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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六章 흑천(黑天) (2)
쒜에에엑!
빛이 사라진다. 어둠이 밀려오면서 빛을 밀어낸다.
빛과 어둠 사이의 경계는 없다. 물이 한지에 스며들 듯 스르르 스며들더니 어느새 잠식해 버린다.
흑천초부의 도끼는 빠르지 않다. 대신에 매우 광범위하다. 도끼가 변화할 가능성, 도끼로 내리찍을 수 있는 살상범위가 매우 넓어서 피하기가 어렵다.
도끼를 막아내는 방법은 오직 하나, 강대강(强對强)!
슈우웃! 콱!
심연 깊숙이 묻어두었던 한음지기(寒陰之氣)가 치솟는다. 얼음처럼 솟구쳐 나와서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혈맥에 틀어박힌다. 이미 일으킨 화혈역심공을 가닥가닥 끊어놓는다.
화혈역심공이 주춤거린다.
도도히 흐르는 용암 줄기를 가닥가닥 끊으면서 틀어박히는 얼음덩이들.
이는 상잔(相殘)처럼 보인다.
얼음이 용암의 길을 막는다. 용암이 얼음을 녹이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맞다. 틀림없는 상잔이다.
진기를 오로지 한곳으로 모아도 시원치 않을 상황에서 서로 상극인 진기를 끌어낸다는 것은 누가 봐도 우행이다. 아니, 주화입마를 자초하는 행위다.
하지만 증평주의 이런 진기운행은 수월화보다 한 단계 발전한 것이다.
수월화는 몸에 깃든 저주, 음화(陰火)만 끌어올렸다.
증평주는 음화와 화혈역심공을 섞었다. 물과 불이 섞이면서 일으키는 마찰력, 서로가 서로를 짓뭉개려고 하는 파괴력을 끌어내어 밖으로 떨쳐낸다.
이렇게 하면 음화나 화혈역심공이 지닌 원래 위력보다 파괴력이 십여 배나 증가한다.
마주칠 자가 아무도 없는 최강의 무학이 드러나고 있다.
파아앗!
증평주가 들고 있는 검에서 하얀 은린(銀鱗)이 번뜩였다.
검에서 튀어나온 검기가 공기를 찢어발기는 현상이다.
파파팟! 파파파파팟!
번쩍번쩍 불길을 튀겨내는 은린이 검은 장막을 찢으면서 안으로 파고들었다.
세상을 뒤덮던 어둠이 반으로 갈라진다.
꽈직! 까앙!
도끼와 검이 사정없이 부딪쳤다.
일합, 이합, 삼합…… 십여 합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두 사람은 매우 빠르게 부딪친다. 너무 빨라서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도 들을 수 없다. 검과 도끼가 격돌했다 싶은데, 어느새 두 병기는 곧바로 변화를 일으켜 다시 상대를 제쳐가고 있다. 아니,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파륵!
어느 한순간, 초부의 어둠에 옅은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혈영까지!”
싸움을 지켜보던 여인이 신음처럼 소리를 흘려냈다.
흑천초부는 검왕이다. 이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모습만 같아서가 아니다. 흑천초부는 흑천의 무공에 혈영마공까지 뒤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새까만 흑빛과 새빨간 붉은 빛이 섞이면서 탁색된 검은빛을 흘린다.
파라라락! 까앙! 깡깡깡깡! 까앙!
흑천초부의 몸에서 비수 수십 개가 튀어나왔다.
증평주는 검을 풍차처럼 휘둘러서 쏟아지는 암기들을 쳐냈다.
두 사람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 더군다나 흑천초부는 날수마선의 날수통으로 비수를 쏘아냈다.
가공할 빠름으로 전개된 기습이다.
증평주는 마지막으로 쳐온 도끼를 쳐내서 옆으로 비켜낸 다음 비칠거리면서 물러섰다.
“휴우!”
뒤로 두 걸음 물러선 그녀의 입에서 긴 숨이 토해졌다.
“마공관의 무학을 모두 섭렵한 게냐?”
증평주가 빠르게 말했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검은 파르르 떨렸다. 은린은 여전히 빛을 반짝거리고 있지만, 검날이 미풍에 흔들리는 종이처럼 가는 경련을 쏟아냈다.
진기가 흩어진 현상이다.
