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33화 (133/225)

# 133

第二十七章 난맥(亂脈) (3)

소림사에는 칠십이종(七十二種)의 절정 무공이 있다.

일명 소림정종칠십이(少林正宗七十二)라고 불리는 일흔두 가지의 무공인데, 무림은 일흔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 하나도 절예가 아닌 것이 없다고 말한다.

소림 무승(武僧)들은 이 무공들을 철도 들지 않은 대여섯 살 때부터 수련하기 시작한다.

뼈가 여물지 않은 어린 나이 때부터 수련시켜서 소림 무공에 알맞은 골격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런 연유로 소림 무승들은 소림 무공에 최적합한 신체조건을 지니게 된다.

사실, 이런 점은 특이할 것이 없다.

어린 제자를 받아들여서 전수하는 무공에 최적합한 조건을 만들어 준다는 점은 타문파도 동일하다.

다만, 소림사는 절[寺]이라는 특성상 왕래불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직 일심으로 무공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결 성취가 빠르다고 할 수 있다.

소림 공부는 그렇게 전수된다.

성취가 빠르다, 절정 무공이다…… 그것이 좋은 것인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좋다 나쁘다, 성취가 빠르다 늦다 하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평생…… 죽는 순간까지 수련할 것이며,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산문 밖에도 나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와 손속을 마주칠 염려도 없다.

본인 생각 여하에 따라서는 평생 수련만 하는 것도 가능하다.

따라서 급할 것이 없다. 성취가 더디다고 조급해할 필요도 없다. 사형제들과 비교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차분하게 건강 삼아 오늘도 수련 한 번 하면 된다.

소림사는 소림절예로 유명하지만 엄연히 불사(佛寺)다.

소림 승려들 중에는 평생 무공을 접하지 않은 사람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들은 오로지 불학만 닦는다.

경전을 읽고, 독송하고, 염불을 외우고, 참선한다.

참선이 깊어지면 깨우침을 얻게 되는데, 이때 우연히 무공 심학(心學)과 연결되기도 한다.

무공을 수련한 적이 없는데, 무공의 묘리를 꿰뚫어보는 것이다.

심학은 심공(心功)으로 이어지고, 심공은 무한…… 마름이 없는 내공을 흐르게 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공을 논하지는 않는다.

그들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세상과 불가의 경계조차 무의미해진다.

그들은 머리를 기르고, 아무 옷이나 입고, 아무것이나 먹는다. 가리는 게 없다. 하지만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청정하여서 세상 이치를 꿰뚫어본다.

이렇게 무승이 아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지고한 무학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비승이다.

소실산은 기암절곡이 많은 곳이다.

정상 부근은 온통 암석투성이라서 어지간한 담력을 지니지 않고는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잔도(棧道)를 달아놓기는 했는데, 이 잔도를 걷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하다.

험하고 넓고, 깊은 소실산에 그들 세 명이 어디에 머무는가.

쉬잇! 쉬이이잇! 쉬잇!

소림 무승들이 소실산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그들 세 명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이곳저곳을 떠도는 바람에 종적을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소실산을 뒤진 지 반나절이 지났다.

날렵한 소림 무승들이 소실산 곳곳을 빠짐없이 뒤져나갔으니 이제 누군가를 만날 때가 되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깡마른 체격에 눈매가 날카로운 노승이 연신 불호를 외웠다.

머리는 침착하라고 한다. 하지만 마음은 침착해지지 않는다. 불안감이 엄습한다.

평생 무상(無常)을 보면서 살아왔는데, 이 무슨 흔들림인고.

“아미타불, 아미타불…….”

불호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때,

퍼엉!

멀리 서쪽 절벽 중간 어림에서 붉은 폭죽이 터졌다.

소실삼로 중에 한 분을 찾았다는 신호다. 그리고…… 붉은색 폭죽이니 이미 열반에 드셨다는 전갈이다.

“아!”

노승이 탄식을 토해냈다.

불길한 마음으로 소실산을 뒤지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소림 비승들의 일견(一見) 깨우침이 칠십이종 절예를 능가하느냐 하는 부분에서는 논란이 많았다. 내공이 깊고 현묘하다고 해서 무공이 강하다는 뜻은 아니니까.

그래서 일부 무승들이 비례를 무릅쓰고 비승을 공격했다.

일부 무승…… 이미 소림사에서는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아는 일이니 정확하게 거론해도 무방할 듯하다.

