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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132화 (13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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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七章 난맥(亂脈) (2)

퍽! 퍽!

노인이 호미로 밭을 일군다.

아직 밝음이 찾아오지 않은 이른 새벽이지만 노인은 달빛을 등불 삼아 밭을 일군다.

“휴우!”

간혹 숨을 내뿜으며 허리를 편다.

노인에게서는 어떤 특색도 찾아볼 수 없다. 시중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노인네의 모습이다. 나이 먹은 노인의 모습이 별다를 게 있나.

너무 이른 새벽에 밭을 일군다는 점이 다를까?

노인은 몹시 평안하다. 아침잠을 잊고 밭을 일구는 중이지만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조금도 엿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즐거움이 가득 찬 듯하다.

저벅! 저벅!

어둠을 뚫고 차가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휴우!”

노인은 또 한 번 숨을 토해내면서 허리를 폈다.

노인의 눈길은 저절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향했다.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다. 발걸음 소리를 숨기지 않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있다.

노인은 밭에 심어져 있는 고추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를 돌보는 것도 오늘뿐인 듯하구나. 잘 자라거라. 쯧! 그냥 썩어버리지 않으면 좋으련만.”

노인의 눈가에 애잔함이 흘렀다.

저벅! 저벅!

어둠을 뚫고 다가온 발걸음 소리가 노인 앞에서 멈췄다.

낯선 사내다. 등에 검을 메고 있으나 검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뱀처럼 섬뜩한 눈길만 보인다.

“정을(正乙) 일두진인(一斗眞人)?”

사내가 묻고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릉!

사내는 다짜고짜 검을 뽑았다.

“혈루마옥인가?”

노인은 사내의 의도를 짐작한 듯 태연하게 물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케도 찾아왔군.”

노인이 꾸부정한 허리를 펴고 일어서며 말했다.

무당산(武當山)은 칠십이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른여섯 개의 기암이 있고, 스물네 곳의 골짜기가 있다.

사람들은 주로 태화궁(太和官)을 찾아간다. 도교의 성지임과 동시에 무당파의 본산이 있기 때문에.

태화궁이 아니면 자소궁(紫??)을 찾아간다.

역시 같은 이유다.

혈루마옥은 태화궁이나 자소궁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곳을 찾아갔다면 벌써 하늘에 폭죽이 터지고, 징과 북이 울려대고…… 난리가 아니었을 게다.

태화궁이나 자소궁 쪽은 조용하다.

노인이 사내와 마주 서며 물었다.

“오늘 내가 몇 번째인가?”

“처음이자 마지막.”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모를 말이군.”

“내가 맡은 사람은 당신뿐이니까.”

“아!”

노인은 그제야 사내 말뜻을 알아들었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인일살(一人一殺)인가?”

“그렇소.”

“정을파 모두?”

“정을파라고 해봐야 고작 여덟 명 아니오.”

“그렇지. 고작…… 고작이라. 허허! 정을파 여덟 명이 고작 여덟 명이 되는군. 허허!”

노인이 허탈하게 웃었다.

무당파는 네 개 분파(分派)가 있다.

흔히들 무당파라고 하면 장삼봉(張三峰)을 떠올린다. 장삼봉이 무당파를 창건했다고도 한다.

장삼봉이 뛰어난 걸물이기는 하지만 그가 무당파를 창건하지는 않았다. 그는 무당삼풍파(武當三豊派)라는 뛰어난 분파를 만든 비조(鼻祖)이다.

하기는…… 무당권법요결(武當拳法要訣)을 보면 ‘본 무당삼풍의 요결은 무당의 정종이다’라는 글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장삼풍이야말로 무당무공의 조사라고 말하고 있으니…….

무당파는 삼풍파 말고도 정을파(正乙派)와 전진파(全眞派), 현무파(玄武派)가 있다.

전진파와 현무파는 가장 많은 문도를 냈다.

세간에서 알고 있는 무당검법, 백홍검법이 모두 그들 분파의 무공들이다.

