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35화 (135/225)

# 135

第二十七章 난맥(亂脈) (5)

깎아지른 벼랑을 간다.

무공을 수련한 사람이라도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정도로 위험한 길이다.

문제는 길에 있지 않다. 저 멀리 떨어진 벼랑에 있다.

“저곳을 지키는 사람은 없어?”

증평주가 물었다.

“없소.”

“안타깝네. 천하에 다시없는 요처인데.”

증평주가 탄식을 불어냈다.

낭떠러지 벼랑길이 고불고불 이어져 있다. 등을 벽에 찰싹 붙이고 조심스럽게 걸어가야 한다. 살금살금 더듬어 간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게다.

헌데 그녀가 쳐다보고 있는 맞은편 벼랑에서는 이곳이 환히 보인다. 구불구불 이어진 벼랑길을 샅샅이 쳐다볼 수 있는 아주 좋은 목이 있다.

저곳에 한 사람만 배치하면…… 솜씨 좋은 궁수를 배치한다면…… 이곳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은밀히 숨어들 수도 없고, 한걸음에 뛰어나갈 수도 없다. 살금살금 기어가다가 화살에 맞는 수밖에 없다.

낭떠러지 벼랑길에서는 활동도 제약받는다.

화살이 날아온다면 수족을 놀려야 피할 수 있는데, 그럴 만한 틈이 없다. 한 손은 벽을 잡고 있어야 하고, 두 발은 살짝 튀어나온 돌부리를 딛고 있어야 한다.

방어를 할 만한 공간이 없다.

검왕이 어디를 가고 있는지 모른다. 물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들어가는 길목이 이곳 한 곳뿐이라면 천하제일의 요새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슥! 툭! 데구루루!

발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작은 돌무더기가 한 줌씩 부서져 내린다. 혹은 작은 돌멩이가 굴러떨어질 때도 있다.

‘여긴 길이 아냐.’

증평주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검왕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증평주의 생각은 잘못되었다.

낭떠러지 벼랑길을 건너오자 이번에는 철삭으로 만들어진 다리가 드러났다.

철삭 다리.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다.

철삭 다리는 인위적인 것이다. 아직도 녹슨 곳이 전혀 없이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다.

얼마 전까지 누군가가 매만졌다.

철삭 다리는 벼랑과 벼랑을 연결한다.

이쪽 벼랑에서 저쪽 벼랑으로…… 철삭 다리 아래로는 텅 빈 허공뿐이다.

휘이이잉!

거센 바람이 몰아쳐 온다. 철삭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려서 좌우로 흔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놀랍군.”

증평주가 감탄했다.

벼랑과 벼랑 사이를 흐르는 바람이 사막의 용권풍을 연상시킬 정도로 거세다.

넓은 바닷물이 갑자기 좁은 수로를 통과하는 것 같다.

즉, 이곳에는 철삭 다리를 놓는 것조차 용이치 않다.

철삭 다리를 놓았다고 해서 편하게 건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쪽에서 저쪽까지 건너가는 동안에 바람이 불지 않기만 천지신명께 기도해야 한다.

바람이 불면? 끝이다.

지금처럼 철삭이 위로 쳐들릴 것이고, 철삭 위에 있는 사람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질 것이다.

철삭을 꼭 잡고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천만에. 그것은 절곡 사이로 휘몰아치는 바람을 너무 얕본 것이다. 저런 바람에 맞으면 마치 쇠망치로 전신을 두들겨 맞는 느낌이 들 게다.

사람을 날려버린다는 폭풍보다 세 배, 네 배 강하다.

이런 곳에 철삭 다리를 놓은 것도 대단하고, 그런 철삭을 관리한다는 것은 더더욱 대단하다.

슷!

검왕이 철삭에 발을 올려놓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건너는 거야?”

“바람을 피해서 다리를 건널 수는 없습니다. 다리 중간쯤에서 한 번, 끝에 다다를 때쯤에서 한 번. 적어도 두 번은 바람을 맞게 될 겁니다.”

“견디는 방법은?”

