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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五章 은검(隱劍) (4)
길을 가다가 돈을 주우면 기분이 어떨까? 말할 것도 없이 좋을 것이다. 길을 가다가 금을 주우면 어떨까? 하늘을 훨훨 날아가는 기분일 게다.
그러나 마냥 기분 좋을 수만은 없는 횡재도 있다.
“이…… 게……?”
십절소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건!”
음사도 땅에 떨어진 물건을 알아봤다.
길이는 한 뼘, 굵기는 손가락 정도 되는 앙증맞은 대나무 조각이 땅에 떨어져 있다.
문제는 대나무가 흑죽(黑竹)이라는 거다.
거기에 한쪽 끝 부분에 깨알만 한 걸쇠도 있다.
“저거 황수(黃水) 맞죠?”
음사가 누강에게 물었다.
누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흑죽은 황수를 담고 있다. 한 방울로 코끼리도 죽인다는 독중독을 담고 있다.
황수는 너무 독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그릇을 녹여버린다.
사기그릇에 담으면 당장 검게 변색된다. 뿐만 아니라 지독한 연무를 뿜어낸다.
철그릇도 마찬가지다. 색이 변색되면서 연무가 피어난다.
황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없다.
황수가 어떤 독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누런 물방울이 튀어나오면 온 세상이 단숨에 중독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저 황수라고만 부른다.
흑죽은 황수를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릇이다.
황수는 나무도 단숨에 썩여버린다. 대나무는 물론이고 단단한 참나무도 순식간에 녹여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대나무에 황수를 담으려면 아주 특별한 손질을 가해야 한다.
황수를 만들어 낸 자가 누구인가.
황수를 담을 수 있는 흑죽을 만들어 낸 자가 누구인가.
흑수도살(黑水屠殺) 살광(殺狂).
혹자는 흑수도살이라고 불렀고 혹자는 살광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냥 도살자라고만 불렀다.
도살자, 살인에 미친 놈.
소문에 의하면 남만에서 흘러온 자라고도 하고, 사천당문의 이단아라고 하는데…… 어디 출신인지는 모르지만 독에 대한 조예만은 단연 탁월했다.
물론 그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백여 년 전에 죽은 거마일 뿐이다.
설마 중원 무림이 그런 살인귀를 내버려두겠는가.
무림은 그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그가 지니고 있던 모든 암기와 황수를 태워버렸다.
하지만 그의 진산비기는 남겼다.
비록 살인귀이기는 하지만 그의 독공은 현세의 독공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지고한 것이었다.
아무도 손댈 수 없고, 볼 수도 없고, 세상에 종말이 올 때나 한 번쯤 참고하라고 남겨둔 곳…… 마공관 깊숙한 곳에 이중삼중 보안장치를 해서 묻어놨다.
그런 물건이 그들 앞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너희, 할 말 없냐?”
십절소악이 누강과 음사를 보며 말했다.
누강과 음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들은 마공관을 지켰던 책임자이다. 마공관의 마서가 누구에게도 흘러 들어가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마공관이 폭파되려는 마지막 순간에 검왕이 지켜주지 않았던가.
그 후, 많은 마인들이 마공관을 들락거렸다. 허나 그들 중 그 누구도 마서를 얻지는 못했다.
마공관의 마서와 관련된 사람은 오직 한 명, 검왕뿐이다.
검왕이 정말 살았나? 그럴 리 있나. 누강이 직접 검왕을 땅에 묻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누강은 자신 있게 검왕이 죽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검왕은 확실히 죽었는데……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은 마공관의 마기들이지 않는가.
날수통에 이어서 황수라니.
“흐흠! 이유가 어쨌든 쓰라고 남긴 듯하니.”
십절소악이 조심스럽게 흑죽을 집어 들었다.
“이거 어떻게 쓰는지 아냐?”
“그냥 끝에 있는 걸쇠를 누르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 정도야 나도 생각해, 바보야!”
