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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118화 (118/225)

# 118

第二十四章 사중몽(死中夢) (3)

그들은 아무런 기대도 없이 정자에 올랐다.

음사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 체 무작정 뒤쫓기만 했고, 누강은 나름대로 정자를 찾은 이유가 있었지만 추측이 정확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정자에 올랐다가 잠시 땀 좀 식히고 길을 떠나면 그만이다.

하오문이 왜 이 일에 끼어들었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의 밀마를 제대로 해독하지 못한 이상, 더 할 것은 없다.

“올라가면 경치 하나는 끝내줄 것 같은데요.”

“그렇겠군.”

“이런 데서는 술 한 잔 곁들여야 제맛인데.”

음사가 누강을 따라 계단을 오르며 중얼거렸다.

헌데, 정자에 오른 누강과 음사는 잠시 흠칫했다.

정자에는 먼저 온 손님이 있다. 그들은 정자에 반드시 누워 천장을 쳐다보고 있다.

두 사람의 눈길을 또 다른 것도 보았다.

두 사람이 누워있는 사이에 사람 한 명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휑하니 뚫려 있다.

정자 한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좌우에 두 사람이 누워있으니…… 더욱 놀라운 것은 누워있는 두 사람의 체형이나 복색이 누강, 음사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누강과 음사는 이 사람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정말 경치 하나는 끝내주네.”

정자에 오른 음사가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사방을 둘러보며 기지개를 활짝 켰다.

누강은 묵묵히 경치를 즐겼다.

누가 보더라도 정자에 올라서 주변을 구경하는 모습이다.

두 사람은 정자에 누워있는 두 사람을 보지 못한 척했다. 물론 누워있는 두 사람도 누강과 음사를 보았지만 입도 벙긋하지 않고 누워있기만 했다.

“아이고, 다리도 아픈데…… 술은 없더라도 좀 쉬었다 갈까요?”

누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자에 앉았다. 음사도 털썩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앉았다.

“정말 경치가 좋긴 하네. 헌데……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인간인지라…… 히히! 좀 쉬었다가 가죠?”

음사는 대답도 듣지 않고 벌렁 누워버렸다.

누강은 눕지 않고 경치만 보았다. 이미 누워버린 음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슷! 슷!

음사가 눕자마자 음사와 같은 체형의 사내가 재빨리 자리바꿈을 했다. 그리고 구덩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음사는 구덩이 밑을 쳐다봤다.

강둑을 걸어오면서 질리게 보았던 수풀들만 무성하다. 배가 있다거나, 사람이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다. 그저 밑으로 뛰어내려서 수풀 속에 몸을 숨기는 방법이 최선이다.

‘뭐야?’

음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들의 수작이 매우 이상하지 않은가.

정자는 멀리서도 환히 보인다. 높은 곳에 세워져서 돌로 만든 다리 네 개가 뚜렷하게 보인다. 만약 구멍을 통해서 몸을 던지면 밑으로 뚝 떨어지는 모습이 명확하게 관찰될 게다.

미행자를 피할 요량이라면 매우 어리석은 방법이다.

‘여기서 뭘 하라는 거지?’

누워있는 자들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알 필요도 없다. 누강이 가자고 했으니 왔다. 이곳에 와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럼 당연히 믿고 행동해야 한다.

그는 이곳으로 뛰어내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다만 이렇게 뛰어내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할 뿐.

“음!”

누강이 옅은 신음을 흘리면서 두 팔을 등 뒤로 짚었다.

그가 발한 신음은 멀리서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혹시나 해서 흘려낸다.

잠시 후, 누강도 몸을 뉘었다.

스슷!

누강은 눕자마자 쾌속하게 움직여서 그와 닮은 자와 자리바꿈을 했다. 원래 누워있던 두 사람이 바깥으로 밀려나고, 그들이 안쪽으로 누웠다.

누강은 자리바꿈을 하자마자 뻥 뚫린 구멍을 봤다. 그리고 음사가 그랬던 것처럼 미간을 찡그렸다.

그도 음사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망설일 이유가 없다. 사실, 누가 미행을 하고 있는지조차 확인이 되지 않은 상황이지 않은가.