정을파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무당비파(武當秘派)다.

무당산 본궁 용문 내부에만 존재하며, 세간에 나가거나 무공을 타인에게 전수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한 후에만 문도로 받아들여지는 폐쇄적인 비파다.

당연히 무림은 정을파를 모른다.

정을파 문도가 몇 명인지, 어느 정도로 강한지는 장문인 정도만 알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정확하게 정을파를 찾아왔다. 정을파 문도가 몇 명인지 정확하게 알고 왔다.

정을파는 용문 내부에만 거주한다. 그러므로 그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무당파를 뚫고 들어와야 한다.

이들은 그것까지 했다.

무당산을 거침없이 올라왔고, 무당파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었고, 그들과 만났다.

오늘…… 이들은 목적을 이룰 것이다.

스읏!

노인이 호미를 들어 올렸다.

호심합일(呼心合一)!

이 순간, 노인은 딱 하나만 생각했다.

정을파에 입문한 자들은 제일 먼저 호흡과 마음을 일치시키라고 주문받는다.

움직일 때는 뱀이 가는 것 같이, 발경은 누에가 꼬치를 트는 것 같이…… 자리를 잡을 때는 분초호리를 따지고…… 등등 배운 것이 많지만 지금 생각나는 것은 딱 하나, 제일 먼저 들었던 호심합일이라는 주문이다.

호흡을 본다. 마음을 본다.

마음을 볼 수는 없다. 마음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 없이 호흡만 볼 때, 호심합일이 된다.

일체의 망심을 떨쳐내고 호흡만 본다.

“후우!”

노인은 밭을 일굴 때처럼 깊은숨을 내쉬었다.

“좋군.”

뭐가 좋다는 것일까? 사내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무당파에는 많은 신공과 내공이 있다. 많은 검법이 있고, 권법이 있다. 장법의 종류도 많다. 지공, 금나수, 도법, 신법 등등 무공의 종류를 헤아릴 수 없다.

노인은 어떤 것도 시전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본다. 서로가 완벽한 상대임을 깨닫는다.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못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상대다.

쉬잇!

노인이 호미를 휘둘렀다.

노인은 매우 느리게 움직인다. 움직임의 폭이 좁고, 변화도 느리다.

정을파의 무공은 무당태극유박이십삼식(武當太極柔撲二十三式)으로 설명된다.

부드러움이 주(主)다.

반면에 사내는 부동(不動)이다. 움직이지 않고 검 끝만 살아서 노인을 겨눈다.

스읏!

호미를 밀어낸다. 호미의 살상 반경에 사내를 놓는다.

투웃!

사내가 검 끝을 쳐올린다.

그 한 수로 사내는 호미의 살상력에서 벗어났다. 오히려 검이 노인을 겨눈다.

스읏!

노인이 다시 호미를 고쳐잡았다.

이제는 호미가 사내의 허리를 휘어감는다. 허리 아래쪽으로 호미의 살상력에 놓인다.

툭!

사내가 검을 반 치쯤 내려 잡았다.

사내는 또다시 살상력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검 끝이 노인의 가슴을 겨눈다.

벼락이 치는 순간을 천(千)으로 쪼갠 것만큼 빠른 순간이다. 노인은 이보(二步)를 나아갔다. 느린 것 같지만 매우 빠른 이동이다. 그리고 이 두 걸음 동안에 노인과 사내는 격돌 없는 교합을 십여 차례나 교환했다.

두 사람은 놀라지 않았다.

상대가 이 정도의 고수라는 것은 격돌 전에 이미 짐작하고 있던 터이다.

턱! 턱!

호미와 검이 맞닿았다.

두 사람은 서로 병기를 맞댔다. 그렇다고 내력 승부를 벌이는 것은 아니다. 단지 병기만 맞댄 채 서로를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눈과 눈이 부딪쳤다.

노인의 눈빛이 무심하다.

노인은 승부에 관심이 없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노인은 오직 한순간, 한 호흡, 자신의 호흡만 들여다본다.