십절소악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과거, 도살자는 흑죽으로 많은 묘기를 부렸다. 그냥 걸쇠만 누르면 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흑죽을 통해서 황수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기도 하고, 안개처럼 흩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일직선으로 쭉 뻗어 나간 경우도 있다.
분명히 흑죽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을 게다.
‘이걸 쓰는 방법이 있을 텐데…….’
십절소악은 흑죽을 들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뜸 음사에게 건넸다.
“네가 가지고 있어라.”
“네? 그냥 선배님이 가지고 계시지.”
“이거 쓰는 방법을 모르잖아. 우리가 사용한다면 최대한 기습적으로 쓰는 게 효율적일 텐데, 우리 중에서 기습에 가장 능한 놈이 너잖냐.”
“크?! 그런가요?”
“가지고 있다가 기습할 때 써.”
“알겠습니다!”
음사가 거절하지 않고 대뜸 받아들었다.
누가 도살자의 살인병기를 마다할 것인가. 그가 흑죽을 지녔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대뜸 초절정고수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이 흑죽을 가진 일은 비밀이 되지 못했다.
‘저건! 혹시…… 황수?’
십절소악이 흑죽을 집어 들 때,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중평오화 중에 오화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한 걸음 앞서 왔다.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자가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 않은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서 놈들의 정황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그녀가 누강 일행을 잡아챘을 때, 마침 그때 십절소악이 검은 물체를 집어 들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이 하는 말도 들었다.
황수!
십절소악이 음사에게 건네준 흑죽이 전설 속의 바로 그 마기라면 공격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저놈부터 잡아야 돼!’
흑죽을 거머쥐고 있는 음사가 제일 먼저 공격할 대상자가 된다.
놈을 제압해서 황수를 쓰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애꿎은 희생자가 나올 수 있다.
황수는 순간적으로 전개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할 수 있는 재간이 있다면 모르겠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당한다.
어쨌든 저들에게 황수가 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다.
스으읏!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러갔다.
“황수?”
“틀림없어요.”
“날수통에 이어서 황수라…… 호호호! 마공관의 마기들이 줄줄이 모습을 보이고 있네?”
“검왕이…….”
그녀는 검왕이 살아있는 게 아니냐는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하지 못했다. 검왕을 죽인 당사자가 바로 수월화다. 눈앞에 있는 여자이며, 혈루마옥에서도 가장 손속이 잔인한 사람이다.
그녀가 실패했을 리 없다.
“머리를 베어내는 건데.”
수월화가 아쉬운 듯 말했다.
검왕이 죽었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계속해서 드러나는 정황은 검왕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검왕은 절대 살아있을 수 없다.
검왕이 살아있다면 중평의 모든 무학은 거짓이 된다.
손에 익은 감각, 살을 베는 감각, 죽음을 맞닥트리는 모든 감각이 거짓이 된다.
놈이 살아있을 리 없다. 분명히 죽음을 맛봤다.
그런데 계속 개운치가 않다. 뭔가 끈적끈적한 손 같은 것이 뒷덜미를 끌어당기는 기분이다.
그때 검왕의 머리를 잘라버렸다면 이런 기분조차도 남지 않았을 것을.
그녀가 말했다.
“예정대로 해. 너희 둘이면 누강과 음사를 잡는 데는 충분할 거야. 음사가 황수를 가졌다고 해도…… 그걸 쓰게 될 일은 없을 거야. 믿어도 되지?”
사화가 대답했다.
“호호호! 믿으세요.”
길을 걷다가 금덩이를 우연히 주우면 횡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금덩이를 무더기로 줍게 되면 그때부터는 횡재가 아니라 불안해진다.
흑죽을 또 발견했다.
이번에는 한 개가 아니라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적어도 십여 개는 될 것 같다.
“뭐하는 거지?”
이 모든 것이 날수통을 가진 자가 행하는 것일 게다.
