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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120화 (120/225)

# 120

第二十四章 사중몽(死中夢) (5)

하오문은 지극히 치밀하게 움직인다. 마음만 먹으면 하늘도 속일 수 있다고 한다.

하오문은 동원하는 인력이 많다.

즉,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서 조력하는 손들이 많다는 뜻이며, 이는 그 일을 아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니다. 하오문이 하는 일에 조력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일이 어떤 일인지 아는 사람은 오직 일을 총괄하는 행수(行首)뿐이다.

어떤 일을 하고는 있는데 그 일이 어떤 일인지 알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하오문의 모든 행동은 점(點)으로 끊긴다.

정자 위에 누워있던 자들은 매우 단순한 명령을 받았다. 이전에 있었던 일이나 이후에 벌어질 일을 전혀 모른 채 오직 누워있기만 하라고 했다.

완벽한 점이다.

지금 현재 움직이고 있는 당사자들을 잡아채지 못하는 한, 그들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알 길은 없어진다.

“킥킥! 킥킥킥!”

십절소악이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불청객이 나타났다.

그들은 인적이 끊긴 길을 힘들게 찾아가는 중이었다. 한 걸음 내딛고, 앞 한 번 살피고…… 길이 수풀로 덮여버린 곳에서 용케도 길을 찾았다.

두 발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가파른 산등성이를 기어올랐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을 칡넝쿨에 의지해서 내려간 적도 있다.

그들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도 들어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산속, 악마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런 곳에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나무꾼도, 약초꾼도, 엽사도…… 산이 너무 깊고 험해서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이 나타났다. 건장한 사내도 아니다. 몸이 가냘픈 여인이다. 깊은 산에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화복을 입었고, 금으로 된 비녀까지 꽂고 있다.

여인은 그들이 오는 모습을 빤히 지켜봤다.

“일행입니까?”

음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여인의 모습이…… 마치 누강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보였기 때문이다.

“킥킥! 킥킥킥!”

십절소악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일행이 아니다!’

누강과 음사는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십절소악이 그들에게 대꾸를 할 겨를도 없을 정도로 긴장한다. 불청객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고수……다!’

누강과 음사는 좀처럼 굳어진 몸을 풀지 못했다.

십절소악은 하오문 십대 고수 중에 한 명이다. 오직 무(武)만을 추구하는 무인으로, 하오문의 호위신장 역할을 담당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여인과 견주어보면 약해 보인다.

“어서 와요.”

여인이 반가운 듯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킥킥!”

스릉!

십절소악은 키득거리면서 검을 뽑았다.

이 길을 가는 동안에 만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누구를 만나게 된다는 통보를 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느닷없이 나타난 이 여자는 적이다.

“말을 들었을 때는 믿지 않았는데…… 정말 꼬마 아이처럼 보이네요? 피부도 여리고, 눈동자도 맑고. 주안술을 수련한 거예요, 아니면 병이에요?”

“킥킥킥킥!”

여인은 십절소악이 가장 싫어하는 말을 태연하게 늘어놓았다. 하지만 십절소악은 여느 때처럼 쉽게 흥분하지 않았다. 여인이 말하면 말할수록 그는 더더욱 차게 굳어갔다.

여인은 십절소악의 반응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듯 무신경하게 말했다.

“오늘 희한한 사람을 봤으니까…… 그 기념으로 놓아줄게요. 저 두 사람만 놓고 가요.”

여인이 누강과 음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희 두 놈, 뭐냐?”

십절소악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얼거렸다.

누강과 음사에게 묻는 말이기는 했지만 꼭 대답을 들으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들인데…… 네놈들을 가로채려는 작자들이 왜 이리 많아.”

“혈루마옥 사람입니다.”

누강이 여인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안다. 증평이겠지. 증평주나 수월화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도 세군.”

“그 두 사람은 확실히 아닙니다.”

“이것들이 너희 두 놈을 원하는 이유가 뭐야?”

“하오문이 원하는 이유와 같지 않겠습니까?”

사실은 누강도 음사도 자신들이 왜 이 일의 중심에 휘말렸는지 알지 못한다.