흑천초부는 약해진 증평주를 보면서도 서둘러 공격하지 않았다.
그 역시 도끼를 무릎 밑으로 축 늘어트리고 있다. 도끼를 든 손에 가는 경련이 일어나고 있다.
누가 봐도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흑천초부와 증평주는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굳이 말하자면 비등하다고 할 것이다.
증평주에게 팔 하나만 보태져도 흑천초부의 패배다.
불행히도 증평주를 수행하는 시녀들은 그만한 무공을 지니고 있지 않다.
수월화라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텐데…….
“놀랍군.”
증평주가 정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라기는 흑천초부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증평주를 쳐다봤다.
“혈루마옥, 인정하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나는…… 온갖 도움을 받고 이 자리에 섰소. 헌데 증평주께서는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이뤄낸 것. 오성(悟性), 지혜, 인내. 모두 뛰어난 분이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호흡을 고른 증평주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검은 조용해졌다. 흔들림은 사라지고, 강직함만이 존재한다.
흑천초부도 도끼를 들어 올렸다.
처음 일전을 벌일 때처럼 두 손으로 도끼를 잡고 하늘 높이 들어 올린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의 도끼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이 완전한 흑색이 아니라는 거다. 붉은색 같기도 하고, 흑색 같기도 하고…… 흑색과 붉은색이 섞이지 않고 흔들거린다.
흑천의 내공과 혈영마공이 따로 운용된다.
무당파에 양의심공(兩儀心功)이 있다. 두 가지 무공을 일시에 전개할 수 있다. 무당파 이외에도 각기 다른 무공을 전개할 수 있는 분심법(分心法)은 다수 존재한다.
허나 혈영마공이나 흑천의 무공처럼 극상의 마공을 일시에 운용한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스릇!
증평주의 눈꺼풀이 사르륵 내리감겼다.
그녀는 눈을 반개(半開)한 채 검 끝을 쳐다봤다. 흑천초부를 보지 않고 자신의 애검을 봤다.
꽈지직!
흑천초부가 공기를 찢어낸다.
쒜에에엑!
그녀는 도끼를 보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검만 쳐다보면서 필생의 검초를 쏟아냈다.
꽈앙!
검과 도끼가 부딪치면 강렬한 폭발음을 일으켰다.
파라라락! 퍽!
뒤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시녀가 느닷없이 날아온 도끼날에 가슴을 얻어맞았다.
그녀는 피를 뿌리면서 뒤로 훨훨 나가떨어졌다.
퍼억!
또 다른 시녀도 둔탁한 소리를 흘리면서 쓰러졌다.
그녀는 어디선가 날아온 비수에 이마를 관통당했다. 핏물이 앞이마에서 시작해 뒷머리까지 이어진다.
그녀들은 흑천초부에게 죽음을 맞이했다.
한 명은 부러진 도끼날에 절명했고, 또 한 여인은 날수통에서 흘러나온 비수에 즉사했다. 그녀들의 무공 또한 범상치 않으나 변변한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죽었다.
“크윽!”
증평주가 신음을 쏟아냈다.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 두 팔을 땅에 짚고 입으로는 붉은 피를 꾸역꾸역 쏟아냈다.
그녀가 굽혀진 무릎을 펴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좀처럼 무릎은 펴지지 않는다. 몸 전체가 바람에 흔들리는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녀의 맞은편에는 흑천초부가 앉아있다.
그 역시 낭패한 모습이다. 의복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고, 입가에는 붉은 선혈이 흐른다. 그러나 증평주처럼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흑천초부의 상태가 조금 낫다.
“정말…… 지독히…… 강하군.”
흑천초부가 흘린 말이다.
그는 승자나 다름없다. 헌데도 질린 눈으로 증평주를 쳐다보며 말하고 있다.
“우욱! 욱!”
증평주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녀도 뭐라고 할 말이 있을 터이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배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핏물을 게워내느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흑천초부는 서둘지 않았다.
등을 거목에 기대고, 두 발을 쭉 뻗고, 편히 쉬면서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봤다.
“왜 안 죽였어?”
“죽일 생각이었소.”
“그런데?”
“죽일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소.”
“나중에 죽일 수도 있었잖아? 그때 난 아무 힘도 쓰지 못할 상황이었는데. 넌 조금 나았고.”
“그때는 마음이 달라졌소.”
“그래? 어떻게 달라졌는데?”
