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26화 (126/225)

# 126

第二十六章 흑천(黑天) (1)

대어(大魚)를 잡고자 하는 사람은 투망을 사용하지 않는다.

큰 고기는 얕은 물에 살지 않는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큰물에서 산다.

큰 고기가 사는 바다에서도 진정한 대어를 잡고자 한다면 그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진정한 큰 고기는 오직 하나, 작살로 잡아야 한다.

세상에는 그물로 잡을 수 없는 큰 고기…… 눈으로 보고 작살로 잡을 수밖에 없는 큰 고기가 있다.

큰 고기를 잡고자 하는 사람은 작은 고기에 관심이 없다.

낚시로 잡고, 투망으로 잡고, 작살을 톡 찔러서 잡는 정도의 물고기에는 흥미가 없다.

작살을 준비한 어부는 큰 바다로 나가고자 한다.

사박! 사박! 사박!

여인들이 풀잎을 지르밟으며 걷는다.

풀잎들이 보드랍고 가벼운 발길 밑에 숨을 죽인다. 저항하지 못하고 곱게 몸을 눕힌다.

퍽퍽! 퍽! 퍽!

굉장히 둔탁한 소리가 들려온다. 토끼로 나무를 찍어내는 듯 날카로우면서도 둔중한 울림이다.

“우! 굉장하네요.”

여인 중에 한 명이 말했다.

“좋지?”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서요.”

“호호호!”

가장 뒤에서 따라오던 여인이 맑게 웃었다.

앞서서 걷는 네 여인,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여유 있게 따라오는 한 여인.

퍽! 퍽퍽!

그녀들은 나무패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녀들은 건장한 사내를 봤다.

허리까지 늘어진 흑발을 질끈 묶고, 소매 없는 가죽옷을 입어서 우람한 팔 근육이 한눈에 들어온다.

상반신은 크고, 허리를 잘록하고, 다리는 굵다.

쉭! 퍽!

도끼가 휘둘러지자, 아름드리 큰 나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린다.

사박! 사박!

여인들은 그를 향해 걸어갔다.

사내도 여인들의 발걸음소리를 들었을 게다. 굳이 소리를 죽이지 않았으니까.

허나 사내는 돌아보지 않는다.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도끼를 들어 올려 힘껏 나무를 찍는다.

쉬잇! 퍼억!

아름드리나무가 또 한 차례 요동을 쳤다.

스읏! 슷!

네 여인이 검을 뽑았다.

여인들은 제형(梯形)을 유지했다. 사다리를 눕혀 놓았을 때처럼…… 두 여인이 초부(樵夫)의 좌우측으로 갈라섰고, 다른 두 여인은 등 뒤에서 일 장 간격을 벌리고 섰다.

그녀들이 검을 들어 올렸다.

나무를 찍던 초부는 여전히 그녀들을 보지 않았다. 주변에 늘어선 여인들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는 듯 도끼를 위로 쳐들었다. 그리고 힘껏 내리찍었다.

퍽! 우둑! 우직! 우지지직! 꽈앙!

아름드리나무가 기어이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나무는 쓰러지면서 주변에 있는 작은 나무들을 강하게 훑었다. 잔가지를 부러트렸다. 그리고는 불곰 쓰러지듯이 땅에 떨어지면서 요동을 쳤다.

초부는 그제야 뒤돌아서며 네 여인을 마주했다. 순간!

“검왕!”

“거, 검왕? 검왕이!”

네 여인은 검을 들고 마주 섰다는 사실도 망각한 듯 크게 놀라서 소리쳤다.

나무를 쓰러트리고 뒤돌아선 자, 초부…… 검왕이다.

“호오! 이거 놀라운데? 죽지 않았나? 아니면 검왕이 둘인가?”

가장 뒤에서 여유 있게 따라오던 여인이 역시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앞으로 나섰다.

“검왕은 죽었다.”

초부가 냉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슨 소리? 이렇게 살아있잖아?”

“흑천초부(黑天樵夫). 이게 나다.”

“알아. 흑천초부를 만나러 왔거든. 헌데 이렇게 검왕이 서 있네? 어떻게 된 거지?”