쉿!

누강이 먼저 뛰어내렸다.

‘은잠사(銀蠶絲)!’

누강과 음사는 경악성을 흘리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은잠사는 지극히 투명해서 속이 환히 보인다. 그러나 도검이 불침할 정도로 질기고 강해서 장수들이 속옷으로 지어서 갑옷 안에 받쳐 입고는 한다.

문제는 은잠사의 가격이다.

누에 천만 마리당 겨우 한 줄을 얻을 수 있다는 은잠사이다 보니 그 가격이 부르는 게 값이다. 비단 같은 것은 곁에 서지도 못할 정도로 비싸다.

누강과 음사가 뛰어내린 곳…… 그곳에 은잠사가 둘러쳐져 있다.

정자 위에서부터 수풀까지…… 사방으로 둘러쳐져 있다. 다만 은잠사가 너무 투명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누강과 음사는 그 사이로 뛰어내렸다.

여기서 하나 더……은잠사의 효능 중에 탁월한 부분이 드러난다.

은잠사는 투명에서 속을 환히 비치지만, 빠르게 이동하면 잠시 시야를 가려주는 효과가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안에서 빠르게 움직이면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효과 때문에 은자(隱者)들이 가장 소망하는 부속물 중에 하나가 바로 은잠사다.

즉, 누강과 음사가 뛰어내린 속도는 매우 빨라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슥!

바닥도 푹신한 이불처럼 밑으로 쑥 꺼졌다.

그들은 바닥에 떨어졌지만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떨어지는 소리도 흘리지 않았고.

누강이 이제 막 꼬아놓은 듯한 새 밧줄을 발견했다.

누강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새 밧줄을 잡았다. 그러자,

스으으으으읏!

그의 몸이 기름 위를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빨려 나간다.

음사는 재빨리 누강의 다리를 잡았다. 누강이 잡은 밧줄 외에 다른 밧줄은 없었으니까.

누강과 음사는 쪽배에 올라탔다.

넓은 수풀을 소리 없이 이동해서 버드나무처럼 가느다란 배에 올라타기까지는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스륵!

쪽배는 그들이 타자마자 움직였다.

물론 쪽배를 움직이는 사람은 있다. 버드나무처럼 날렵하게 생긴 배의 뱃머리에 작은 사내가 앉아있다.

보통 배들은 후미에서 노를 젓는데, 쪽배는 뱃머리에서 젓는다.

그도 두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무엇을 하라, 몸을 숙여라, 말을 하지 마라 등등 어떤 주의도 주지 않았다.

스르르르륵!

배가 물 위를 조용히, 그리고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아함!”

정자 위에서 음사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선다.

그는 정자를 어슬렁거린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어떤 생각을 골똘하게 한다.

“푹 쉬지.”

누강도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이 누워있을 때는 정자 난간에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몸을 일으키니 영락없이 누강과 음사가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

‘이놈들, 우릴 꽤 오래전부터 지켜봤어!’

음사는 사공의 뒷등을 쏘아봤다.

정자 위에 있는 음사를 봤을 때…… 체형이며, 입고 있는 옷이며, 말투, 행동거지까지 아주 흡사하다.

가까이서 지켜보면 분명히 다른데, 멀리서 보니 똑같다.

음사뿐만이 아니다. 누강도 똑같다.

만약 음사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멀리서 봤다면 누강인 줄 알고 단숨에 달려갔을 게다.

이런 상황은 하루이틀 만에 만들어 낼 수 없다.

스륵!

한참을, 아니 아주 빠른 속도로 짧은 거리를 이동한 쪽배가 수풀 사이로 슬그머니 숨어들었다.

사공은 배를 숨긴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누강과 음사도 숨죽였다.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그때!

파앗! 팟!

정자가 있던 곳에서 두 가닥 신형이 화살처럼 솟구쳤다.

그들은 매우 빨랐다. 모습을 보인다 싶은 순간, 어느새 정자 위로 올라섰다.

아악! 컥!

정자 위에서 짤막한 비명 두 마디가 울렸다. 그리고 누강과 음사 역할을 했던 자들이 힘없이 떨어졌다.

‘윽!’

