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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五章 은검(隱劍) (5)
그들 주위로 여섯 명이 나타났다.
일전에 만난 여자와 생면부지, 본 적이 없는 다섯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숨이 콱 막힌다.
그들은 저들 중에서 한 명도 감당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안다.
십절소악, 누강 그리고 촉 없는 화살을 맞고 나가떨어진 음사까지 힘을 합쳐도 여인 한 명을 감당하지 못한다.
생면부지 여인들이지만 그 정도는 짐작한다.
암습, 황수…… 마공관의 독공이 아니라 세상을 무너트릴 만한 화약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자신이 없다. 저 여자들을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은자가 은밀히 건네준 열두 개의 황수를 유효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최후의 경우, 은자가 도와줄 것이다.
은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 주위에 있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보고 있을 게다.
결국은 은자가 도와준다.
하지만 그 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은자가 황수를 건네준 목적도 일단 최선을 다해보라는 말이지 않겠는가.
하기는…… 아무리 은자라도 혼자서 이들 여섯 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무리다.
십절소악이 말했다.
“둘까지는 버겁고…… 하나씩만 맡자. 하나라도 어떻게 해봐야 체면이 서지.”
사화와 오화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웃을 생각은 없었고…… 서 있는 두 사람을 보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십절소악과 누강은 무섭게 긴장하고 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긴장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들 눈에는 긴장이 보인다. 너무 뚜렷하게 보여서 보지 않을 수 없다.
저들의 긴장은 투지로 이어진다.
최후의 발악이 아니다. 활로를 열어놓은 투지, 반드시 살고야 말겠다는 작심이 보인다.
포기가 아니라 투쟁이다.
그녀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투쟁심을 발휘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과 싸워봤지만 승부의 축이 기울어진 다음에는 거의 대부분 포기했다.
지금은 승부의 축이 기울이진 정도가 아니다. 아예 축이 부러져 버렸다.
저들은 어떤 발악을 해도 살아날 수 없다.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은 현 상황을 읽었을 텐데, 그런데도 투쟁심을 드러낸다.
싸울만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녀들은 십절소악의 의기를 꺾어버렸다.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음사를 처리했다. 저들이 자신만만하게 여기는 근원, 황수를 시작도 하기 전에 잠재워버렸다.
누구라도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이 들기 마련이다.
저들은 아니다.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투쟁심이 이글거린다. 그리고 그것이 육신에서 소록소록 피어난다. 긴장이라는 이름으로 안개처럼 퍼진다.
황수가, 혹은 비슷한 기물이 또 있다.
긴장감은 십절소악과 누강이 동시에 드러낸다. 그들만 그런 게 아니다. 이미 화살을 맞고 심한 내상을 입은 음사마저도 은밀히 긴장감을 피워낸다.
음사도 이번 싸움에 가세할 생각이다.
무엇이 있어서 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가? 음사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무기는 땅에 떨어져 있는데.
죽은 자도 일으켜 세울 만한 기물이 있다.
그녀들은 그런 점까지 짐작해냈다. 그리고 저들의 행동이 가소로워서 웃음을 흘렸다.
“삶아진 닭은 먹어줘야 맛이지.”
쒜에엑!
사화가 득달같이 치달렸다.
오화가 마주 치달렸다. 사화와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누강을 노리고 치달렸다.
동시에 움직인 사람들이 있다. 이화, 삼화!
번쩍!
그들의 신형은 그야말로 한 마리 비조 같았다.
하늘로 솟구친다. 두 팔을 활짝 벌려서 날개를 만들고, 어느새 뽑아든 검은 날카로운 발톱이 되어서 내리꽂힌다.
“뭐야! 두 명씩 달려드는 거야!”
누강의 안색이 해쓱하게 변했다.
“이런 바보! 하늘! 하늘을 봐!”
십절소악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누강은 득달같이 달려오는 사화와 오화를 주시하고 있다. 특히, 자신을 노리고 달려드는 오화를 주시한다.
잘못된 판단이다.