어쩌다보니 하오문이 따라붙었다. 어쩌다보니 뒤따르는 미행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느닷없이 혈루마옥 고수가 나타나 자신들을 내놓으란다.

이 일의 선후를 어찌 짐작하겠는가.

“어쨌든 내 일은 네놈들을 데리고 가는 일…… 중간에 뺏긴데서야 체면이 안 서지.”

십절소악이 검을 중단으로 들어올렸다.

“싸우려고?”

스슷! 스스슷!

십절소악은 여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빠르게 앞으로 지쳐나갔다.

그가 움직인다 싶었다. 헌데 어느새 여인의 면전에서 검을 쳐내고 있다. 무섭도록 빠른 쾌검으로 여인을 횡으로 가른다. 몸을 절반으로 쪼갤 기세다.

쒜에에엑!

검에서 검풍이 일었다. 검이 먼저 지나가고 소리가 나중에야 흘러나왔다. 헌데,

턱!

여인이 쓱 앞으로 나오며 손을 들어올렸다.

십절소악은 눈을 부릅떴다.

검은 들고 있는 손…… 그 손이 여인에게 잡혔다. 여인이 애검의 손잡이를 같이 잡고 있다. 더군다나 여인의 내력이 어찌나 강한지 손을 움직일 수가 없다.

압도적이다.

“이, 이게……!”

십절소악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눈만 부릅떴다.

“쯧! 살려주려고 했는데.”

여인이 옥수(玉手)를 쳐들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옥수는 칼끝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강철처럼 단단하게 느껴졌다.

모두 십절소악의 죽음을 예감했다.

여인은 관수(貫手)로 십절소악의 배를 뚫을 것이다. 십절소악은 방어할 힘이 없다. 그의 모든 힘은 검을 잡은 손에 집중되어 있다. 여인과 내력싸움을 하고 있다. 한 순간이라도 정신을 놓는다면 그 즉시 그의 애검이 몸을 가를 것이다.

그를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누강과 음사뿐이다.

쒜엑! 쒜에엑!

누강과 음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움직였다.

이심전심이다. 십절소악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지만 혈루마옥에서 나온 여자보다는 낫다. 하오문은 적이 아니라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혈루마옥은 완벽한 적이다. 그들은 적벽검문을 멸문시켰고, 검왕을 죽였다.

십절소악을 구해야 한다.

물론 그들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도 한순간에 이루어질 죽음은 막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라고 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휘몰아쳤다.

혈루마옥 여인에게 끌려갈 수는 없다.

혈루마옥이 왜 자신들을 원하는지 모르지만, 무조건 좋지 않을 것 같다. 헌데!

“훅!”

갑자기 여인이 짧은 헛바람을 내지르며 뒤로 쭈욱 물러섰다.

“누구냐!”

여인이 주위를 돌아보며 고함쳤다.

그 사이에 십절소악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진기를 재운용하며, 호흡을 골랐다.

“뭡니까?”

옆으로 다가온 누강이 물었다.

십절소악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겨를이 없는 듯 했다. 그 역시 여인과 마찬가지로 주위를 샅샅이 훑어보면서 누군가를 찾았다.

‘누가 있구나!’

누강과 음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이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그들 눈에 보일 리 없다.

“누구냐!”

여인이 더욱 세차게 고함쳤다. 아니, 고함을 치면서 십절소악을 향해 쾌속하게 달려들었다. 순간!

퍽!

“욱!”

단검이 나무에 꽂히는 듯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여인의 애절한 신음도 들렸다.

여인이 주르륵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허벅지는 손잡이 없는 단검 날이 틀어박혀 있었다.

화복 위로 붉은 선혈이 흘러내린다. 새빨간 피가 분홍빛 화복을 물들인다.

“하아!”

여인이 탄식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신형을 솟구쳐 사라져갔다.

“뉘신지 고맙소.”

십절소악이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포권지례를 취해보였다.

허나 대답이 없다. 단검날의 주인은 여인에게 침묵했듯이 십절소악에게도 침묵한다.

그 후로 십절소악은 말을 잊었다.

저벅! 저벅!