“단순하게 생각해라. 흑천초부를 만나러 왔으면 흑천초부만 만나라. 아무 상관 없는 검왕을 들먹이지 말고.”

여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큰 도끼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은 분명히 검왕이다. 헌데 자신이 흑천초부란다.

흑천초부는 숨겨진 사람이다.

무림은 흑천초부를 알지 못한다.

무림에서 흑천초부를 찾고자 한다면 백 년을 뒤져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혈루마옥은 흑천초부를 안다.

그는 단신으로 혈루마옥을 찾아왔고, 차례로 네 명을 쓰러트린 후에 유유히 돌아갔다.

그에게 쓰러진 사람 중에는 애월(涯月)이라는 여자가 있다.

증평주가 수월화와 함께 가장 아끼던 애제자다.

흑천초부는 애월을 쓰러트리고 돌아갔다.

증평주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만질 수 있었던 것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애월의 시신뿐이었다.

흑천초부는 혈루마옥도 무시하지 못할 초고수다.

혈루마옥은 죽은 사람들의 사인을 분석하여 흑천초부의 무공 연원을 찾아냈다.

흑천초부는 흑천(黑天)의 무공을 사용한다.

사실 그는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다. 별호가 무엇인지도 말하지 않았다. 무조건 혈루마옥을 찾아와서 도끼를 쳐들었고, 가로막는 사람들을 찍어버렸다.

그는 사람을 찍는 살인초부다.

그러다가 죽은 사람들의 몸에서 흑천의 무공을 찾아냈고, 그 후부터 흑천초부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흑천!

밝음은 어둠의 부재(不在)다.

세상을 구성하는 본연의 성질은 어둠이다. 등불이라든가, 태양이라든가…… 빛을 토해내는 물질이 어둠을 밀어내지 않는 한, 어둠은 영원하다.

무림이 광명(光明)인가?

무림은 무공이라는 물질을 가져와서 억지로 어둠을 밀어냈다. 허니 무공이라는 물질만 제거하면 세상은 다시 어둠에 묻힌다. 어둠의 성질을 다시 찾는다.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놓자.

흑천은 이런 이상(理想)을 기치로 내세우고 출범했다.

무림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무림을 지탱하는 모든 무공들을 파해하기 위해서, 무림인들을 척살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흑천은 당연히 마(魔)다.

그리고 무림은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강하고 두터워서 쉽게 깨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림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그들이 무너졌다.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다만 그들이 지녔던 가공할 마학만은 뿌리를 남겨두었다. 마공관이라는 곳에.

흑천초부는 마공관에서 무학을 수련한 게 틀림없다.

혈루마옥이 마공관을 주목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다. 그전에는 마공관이라는 존재를 알았어도 크게 중요시하지 않았다. 마공이 강하다고 한들 중원 무림에 꺾인 무공이지 않던가.

중원 무림조차 견뎌내지 못하는 무공으로 무엇을 할까.

헌데 아니다. 흑천초부의 등장은 매우 신선했고, 크게 주목해도 이상하지 않다. 특히, 애월까지 무너졌다는 대목에서는 눈이 크게 뜨여질 수밖에 없다.

그자, 흑천초부를 찾아왔다.

헌데 도끼를 들고 선 자는 검왕이다. 수월화에게 죽은 검왕이 흑천초부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끄덕!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호! 검왕이든 흑천초부든.”

검을 겨눈 여인들이 흑천초부를 향해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흑천초부는 그녀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먼 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여인…… 증평주를 쳐다봤다. 그녀의 두 눈을 주시했다.

파팟! 팟!

눈빛과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친다. 불통을 튀긴다.

쒜에엑! 쒜엑!

왼쪽에서 첫 번째 검이 터졌다. 동시에 다른 세 곳도 번갯불처럼 움직였다.

꽈르르릉!

흑천초부가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휘저었다.

“물러섯!”

뒤에서 지켜보던 여인이 아주 급하게 소리쳤다.

도끼가 검광을 잠식한다. 어둠이 빛을 잠재운다. 검광이 스러지면서 원래부터 존재했던 어둠이 밀려든다.

