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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110화 (110/225)

# 110

第二十二章 망사(忘死) (5)

쨍!

얇은 사발 그릇이 백 장 절벽 위에서 철판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산산조각 났다.

그들의 만남이 그랬다.

“아!”

“이…… 익!”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육신도 영혼도 백 장 높이에서 떨어진 사발처럼 와스스 깨져버렸다.

한순간, 그들은 우열을 가늠해냈다.

상대할 수 없다!

여인을 보지 않았을 때는 머릿속으로 온갖 구상을 떠올릴 수 있었지만, 막상 면전에서 보고 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텅 빌 뿐이다.

“뭐가…… 이래?”

백화요녀가 중얼거렸다.

백화요녀는 뭇 여인들 중 단연 으뜸이다. 어디에 있어도 오직 그녀만 돋보인다. 미색이 뛰어난 여인들과 함께 섞여 있어도 단번에 그녀를 가리킬 수 있다.

백화(白花) 중에 으뜸이며, 만색(萬色) 중에 제일이다.

그녀가 지닌 무공은 차지하고, 미색만 가지고 논해도 중원을 떨쳐 울릴 여인이다.

그런데…… 그녀가 돋보이지 않는다.

당나귀를 타고 있는 여인과 한 자리에 서있으니 백화요녀는 시들어가는 할미꽃처럼 여겨진다.

“하! 하하!”

흑포로 온몸을 휘감고 있는 흑포사추가 웃음을 흘렸다.

여인에게서는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싸우기 전에 느낌으로 상대를 읽을 수 있는데…….

호랑이와 고양이가 만나고 말았다. 그런 느낌이다.

“십마?”

“…….”

“나와 싸우려고?”

“…….”

“귀찮아. 비켜.”

다각! 다각!

여인이 당나귀를 몰고 온다.

“이익……!”

십조잔괴가 어깨를 들썩였다. 순간,

팟!

한 줄기 시선이 십조잔괴에 꽂혔다.

당나귀를 탄 여인이 십조잔괴를 쳐다본다. 순식간에 복부를 훔쳐보았다.

한 줄기 눈빛…… 그러나 십조잔괴를 그 눈빛을 접한 후, 오금이 저려 버렸다.

‘죽는다!’

싸늘한 한기가 등줄기를 훑었다.

그는 공격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초식을 펼쳐낼 수 있다. 허면 여인은 당연히 반격해 올 것이다. 그녀가 쳐다본 곳, 복부를 쓸어올 것이다.

십조잔괴는 자신이 공격하는 순간부터 배가 갈리는 장면까지 한순간에 훑었다. 어떤 그림들이 머릿속을 두들겨 패듯이 스치며 지나갔다.

그 생각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다각! 다각!

당나귀가 십조잔괴를 지나쳐갔다.

십조잔괴는 끝내 공격하지 못했다. 당나귀가 누린내를 풍기며 지나가는데도 손을 쓰지 못했다.

십조잔괴만 손발이 묶인 게 아니다.

강신천마, 백화요녀, 유계판서, 천살마노, 흑포사추 그리고 어딘가에 숨어있는 비형은잠까지…… 내놓으라 하는 절정고수들이 숨도 쉬지 못했다.

“으……! 죽지도 못했어.”

검왕이 같이 죽자고 했다. 싸우자고 한 것이 아니라 죽으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그들은 기꺼이 응했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강한 자와 싸워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기왕이면 자신을 일초에 죽여줄 수 있는 아주 강력한 자와 만났으면 좋겠다.

혈루마옥? 혈루마옥이 강한 줄은 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강할까?

혈루마옥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그들은 유지오혼에게 패했다.

그 패배는 받아들인다. 유지자문의 무공이 강한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혈루마옥은 유지오혼을 단숨에 무너트렸다. 유지오혼 중에 세 명을 일인이 죽였다.

당연히 그들은 상대가 안 된다.

하지만…… 죽지도 못할 줄은 몰랐다. 병기를 써볼 엄두조차도 내지 못하게 만들 줄은.

