가?”

“끝입니다.”

“너의 끝이 나의 끝일 수는 없지.”

“저의 끝이 아니라 현음자의 끝입니다. 현음자는 이곳을 신의 무덤, 신묘(神墓)라고 불렀습니다.”

“신묘!”

촌장이 미간을 확 찌푸리면서 되뇌었다.

“이곳이 신묘인가?”

촌장이 혼잣말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촌장의 중얼거림으로 미루어 그는 신묘를 알고 있는 듯하다.

“오면서 혹 신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이 컸지. 허허!”

촌장이 일어나서 절벽으로 걸어갔다.

맞은편 절벽과 이쪽 절벽 사이에 커다란 골이 패 있다. 그리고 그곳으로 거센 바람이 휘몰아친다. 현음자가 절곡에 마련한 기관진식으로 인해서 원래보다 수백 배 증폭된 바람이다.

“신묘라…….”

촌장이 중얼거렸다.

신묘.

신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증평주도 마군도 알지 못한다. 신을 모시는 신묘(神廟)는 들어봤어도 ‘신의 무덤’이라는 것은…….

신의 무덤이란 신조차도 죽일 수 있는 무덤이란 뜻으로 들린다.

검왕은 이곳에 올라선 모든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가 말한 모든 사람들 속에는 촌장도 포함된다.

신의 무공을 지닌 촌장조차도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곳, 신묘라고 불린단다.

두렵지는 않지만 괜히 기분이 찜찜해진다.

휘이이잉!

절곡 밑에서 치솟은 바람이 출렁다리를 거세게 흔들었다. 그리고 한순간,

투툭! 뚝!

출렁다리가 마구 흔들리더니 반대쪽 말뚝에서 이상한 소리가 울려왔다.

“엇!”

마군이 제일 먼저 그 소리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절벽 쪽에 몰려가 있었지만, 그는 다리를 건넌 상태에서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투둑! 툭! 타앙!

거세게 흔들리던 말뚝이 구부렸다. 단단히 동여매 놨던 출렁다리가 기어이 풀리면서 허공으로 치솟았다.

퇴로가 끊어졌다.

그러나 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군이 약간 놀랐을 뿐, 증평주나 촌장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이곳에서 촌장을 무력으로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중원 전체를 뒤져도 촌장과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전무하다.

결국 무공으로 죽이지 못한다면 지세(地勢)로 죽인다는 뜻일 게다. 거기에 이곳 이름이 신묘란다.

현음자가 만든 죽음의 땅이다.

죽음은 땅에서 시작된다.

촌장과 증평주는 화약 정도를 생각했다.

절봉 전체를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면, 그만한 화약을 매설했다면 천붕(天崩)도 가능하다.

물론 그런 폭발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절봉 전체가 일시에 사라져버린다고 해도 일신을 빼내는 정도는 자신한다.

증평주는 절벽에서 뛰어내릴 생각이다.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장 크게, 큰 대(大) 자로 벌리고 부력(浮力)을 최대한 받으면서 천천히 하강한다.

물론 몸은 절벽에 바싹 붙여야 한다.

절곡 밑에서 치솟는 바람이 변수이기는 하다. 워낙 강풍인지라. 하지만 요대(腰帶)를 풀어서 활용하면 얼마든지 절벽 중간에 안착할 수 있다.

검왕이 모두들 함께 죽는다고 했을 때 이 정도까지 예상했다.

출렁다리가 날아간다? 이제 정상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니 이상할 것 없다.

문제는 ‘신묘’라고 말한 데 있다.

왠지 모르겠는데…… 그 말 속에는 정상이 붕괴된다는 것, 그 이상의 파멸이 담겨 있을 것 같다.

증평주는 암암리에 진기를 끌어모았다.

마군도 출렁다리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도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마군이 검을 단단히 동여맸다.

촌장이 검왕 옆으로 걸어와서 앉았다.

촌장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공조식을 취한다. 그 옆에서 검왕도 운공조식을 취한다.

두 사람은 묵묵히 캄캄해진 맞은편 절벽을 쳐다보면서 운공한다.

누가 그들을 적이라고 하겠는가.

두 사람은 자신의 안위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 순간에 누가 암습을 가해오면 꼼짝없이 당할 터인데…… 그 모든 것에 손을 놓고 운공만 한다.

경계나 보호 같은 것은 필요 없다는 투다.

그때, 사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일어났다.

츠츳! 츠츠츠츠츳! 츠츠츳!

