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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114화 (114/225)

# 114

第二十三章 인화시(引火柴) (4)

세 번째 힘[力]!

실체를 파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힘은 현재 움직이고 있는 두 가닥의 힘을 월등히 능가할 게 분명하다.

아직 그 힘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중원 무림은 그 힘을 주목했다. 주시했다. 은밀히 관찰하면서 경거망동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혈루마옥을 절곡에 가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이상한 금제를 받고 태어난 까닭에 절곡을 벗어나지 못했을 뿐이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혈루마옥 사람들은 자신들을 가둔 게 중원 무림이라고 생각한다. 중원 무림 역시 혈루마옥 사람들이 절곡에서 벗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혈루마옥은 자신들이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는 중원 무림이 싫은 것이고, 중원 무림은 혈루마옥이 일으킬 변화가 싫은 것이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서로를 의식해 왔던 만큼 그에 대한 대비책도 강구해 놓은 상태다.

중원 무림은 세 번째 힘을 지켜본다.

그 힘이 어느 정도로 강한지, 파괴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지켜봐야 한다.

물론 혈루마옥이 일으키는 변화도 지켜본다.

그들이 중원 무림을 적으로 돌려세웠다면 전격적으로 반격을 기해야 하겠지만, 단순한 무공 충돌이라면 제지할 방법이 없다. 적으로 간주할 근거가 없다.

아니, 아니,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약자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무림공적으로 선포한다는 말은 중원 무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적을 공격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정도와 마도를 불문하고 공동의 적부터 공격하자는 것이다.

헌데 혈루마옥은 무림연합으로도 공격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혈루마옥에 대한 첫 번째 대비책이 무림연합이었다. 모두 모여서 일격에 공격하자. 하지만 오랜 토론과 확인 검증 끝에 인해전술(人海戰術)과 다름없는 방법으로는 혈루마옥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닭 천 마리가 호랑이 한 마리를 이길 수 없다.

사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이지만, 그래도 세 번째 힘이 언제 움직일 것인지, 어떤 식으로 움직일 것이지 이목을 집중해서 주시했다.

중원 무림은 혈루마옥을 무림공적으로 선포조차 하지 못한 채 지켜보기만 했다.

검왕의 봉분은 초라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야지(野地)에 흙이 조금 도톰하게 솟아있을 뿐이다.

묘석도 없고, 묘비도 없다.

음사가 어디서인가 향 한 자루를 구해와 불을 붙였다.

있는 듯 없는 듯, 냄새가 나는 듯 나지 않는 듯……미약한 향 내음이 잔잔히 퍼져나간다.

누강은 보름째 검왕의 무덤을 지켰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검왕은 무덤에서 튀어나오지 않았다. 묻힌 자리에서 영영 잠들었다.

음사는 말이 없다. 누강도 말이 없다.

아픔에는 세월이 약이라고 했다. 검왕이 죽은 지 보름쯤 지나자 제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갈가리 찢어졌을 것으로 생각했던 마음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마공관으로 가는 게 어떨까요?”

문득, 음사가 말했다.

“마공관?”

“저희가 생활했던 터전이기도 하고…… 사람이 찾아오기 힘든 곳이라 꼴 보기 싫은 사람들 만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당분간 아무 생각 없이 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

누강은 침묵했다.

음사가 한 말 속에는 적벽검문의 몰락도 포함되어 있다.

마공관을 지키지 못한 실책 때문에 검성으로 갈 수 없다. 사문도 몰락해서 갈 곳이 없다. 천하는 넓지만 누강이 갈 곳은 그 어느 곳에도 없다.

“그만 가시죠.”

음사가 길을 재촉했다. 검왕의 무덤만 지키고 있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하늘이 푸르다. 하얀 구름이 흘러간다. 바람은…… 산들산들? 약간 부는 듯 마는 듯하지만 굳이 말한다면 미풍이 부는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풀잎이 진하게 풍긴다.

나무, 바위, 졸졸졸 흐르는 개울…….