“검왕이…… 왜 우리에게 싸우자고 한 거야?”

백화요녀가 중얼거렸다.

검왕은 유지오혼과 함께 행동했다. 혈루마옥에 대해서도 그들보다 잘 안다.

검왕은 지금 이런 상황을 예견했을 게다.

“크크크! 네 자신을 알라.”

유계판서가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말했다.

“뭐라고?”

강신천마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유계판서는 불퉁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듯 싸늘한, 너무 싸늘해서 감정이 죽어버린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한 마디로 십마라고 거들먹거리지 말라는 거지. 일초지적도 안 되는 버러지들이니까.”

“뭐라는 거야?”

“두 눈으로 똑똑히 보라는 거야. 우리가 앞으로 싸워야 할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그럼…… 여기서 저놈들과 싸우자는 게 아냐?”

“싸울 주제나 되나. 후후후!”

유계판서가 자조적인 웃음을 토해냈다.

그들은 싸울 수 있었다. 만약 그들보다 조금이라도 무공이 약한 자들이었다면, 그래서 여인의 무공을 정확하게 보지 못했다면 의기(義氣)를 앞세워 죽었을 게다.

죽는 것은 각오했다! 죽자!

그러나 그들은 강했다. 너무 강해서 여인이 어느 정도나 강한지 똑바로 직시했다.

공격했다면 몰살이다.

십마라는 사람들이, 그것도 우르르 몰려있으면서도 한 여인을 공격하지 못했다.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 오늘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스읏!

잡가기 비형은잠이 신형을 쏘아냈다.

그는 큰 나무 위에 은신해 있었다. 잎이 울창한 나무에 몸을 숨기고…… 그가 움직이자 나뭇잎이 출렁거린다.

그는 나뭇잎을 건드리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 그런 그가 나뭇잎을 건드렸다는 것은…… 그의 마음이 얼마나 급한지를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아!”

유계판서가 탄성을 토해내며 즉시 움직였다. 비형은잠이 쏘아간 곳으로.

다른 자들도 속속 움직였다.

검왕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겠다. 그는 이 싸움을 목격하라고 그들을 불렀다. 두 눈 똑바로 뜨고 혈루마옥의 무공이 얼마나 강한지 뼛속 깊이 각인시켜놓으라고.

“헉! 헉!”

음사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전력을 다해 질주해도 한 시진은 걸릴 거리였다. 거리가 먼 것은 아닌데 워낙 험산인지라 바위가 많다. 신형을 솟구쳐야 할 곳이 많고, 벼랑도 많아서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죽을 힘을 다해서 반 시진 만에 도착했다.

그는 검왕이 말한 곳에 도착하자마자 주위부터 살폈다.

응원군이 있는 것인가? 아니다. 유지오혼이 상대할 수 없고, 십마가 상대할 수 없다면…… 중원에 어떤 사람들이 있어서 검왕을 도울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로 검왕이 숨겨놨을 법한 병기를 찾았다.

대포가 있으려나? 화약 같은 것은?

없다. 아무것도 없다. 그냥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험한 바위들만 즐비하다. 설혹, 검왕이 무엇을 숨겨놨다고 해도 워낙 바위가 많아서 쉽게 찾지 못할 것이다.

그는 급히 밀지를 꺼내 펼쳤다.

밀지에 무엇을 하라고 적혀 있을 것이다. 증평주를 막을 수 있는 비책이…… 비책이?

- 지(止)

밀지에는 딱 한 글자만 적혀 있었다.

멈춰라!

“이게 무슨……?”

음사는 언뜻 밀지의 글귀를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을 하라고 하는 것 같은데, 뭘 하라는 건지. 그리고 어느 순간,

“아!”

음사는 퍼뜩 글귀의 뜻을 이해했다.

멈춰라! 움직이지 말고 멈춰라. 싸움에 가담하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지켜보기만 하라.

검왕은 애초부터 그들을 내칠 생각이었다.

