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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八章 구중옥(九重獄) (1)
검왕도 사라지고 누산도 사라졌다.
이럴 수는 없다. 세상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어 있다.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알게 되어 있다.
검왕과 누산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완벽하게 몸을 감췄다지만 반드시 드러난다.
숨이 붙어 있는 이상은 숨을 쉬어야 한다. 밥을 먹어야 한다. 옷을 입어야 한다. 말도 해야 한다.
세상과 접촉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세상과 접촉하는 순간, 그들의 행적은 수천 리 떨어진 곳까지 알려질 게다.
지금까지는 그래 왔다. 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범주 안에 들어있었다. 움직이면 보고가 되었고, 보고 내용은 반드시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런데 검왕과 누산에 대한 소식은 없다.
아직 없다. 언젠가는 소식이 들려올 터이지만, 지금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어디로 사라졌지?’
검왕 따위, 누산 따위…… 그런 자들은 몇천 명이 있어도 상관할 바 없다는 마음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들의 죽음을 반드시 확인해야만 속이 편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지다니 이럴 수가 있나.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어. 어딘가에는 있을 것인데,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죽어서 이미 흙이 됐다면 모르겠거니와 살아있다면 반드시 찾아낼 수 있다.
“몸을 숨길 만한 곳은 모두 찾아. 인적이 닿지 않은 곳, 사람 발길이 끊어진 곳. 하늘, 땅, 물속 모두 뒤져.”
살아있다면 반드시 찾아낸다.
검왕이나 누산을 찾았다는 보고는 매우 중대하다. 그러므로 하부 조직에서도 확인에 확인을 거듭해서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되는 보고만 위로 올린다.
최상층…… 그녀에게까지 도달하는 보고는 없다.
검왕과 누산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사라진 것이 아니다. 찾지 못할 뿐이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
솔직하게 말하면…… 그녀는 검왕과 누산을 중히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쯤은 무시하고 지나가도 좋을 성 싶다. 그 두 사람 때문에 가던 길까지 멈춰 선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헌데 촌장은 멈춰 섰다.
촌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 두 사람을 제거하지 않으면 마음이 께름칙한 모양이다.
촌장이 그렇게까지 두 사람을 생각할 줄 알았다면 진작 제거하는 것인데.
도대체 그 두 사람이 뭐가 그리 중하다고.
그녀는 검왕을 이 세상 누구보다도 잘 안다. 검왕이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안다.
검왕이 적벽검문 제일의 기재이며, 타고난 천재라는 점도 안다.
그렇게 검왕을 잘 아는 입장에서 단언하건대 검왕은 경계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촌장이 저리 신경 쓰니 찾지 않을 수 없다.
‘꼭꼭 숨어있을 수 있는 곳…… 어딜까?’
그녀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검성의 정보망은 개방이나 하오문에 비해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더 끈끈하고 더 치밀하며 정확하다.
검성의 정보망은 인맥을 활용한다.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의 입.
도와주는 사람, 도와주는 사람의 정리(情理).
이것보다 확실하고 정확한 것은 없다.
아는 사람 한 명이 열 명의 아는 사람을 끌어모은다. 열 명의 아는 사람이 각기 열 명의 아는 사람을 끌어온다. 그렇게 두세 단계만 지나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정보를 건네주게 된다.
검성의 정보망은 아는 사람을 주축으로 구성된다.
헌데 그 아는 사람들…… 심마니, 엽사, 나무꾼, 어부 등등 온갖 사람들이 검왕을 말하지 않는다.
검왕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
그녀는 생각을 거듭했다. 계속 거듭했다.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인데.
‘현음자!’
문득…… 정말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현시대의 사람이 아니다. 먼먼 옛날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기관진학만큼은 당대에서도 따라갈 사람이 없다.
현음자가 마공관을 만들었다.
무수한 마인들이 마공관을 들이쳤지만 마공관을 깨지는 못했다. 무력으로 깰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화약? 어림도 없다.
그 정도의 무력으로 깨트릴 수 있는 곳이었다면 마공관으로 존재하지도 못했다.
마공관은 오직 하나, 기관진학만으로 풀어야 한다.
현음자가 만든 곳이라면 세상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다.
‘현음자!’
그녀는 눈살을 가늘게 좁혔다.
그녀는 현음자에 대해서도 잘 안다고 생각한다. 마공관에 대해서 샅샅이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현음자가 어떤 곳을 또 만들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녀는 일어섰다.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현음자의 기록을 뒤져봐야 한다.
‘여기!’
그녀의 눈이 기린산(麒麟山)에서 멈췄다.
현음자의 기록은 기린산에서 잠시 정지한다.
현음자가 기린산을 방문했고, 기린산의 정취에 감탄하여 이 년을 머물렀다고 한다.
이 년…… 무슨 수작을 부리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이곳밖에 없어!’
그녀가 봉목을 반짝였다.
기린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기린산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기린산 주변에 사는 촌민들일 것이다.
지금은 그들을 불러모을 수 없다. 그래서 기린산 부근이 고향인 사람들을 모았다.
그들 앞에 전도(全圖) 한 장이 펼쳐졌다.
“험해서, 또는 다른 이유로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는 지형이 있으면 말해봐라.”
“기린산은 험해서 발길 끊어진 곳이 많은뎁쇼.”
“다 말해봐.”
“이 부근…… 사람이 가지 않고.”
한 사내가 숯을 들어서 전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여긴 절벽이야.”