“죽이는 것도 괜찮지만 포로로 잡는 것도 괜찮겠다.”
“포로? 호호호!”
증평주가 기가 막힌 듯이 웃었다.
그녀는 포로가 될 수 없다. 그 누구도 증평주를 포로로 만들 수 없다.
그녀가 말했다.
“지금 내가 포로라고 생각해? 내가 네게 사로잡힌 거야?”
“그렇소.”
“호호호! 내 살다 살다 별 희한한 말을 다 들어보네.”
“반초. 딱 반 초 위요. 내가.”
“반 초? 반 초 위라…… 그 말은…… 언제든 날 제압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내가 옳게 해석했나?”
“옳게 해석했소.”
“호호호! 정말 이상한 자신감이네. 그 반 초, 다음 싸움에서는 달라질 수 있어.”
“…….”
흑천초부는 침묵했다.
증평주의 말이 맞다.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증평주를 제거했어야 한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두 사람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싸우기 이전 상태로. 즉,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제압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싸워야 하고, 그때는 어떤 승패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흑천초부의 말대로 두 사람의 무공 차이는 딱 반 초다.
그 반 초라는 것…… 날씨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고, 지형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으며, 그날의 기분이나 몸 상태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두 사람 중에 누군가가 우위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기에 흑천초부는 침묵했다.
증평주도 흑천초부의 침묵이 어떤 뜻인지 읽었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논하지 않았다.
증평주가 흑천초부를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한 달. 한 달 기한을 준다. 그동안 포로가 되어 줄 테니 마음대로 하고. 한 달 후에는 곁에 있는 놈부터 죽이기 시작할 테니, 내 주변에 사람 두지 마.”
“고맙소.”
“그런데…… 너 검왕이지?”
“…….”
“내 눈으로 검왕이 죽는 모습을 봤어. 그런데 살아있다니 우습잖아. 그자, 누구야?”
증평주는 수월화에게 죽은 검왕이 틀림없는 검왕이라고 확신했다.
자신이 검왕을 잘못 봤을 리 없다. 수월화가 상대의 무공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다.
그가 약간이라도 의심스러웠다면 두 번, 세 번 시신을 확인했을 게다.
결론은 하나, 죽은 검왕이 살아났다는 거다.
허나 이것 역시 불가능하다. 수월화의 손속은 사정을 남기지 않는다. 그녀가 죽였다고 하면 죽인 것이다. 그리고 죽은 자는 살아날 수 없다.
증평주가 다시 물었다.
“죽은 자, 검왕 맞아?”
“적벽검문에…… 변면낭검(變面狼劍)이라는 사람이 있소. 적벽검문은 만일을 대비해서 일대(一代)에 일인씩 숨겨놓는데, 이번 대에 숨겨진 사람이 그 사람이오.”
“죽은 자가 변면낭검이라는 거야?”
“변용술(變容術)이 뛰어났나 봐? 변면낭검이라고 불리는 걸 보면?”
“…….”
“내가 바보로 보이나 봐? 얼굴은 속일 수 있어. 음성도 속일 수 있고, 신태도 속일 수 있어. 하지만 무공은 속일 수 없어. 더군다나 넌 혈영마공을 사용했거든.”
“변면낭검의 혈영마공은 나보다 한 수 위요.”
“뭐라고?”
“난 이것저것 건드린 게 많지만 변면낭검은 오직 하나, 혈영마공만 수련했소. 집중적으로. 혈영마공만으로 논하자면 변면낭검이 나보다 한 수 위요.”
“…….”
“수월화는 최고의 혈영마공과 싸운 것이오.”
“너희…… 언제부터 준비한 거야? 너희들 목적이 단지 우리를 저지하는 데서 그치는 거야?”
증평주가 물었다.
변면낭검이라는 자가 혈영마공을 그토록 높은 경지까지 수련했다면…… 일이 년으로는 어림도 없다. 적어도 십 년 이상은 수련해야 그 정도가 된다.
적벽검문은 십 년 전부터 준비해왔다.
무엇을? 혈루마옥이 중원에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서?
검왕이 검성을 떠나서 본격적으로 마공을 수련한 것은 겨우 이삼 년에 불과하다.
시간 차이가 난다.
이자들, 적벽검문…… 본문이 멸문까지 당하면서 무엇을 노리는 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