한 시진 거리…… 한 시진 거리를 반 시진으로 좁히려면 잡생각을 떠올릴 겨를이 없다. 오직 한 생각, 앞을 향해서 달리려는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검왕이 건네준 밀지가 의심을 죽였다.

검왕이 어떤 비책을 내려주었다는 생각에 오직 반 시진 안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못 했다.

결국, 그들은 전장을 도망친 꼴이 되었다.

자신도 그렇고, 반대쪽으로 도주한 누강도 그렇고…….

검왕은 그들을 살리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싸움은 죽을 자리가 분명하지 않은가.

숙…… 부…… 님!

멀리서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강도 밀지를 본 모양이다. 돌아갈 수도 없고, 가만히 구경만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목청 돋워서 검왕을 부르는 일일 게다.

“검…… 왕…….”

음사도 망연히 검왕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사박! 사박! 사박!

시녀들이 사인교를 메고 걸어온다.

다각! 다각! 다각!

산정에서는 당나귀를 탄 여인이 서둘지 않고 천천히 내려온다.

검왕은 큰 바위에 앉아서 그녀들을 기다렸다.

그는 혈루마옥의 제일 표적이다.

당금 무림에서 혈루마옥을 상대할 수 있는 무인이나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벽검문이 무너졌다.

유지오혼이 장난감처럼 부서졌다.

그래도 적벽검문은 상당한 희생을 강요했지만 유지오혼은 조그만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혈루마옥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오직 한 명, 검왕뿐이다.

검왕은 화천을 무너트렸다.

검왕이 적벽검문 전체보다도 강한 셈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검왕의 무공은 적벽검문에 연유하지 않는다. 검왕은 마공을 수련했고, 마공으로 혈루마옥 무공들을 제압하고 있다.

검왕의 무공 근원은 마공이다.

검왕 곁에 있는 자들, 십마니 뭐니 하는 자들은 관심이 없다. 오직 목표, 검왕만 쓰러트릴 생각이다.

저들의 생각이 환히 읽힌다.

사박! 사박!

시녀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거리는 아직도 멀다. 아주 가깝게 다가왔지만 그래도 백 장 정도는 떨어져 있다.

그런데 시녀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작은 발이 나뭇잎을 가볍게 밟는다.

검왕의 청력이 뛰어난 것인가? 아니다. 그는 진기를 끌어올리지 않았다.

시녀들의 발걸음 소리는…… 시녀들이 일부러 흘리는 소리다.

그녀들은 두 가지 신기를 한 번에 펼쳐보였다.

첫째, 아주 가볍게 낙엽을 밟았다. 풀잎을 밟았다.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둘째, 그리 가볍게 밟은 발걸음 소리를 백 장 너머로 흘려보낸다.

소리를 집중해서 한 사람에게 전할 정도로 내공이 심후하다는 뜻이다.

한낱 시녀들이 이토록 심후한 내공을 지녔다.

혈루마옥 사람들은 어떤 공부를 수련하기에 이토록 강한 것인가.

스읏! 파파파팡!

검왕은 진기를 끌어올렸다.

시녀들이 백 장 너머에 있지만…… 그들 간에 백 장이라는 거리는 한순간에 불과하다. 공격하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머리를 짓이길 수 있다.

혈영마공이 자욱이 일어난다.

얼굴색이 붉게 달아오른다. 손등, 발등이 붉어진다. 온몸이 붉게 변해간다.

파파파파팡!

진기를 더더욱 거세게 일으킨다.

이제 그의 살색은 거의 붉은 빛, 핏빛에 가깝게 변했다.

혈영마공이 최고조로 일어나고 있다. 진기가 극성까지 회전하고 있다. 경맥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밀집된 힘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다.

다각! 다각!

산정에서 내려온 여인이 백 장 이내로 들어섰다.

여인들은 차분하다. 그들이 가는 곳에 붉게 달아오른 핏덩이가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다가온다.

스릉!

검왕은 검을 뽑았다.

그의 별호는 검왕이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무공은 검공이다. 검으로 펼치는 무학이다.

스읏!

검끝이 천중(天中)을 향해 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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