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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108화 (108/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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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二章 망사(忘死) (3)

다……각! 다……각! 다……각!

얼룩덜룩한 당나귀가 사냥꾼이 만들어 놓은 좁은 산길을 걸어온다.

당나귀가 걸어오는 산길은 사람이 걷기에도 좁고 험한 길이다. 비탈이 가파르고, 가시넝쿨이 많아서 삭도(削刀)로 넝쿨을 자르며 길을 열어야 한다.

짐승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당나귀 위에는 가린 여인이 앉아 있다.

방갓을 쓰고 면사로 얼굴을 가린 탓에 이목구비는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가녀린 몸, 화사한 의복에서 풍기는 자태가 매우 아름다워 미인임을 짐작케 한다.

여인이 당나귀를 험한 산길로 몰았다.

당나귀는 힘없이 터벅터벅 걷기만 하고…… 길을 그물처럼 메꾼 가시넝쿨은 일제히 모습을 감춘다.

스르르륵!

가시넝쿨들이 힘을 잃고 스러지는 듯하더니 썩어버린다. 그리고 길을 활짝 연다.

당나귀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터벅터벅 걷기만 한다.

당나귀에 앉아 있는 여인도 태평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가끔 면사를 만지작거리기는 하지만 그 외에 특별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가시넝쿨들이 제 스스로 소멸한다.

다각! 다……각!

당나귀가 매우 느리게, 한가롭게 걷는다.

“독(毒)!”

“독형사무(毒形死霧)!”

“독공까지 흡수했는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상대는 자신의 무공을 과시라도 하는 것처럼 버젓이 흘리면서 들어온다.

저 무공을 맞받아쳐야 한다.

그들은 짧은 순간 동안, 지극히 짧은 일순(一瞬) 동안 저 무공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독형사무는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겉보기에 독형사무는…… 독을 밀어내어 퍼트리는 정도로만 보인다. 독기가 가시넝쿨을 고사시킨다.

독기는 아주 강력해야 한다.

한순간에 단단한 가시넝쿨을 물에 젖은 습자지처럼 흐느적거리게 만들어야 한다.

독기는 물에 젖은 습자지에서 다시 물기를 거둬들인다.

독기 속에 화기(火氣)도 포함되어 있어서 바싹 말라비틀어진 가시넝쿨이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이 모든 일이 한순간에 이루어진다.

이 사실만 놓고 볼 때, 사람들은 독기에 주목한다.

도대체 어떤 독이기에 이런 효능을 발휘하나. 천연독은 아니고 인공적으로 합성한 독 같은데, 어떤 독인이 있어서 이런 독을 만들어 냈나.

가시넝쿨이 스러지고 소멸되는 모든 과정이 독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정확한 사실을 열거하면 전혀 다르다.

첫째, 여인이 독을 뿌렸다.

이것은 변하지 않을 분명한 사실이다.

둘째, 그녀가 뿌린 독은 매우 강력하다. 가시넝쿨이 한순간에 녹아버리듯이 무너져 버린다.

독이 한 일은 여기까지다.

그녀가 독을 뿌렸고, 독은 본래 지니고 있던 힘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것은 그녀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세 번째, 그녀는 화기를 토해냈다.

일종의 양강지력(陽剛之力)인데, 너무도 짧은 순간에 터졌다가 스러진 힘이라서 눈으로 식별할 수 없다.

그 힘이 독기를 일시에 말려버린다.

여인이 양강지력을 토해내는 것도 그렇고, 사내도 펼칠 수 없는 초강의 양강지력이 토해지는 것도 그렇고, 그만한 힘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도 그렇고…….

그들은 독기보다는 그녀의 화기를 주시한다.

그렇다고 독기도 무시할 수 없다.

그녀가 독을 손에 쥐었다.

불과 더불어서 또 하나의 강력한 힘을 얻었다.

이 힘들은 서로 상생작용을 한다. 흔히 독과 불은 상극이라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상생한다.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강의 힘에 그것과 비등한 힘이 부산물이 얹어진 셈이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 강력하다.

그들 중에 한 명이 허리띠를 풀렀다.

그러자 허리띠 안쪽에서 반짝반짝 빛을 토하는 연검(軟劍)이 드러났다.

철컥!

