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17화 (117/225)

# 117

第二十四章 사중몽(死中夢) (2)

포졸 열 명이 도둑 한 명을 못 막는다.

감시하는 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감시 능력이 물샐 틈 없어도,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다고 천만 번 자신하는 상황에서도…… 하고자 하면 도둑질은 일어난다.

‘이건!’

누강은 뜻밖의 밀마(密碼)를 봤다.

길을 걷다가 점심 요기를 하고자 국숫집에 들렀다.

멸치 국물에 삶은 국수 한 덩이와 간장 한 수저를 뿌려주는 간단한 국숫집인데…….

탁!

희멀건한 국수 한 그릇이 탁자에 놓이는 순간 점소이의 실수인지 저금 하나가 그릇에서 튕겨 나와 탁자에 떨어졌다.

저금이 탁자에 떨어진 것…… 그것 자체는 밀마가 될 수 없다. 하지만 특정 집단의 특정 행동인 것만은 분명하다. 세상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점소이가 급히 말했다.

“앗! 죄송!”

‘세 마디.’

누강은 점소이를 흘낏 쳐다봤다.

점소이는 떨어진 저금을 급히 집어 들어 국수 그릇에 쑥 찔러 넣었다.

누가 봐도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다.

여기서 감시의 틈이 벌어진다.

감시자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바로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해도…… 탁자에 떨어진 젓가락이 의미하는 바와 점소이가 말한 바를 알지 못하는 한 눈뜬장님이 되어 버린다.

음사가 그렇다. 그는 누강과 한자리에 앉아있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혀 알지 못한다.

“야! 젓가락 새로 가져와.”

음사가 누강 앞에 놓인 국수 그릇에서 저금을 빼내 탁자 위에 놓으며 말했다.

“거참 먼지도 묻지 않았는데 그냥 드시지.”

“이놈이!”

“새로 가져오면 될 것 아뇨!”

점소이가 한 대 쥐어박힐까봐 냉큼 물러갔다.

“우선 제 것으로 드시죠.”

음사가 누강의 국수 그릇에 자신의 저금을 꽂아 넣었다.

누강은 고개만 끄덕일 뿐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술은 안 하세요? 이 년 묵은 술이 있는데.”

“네놈 면상을 보니 이 년은커녕 이틀도 안 묵었겠다.”

“하! 요즘 술도 속이는 사람이 있나?”

“있잖아. 네놈.”

새 저금을 가져온 점소이가 입을 삐죽 내밀고 사라졌다.

“국물 더 드려요? 국물은 공짠데.”

“이놈이…… 너 오늘 몸이 근질거리냐? 왜 일없이 자꾸 얼쩡거려?”

“더 드린다고 해도 난리야.”

“국수나 더 가져와.”

“국수는 돈 내야 해요. 국물만 공짜예요.”

“알았다. 알았어. 그럼 국물 한 그릇 더 내와.”

“히히! 이럴 줄 알았어. 그저 공짜라니까.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니까.”

“하! 저놈이!”

“킥킥!”

점소이가 키득거리면서 사라졌다.

국수 값은 동전 이 문씩 모두 네 문이다.

“말 상대한 값은 안 줘요? 한 명당 한 문씩 두 문. 히! 농담. 이런 것도 줄 사람에게 달래야 하는 거예요. 맞죠?”

“너, 그러다 맞으면 덜 아프냐?”

“괜히 농담한 것 가지고 화내셔.”

점소이는 철없이 치근덕거렸다.

누강은 방향을 틀었다.

“이쪽은……?”

음사가 의문을 표하려고 했지만 누강의 딱딱한 얼굴을 보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누강의 왼쪽 입꼬리가 위로 비틀려 올라가 있다.

아무 소리 하지 말고 묵묵히 뒤따라와라. 내가 하는 일에 토 달지 말고 따라와라.

누강이 검성 대주로 있을 때, 수하들에게 암암리에 표시하던 신체 언어다.

적을 앞에 두고는 입을 열지 못할 때가 있다. 적을 속여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이 사전에 상의한 것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즉석에서 돌출된 것이라면 암묵적인 관계가 필요하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그들만의 언어다.

아무 일도 없이,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길만 걸어왔다. 검왕의 무덤을 떠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길 가는 사람과 옷소매조차도 부딪치지 않았다.

국수를 먹기 전, 누강은 여전히 우울했다.