십절소악이 길을 헤쳐나가고, 누강과 음사가 묵묵히 뒤따른다.

혈루마옥의 여인이나 십절소악이나 당금 무림의 최고수들임에는 틀림없다. 헌데…… 그들은 단검날의 주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들 싸움판에 가세했는데도.

문득, 십절소악이 걸음을 멈췄다.

그는 하늘을 쳐다봤다. 한동안…… 눈만 끔뻑이면서 하늘을 뚫어지게 쏘아봤다. 그러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손잡이 없는 날…… 쇠붙이…… 손으로 날린 게 아니다. 기병(奇兵)! 날수통(辣手筒)으로 쏜 거야.”

십절소악이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그가 누강과 음사를 쏘아보면서 말한다.

“날수미려(辣手美麗).”

“음!”

누강은 낮게 침음했다. 음사는 날수미려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가늘게 떨었다.

“미려독루(美麗毒漏)!”

“독루마인(毒漏馬印).”

누강이 십절소악의 말을 받았다.

날수미려, 미려독루, 독루마인이라는 말은 한 사람을 지칭한다.

날수통을 들고 천하를 헤집고 다니면서 일명 마인이라고 불리는 혈인(血印)을 이마에 찍고 다닌 여자.

날수통은 손잡이 없는 단검날을 눈으로 식별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쏘아낸다.

상대방은 날수통에서 하얀 빛을 볼 뿐이다.

허면 어느새 그의 이마에 단검날이 박혀 있다. 붉은 혈인이 쿡 찍힌다.

독랄한 여자, 날수마선(辣手魔嬋).

날수마선이 일으킨 파바람은 치를 떨게 할 정도로 거셌다.

피는 강이 되어 흘렀고, 시신은 산이 되어 쌓였다. 비명소리는 천둥소리가 되어 세상을 내리쳤다.

날수마선은 피에 굶주린 악마다.

당연한 일이지만, 날수마선의 무공과 병기제작법은 인세에 나타나서는 안 될 마서로 지정되어 마공관에 소장되었다. 원래는 태워버렸어야 할 마서였지만, 그 위력이 너무도 절륜하여 차마 없애지 못한 것이다.

지금 그것이 나타났다.

“검왕이 살아있는 거야?”

십절소악의 눈은 불신으로 흔들렸다.

“그,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누강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십절소악이 묻기 전에 그 자신이 먼저 자기 자신에게 되물어보았다.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날수마선의 무공을 누가 알고 있을까?

마공관의 무공을 훔쳐본 사람만이 알고 있을 터인데, 현재는 오직 검왕만이 본 것으로 되어 있지 않은가.

마공관의 마서는 세상에 흘러나오지 않았다.

귀선부의 이령이 마공관에 들이닥쳤을 때, 쌍첨수괴 도군악이 마공관을 휩쓸 때…… 마공관을 해체하기 위해 폭약까지 설치했을 때…… 그때도 마공관은 무사했다.

마공관이 해체된 정황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검왕이 어떻게 해서 마공관의 마서를 수련하게 됐는지도 의문이다.

그 일은 몇 번을 고쳐서 생각해도 불가사의하다. 정말로.

그런데 검왕이 죽고 없는 지금, 마공관의 무학이 또 나타났다. 날수통이 나타났다.

“음! 너도 모르는 일이군.”

십절소악이 누강의 표정에서 자초지종을 읽었다.

“어떻게 된 게…… 마공관의 무학이 혈루마옥을 능가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데……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이군.”

십절소악이 인상을 찡그렸다.

혈루마옥의 여인이 자신을 제압한 것은 놀랍지 않다. 그녀는 그의 무공을 환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초식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알고 있는 것을 방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환히 알고 있는 공격을 역습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문제는…… 어떻게 알고 있었냐는 거다. 행수밖에 모르는 자신들의 이동로를 정확하게 찾아온 것도 그렇고.

십절소악에게는 날수마선의 무공이 나타난 것보다 여인과 조우한 일이 더 큰 일이었다. 물론 날수마선의 무공이 한층 더 강화되어서 나타난 것도 머리를 아프게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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