그가 연검을 풀어 손에 쥐었다.

다른 두 명이 그 모습을 보고 묵묵히 자신들도 병기를 챙기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철컥……!

한 명은 몸 곳곳에서 손가락만 한 철편들을 꺼내 고리에 끼웠다.

무림에는 구절편(九折鞭)이라는 병기가 있다. 아홉 마디 철편을 이어놓은 채찍인데…… 그가 잇고 있는 철편 길이는 구절편에 비해서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는 이십절편(二十折鞭)을 사용한다.

스릉!

다른 한 명도 병기를 취했다.

그는 검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병기가 특이한데 반해, 그의 병기는 평범하다. 시중에서 단돈 몇 푼이면 살 수 있는 싸구려 청강장검이다.

철컥!

“이십 년 만인가? 이걸 모두 채운 게.”

사내가 마지막 철편을 고리에 걸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병기를 얼마 만에 손에 잡은 것인지 감회가 새로웠다.

“증평?”

끄덕! 끄덕!

“화후(火后)?”

살래살래!

그녀는 그들이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가로젓기도 했다.

화후는 증평주를 일컫는 말이다.

그녀의 고갯짓에 세 사람은 다소 놀란 듯 서로를 쳐다봤다.

증평주도 아니면서 이만한 무위를 드러내는가!

그들은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눈가에 불신이 드리워졌고,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화후가 아니라면……”

“나찰(羅刹).”

그녀가 짧게 말했다.

세 사람은 또다시 서로를 쳐다봤다.

나찰이라는 말은 불가에서 나왔다.

무림에는 나찰이라는 말을 별호에 붙여서 사용하는 여인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혈루마옥과 유지자문 사람들에게 나찰은 다른 말로 들린다.

죽음의 사자!

유지자문과 혈루마옥은 서로 비무를 해왔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다. 하지만 오직 한 명, 증평에서 양성해 낸 악귀나찰녀는 그 누구도 이기지 못했다.

그녀와 손속을 마주친 사람은 모두 죽었다.

혈루마옥과 싸워서 생명을 건진 사람이 없지만…… 그녀와 싸운다는 것은 죽음을 확정 짓는 행위다.

그래서 그녀를 나찰이라고 불렀다.

혈루마옥이 그녀는 무엇이라고 부르건 상관없다. 중원에서 나찰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든 상관없다. 유지자문 고수들에게 나찰이라는 명호는 색다르다.

“옳은 싸움이야.”

연검을 든 사내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유지자문에서…… 나찰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그들밖에 없다고 말해왔다.

오직 유지오혼만이 나찰을 꺾을 수 있다.

“상대가 나찰이라면…….”

이십절편을 든 자가 뒤로 물러섰다.

청강장검을 든 자도 물러섰다.

상대가 증평주라면 세 명이 합격을 가했을 것이다. 그래도 될 만한 상대이니까.

하지만 상대가 나찰이라면…… 나찰은 무공으로 상대해야 한다.

지금 그녀의 화후는 매우 높아 보인다. 화기, 독기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다. 한 명이 상대하면 절대적으로 불리, 세 명이 상대하면 우세로 점쳐진다.

그들은 기꺼이 불리를 선택했다. 상대가 나찰이니까.

스읏!

그녀가 당나귀에서 내려섰다.

그녀는 신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이 하듯이 내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움직인다.

그녀는 안장에 꽂혀 있던 장검을 뽑았다. 그리고 말했다.

“좋은 선택이야. 검으로 싸우겠다면 싸워줄게. 원래는 독형사무를 시험하려고 했는데…… 다음에 쓰지 뭐. 그럼 오늘은 땀깨나 흘리겠는데. 잘 부탁해!”

그녀는 싱긋 웃기까지 했다.

스스슷! 파라라라락!

연검은 세상을 휘감는다.

쫘아악! 촤악!

붉게 달아오른 장검이 하늘을 찢는다.

그녀는 그녀가 말했던 대로 오직 검공만을 구사했다.

검공 속에 녹아 있는 내공은 화혈역심공이다. 뜨거운 양강지력이 토해진다.

그녀가 구사하는 검초는 화혈역심공 구수 오십사초를 변형시킨 것이다. 내공을 기를 때 사용하는 운신법(運身法)에 검만 들고 있는 격이다.