백팔나한진(百八羅漢陣)이 비승을 가뒀다.

장경각주(藏經閣主)를 필두로 영태사(永泰寺) 주지, 연화사(蓮花寺) 주지 등 항(抗) 자(字) 배(輩) 무승 일네 명이 가장 자신 있는 병기를 들고 나섰다.

비승은 유유히 피하기만 하다가 사라졌다.

그 많은 사람들이 비승의 옷자락조차도 건드리지 못했다.

비승이 피하지 않고 전격적으로 반격을 가해왔다면…… 결과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날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비승은 내공만 강했던 게 아니라 신법도 탁월했다.

비승에게서 확인한 것은 오직 내공과 신법뿐이니 다른 공부를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 권각술(拳脚術) 같은 공부는 달인의 경지에 들어섰지 않을까 싶다. 물론 비승이 그런 공부에 관심을 가졌다는 가정하에서.

소림사 무승들 중에서 그분들을 어찌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절망!

한순간, 명치끝이 묵직하게 얹혀온다.

“휴우!”

태진진인은 한숨만 쉬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상황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소림사에 달려올 때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정을 사숙조는 당했지만, 비승들은 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무당파가 소림사보다 못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실산이라는 산의 산세가 워낙 험하기에 그들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소림 비승들도 어김없이 당했다.

“진심으로…… 유감입니다. 빈도는 이만.”

태진진인이 합장했다.

생각 같아서는 소림 비승들의 시신을 보고 싶다. 그들이 어떤 수법에 당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그러나 소림사에서 비승들의 시신을 보여줄 이유도 없고…… 굳이 보지 않아도 어떻게 당했는지 대충 짐작된다.

정을 사숙들은 일검에 당했다.

어린아이에게 맞아도 절명할 수밖에 없는 절대 사혈을 가격당했으며, 후속타는 전개되지 않았다. 일검 만으로도 승부를 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 찬 검이다.

혈루마옥!

혈루마옥 젊은이가 중원을 횡행해도 여유로운 시선으로 쳐다봤다.

검왕이 마공관의 무학을 수련했고, 그런 그가 혈루마옥 화천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평온함을 잃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숨겨진 절대 강자가 있어서 뒤가 든든했으니까.

혈루마옥은 그들부터 정리했다.

이것은 명확한 선전포고다.

혈루마옥은 말한다. 망할래, 항복할래.

무당파는 며칠 전부터 이 고민에 빠졌고, 이제는 소림사도 고민할 차례가 됐다.

“아미타불!”

소림 방장은 태진진인의 인사를 받지 않는 비례를 저질렀다. 아니, 인사를 받을 겨를이 없었다. 잔뜩 찌푸려진 미간, 파르르 떨리는 눈가 경련이 그의 마음을 대변해주었다.

태진진인은 등봉(登封) 초입에서 사지육신 멀쩡한 거지에게 동전 한 닢을 건넸다.

“무당 태진이네.”

“아!”

동전을 받은 거지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태진진인을 쳐다봤다.

“가급적 빠른 경로로 방주(幫主)께 전갈을 해야 할 것인데…… 내용은 이렇게 하게나. 솥[鼎]의 다리에 금이 갔다. 그것도 두 개씩이나. 거의 동시에.”

“무슨 말씀이신지?”

거지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태진진인은 큰 비밀을 말하고 있다.

태진진인이라면 무당파 장문인과 동배다. 장문인의 사제다. 그런 사람이 소림사를 방문했고, 방장을 만났다는 사실은 아주 큰 역사를 말해준다.

무슨 일이 벌어지긴 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태진진인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그렇게만 전하면 방주님께서는 알아들으실 것이네.”

“무당 태진이라고?”

“분명히 그렇게 들었습니다.”

“솥의 다리에 금이 갔다고?”

“그렇게 전하라던데요?”

“다리가 세 개인데, 그중에 두 개가 금이 갔다…… 이런 제길! 언제 금이 간 거야!”

개방(丐幫) 하남(河南) 분타주(分舵主)가 소리를 빽 질렀다.

그가 소리를 지른다고 해답이 저절로 들려올 리 만무하다.

무림은 흔히 소림과 무당파, 그리고 개방을 일컬어 정족(鼎足)이라고 불러왔다. 무림에는 많은 문파가 있고, 그중에 단연 으뜸은 구대문파다. 하지만 그 아홉 중에서도 으뜸인 세 문파는 소림과 무당파, 그리고 개방이라는 뜻이다.

