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30화 (1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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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六章 흑천(黑天) (5)

검성 성주가 자진(自盡)했다!

어느 날 아침, 믿기 힘든 소문이 전 무림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무림은 이제 절반 정도 되는 무인들이 혈루마옥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혈루마옥이 중원으로 들어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적벽검문을 멸문시킨 것이다.

적벽검문은 원래 은중문파(隱中門派)다.

무인들 중 거의 대다수는 적벽검문이 있다는 말만 들었지, 그들이 어디 있는지, 어떤 무공을 사용하는지, 어떤 인물들을 배출했는지 알지 못한다.

적벽검문이 일약 무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검왕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검왕은 약관의 나이에 십마와 비등한 무공을 선보였다.

혈천성 마인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죽음의 사자는 바로 검왕이었고, 검왕은 적벽검문 출신이었다.

검왕 덕분에 적벽검문은 단숨에 주목 대상이 되었다.

허나 적벽검문은 여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들은 깊은 곳에 숨어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무림은 적벽검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들을 알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적벽검문의 멸문 역시 인식하지 못했다.

그전부터 적벽검문이 봉문을 선포했기 때문에 더더욱 인식하지 못했다.

적벽검문은 멸문했다. 모두 죽었다. 그러나 알지 못한다.

혈루마옥은 적벽검문을 멸문시켰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다.

유지오혼의 죽음은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유지자문의 대표적인 고수들이지만 너무 쉽게 쓰러지고 말았다.

그 순간부터 혈루마옥의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왕의 죽음을 목도한 십마가 일제히 무림 곳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협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십마가 조용히 이 일을 추진했다.

그들은 중원 곳곳을 누볐고, 많은 문파를 방문했고, 명문거숙들을 대거 만났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필요하다면 야밤에 월담도 시행했으니까.

무림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다.

혈루마옥에 대응할 수 없는 무인들이 괜히 공포심에 사로잡혀서 중구난방 떠들어대면 무척 곤란하다. 무림은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질서는 사라질 게다.

그러기 전에 대응할 수 있는 무인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아야 한다.

십마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닌 것은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소문은 조금씩 커졌다.

무림에 전에는 보지 못했던 최고수들이 대거 등장했으니 모를 수 없다.

미지의 고수들은 손속마저 잔인했다. 그들에게 대항하는 무인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단지 경고만 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목숨을 빼앗아갔다. 마치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를 보는 듯했다.

그럼에도 무림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검성!

혈천성은 믿을 수 없는 존재다. 마인 집단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하지만 검성은 믿을 수 있다. 정의, 자유, 도덕을 중시하는 검성 무인들이 사마를 제거할 것이다.

중원 무림은 혈루마옥의 진신(眞身)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들은 검성이라면 충분히 혈루마옥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검성 성주가 초옥에서 나와서 다시 검을 잡고 천하를 호령할 때만 기다렸다.

그런데 검성 성주가 자진했다. 왜?

검성 성주가 살해당했다면…… 그것 역시 믿을 수 없는 말이지만, 그래도 그편이 조금 낫다. 무인이니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일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진이라는 것은…… 검성 성주가 왜 느닷없이 죽음을 택했을까?

검성 성주가 자진하기 전에 일호명령서를 발부했다!

일호명령서에 서명된 이름은 서유하(徐瑜蕸)!

무림은 또 한 번 술렁거렸다.

“서유하가 누구지?”

“몰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야.”

“그래도 성주가 검성을 물려줄 정도라면 인격, 무공, 지혜가 뛰어나다는 거잖아.”

“그렇겠지.”

“검성 반응은 어때?”

“일호명령서를 받아들이는 분위기야.”

“정말? 서유하를 성주로 모신다고?”

“일호명령이잖아.”

“아무리 일호명령이라고 해도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무림을 또 한 번 술렁이게 만든 일호명령!

검성은 서유하라는 여인에게 물려준다는 전대 성주의 절대 명령이다.

일호명령은 죽음과 연관된다.

검성에 적을 둔 모든 무인들이 목숨을 걸고 받들어야 하는 절대 명령이다.