검왕이 철삭을 툭 건드렸다.

“꽉 잡으세요.”

“그것밖에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역시 생각이 옳았다. 벼랑 사이로 휘몰아치는 강풍은 사람이 견뎌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욱!”

증평주는 있는 힘을 다해 철삭을 잡았다.

우우우우우웅!

바람이 흘러가는 것뿐인데, 마치 우주가 용틀임하는 듯한 소리를 울려낸다.

바람이 얼굴을 후려친다.

바람이 몸뚱이를 가격한다.

퍽! 퍽퍽! 퍽퍽퍽!

마치 칠척거한에게 두들겨 맞는 듯한 느낌이다. 장정 열댓 명에게 둘러싸여서 몰매를 맞는다고 해야 하나?

“우우욱!”

증평주는 있는 힘껏 철삭을 잡았다.

철삭을 놓치면 끝이다.

증평주는 정말 필사적으로 철삭을 잡았다.

옆에는 검왕이 있다. 검왕도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그도 자신이 겪는 것처럼 바람에 강타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신경이 돌아가지 않는다.

지금은 오직 자신만 생각한다.

“우우욱!”

증평주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일촌(一寸)에 생사가 갈린다. 실수나 착각, 착오는 곧 죽음과 직결된다.

이런 곳이라니!

증평주는 아찔한 경험을 한 번 더 한 후에야 맞은편 벼랑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정말 바람이 두 번 몰아치네.”

“…….”

“어느 시점에 시작하든 바람을 두 번 맞는 것은 정해진 거겠지?”

끄덕! 끄덕!

검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여기 바람은 무작위가 아니라는 거잖아? 일부러 그렇게 유도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검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도 맞을 것이다. 누군가가 절곡 사이로 바람이 휘몰아치게끔 장치를 설치했다.

벼랑과 벼랑, 절곡 전체를 상대로 한 기관장치다.

“이곳 혹시 현음자가 만든 곳이야?”

증평주가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을 말했다.

이런 기관장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현음자밖에 없다. 마공관을 만든.

검왕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철삭 다리에서 이어진 작은 소로를 걸어간다.

증평주는 다시 한 번 뒤돌아 철삭 다리를 봤다.

그녀의 내공은 혈루마옥에서도 단연 최상층이다. 촌장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비등한 상대로 녹천주가 있지만 내공에서만큼은 자신이 한발 앞서 있다고 자부한다.

그런 자신이 아주 힘들게 다리를 건넜다.

어지간한 내공을 가진 자는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바람에 날려갔을 것이다.

이곳은 아무나 들이는 곳이 아니다.

최소한 내공이 최정상에 이르는 몇몇 고수들만을 위한 자리다.

‘어쩌면 내가 죽을 자리로 들어서고 있는지도 모르겠네.’

증평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왠지 모르겠는데, 검왕이 걷고 있는 이 길이 매우 불길하게 느껴진다.

소로 앞에 작은 협곡이 나타났다.

아니, 협곡이 아니다. 길이 이십 장 높이의 벽 두 개를 세워놓았다. 다만 벽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좌우가 암벽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뚫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협곡 사이로는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설 수 있다.

몸이 많이 뚱뚱한 사람은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암벽과 암벽 사이의 틈이 좁다.

“음!”

증평주는 자신도 모르게 옅은 신음을 흘렸다.

작은 협곡에서…… 이곳을 만든 주인은 자신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바닥에서부터 칠 척 높이까지는 손가락 크기 정도의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구멍 안도 들여다볼 수 있다.

구멍 안에는 창 끝 같기도 하고, 화살 촉 같기도 한 쇳조각들이 섬뜩한 한광을 유감없이 토해내고 있다.

틀림없는 기관장치다.

이곳을 허락받지 않고 들어섰다가는 영락없이 고슴도치가 될 게다.

더욱 신경 쓰이는 것은 칠 척 높이 위에 있는 넓은 구멍들이다.

손바닥 정도 되는 구멍을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된 무엇인가가 틀어막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저 구멍이 뚫리면 죽음이 쏟아질 게다.