음사는 눈만 부릅떴다.

누강도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눈을 부릅뜬 채 정자 위를 주시했다.

정말로 미행이 있었구나. 미행하는 자가…… 그것도 바로 뒤에 바짝 붙어서.

팟! 팟!

정자 위에 있던 자들이 이수의 수풀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사방을 헤집고 다니며 누강이 사라졌음 직한 곳을 뒤져나갔다. 허나 이미 종적은 말끔히 지워진 후였다. 은잠사도 없고, 두 사람을 끌어당겼던 밧줄도 없고, 두 사람이 질질 끌려가면서 만들어 놓았던 흔적도 없다.

아주 짧은 시간에 흔적을 완벽하게 지웠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수풀을 뒤지던 자 중에 한 명이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스륵!

쪽배가 다시 움직였다.

사공이 배를 숨긴 지 꼬박 반나절이 지난 후이다.

사방은 이미 어둠이 덮인 지 오래다. 시간이 밤을 질주하여 술시(戌時)쯤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그 시간까지 사공은 꼼짝하지 않았다.

‘이제 안전한가 보네요?’

음사가 눈으로 말했다.

누강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를 미행하던 자들을 보지 않았던가. 그들이 수풀을 뒤지는 모습, 신법을 보지 않았는가. 빛처럼 빠른 몸놀림을.

그들과 손속을 마주하면 일초지적도 되지 않는다.

누강이 그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은 매우 당연하다. 그들이 술 먹고 비틀거리지 않는 이상은 발견할 도리가 없다. 그토록 강한 자들이 뒤쫓는 데야.

누강은 사공의 조심성이 십분 이해되었다.

스르르르르륵!

배는 거의 삼십여 리를 미끄러진 후에야 멈춰 섰다.

밤이 지나고 동녘이 밝아온다. 시뻘건 태양이 온 누리를 태워버릴 듯 붉게 물들인다.

스읏!

쪽배가 땅에 닿았다.

사공은 먼저 내려서 두 손 모아 읍했다.

누강과 음사는 사공의 모습을 보고 하선하라는 뜻임을 알았다. 사공이 더 이상 같이 행동하지 않을 것도.

사실, 그에게 물을 필요도 없다. 두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서 한 사람이 대기 중이다.

그는 어린아이다.

이제 열두어 살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아주 치기 어린 꼬마가 새벽에 강가까지 나왔다.

“끼끼! 고놈들…….”

꼬마 아이가 두 사람에게 한 첫 마디다. 그러나 누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공의 인사도 보지 못했다. 치기 어린 어린아이만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간신이 입을 열어 한 마디 했다.

“십, 십절소(十節小)…….”

그는 십절소악(十節小惡)이라는 명호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말은 하지 못했다. 십절소악이라는 명호는 눈앞에 있는 꼬마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니까.

“놀랬냐?”

“네.”

“검성 대주라는 놈이 그까짓 놈들을 보고 놀래? 오늘날 검성이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널 보니 알겠다.”

“…….”

“왜? 내 말에 불만 있냐?”

“없습니다.”

“있는 표정인데?”

“정말 없습니다.”

십절소악과 누강은 이런 대화를 나눴다.

꼬마는 누강에게 하대를 했고, 누강은 꼬박꼬박 존대를 했다.

꼬마는 열두어 살 밖에 되어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육십이 넘은 거마(巨魔)다.

그는 하오문이라는 문파에 적을 두고 있다. 성품은 사악하지만 하오문의 명령에는 절대 복종한다. 그래서 마(魔)의 굴레에 갇혀있지는 않다.

사실, 십절소악은 마와 정의 경계선상에 있는 자다.

왼쪽으로 살짝 움직이면 마인이요, 오른쪽으로 발끝만 비틀면 정인이 된다.

그는 마인이나 하오문은 마도를 추구하지 않으니 마인다운 행동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 자가 누강을 마중 나온 것이다.

하오문이 오늘 이 일을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짜식들…… 얼굴이 샛노랗게 질려가지고는. 그래서 어디 무림 밥을 얻어 먹겠냐?”

십절소악은 길을 가는 내내 누강과 음사의 비위를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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