성주가 일호명령으로 검성의 와해를 지시하면 그렇게 된다. 검성 무인들은 그 순간부터 적을 잃는다. 제각각 뿔뿔이 흩어져서 낭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일호명령이다.

이번에는 단지 검성 차기 성주를 지시하는 것에 그쳤지만…… 어떤 명령이든 받들어야 한다.

일호명령이 떨어졌다면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검성 성주가 자진했고, 차기 성주는 서유하라는 여인이 차지했다.

무림에는 어떤 일을 해도, 어떤 변화를 모색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이번에는 일호명령이 그랬다.

“정비한다.”

서유하의 부임 일성(一聲)이다.

검성의 정비는 일반 문파, 혹은 무림에서 생각하는 정비와는 조금 다르다.

검성은 자리를 배치함에 있어서 직무 수행능력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다. 물론 고려해야 할 각종 덕목이 더 있지만, 그것은 모두 통과한 사람들이니까.

정비는 직무수행능력을 다시 평가해서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로 자리바꿈을 하겠다는 뜻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검성 정비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배정, 배치된 사람들을 일괄적으로 싹 바꾸는 것이니까.

검성이 정비를 하는 것은 옳다.

성주가 바뀌거나 큰일이 생겼을 때, 검성은 즉각적으로 자리바꿈을 하곤 했다. 그 일에 맞는 사람들, 혹은 성주에 맞는 사람들로 자리를 채워야 하니까.

그런데 그것이 하필 왜 이 시점인가?

북방과 서방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어디선가 나타난 무인들이 무림을 피로 적시고 있다.

검성이 최우선적으로 할 일은 그들의 발길을 저지하는 것이다. 피를 멈추는 것이다. 헌데 왜 그 일은 하지 않고 나중에 해도 될 일을 하는 것인가.

어쨌든…… 정비는 시작되었고, 검성은 문을 닫았다.

* * *

“일호명령?”

“네. 일호명령입니다. 헌데 일호명령에 기재된 서유하가 누군지 도무지…….”

“귀선부 이령이다.”

“네?”

“후후후! 귀선부 이령이 서유하야.”

“아! 그렇군요.”

“이령이…… 발톱을 드러냈군. 후후후! 참 많이 참았는데,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혈천성주가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검성은 지금 정비 중입니다. 뒤통수를 치기에 딱 좋은데, 칠까요?”

“멍청한!”

혈천성주는 부하가 입을 닫기 무섭게 호통부터 쳤다.

회회문사라면 절대로 이런 말을 입에 담지 않았을 게다. 하지만 그는 지금 곁에 없다. 그러니 이런 돌대가리들이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 거겠지.

수하가 호통을 듣고 입을 꾹 다물었다.

혈천성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회회문사는 검왕을 쫓아갔다.

안다. 검왕은 죽었다. 십마가 그렇게 떠들고 다닌다. 자신들이 검왕의 죽음을 직접 목도했다고.

헌데…… 허면 왜 혈루마옥이 주춤거리는가?

혈루마옥의 진군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느리다. 마치 암초에 부딪힌 듯 좀처럼 나서지 않는다.

그러는 마당에 검성 성주가 자진을 했다.

혈천성주는 검성 성주의 죽음과 혈루마옥의 느린 진군 사이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다고 봤다.

엄밀히 말하면 회회문사는 그 일을 캐러 간 것이다.

헌데…… 묘한 소문이 들린다. 검왕이 살아있다는, 검왕이 혈루마옥을 가로막는다는.

소문의 진원지는 하오문이다.

하오문은 날수통을 실례로 들었다. 마공관 마학이 세상에 나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마공관의 마학은 검왕밖에 수련한 사람이 없다는 말도 한다.

검왕이 정말 살아있나?

혈루마옥을 찾아 나선 회회문사가 검왕을 찾는 격이 되었다.

‘이것들이 무슨 수작들인가?’

혈천성주는 푹신한 의자에 등을 깊이 묻었다.

당금 중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장 소상히 알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는 누구인가? 당금 무림을 양분하고 있는 혈천성의 성주다.