스읏!

검왕은 협곡 사이로 몸을 들이밀었다.

“점점 더 궁금해지네. 이곳이 어딘지 최소한 설명은 해줘야 하는 거 아냐?”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던진 물음이다.

헌데 검왕이 대답을 해줬다.

“맞소. 이곳은 현음자가 만든 곳이오.”

“…….”

이번에는 증평주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현음자가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했는데, 정작 그런 말을 듣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현음자가 만든 곳이라…… 생각이 맞았다. 이곳은 죽음을 울타리다.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곳에 든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

검왕이 말했다.

“마공관의 마학으로도 어쩌지 못할 마인이 나타났을 때, 그때 쓰라고 만든 곳이오.”

“마인? 우린 마인이 아닌데?”

“현음자가 말한 마인의 기준은 야욕이오. 무인치고 욕망이 없는 자가 없지만, 그 욕망이 천하를 향한 자…… 그자를 마인이라고 본 것이오.”

“그래? 그럼 우리가 마인 맞네.”

증평주가 웃었다.

이제야 비로소 검왕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검왕은 마인을 척결하는 검성에 몸을 담았다. 실제로 마인들을 무수히 도륙했다.

검왕과 마인들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사이다.

그랬던 검왕이 마공관의 마학을 수련한 이후부터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는 십마를 죽일 수 있는 데도 죽이지 않았다.

그는 혈천성을 도륙할 수도 있다. 마공관의 마학을 수련한 그에게는 혈천성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실제로 혈천성주 또한 일초지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혈천성도 건드리지 않았다.

검왕의 모든 행동은 오직 하나, 혈루마옥에 집중되어 있다.

중원에 산재한 살인귀들은 내버려두고 오직 무공이 강함을 입증하려는 혈루마옥 무인들만 상대한다.

현음자의 기준으로 볼 때, 중원 마인들은 마인이 아니다.

혈천성, 십마…… 그들은 사람을 멋대로 죽이는 살인귀일 뿐 마인이 아니다.

현음자가 생각한 마인은 소림사일 수도 있다. 무당파일 수도 있고, 개방일 수도 있다.

천하를 노려보고 있는 자는 모두 마인이다.

스으으읏!

검왕이 협곡 안으로 쓱 들어갔다.

“아!”

증평주는 협곡을 빠져나오자마자 탄성부터 내질렀다.

그들은 작은 분지에 들어섰다.

분지 안은 안개꽃으로 뒤덮여서 온 세상에 눈이 내린 듯하다. 하얀 꽃들이 눈부시다.

그러나 증평주는 탄성만 토해냈을 뿐, 안개꽃을 건드리지 않았다.

안개꽃? 안개꽃이 아니다. 모양은 안개꽃과 흡사하지만 성질이 전혀 다른 꽃 회점화(灰點花)다.

꽃잎 한가운데에 회색 반점이 있어서 회점화라고 부르는데, 그것만 제외하면 안개꽃과 다르지 않다.

허나 회점화는 독화(毒花)다.

꽃술에는 무색무취의 독분이 묻어있다.

냄새도 없고,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주위를 독기로 휘감을 뿐이다.

회점화의 독은 신경독이다.

신경을 마비시켜서 움직임을 멈추게 만든다. 심할 경우에는 혼절에 빠트리고, 이럴 경우 대부분은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그들이 쓰러진 곳이 회점화 꽃밭 한가운데이기 때문에.

이곳에 바람이 불면 온 천지가 독으로 물든다.

하물며 이곳은 작은 분지다. 독분이 휘몰아치기에 딱 좋은 곳이다. 단숨에 분지를 벗어날 수 있는 신법이 없는 한, 이곳에서 절명할 것이다.

더욱 웃긴 것은 회점화가 분분히 피어있는 한가운데에 작은 초옥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검왕은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아시겠지만, 건드리지 마십시오.”

“저곳에서 지내자는 거야? 이것들 한가운데서?”

“…….”

“맙소사!”

증평주는 기가 막혀 말도 하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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