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28화 (128/225)

# 128

第二十六章 흑천(黑天) (3)

이상한 동행이다.

중년 여인과 젊은 사내가 함께 길을 간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일절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가끔 말은 한다.

“변면낭검이라는 사람, 대단한 기재로 생각되는데?”

“…….”

“그런 사람이 왜 그렇게 죽었을까? 이름도 떨치지 못한 채 말이야. 나 같으면 억울해서 그런 식으로는 못 죽겠어. 절대로 그렇게는 못 죽지.”

“…….”

“혈영마공은 쉬운 무공이 아냐. 비급을 준다고 아무나 수련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라는 거지. 그런 것을 초절정으로 수련했다면 천하에 이름을 떨칠 수 있는 기재 아냐?”

“…….”

“변면낭검이라고 했지? 별호에 변면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을 보니까 변장술에 능통한 모양이야? 하기는…… 우리도 검왕인 줄로만 알았잖아. 깜빡 속았어.”

“…….”

“그래도 그건 이상해. 십마까지도 깜빡 속였다는 거지. 검왕을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인데. 아니, 아니. 또 있지. 누강. 누강보다 검왕을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누강도 속아 넘어갔어. 검왕인 줄 알았다는 거지. 일부러 모른 척하지는 않은 것 같았거든. 그가 검왕을 묻었을 때 정말로 가슴 아파했다 이거지. 죽은 사람이 검왕이라고 철석같이 믿었어.”

“…….”

“대단한 사람이지 않아? 변면낭검이라는 자.”

“…….”

“적벽검문에는 이상한 사내들이 많나봐? 본문에서 죽은 사람들도 이해가 안 되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개죽음이거든. 그런 일이 벌어지면 죽지 말고 후일을 기약해야지.”

증평주는 상당히 많은 말을 했다. 물론 검왕은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없는 물음이 계속 던져진다.

증평주도 검왕에게서 대답을 듣고자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검왕이 말을 하지 않아도 대답을 재촉하지 않는다. 아예 검왕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녀는 자문자답(自問自答)한다.

물론 그녀의 생각을 검왕이 들어도 상관없다. 이 정도의 의문쯤은 누구나 가질 법한 것이니까.

그럼 왜 그녀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입으로 읊조리는 것일까?

검왕에 대한 압박이다.

검왕이 무엇을 행하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다.

“정말 대단해. 변면낭검. 그만한 기재가 그런 식으로 이용되다가 죽었다는 게.”

증평주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변면낭검은 적벽검문의 문도가 아니다. 적벽검문 사람이기는 하지만 문도라고 할 수는 없다.

변면낭검은 마(魔)에 물든 마인이다.

그는 살아있는 생명체만 보면 숨을 끊어놓고 싶은 충동감이 치밀어서 견디지 못한다.

사람을 보면 사람을 죽인다.

짐승을 보면 짐승을 죽인다.

단순히 숨만 끊는 게 아니다. 죽이는 과정을 즐기기 때문에 상당히 고통스러운 방법을 창안해 낸다.

변면낭검의 성품은 완전히 악에 물들어버렸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이상증세까지 불러왔다. 단순한 치료로는 사람 본성을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깊이 물들었다.

세상을 위해서는 변면낭검이 죽어야 한다.

적벽검문은 의문의 살인들을 뒤쫓다가 변면낭검을 찾아냈고, 그를 제압하여 절곡에 가뒀다. 그리고 본인의 동의하에 모종의 실험을 감행했다.

악(惡)에는 악으로!

마성(魔性)에 절정마공을 투입했다.

마공은 본성을 통제한다. 헌데 변면낭검의 본성은 어떤 마공으로도 통제가 되지 않을 만큼 악하다.

자칫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기름을 넣는 격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실험’이라고 지칭했다. 악이 더욱 깊어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가 되면 정리…… 그렇다. 정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굳히고 실험했다.