또 한 사내가 숯으로 네모 표시를 했다.
“우린 마을 사람들은 이 골짜기에는 들어가지 않아. 들어간 사람치고 살아나온 사람이 없거든.”
“왜? 험해서?”
“맹수가 살아.”
“맹수? 엽사들을 다 뭐하고?”
“크크크! 늑대 무리들이라서 엽사도 어쩔 수 없어. 한두 마리라야 어떻게 하지.”
그 사내가 골짜기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기린산 전도는 작은 표시들로 빼곡해졌다.
그녀는 눈으로 표시들을 따라갔다. 그리고 검게 그려진 도형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지웠다.
“여긴 필요 없고…….”
단순히 지형이 험해서, 또는 맹수가 살기 때문에 사람들이 피하는 곳은 지워버린다.
현음자가 손댄 곳은 맹수도 살지 못한다.
현음자는 철저한 고립을 만들어낸다. 오죽하면 그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마공관에 거미줄 하나 쳐져 있지 않았다면 말 다한 것이지 않겠는가.
공기도 드나들지 못하도록 완벽한 고립을 만들어낸다.
짐승이 다니는 길을 제외한다. 벼랑 같이 험한 곳도 제외한다. 사람이 다닐 수 있지만 괜히 기분이 이상해서 피해 다니는 곳이라면 딱 좋은데.
하나씩, 하나씩 그림들을 지웠다.
전도에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 검성을 나서기도 전에 그녀는 전도에 있는 도형들을 말끔히 정리했다.
“여기 세 곳.”
현음자가 만든 곳이라고 의심되는 곳이 세 곳이나 나왔다.
“여기를 뒤져.”
“뭘 찾으면 됩니까?”
“들어가지 못하는 길.”
“네?”
“어떤 험한 지형이라도 뚫고 들어가 봐. 그렇게 해서도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나올 건데, 그런 곳이면 바로 연락해.”
벼랑이 나오면 벼랑을 내려가라. 절벽이 나오면 절벽을 기어 올라가라. 맹수가 나오면 물리치고 나아가라. 습지가 나오면 어떻게든 건너가라.
그녀의 명령은 간단했다.
그렇게까지 해서도 건널 수 없는 곳, 나아갈 수 없는 곳이 나오거든 그때 말하라.
수하들이 기린산으로 떠났다.
그녀는 여전히 현음자의 일대기를 뒤져갔다.
혹시 놓친 것이 있나?
현음자는 워낙 기인인지라 일대기가 정확하지 않다. 그가 일기를 쓴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의 일대기를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현음자가 만든 것들을 추적한다.
기관을 만들었다면 시간을 얼마나 요구하는 것인지 짐작해 낸다. 허면 현음자가 그곳에서 몇 년, 혹은 몇 달을 머물렀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현음자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만들고 다녔다.
사람을 가르치기도 했다.
문하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두 수 정도 잔재간을 배운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그들의 능력을 가늠한다.
제자가 비기를 터득하는데 어느 정도의 기간이 소요될 것인지 가늠한다.
그렇게 현음자의 일대기를 완성해 나간다.
사실 그녀는 이 작업을 오래전에 마쳤다. 마공관에 대해서 알았을 때부터 이 작업을 했고, 현음자의 일생 전부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금은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내가 놓친 게 있나?”
“기린산이 맞을 것 같습니다.”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렇지?”
“저는…….”
묵직한 음성이 무엇인가를 말하려다가 말문을 닫았다.
“뭔데?”
“검왕이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검왕은 증평주도 손에 넣은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해놓고 산에 틀어박힌다…… 말이 되지 않습니다.”
묵직한 음성의 주인, 마군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말이 돼.”
그녀가 동요 없이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말했지 않은가. 검왕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그가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지 모두 짐작할 수 있다고.
검왕이 현음자의 둥지에 몸을 의지했다면…… 싸움이다.
검왕은 싸우려고 한다. 가장 든든한 곳에 몸을 기대고, 증평주를 미끼로 해서.
증평주가 미끼? 그렇다면 상대는 증평주보다 훨씬 강한 자가 될 것이다.
촌장!
검왕은 촌장을 부르고 있다.
‘겁이 없는 사람. 그래. 당신만이 그렇게 할 수 있지.’
그녀는 옅은 웃음을 흘렸다.
마군은 이렇게 단순한 것조차 생각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검왕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다.
검왕은 야욕이 없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점이다. 검왕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천재이면서 개인적인 사욕을 부리지 않는다.
그는 오직 대의와 정의만 쳐다본다.
지금 검왕의 눈에는 저승고혼이 되어버린 적벽검문 사부, 사숙, 사형, 사제들이 되새김 될 게다.
그들이 기꺼이 목숨을 버렸는데, 자신인들 아까워하랴.
그는 살고자 하지 않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보다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과 목적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면 그는 기꺼이 죽을 사람이다.
검왕이 촌장을 부른다.
“마군, 기린산을 뒤져줘요.”
“검왕을 찾으라는 말입니까?”
“아뇨. 그곳에 누산이 있을 거예요. 누산을 찾아줘요. 가급적이면 혈루마옥보다 빨리.”
“찾으면……?”
“생포해줘요.”
“……?”
“누산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곳 검성 같은 곳을 두 개 정도 세울 수 있어요.”
“훗!”
마군이 깜짝 놀라 경악성을 내질렀다.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 누산은 반드시 생포해 줘요. 소용되는 곳이 많은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