그런 그가 정작 무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

혈루마옥, 검성, 적벽검문, 유지자문, 십마…….

한 순간만 방심하면, 실족을 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업적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된다.

그는 자신이 칼날 위에 서 있음을 실감했다.

헌데 무엇을 해? 검성의 뒤통수를 쳐? 정신없는 놈 같으니.

‘이령이 검성을 장악한다는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 헌데 그게 왜 하필 이 시점이냐?’

혈천성주는 머리가 아픈 듯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만지작거렸다.

이령이 서유하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검성 성주를 초옥으로 물러나게 만든 장본인이 그녀라는 사실도 예전부터 알았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딱 거기까지다.

그는 서유하와 검성 성주의 관계를 모른다. 둘 사이에 숨겨진 비밀을 탐문하고자 눈치 빠른 자들을 잠입시켰지만, 모두 척살당하고 말았다.

물론 그가 잘못 알고 있었던 점도 있다.

그는 서유하가 검성 성주를 자진하게 만들 수 있다는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서유하가 검성 성주를 죽게 만들었다면, 둘 사이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검성이 정비를 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검성은 혈루마옥과의 싸움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한다. 앞으로 무림 문파가 혈루마옥에게 공격을 당할 터인데, 그런 일이 벌어지면 검성은 당연히 응원군을 보내야 한다.

혈루마옥은 구대문파 중 한 곳을 칠 것이고, 그런 곳에 조력자를 보낸다면 적어도 총당(總堂) 이상 되는 자들을 대거 파견할 수밖에 없다.

그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재 검성에는 총당이 없다.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총관도 없고, 호법도 없고, 당주도 없다.

검성은 예전과 다름없이 운영되고 있지만, 그들을 이끌고 있는 우두머리들은 모두 임시직이다.

그들은 결정권이 없다.

구파일방이 누군가에게 무너져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

알게 모르게 혈루마옥에게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후후후!”

혈천성주는 크게 웃었다.

웃기지 않은가. 일이 이렇게 되면 중원 무림은 오직 마(魔)밖에 없다. 정은 사라졌다. 검성을 이끄는 자가 혈루마옥과 연관되어 있고, 그녀의 수족이 마군이니…….

검성의 마(魔)와 혈천성의 마, 그리고 저 잘났다고 제각기 떠도는 십마만 존재한다.

아! 가장 큰 마(魔)도 있다. 혈루마옥.

오직 마인들만 득실거린다.

정도 무림은 그들에게 휘감겨서 조금씩 멸살당해 갈 것이다. 여전히 검성만 쳐다보면서.

혈천성이라고 무사할 수는 없다.

독사는 독사를 잡아먹는다. 마는 마를 친다.

그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어찌 되었건, 일이 이렇게까지 됐다면 반드시 다른 쪽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해야 한다.

“후후후! 후후후!”

그는 가늘게 웃었다.

얼핏 보기에는 혈루마옥의 마가 가장 강성한 것 같다. 그리고 검성의 마는 잠마(潛魔)로 보이고…… 혈천성의 마는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마로 보인다.

아니, 보이는 게 아니라 그게 현실이다.

‘십마를 포섭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어. 아니지…… 십마도 혈루마옥에 무너졌으니…… 혈루마옥의 일부분을 흡수하지 않고는 승산이…… 없어.’

결국 독사 새끼를 품에 안아야 한다.

그 독사가 자라서 가슴을 깨물 것인데, 그런 미래를 보면서도 독사를 껴안아야 한다.

어느 문파나 틈은 있다. 혈루마옥에도 틈은 있다.

이럴 때는 회회문사가 아쉽다. 그가 곁에 있었다면 몇 마디 조언이라도 해줄 수 있을 터인데.

그는 의자에서 등을 떼고 일어섰다.

혈루마옥의 일부분을 품에 안아야 된다는 가설은 예전부터 거론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두었다.

회회문사가 검왕을 쫓는 동안, 그는 혈루마옥의 일부분을 품에 안을 생각이다. 그것이 가슴을 태우는 불덩이임을 빤히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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