사내는 차갑다.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너무 눈빛이 차가워서 얼음덩어리를 마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후우!”

노인이 숨을 쉬었다. 순간,

스읏! 팟!

두 사람은 호미와 검을 번개처럼 움직였다. 아니, 두 사람은 병기를 쓰지 않았다. 병기가 스스로 살아서 움직였다. 그들은 싸우고 싶지 않은데 병기끼리 싸운 듯한 느낌이다.

퍽! 파앗!

노인의 목에 붉은 혈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멋진 일심(一心).”

사내가 무감정한 어투로 말했다.

“불행이라면 일심을 깨는 방법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 마지막 한 호흡을 놓친 것은 그대 잘못이 아니라 우리가 유도한 것이니 억울해하지 말도록.”

“허허!”

노인이 마지막으로 덧없이 웃었다.

정을파 여덟 명.

그들은 무당파 전력의 절반에 해당한다.

무당파 문도들은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할지 모른다. 그들은 정을파를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문도는 정을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니까.

하지만 장문인은 안다.

“그분들이 모두!”

“아침에 시신으로 발견되셨습니다.”

“여덟 분 모두 말이신가!”

“네.”

“으…… 음!”

무당파 장문인은 침음했다.

정을파 사숙 여덟 명이 죽은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오직 그들의 수발을 들고 있는 사제만 안다.

무당파가 넓고 크지만 사숙들만큼 크지는 않다.

“사제, 사제는 사숙과 싸울 수 있으신가?”

장문인이 털썩 의자에 주저앉으며 힘없이 말했다. 꼭 사제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처럼.

“사숙들과 겨루려면 일초 승부를 벌여야 합니다. 정을은 이초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헌데…… 저는 워낙 미진한지라 어떤 일초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결국 사제는 사숙들의 일초지적도 안 된다는 자인을 했다.

사정이 이러니 누가 혈루마옥의 상대가 될까?

남은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처참하게 발악해서 혈루마옥을 살인집단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대가는 물론 무당파의 멸문이 될 것이고.

혈루마옥은 경고를 충분하게 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적벽검문이 그랬듯이 이유 없이 봉문을 선포하는 것이다.

멸문은 너무 빤히 눈에 보이고, 봉문을 선포하자니 무당파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다. 문도들의 저항도 불 보듯 뻔하다. 그들이 어떻게 이유 없는 봉문을 받아들인단 말인가.

결국, 혈루마옥은 두 가지 선택지를 남겨주었지만 장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인 셈이다.

혈루마옥도 이런 점을 알고 있을 터인데, 왜 이런 경고를 했을까?

정을파 사숙들을 모두 죽일 정도의 인원과 무공이라면 무당파를 정면으로 들이쳤어도 됐는데.

“사제, 소림으로 가보시게.”

“제가 말입니까?”

“은밀히. 지금…… 가시게.”

“사숙님들은……?”

“사숙님들의 유해는 내가 거두겠네. 내가 직접. 그래야 하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헌데 소림에 가보라고 하심은……?”

“우리에게 정을파가 있는 것처럼 소림에도 비승(秘僧)이 있네.”

“소림 삼십이승 말씀이십니까?”

무당파 장문인 태정진인(太丁眞人)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승이나 승이 아닌 사람들, 그래서 노(老)(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지. 그들은 숭산에 머물지 않고 소실산(少室山)에 머물기 때문에 소실삼로(少室三老)라고 하고.”

“세 분이십니까? 그럼 그분들도?”

“아마 우리 정을 사숙님들과 같은 일을 당하지 않았나 싶네. 어서 가서 알아보시게.”

“누구에게 알아보면 됩니까?”

사제 태진진인(太津眞人)이 되물었다.

무당파에서도 정을파 사숙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사숙들과 비슷한 사람들이라면 소림사에서도 아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어쩌면 무당파처럼 소림사 방장을 비롯해서 한두 명 정도만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장문인이 말했다.

“서신을 써줄 테니 방장을 직접 만나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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