검왕이 남긴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가슴이 텅 비고, 육신이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누강은 생기를 잃었다.

입꼬리가 올라갈 만한 어떤 일도 없었다.

‘그놈!’

음사는 직감적으로 길가 음식점의 점소이를 떠올렸다.

점소이가 농을 건네는 일은 매우 흔하다. 어떻게든 손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갖은 재롱을 다 떤다. 반말 비슷하게 말하는 말 습관도 친해지기 위한 수단이다.

점소이는 이상하지 않았다.

‘아냐. 그놈이 맞아.’

누강이 국수를 먹고 난 다음부터 바뀌었다. 입꼬리를 비트는 일이 벌어졌다. 아니, 그때부터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때 이후에도 내내 우울해 했으니까.

국수를 먹던 순간부터 지금 현재까지…… 이 안에 어떤 일이 벌어졌다.

“여기로 가면 강이 나오는데요. 뱃멀미도 잘하시면서…… 돌아가시는 게?”

스읏!

누강의 입꼬리가 더욱 짙어졌다.

확실하다. 누강은 아무 소리 말고, 자신을 믿고 무조건 따라오라고 한다.

그다음부터 음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처럼 묵묵히 누강의 뒤만 쫓았다. 누강이 말로 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렸기 때문에, 그도 뒤를 돌아본다거나 주위를 훑어보는 것 같은 어리숙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묵묵히 뒤만 쫓는다.

점소이는 세 번의 행동으로 장소 한 곳을 말해주었다.

첫 번째 말한 ‘앗! 죄송’은 세 마디를 하겠다는 뜻이다.

접촉 일 회에 한 마디씩 말할 것이니, 모두 세 번 접촉하겠다는 뜻이다.

점소이는 첫 번째 접촉에서 이 년 묵은 술을 권했다.

여기서 점소이는 이(二)라는 글자를 말했다. 묵은 술은 일반적으로 진양(陳釀)이라고 하는데, 이 글자는 따로 떼어놓으면 어색하다. 그러려면 묵다는 말과 술[酒]이라는 말로 분리해야 하는데 술을 의미하는 글자가 바뀐다. 또 오래 묵은 술이라는 말로 노주(老酒)를 즐겨 쓰는 사람도 있다.

오래 묵은 술이라는 말은 한 글자를 유추해내기 어렵다.

명확한 글자, 이(二)다.

두 번째 접촉에서 점소이는 국물을 강조했다.

수(水)…… 첫 번째 글자와 합치면 이수(二水)인데, 묘하게도 근처에 이수(理洙)라는 강이 있다.

세 번째 접촉에서 점소이는 ‘말상대한 값으로 한 명당 한 문씩 네 문을 달라’고 말했다.

누강은 이 말의 뜻을 알지 못한다.

그가 하오문(下午門)의 밀마를 알게 된 것은 검성 대주로 있을 적에 하오문과 연합하여 공동으로 추살(追殺)을 시행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주 지엽적으로 일부분만 배웠다.

점소이는 세 마디를 했지만, 그는 두 마디밖에 해독하지 못했다.

왜 한 명당 일문씩 네 문을 달라고 했을까? 그 말 중에 점소이가 말하고자 하는 한 마디는 무엇일까? 사(四)라는 숫자일까, 동전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두 명을 강조하는 것일까?

마지막 글자를 해독하지 못했지만 점소이에게 더 물을 수는 없다.

두 번째로……누강은 이번 접촉에서 누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하오문은 잡초 같은 문파다.

뿌리가 깊어서 보이는 것만 제거하면 제초가 되지 않는다. 땅에서 땅으로 뿌리를 연결하여 매우 폭넓은 지역을 차지한다.

낫으로 풀을 베어내면 베어준다.

뿌리를 캐내면 캐어준다.

그러나 잡초는 여전히 무성하다. 잠시만 주인이 한눈을 팔면 온 전답을 잡초투성이로 만들어 버린다.

하오문의 생명력은 이 끈질김에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암리에 이어가는 질긴 생명력.

그들은 보이는 눈보다 보이지 않는 눈이 더 많다. 무공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만 보는 게 아니다. 방금 전에 만났던 점소이처럼 무공을 전혀 모르는 자조차도 본다.

무인이 감시한다면 눈치라도 채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까지 알아챌 수는 없다.