그들은 은자의 의도를 알지 못했다. 흑죽을 줄 것 같으면 한 번에 줬어도 되는데.
“어쨌든 우리에겐 강력한 무기가 생겼군요.”
누강이 망설임 없이 흑죽을 주웠다.
“모두 열두 개입니다. 네 개씩 가지면 되겠네요.”
누강은 흑죽 네 개를 집어서 품에 찔러넣고, 나머지는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한 개를 먼저 주고 열두 개를 나중에 준다. 후후후!”
십절소악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공격을 하는 데 있어서 계산 착오처럼 큰 실책은 없다. 적의 힘을 일로 봤는데 막상 부딪쳐 보니 십이더라면…… 아주 큰 희생을 치러야 한다.
만약 먼저 흑죽을 건네준 것이 계산된 것이라면…… 그 모습을 누군가가 지켜봤다면…… 저들은 아주 잘못된 계산법에 따라서 공격해 올 것이다.
이런 싸움은 질 수가 없다.
“최대한 기다려라.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고 생각할 때까지 기다렸다고 써. 흐흐흐!”
십절소악이 음충맞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 그 정도는 저도 헤아립니다. 흐흐!”
음사도 음충맞게 웃었다.
탁!
“캑!”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음사가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이런 썅!”
십절소악이 버럭 욕을 내질렀다.
그들은 저들이 설마 활을 사용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화살이 날아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빠름으로 와락 달려들어서 음사를 꿰뚫어 버렸다.
“괜찮냐!”
누강이 사방을 예리하게 주시하며 음사를 부둥켜안았다.
“이 정도로는 안 죽습니다. 음사 아닙니까.”
음사가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입으로 꾸역꾸역 피를 토해내는 모습이 심한 중상을 입은 것 같다.
“다행히 죽일 생각은 없는 것 같군.”
누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저들에게 살의가 있었다면 음사는 단박에 절명했을 게다.
화살을 심장을 꿰뚫었다. 아니, 타격했다. 만약 화살에 촉이 붙어 있었다면 정말로 심장이 뚫렸을 게다.
촉이 없는 화살을 썼다는 것은 제압만 하겠다는 뜻이다.
음사는 그 정도에도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기혈이 뒤틀리는 내상을 입어서 운신이 힘들다.
“누워 있어라.”
누강이 음사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끄윽!”
음사가 신음을 흘리면서 흑죽을 꺼내 들었다.
예정된 계산이 있다. 만약 짐작이 맞다면 저들은 음사가 황수를 가졌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니 어떻게든 황수를 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때,
탁! 쒜엑! 타악!
또다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김없이 화살이 날아왔다.
“큭!”
음사는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역시 촉 없는 화살이 날아와 견정혈(肩井穴)을 타격했다.
음사는 흑죽을 놓쳐버렸다. 화살 한 대에 왼팔이 마비되어서 흑죽을 들고 있을 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데구르르!
흑죽이 힘없이 굴러간다.
“으음!”
십절소악과 누강은 굴러가는 흑죽을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 주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만약 줍고자 한다면 어김없이 화살이 날아올 터이다.
어디서 누가 쏘는 화살인가?
그들은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를 두 번이나 들었지만 화살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화살은 벼락만큼이나 빨랐다.
이런 빠름은 단순한 기술에서 나오지 않는다. 강력한 내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수월화 그 여자야.’
‘맞다. 그 여자가 아니면 이런 화살을 날릴 사람이 없어.’
십절소악과 누강은 상대를 짐작해냈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그들은 품에 흑죽을 네 개씩이나 품고 있다. 언제든 기습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적어도 방원 십 장 정도는 초토화시킬 수 있다.
저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저들은 계산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게다.
“누구냐! 흐흐흐! 어떤 귀신들인지 꼴이나 보자. 흐흐!”
십절소악이 검을 꺼내 들며 음충맞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