꽈직!

제일 먼저 검광을 쏘아냈던 여인이 힘없이 무너졌다.

붉은빛이 사방으로 번져 올랐다. 여인은 쓰러지고, 빨간 피는 사방으로 튄다.

스읏! 꽈직!

여인을 가르고 나온 도끼가 다른 검광을 잠식했다.

검이 부러진다. 여인의 손목이 잘려나가고, 몸 한가운데 도끼가 틀어박힌다. 아니, 어느새 붉은 피를 만들어낸다. 붉은 피를 머금은 도끼가 뒤로 물러선다.

장내는 조용해졌다.

증평주의 사위(四衛)는 무공이 매우 강하다. 수월화나 애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오화에 비길 수도 없지만 혈루마옥 사내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런 여인들이 단숨에 두 명이나 무너졌다.

“흑…… 천!”

증평주의 입에서 신음처럼 두 마디가 새어 나왔다.

휘릭! 휘릭!

흑천초부는 주위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태연히 도끼를 휘둘러서 도끼에 묻은 핏물을 털어냈다.

스릉!

증평주가 검을 뽑았다.

흑천초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필 이때, 수월화가 오화를 이끌고 누강을 잡으러 간 것도 우연이 아니다. 모두 계획된 것이다.

증평의 모든 시선이 누강을 향한다.

증평 사람들조차도 증평주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그녀가 흑천초부를 잡으러 갈 때도 당연히 죽이고 오겠지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지금 이 상황, 흑천초부가 만들었다.

‘이자, 검왕이다.’

그녀는 흑천초부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았다. 흑천초부는 흑천초부이자 검왕이다.

수월화에게 죽은 검왕은 누구인가?

그자 역시 의심할 수 없는 검왕이다. 검왕이 아니라면 혈영마공을 그토록 지고하게 펼쳐낼 수 없다. 거기에 적벽검문의 검공까지 완벽했다.

똑같은 검왕이 둘인 셈이다.

그렇다고 정말로 검왕이 둘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 자, 혹은 먼저 죽은 검왕…… 둘 중에 한 명은 가짜다.

증평주는 수월화에게 죽은 검왕이 가짜라고 단정했다.

허면 검왕은 왜 이런 수고를 한 것일까? 지금 검왕의 무공을 보면 충분히 수월화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분격(分擊). 음!’

증평주의 안생이 음울해졌다.

흑천초부는 죽으려고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들을 유인했고, 충분히 눕힐 자신이 있는 게다.

증평주를 상대할 자신이 있다!

이 자리는 불운이 가득하다. 살아 돌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흑천초부가 피를 보기로 작심했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만약 이 싸움 끝에 그녀가 죽게 된다면…… 증평주가 죽는다면…… 그녀의 죽음은 행방불명으로 처리될 공산이 매우 크다.

모두들 알고 있는 것처럼…… 중원 무림에는 아직도 증평주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흑천초부는 한 명, 한 명 처리할 심산이다.

두 명은 상대할 수 없지만 한 명은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단순히 생각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혈루마옥 전체를 상대할 심산…… 무주공산이라고 생각한 중원이거늘.’

스읏!

그녀는 암울한 눈으로 화혈역심공을 일으켰다.

얼굴색이 새빨갛게 변한다. 물구나무를 선 사람처럼 얼굴에 피가 몰린다.

화혈역심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내들은 아무리 화혈역심공을 사용해도 역혈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여인만 역혈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사내들은 진실한 화혈역심공을 알지 못한다.

툭!

그녀는 검격을 부러트렸다.

걸림쇠 없이 싸우는 것은 방패 없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만큼 무게를 줄일 수 있고, 무게가 줄어든 만큼 검속도 빨라진다. 물론 검격의 무게를 속도로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극초의 다툼을 하는 경우에 해당하겠지만.

스읏!

흑천초부 역시 도끼를 들어 올렸다.

정중앙으로…… 하늘 높이 천중으로…… 순간, 태양이 도끼에 가려진다. 세상에 빛이 사라지고 오직 어둠만 존재한다. 흑천초부의 모습이 새카맣게 보인다.

애월이 이 수에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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