하오문의 무서운 점은 여기서 나온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사람들이 보고, 말하고, 행동한다. 추격하고, 숨겨준다.

점소이는 이런 사람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 자가 지극히 은밀하게,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마를 사용해왔다.

밀마를 전달하는 솜씨도 매우 신중했다.

뒤를 쫓는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나 취할 행동들이 점소이에게서 튀어나왔다.

누강은 하오문을 안다. 아주 약간이나마 안다.

하오문이라고 해서 늘 밀마만 사용하는 게 아니다. 그럴 필요가 없을 때는 평상시대로 말한다. 매우 편하게.

점소이가 주의를 기울여서 말한다는 것은 누군가 뒤쫓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자신들은 감지하지 못했지만 하오문의 보이지 않는 눈들이 찾아냈다는 뜻이다.

하오문의 판단이 맞을 게다.

‘어떤 놈이 따라붙었어!’

지금은 단순한 직감에 불과하지만…… 앞으로도 미행자를 찾아낼 가능성은 없지만…… 틀림없이 미행자가 있다는 가정하에 움직여야 할 게다.

‘어떤 놈이 따라붙었나?’

그는 점소이에게 즉각 묻고 싶었다. 허나 물을 수 없다. 물을 수 있어도 물어서는 안 된다. 상대가 먼저 말하기 전에 묻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보이지 않는 눈들은 매우 큰 약점이 있다.

신분이 노출되면 즉각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하오문도라고 해서 다 죽는 일은 없겠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에 적이라면 죽일 수 있다. 뒤쫓는 자들이라면 분풀이를 하기 위해서라도 제거할 수 있다. 큰 득은 되지 않겠지만.

하오문도의 신분이 노출될 수 있는 행동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한 명당 두 문, 모두 네 문. 이 중에 답이 있을 텐데. 이수 어디로 가라는 말일 텐데. 글자 하나가 장소를 말하고 있는데…… 이수에 관련된 글자라.’

누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숙제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이수라는 강은 말이 강이지 작은 개천에 불과하다.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이라고 해봐야 겨우 무릎 정도밖에 차지 않는다.

신발에 물을 묻히지 싫은 사람들은 다리로 건너면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신을 벗고 첨벙첨벙 걸어도 무방하다. 그것조차도 몇 걸음 되지 않지만.

하지만 이 강이 여름철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상류에서 쏟아지는 거센 물줄기가 강둑 최대 높이까지 넘실거린다.

수심은 삼 장을 넘고, 폭은 백여 장을 훌쩍 넘는 너른 강이 되어 버린다.

누강은 가뭄의 강을 만났다.

강물이 있어야 할 곳에는 잡초들만 무성하다.

모래와 뻘이 뒤섞인 강바닥은 물이 있는 곳까지 갈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든다.

이수에 도착하자 누강의 숙제는 확 풀렸다.

점소이가 말하고자 한 글자는 사(四)다.

이수에 도착하자 정자 하나가 유독 뚜렷하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강둑에 세워진 정자인데…… 강둑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정자를 지탱하는 다리 네 개가 한 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황량한 곳에 붉은 칠을 해놓은 탓도 있지만.

어쨌든 이수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정자, 그중에서도 네 개의 다리에 눈길이 꽂힌다.

‘저곳인데.’

그는 강둑을 따라 걸었다.

‘다리를 안 건넙니까?’

음사는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 눌러 참았다.

그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사전에 약조라도 된 듯이 행동해야 한다.

누강이 걸어가는 곳, 정자가 있다.

“저기서 쉬어갈까요?”

“그러지.”

“이런 곳이 있을 줄 알았으면 술이라도 한 병 받아가지고 올 걸 그랬습니다.”

“그러게.”

“지금이라도 휭하니 달려갔다 올까요?”

“됐어. 잠시 땀이나 식히고 가지.”

누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이런 말들이 누군가에게 들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말들을 주고받다 보면 그들의 걸음걸이가 매우 자연스러워진다.

혹여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팔자 좋은 인간들이라고 말할 게다.

정자에는 아무도 없다.

정자 주변에도 누가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누강이 밀마를 잘못 해석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밀마 자체가 없었던 것이거나.

괜히 누강이 하오문 밀마라고 오해한 것일 수도 있고.

누강과 음사는 주거니 받거니 농을 늘어놓으며 정자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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