허나 그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악이 악에 물들었다. 그러잖아도 깊었던 마성이 마공의 영향을 받아서 더욱 깊어졌다.

변면낭검은 얄팍한 수도 생각해냈다.

누구라도 속일 수 있는 변장술을 스스로 터득해 나갔다. 그래야 적벽검문의 눈길을 피해서 도주할 수 있을 테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도 속일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적벽검문의 검공까지도 연구했다.

그를 지키는 사람들이 수련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지키는 사람들이 어떻게 걷고,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사고하는지 세심하게 관찰했다.

그는 적벽검문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에 한 명이 되었다.

그는 세월이 지날수록 간특해지고, 무공은 더욱더 깊어졌다. 적벽검문에서도 소수의 몇 사람만이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강력한 무인이 되었다.

증평주 말처럼 그는 세상에 나가고 싶어 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체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말살해 나갔다. 사람도 죽이고 짐승도 죽였다.

그를 정리할 순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즈음에 혈루마옥이 뛰쳐나온 것이다.

적벽검문은 그에게 제안을 했다.

스무 명을 속여라. 완벽하게 속여라. 검왕이 되어야 한다. 검왕임을 누구도 의심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만 상대하라.

그는 너보다 훨씬 강하다. 아마도 너는 그 싸움에서 죽을 가능성이 십 할에 이를 것이다. 기적은 없을 것이고, 너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혈영마공? 안 된다. 그 정도로는 상대할 수 없는 강자다.

수월화에 대한 정보를 소상히 알려주었다.

선택은 그가 했다.

그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적벽검문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

적벽검문은 혈영마공의 약점을 안다.

그는 혈영마공을 최절정까지 수련했지만, 그런 무공으로도 적벽검문은 어쩌지 못했다.

혈영마공의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

그는 그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혈영마공의 단점만 보완하면 적벽검문부터 때려눕힐 생각이었다.

그러던 참에 들어온 제안.

선택은 변면낭검이 했지만…… 사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거절하면 정리다.

그즈음에는 적벽검문도 최악의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리할 마인들은 모조리 정리할 셈이었다.

물론 변면낭검은 적벽검문의 멸문 소식을 들었다.

그가 강호에 나와서 첫 살인을 하는 순간부터 적벽검문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를 통제할 사람은 사라졌다.

정말 그럴까? 후후후! 그는 웃었다.

간특한 적벽검문…… 그놈들이 그리 쉽게 죽는다고?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아니나 다를까, 그에게 계속 밀통이 전해졌다.

밀통은 수월화의 위치와 싸울 곳, 십마를 어떻게 조우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모든 행동방침이 세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한순간도 삐끗거리지 못할 정도로.

확신한다. 적벽검문의 생각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가 적벽검문의 손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 수월화를 제압하는 것뿐이다.

허면 적벽검문은 자유를 약속했다.

향후, 그가 어떤 짓을 하든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조했다. 세상 사람들을 모두 죽여도.

그만큼 수월화와의 싸움을 비관적으로 생각한 것이겠지만…… 그는 수월화를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까짓 여자 한 명쯤은 간단히 눕힐 것이다.

적벽검문은 혈영마공의 약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혈영마공을 간단하게 파해한다.

수월화는 혈영마공의 약점을 모른다.

수월화는 오직 하나, 강대강의 싸움으로 혈영마공을 눌러야 한다.

그의 이 생각은 옳았다. 혈루마옥은 혈영마공의 약점을 몰랐고, 강대강의 싸움을 걸어왔다.

한 가지, 그가 잘못 판단한 점이 있다면 수월화의 무공이 그의 예상치를 훨씬 넘어섰다는 것이다.

그녀는 정말 강했다.

강대강, 무공 대 무공으로 혈영마공을 짓눌러 버릴 정도로 강한 여자였다.

그 싸움은 서로가 최선을 다한 싸움이었다.

* * *

“증평주가 흑천초부와 동행하고 있습니다.”

“흑천…… 초부?”