매우 기분 나쁜 소리다.

마치 파도 소리 같기도 하고 뱀이 기어가는 소리 같기도 하다. 좌우지간 소리를 듣자마자 등줄기가 섬뜩해진다. 찬바람이 훅 하고 스쳐 지나간다.

‘뭐지?’

증평주와 마군은 서로를 쳐다봤다.

두 사람 모두 이 소리를 모른다. 소리가 일어나는 근원도 찾지 못했다.

그때, 묵묵히 운공을 취하던 촌장이 눈을 뜨면서 중얼거렸다.

“시부독의(弑父毒蟻)…….”

“시, 시부독의!”

촌장의 말에 마군이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시부독의, 시부독의라니!

“독의가 맞나?”

“맞을 겁니다.”

이번에는 검왕도 순순히 대답했다.

“허허허! 가장 확실하게 죽이겠다는 것인가? 뼈조차도 추리지 못하게끔.”

“뼈는 남을 겁니다.”

검왕이 담담하게 말했다.

츠츠츳! 츠츠츠츠츠츳!

사위는 캄캄하다. 하늘에는 별도 달도 떠 있지 않다. 완벽한 어둠이 산을 뒤덮었다.

그 속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소리만 난다. 아니, 이제는 역한 비린내가 맡아진다.

확실하게 비린내다.

시부독의는 매우 극랄한 독개미다. 시부라는 말은 아버지를 죽인다는 말인데, 실제로 그렇지는 않고…… 아버지를 죽이고 태어날 정도로 지독하다는 뜻이다.

살모사(殺母蛇)와 같은 뜻이라고 할까?

시부독의는 세상의 저주이기도 하다.

눈에 띄는 생물체는 모두 먹어치우기 때문에 세상에 나타나서는 안 되는 마물 중에 마물이다.

나무, 풀, 짐승…….

시부독의가 휩쓸고 지나간 곳에는 생물이 남지 않는다.

그래서 시부독의는 전설로만 전해진다. 정말로 그런 마물이 나타나면 세상은 황폐해질 것이다.

시부독의는 독까지 뿜어낸다.

독의는 몸에서 지독한 비린내를 풍기는데, 이것이 일종의 미독(迷毒)이다.

비린내를 맡다 보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기력이 사라진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게 된다. 그때가 되면 아무 생각도 일어나지 않아서 독의에 대한 공포 같은 감정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부독의를 상대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불로 태워 죽여도 되고, 물로 쓸어내도 된다. 하지만 이곳 바위투성이뿐인 산정에서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

“현음자라면 시부독의만 쓰지는 않았을 텐데…… 저곳에는 무엇이 있을꼬?”

촌장이 절곡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산정이 붕괴될 때, 모두들 절곡으로 뛰어내릴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시부독의가 더 밀려들기 전에 절곡으로 몸을 던지면 된다.

문제는 절곡 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허허허! 이제야 알겠어. 자네가 그냥 한 번 싸워보자던 것…… 그냥 싸운 게 아니었어. 솔직히 말해보게. 내 무공을 견식하고픈 생각 같은 것은 전혀 없었지 않나?”

“그렇습니다.”

검왕이 순순히 시인했다.

“그렇군.”

촌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검왕은 촌장을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붙들어 둘 필요가 있었다.

낮이라면 절곡 밑으로 뛰어내릴 수 있다. 눈으로 보고 몸을 피할 수 있다.

지금은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시부독의가 어디에 있는지 볼 수가 없다. 얼마만큼 밀려왔는지도 짐작되지 않는다.

낮이라면 별것 아닌 일들이 밤에는 문제가 된다.

검왕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마지막 한 수를 요청했던 것이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

물론 검왕이 깨어나지 않았다면 시부독의도 일어서지 않았다.

촌장은 자신 스스로 검왕을 일깨웠고, 검왕으로 하여금 시부독의를 불러내게끔 만들었다.

검왕의 침묵…… 그것은 침묵이 아니었다. 시부독의를 암암리에 불러내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절곡으로 무엇을 불러내고, 시부독의 뒤로 또 다른 무엇을 준비하고…….

이 산봉에 신묘를 차린 사람은 현음자이지만 지금 현재 운용하고 있는 사람은 검왕이다.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당장 검왕부터 죽여야 한다.

촌장은 그러지 않았다.

“최종까지 몇 단계나 있나?”

촌장은 그 말을 하면서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시부독의가 발밑까지 치고 올라왔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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