소림사와 무당파가 금이 갔다.

태진진인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그런 말을 할 정도라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달린 것이다.

무림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들은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회복 불가능한 치명타를 당했다.

태진진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런 뜻이 된다.

분타주는 백의개(白衣丐)와는 다르게 상황판단이 빠르다. 태진진인이 농하듯이 던지고 사라진 말 속에 무림 대세가 숨어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백구(白鳩)를 날려.”

“백구요?”

“지금 당장!”

하남분타주는 말을 하면서 급히 지필묵을 챙겼다.

백구, 하얀색 비둘기는 급전(急傳)이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

백구라고 해서 영물이라는 것은 아니고…… 단지 색이 순백일 뿐이다. 하지만 색깔이 선명하게 드러나니까 급전을 띄울 때는 용이한 점이 있다.

백구는 백 리를 날아가서 멈출 것이고, 그곳에 있는 자가 다른 백구에 전통만 갈아 끼우고 다시 날릴 것이다. 백구에서 백구로 연결된다. 그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전달된다.

지금부터 그가 할 일은 전통에 넣을 전서를 쓰는 것이다.

태진진인이 말한 내용을 그대로 적어야 한다.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태진진인이 뭐라고 말했지? 말한 그대로 읊어봐!”

무당파에 정을 사숙들이 계셨다.

소림사에는 소림 비승들이 존재했다.

그분들은 무림이 어지럽다고 해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달려 나오는 분들이 아니다. 어쩌면 그분들 성정이라면 무림이 혈난에 휘감겨도 수수방관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분들이 존재한다는 자체로 든든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개방에는 그런 사람이 없을까?

무림에서 문도수로만 따졌을 때, 가장 큰 대문파라고 하면 단연 개방과 하오문이다. 개방은 문도수가 십만 명을 넘어서고, 하오문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하오문은 비루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서 모인 곳이다.

허나 비루하기로 따지면 거지보다 못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거지가 가장 비루하지 않을까?

하오문은 거지를 제외한 비루한 사람들이고, 개방은 오직 거지들로만 형성된 문파다.

하오문과 개방은 성격이 똑같다.

그런데 개방은 구파일방 중 일방으로 자리매김했고, 하오문은 어디에도 끼지 못한다.

두 문파가 평가가 이렇게 달라진 것은 무공 차이 때문이다.

개방에는 뛰어난 절기가 있다. 하오문에는 그런 절기가 없다. 개방에는 이름난 절진이 있다. 개방에는 그런 것이 없다. 개방은 개방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충인(忠人)들이 있다. 하오문은 조그만 잇속에도 등을 돌린다.

이런 차이들이 대문파와 일개 조직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개방도 역사가 어언 오백 년이 넘어선다.

개방의 절정 무공이 대를 이어온 지 오백 년을 지나치고 있다. 그만큼 많은 고수들이 나왔고, 많은 무공들이 생멸했다. 강한 무공은 살아남았고, 약한 무공은 도태되었다.

개방, 그들도 혈루마옥을 안다.

혈루마옥의 화천이 무림을 횡행할 때도 조용히 그들을 지켜봤다.

검왕이 마공관의 무학을 수련한다고 해도 일절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믿는 구석이 없고서야 그런 태도가 나올 수 있을까?

소림사와 무당파는 분명히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면 개방이라도 없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있다면…… 누군가가 든든한 배경이 되어준다면…… 휴우!’

태진진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개방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 역시 변고를 당했을 공산이 높다. 혈루마옥이 소림사와 무당파를 쳤는데, 개방이라고 내버려둘 이유가 있는가.

한 사람만 나서도 무림을 떨쳐 울릴 수 있는 절대고수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

이상한 점은…… 누가 그런 절대고수들을 멸할 수 있냐는 것이다.

혈루마옥이 강하기는 하다. 하지만 적벽검문을 멸문시키면서 녹천 고수들 중에 절반이 쓰러졌다는 후문이다.

혈루마옥의 무공이 그 정도라면 이런 식으로 절대고수들을 무너트릴 수 없다. 한두 명을 죽일 수는 있겠지만 정을 사숙들과 소림비승들을 일시에 제거하기는 역부족이다.

태진진인은 터벅터벅 걸었다.

무당파로 돌아가는 발길이 천 근이나 된 듯 무거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