흑천초부는 그도 안다. 혈루마옥에서 분탕질을 하고 떠난 사내인데 모를 수 없다.

“증평주의 사위(四衛)는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시신?”

녹천주가 눈을 부릅떴다.

증평주의 사위는 증평주의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수족처럼 항시 붙어 다니면서 온갖 수발을 든다. 하다못해 측간을 갈 때까지 따라가서 지킨다.

사위의 경계망은 혈루마옥에서도 알아주는 바다.

그런데 그녀들이 죽은 모습을 발견되었다면…… 증평주의 눈앞에서 죽었다는 뜻이다.

증평주가 그녀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흑천초부의 무공이 증평주보다 한 수 더 위에 있다는 뜻이다.

그럼 증평주는 납치된 것인가?

수하는 ‘동행’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증평주의 일신은 자유롭다.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증평주는…… 누강을 잡는 중이 아니었나?”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만, 워낙 간단한 일인지라 수월화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간단한 일인데 날수통이 나타날까? 후후후! 듣기로는 황수까지 나온 것으로 아는데, 허면 마공관의 마학이 모두 세상에 나왔다고 봐야겠지.”

수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역시 보고만 받았을 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추측하기 곤란했다.

증평주는 혈루마옥의 절대 강자다.

녹천주와 촌장을 제외하고는 상대할 사람이 없는…… 거의 무적에 이르는 강자다.

그런 그녀의 사위가 절명했다.

증평주는 혈루마옥의 적이나 다름없는 흑천초부와 동행한다. 비록 일신에 대한 속박은 없지만 전후사정을 감안해 보면 생포된 것이 틀림없다.

흑천초부가 그렇게 강했나?

마공관의 무학이 그렇게 강했나?

하필 이 시점에 마공관의 마학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것은 어찌 된 일인가.

“증평주의 지금 위치는?”

“파악 불가입니다.”

녹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지. 위치를 노출 시킬 이유가 전혀 없지. 일이 꼬이는군.”

녹천주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증평주를 이길 자신이 있다. 증평주가 강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한 수 위에 있다고 자부한다.

결국 흑천초부와 자신은…… 싸워봐야 안다.

그는 흑천초부가 두렵지 않다. 중원에 자신의 상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마공관의 무학이 대거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혈영마공, 날수통, 황수, 흑천…… 이 모든 것이 적벽검문에 집중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적벽검문이 아니라 검왕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미 죽어버린 자에게.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촌장님께 보고해라. 보고할 사안이다.”

“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수월화를 살펴라. 그쪽도 심상치 않아.”

“네. 바로 조처하겠습니다.”

“제일전(第一戰)은 무당(武當)인가?”

“네. 삼 일 후에는 무당파를 멸절시킬 수 있습니다.”

“보류해라.”

“알겠습니다.”

“모두 모이라고 해. 지금 상황에서는 흩어지면 안 될 것 같다.”

“네. 증평에도……?”

“그쪽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검왕의 무덤을 파헤쳐봐. 죽은 자가 검왕이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라고. 확실하게.”

“네?”

이번에는 수하가 반문을 해왔다.

녹천주의 명령이 이상하지 않은가. 죽은 자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라니. 죽은 자가 검왕이라는 것은…… 이미 확인해 봤지 않은가. 그것도 직접 무덤을 파헤치고.

녹천주가 수하의 반문을 무시하고 말했다.

“검왕의 시신을 확인해 보고…… 촌장님께는 선보고부터 해라. 아무래도 검왕이 살아있는 것 같다고.”

“네?”

“날수통, 황수, 혈영마공…… 이 모든 게 검왕에게 밀집되어 있으니 흑천 초부 역시 마찬가지. 흑천초부가 적벽검문 사람이며, 아마도 검왕이지 않을까 싶다고.”

“…….”

“그렇게 보고해.”

녹천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일이 이상하게 조금씩 삐걱거린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단지 기분 탓일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