어느 곳 한 곳 이상한 구석이 없다. 완벽하게 자연이다. 인위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숨죽였다.

‘으음!’

‘이거야 원…….’

누강이 길을 나서고 있다. 음사가 앞장서서 걷는 중이고 누강이 뒤따른다.

저들은 그들이 말한 대로 마공관을 찾아갈 생각일 게다.

마공관……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 머물 곳은 아니다. 오래 머물려면 사막으로 가야 한다. 누산의 판단은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다.

‘접근할 수가 없어.’

‘간단한 일인 줄 알았는데…… 후후! 이래서 웃으셨구만. 자신 있다고 할 때.’

‘뒤따를까?’

‘아니. 지금 움직이면 발각된다. 나중에. 우선은 기다려야 돼.’

‘음!’

어디에선가 움직임이 시작될 게다. 물론 움직인다는 느낌 같은 것을 던져주지는 않는다. 단지 직감으로 이제 감시하는 눈이 없다고 판단해야 한다.

누강이 점점 멀어져 간다.

그런데도 그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누강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

그 시간, 땅속에서는 정확한 검증이 이루어졌다.

“검왕, 맞군.”

그들이 파낸 시신은 이미 부패가 진행되어서 얼굴 윤곽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확실해?”

“확실해. 후후!”

먼저 말한 자가 시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가슴에는 아주 작고 예리한 상처가 드러나 있다.

일수조사의 흔적이다. 정확하게 심장을 반으로 갈라낸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이만큼 확인했으니 촌장님도 믿으시겠지?”

“글쎄?”

“뭐야, 그 말투는?”

“우리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다고 해도 촌장님은 믿지 않으실걸? 이놈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전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으실 거야.”

“도대체가…… 이놈 죽음은 왜 특별한 거야?”

검왕도 혈루마옥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 중 하나였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검왕 한 사람보다는 유지오혼을 죽인 것이 더 경악스럽다.

비중을 두자면 유지자문을 무너트린 쪽이 훨씬 크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촌장은 유지자문 쪽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오직 검왕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만 궁금해한다.

검왕의 죽음은 확실하다. 직접 두 눈으로 시신이 썩어들어가는 모습까지 살펴봤지 않은가.

“이제 슬슬 가지. 냄새가 너무 독해서.”

한 사내가 코를 움켜잡았다.

검왕의 시신에서 악취가 매우 심하게 풍긴다. 이미 진물이 형성되어서 줄줄 흐르고 있으니까.

사실, 그들이라고 썩어가는 시신을 보고 싶었겠는가.

스슷! 스스스스!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신형을 쏘아냈다.

푹! 푸왓!

흙먼지가 피어나며 두 인형이 땅속에서 솟구쳐 나왔다. 그리고 누강이 걸어간 쪽으로 사라졌다.

‘땅 속에!’

‘이러니 종적을 잡을 수 없었지!’

그들은 단순한 직감에 근거해서 근처에 누군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이 옳았다.

아마도 촌장의 수족일 것이라고 판단되는 자들이 땅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들은 저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물론 저들도 그들을 찾지 못했다. 그들은 저들이 근처에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저들은 아무 눈치도 채지 못하고 누강 뒤만 졸졸 따라간다.

‘대단한 지둔술(地遁術)이다.’

‘이렇게 되면 육안에 의지해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거네. 오로지 직감에 의존해야 해.’

‘가지!’

스스스스! 스스스슷!

그들은 유령처럼 미끄러졌다.

누강이 마공관에 도착하기 전, 저들의 감시로부터 빼내야 한다. 누강과 음사를 누산에게 데리고 가야 한다.

누강과 음사!

도대체 이들이 왜 필요한 것일까?

누강이 적벽검문의 생존자이기 때문일까? 같은 적벽검문 문도라서 차마 버릴 수 없다는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누산은 적벽검문의 몰락을 예견했다. 그러면서도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도움을 줄 처지도 아니었지만.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산은 바람 앞에 등불이다. 혈루마옥이 그를 찾아내기만 하면 여지없이 죽은 목숨이다.