사화와 오화가 먼저 움직이기는 했지만 정작 위험은 하늘에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두 여자, 그들이 자신들을 노리고 달려드는 진짜 살검이다.
저 여자들…… 허수(虛手)까지 쓰는가? 하수를 상대로 너무 심하지 않나.
“하앗!”
누강이 득달같이 달려오는 오화를 무시했다. 두 눈은 하늘에 떠 있는 삼화에게 고정되었다. 그가 뽑아든 검에서 적벽검문의 검공이 뻗어 나갔다.
쒜레레렉!
허공을 찢어발기는 파공음이 터졌다.
누강의 무공은 약하지 않다. 검성에서 대주 노릇을 톡톡히 한 사람이다. 적벽검문의 무공도 약하지 않다. 무림에서 최강의 문파로 인정받은 곳이다.
허나…… 그런 무공도 여인들의 빠름 앞에서는 한없이 느리기만 했다.
팟!
검격(劒擊)도 없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이 곧바로 누강을 향해 흘러간다. 순간,
푸아악!
갑자기 누강이 검을 양손으로 잡아갔다. 아니, 왼손으로 오른손을 떠받드는 듯…… 그런 갑자기 투명한 물방울이 하늘을 뒤덮는다. 비가 쏟아진다.
“황수!”
파라라라락!
삼화가 검을 풍차처럼 휘두르며 뒤로 물러섰다.
비는 세 군데서 쏟아졌다.
누강이 제일 먼저 비를 내렸고, 이어서 십절소악과 음사가 비를 쏟아냈다.
이름은 황수라고 하지만 투명한 물방울이다.
팟! 투투툭! 치지지지직!
황수는 땅에 떨어지면서 초목을 태웠다. 하늘을 비산하며 거치적거리는 것을 모두 태웠다.
한순간, 주변은 온천처럼 들끓어 올랐다.
“황수!”
뒤에서 지켜보던 수월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그녀들 앞에 펼쳐진 황수는 대단히 많은 양이다. 한 방울로 황소도 쓰러트린다는 독액을 항아리째로 쏟아 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독액으로도 공격하던 여인들을 상하게 하지는 못했다.
그녀들의 반응은 신속했다. 무엇인가 낯선 것이 어른거린다 싶은 순간, 재빨리 몸을 빼냈다.
그녀들은 세 사람에게 기물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 짐작이 없었던들…… 그녀들은 심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가 내리자마자 곧바로 물러설 수 있었다.
“제길!”
십절소악이 투덜거렸다.
그들은 각기 흑죽 두 개씩을 사용했다. 은자가 건네준 것이 네 개이니 벌써 절반을 사용한 셈이다.
그것도 매우 민첩하게 사용했다.
여인들이 도저히 피하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시점에서, 자신들 역시 일검을 맞을 각오로…… 최후의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일시에 흑죽 두 개를 터트렸다.
헌데도 여인들은 몸을 빼냈다.
세 사람은 절호의 기회를 잃었다.
그들에게 흑죽 두 개가 남아있지만 방금 전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저들은 더욱 주의를 기울일 게다.
기습을 가했어도 피해를 입히지 못했는데, 주의를 기울인 상태에서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무슨 피해를 입히겠는가.
“안 되는군.”
누강도 맥이 빠지는지 축 처진 음성으로 말했다.
“아직 한 수가 있긴 있지.”
십절소악이 누강 곁으로 바싹 붙어섰다.
“야! 웬만큼 버틸 수 있으면 일어나.”
음사는 벌써 말이 떨어지기 전에 벌써 일어서고 있었다.
그도 십절소악의 뜻을 안다. 그가 말한 마지막 한 수가 어떤 것인지 안다.
“아! 아프네.”
그가 가슴을 부여잡고 등을 기댔다.
세 사람은 서로 등을 마주한 채 사방을 노려봤다. 손에는 흑죽 두 개씩을 들고.
“저것들…… 황수를 자기 몸에 뿌릴 생각이네요.”
“…….”
수월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매우 급박하다. 그녀들이 공격하면 저들 세 명을 필사로 치닫는다.