누산에게는 혈루마옥을 대적할 만한 힘이 없다. 그래서 사막으로 도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도 찾지 못하는 미지의 땅을 찾아서.

그럼 마당에 누강을 챙긴다는 것은…….

누강과 음사를 꼭 지금 데려가야 할 이유도 없다. 저들 정도는 중원에 내버려두어도 누가 손대지 않는다. 설마 혈루마옥이 누강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하겠는가.

누강은 아무도 관심을 쏟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가 파악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누강을 데려오라고 하니.

스으읏! 스으으으읏!

그들은 최대한 조용히 뒤를 쫓았다.

음자(陰者)가 음자를 상대하는 방법은 별다를 게 없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딱 한 번 틈이라는 것이 생기면 놓치지 않는 것뿐이다.

“마공관에 마공들이 남아있을까?”

누강이 중얼거렸다.

“어딜요.”

음사가 어림없다는 듯 고개를 내둘렀다.

누강은 마공이라도 수련하고 싶어한다. 지금 처지가…… 비 맞은 참새보다도 처량하니까.

음사는 그 마음을 헤아린다. 하지만 마공관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잡듯이 뒤지고 지나간 후가 아니던가.

“숙부님이 계시던 동굴 말이야. 그곳에 뭐가 있지…….”

누강이 말하다 말고 말을 뚝 그쳤다.

동굴!

음사도 눈빛을 반짝 빛냈다.

누강은 마공관주로 있으면서도 검왕이 동굴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동굴 앞에 절진을 펼쳐놓고, 그 안에 숨어있는데 어떻게 알겠는가.

귀선부 이령이 찾아올 때까지 동굴은 비밀이었다.

검왕이 그곳에서 무엇을 했을까? 설마 마공관의 마서들을 수련한 것일까?

맞다. 거기서 수련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혈영마공이 그토록 능숙할 리 없다.

만약 검왕이 그곳에서 마공을 수련했다면…… 동굴 속에는 검흔(劍痕)들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마공을 수련하면서 남겨놓은 생채기들이 가득 널려 있을 게다.

잘하면 혈영마공의 꼬투리를 잡을 수 있다.

허나 그 생각도 곧 지워버렸다.

“그곳도 이미 많은 작자들이 뒤졌을 것 같은데요. 설마 그곳을 내버려 두었을까요.”

“그렇지?”

누강도 곧 동조했다.

귀선부 이령이 모습을 드러낸 후, 절진은 파괴되었다.

검왕이 머물던 동굴은 입구를 환히 드러냈다. 아무나 들락거릴 수 있을 정도로.

동굴 안은 칠흑같이 어둡다. 빛 한 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소문을 듣고 마서를 찾아왔던 마인들이라면 그곳조차도 샅샅이 뒤졌을 게다. 혹여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고.

지금 생각 같아서는 마공이라도 수련하고 싶은데. 조금이라도 무공을 높이고 싶은데.

음사가 말했다.

“차라리 적벽검문으로 갈 걸 그랬나요?”

음사는 말을 하면서 누강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적벽검문은 멸문하면서 방화까지 일어났다. 적벽검문의 모든 것이 깨끗하게 소실되었다.

음사는 적벽검문에 남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 서고 같은 것이 있는지 묻고 있는 게다.

누강은 한숨만 푹 내쉬었다.

“휴우!”

음사도 한숨을 내쉬었다.

절공은 없다. 마공도 없다. 영약 같은 것으로 내공을 증진시킬 수도 없다.

그들은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마공관을 찾아갈 이유조차도 없었다. 그들이 지금 서 있는 곳에 백날을 서 있다고 한들 누가 와서 시비를 걸 사람조차도 없을 테니까.

그래도 그들은 터벅터벅 걸었다. 마공관을 향해서.

쉬잇! 스스스스스!

음풍(陰風)이 일어난다.

스스스스스스!

음영(陰影)이 움직인다.

누강이나 음사처럼 한가롭게 한담을 주고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전신감각을 최고로 이끌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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