자, 이제 나와라!
그녀는 주위를 돌아봤다. 주위 어딘가에 있을 날수통을 찾았다. 이제 그가 나올 차례이지 않은가.
그녀의 감각에 걸려드는 사람은 없었다.
‘있어야 하는데!’
날수통은 전에도 발견하지 못했다.
비수를 날려왔는데, 그가 있는 곳을 찾아내기까지 했는데, 목덜미는 낚아채지 못했다.
지금도 날수통은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
“화살을 쏴.”
“그럴 필요까지…….”
“두 다리를 쏴. 세 명 모두. 다리를 쏘고, 어깨뼈를 부러트리고. 황수를 쓰지 못하게 해.”
“그거야 어렵지 않은데.”
“해.”
그녀는 짤막하게 말했다.
‘나와야 할 거야. 오래 숨어있지 못해!’
쒜에엑! 쒜에엑! ?
화살이 날아왔다. 정확하게 허벅지를 노리고.
“이것들이!”
쒜엑! 까앙!
십절소악은 화살을 퉁겨냈다. 하지만 누강과 음사는 옅은 신음을 흘렸다.
“당했냐?”
“빠르군요.”
“병신들.”
십절소악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방금 전에 날아온 화살은 먼저 음사를 노렸던 화살만큼 빠르지 않않다. 화살의 강도도 훨씬 약하다.
수월화의 궁술이 한 수 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막아내지 못했다.
화살이 겨눠진다. 그 모습을 본다. 화살 끝이 노리는 부분을 본다. 어디를 겨냥하는지 안다. 그리고 쏘아진다.
탁! 파락! 까앙!
이번에도 십절소악은 화살을 퉁겨냈다. 그러나 음사와 누강은 또다시 옅은 신음을 흘렸다.
등에서 심한 격동이 일어난다.
등을 맞대고 있는 누강과 음사가 간신히 버티고 서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야! 이것들아! 이걸 쓸 기회는 줘야 할 것 아냐!”
십절소악이 흑죽을 흔들면서 고함쳤다.
여인들이 다시 활에 화살을 재웠다.
누강이 쓰러졌다. 음사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들은 흑죽을 놓쳤다. 다리를 맞을 때까지는 억지로 부여잡고 있었지만 어깨를 격중당한 후에는 검조차 쥐지 못했다. 하물며 흑죽이야.
“으으…….”
누강이 움직여지지 않는 손을 움직이려고 발악했다.
흑죽을 잡아야 해!
멀리서도 그의 의지가 읽혔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다.
원래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저 여자들 중에 한 명도 상대하기 버거웠다.
“이익!”
“애쓰지 마라.”
십절소악이 손을 축 늘어트리며 말했다.
그는 간신히 버텨냈다. 화살 열 자루를 퉁겨냈다. 반대로 말하면 누강과 음사는 화살 열 대를 맞았다.
움직일 수가 없는 몸들이다.
여자들은 십절소악을 봐주고 있다. 만약 누강을 쐈던 여인이 십절소악의 등을 노렸다면 그것까지 막아내지는 못했을 게다. 앞에서 날아오는 것도 막기 힘든 참이니.
수월화가 활을 들면 더욱 곤경에 빠진다.
졌다.
털썩!
십절소악이 땅에 엉덩이를 붙이고 주저앉았다.
그들 세 사람은 다시 등을 맞대는 형국이 되었다. 두 사람이 움직일 수 없는 처지라는 것만 제외하고는.
그때, 수월화가 말했다.
“끝내야겠어. 미간.”
순간, 다른 여인들이 그녀를 쳐다봤다.
수월화가 냉랭한 눈으로 말했다.
“미간을 쏴. 화살 한 대로 끝내버리게. 움직이면 땀만 나잖아.”
“정말 끝내요? 누강은?”
“필요 없어. 끝내.”
수월화의 말이 너무도 단호하기 때문에 오화는 말을 붙일 수 없었다.
세 여인이 활에 화살을 재웠다. 그리고 각기 세 사람의 미간을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