그런데도 하늘을 쪼개는 힘이 분출된다.

연검을 든 사내는 쾌검을 구사한다. 그는 벌새의 날갯짓도 눈으로 보고 잘라낼 수 있을 정도로 빠르다. 실제로 그는 허공에 드리워진 연검의 형태가 사라지기도 전에 전혀 다른 새로운 검초를 전개해 내곤 한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일초에 나가떨어졌을 것.

타탁! 탕!

두 사람은 검을 교환한지 수십 합만에 최초로 검을 격돌시켰다.

사내가 물러선다. 여인도 물러선다.

그들은 정확하게 두 걸음씩 물러섰다. 그리고 다시 검을 겨눴다. 담담한 호흡을 유지하면서.

사내가 두 사내를 쳐다봤다.

두 사내도 사내를 쳐다봤다.

그가 씩 웃는다.

그 웃음이 애잔하다.

남은 두 사내는 최종 격돌을 예감했다. 그리고 그 싸움의 결과도 짐작한다.

연검이 갈라질 것이다.

연검을 든 사내도 그런 점을 알기에, 의식했기에, 이것이 마지막 눈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두 사내를 쳐다본 것이다. 한 세상 잘 살았다고.

“하나가 끝났다면 다 끝난 거지. 먼저 가 계슈.”

이십절편을 든 자가 쓴웃음으로 마중했다.

“환중천라(幻中天羅)라는 검초가 있다. 내가 창안한 것인데, 창안만 했지 써본 적은 없다.”

“그런 말, 많이 들었어.”

“…….”

“내게 죽은 사람들, 모두 그런 말을 했어. 이건 내가 창안한 무공이다. 이 무공은 처음 사용한다. 이 무공을 써서 패해본 적이 없다. 이런 말들 너무 많이 들어서 귀가 따가워.”

“그런가.”

그가 담담한 표정으로 검을 들었다. 검배를 땅으로, 검신을 하늘로, 검은 머리 위까지 올려서 수평으로.

환중천라의 기수식이다.

여인은 검을 들지 않았다. 기수식조차 취하지 않고 사내를 보면서 웃었다.

“유지자문은 조금 이상해. 세상 무공을 눈 아래로 굽어보는 것까지는 이해하는데, 왜 꼭 무공을 창안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창안하지 않으면 더 강해지지 않아?”

“무론(武論)인가? 무론은 사양한다. 검으로 말하면 그뿐.”

“물론 검으로 말할 거야. 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검초, 우리 혈루마옥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검초야. 황도직참(黃刀直斬). 당신도 물론 알고 있는 초식이고.”

그녀는 다음 초식을 예고했다.

유지자문이 아니라 중원인이라면, 무공을 배운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초식이다.

“다음 초식을 말해줘서 화 나?”

“자신 있으니까 말했겠지.”

“당신한테만 말해주는 거 아냐. 난 항상 이 초식을 최후초식으로 사용해 왔어.”

그녀가 옆에 있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그들에게도 이 초식, 황도직참이라는 평범한 초식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겠다는 예고다.

당신을 이렇게 죽이겠다는 예고나 마찬가지다.

무인에게는 치욕적인 말이다. 검으로 내리칠 테니 막아보라는 말인데, 치욕스럽지 않나.

그러나 그들은 창피해하지 않았다.

여인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 자신의 최후초식을 말해주고, 그대로 공격했는데…… 그동안 그녀와 싸웠던 모든 유지자문 고수들이 그 평범한 일초를 막지 못했다.

황도직참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다.

그녀가 말했다.

“모두에게, 내게 죽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말을 했는데, 그 사람들은 막지 못하더라고. 막을 수 있기를 바라.”

“최선을 다해보지.”

쒜엑! 촤라라라락!

연검이 사력을 다해서 몸짓을 한다. 온 세상을 검의 그림자로 빼곡히 채운다. 허나 그물이 찢어진다. 엄청난 불덩이가 그물을 찢고 들어선다.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진다.

퍼억!

싸움은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연검을 든 사내는…… 여인이 말한 황도직참을 막아내지 못했다.

검은 막았다. 하지만 내력에서 밀렸다. 연검이 부셔지면서 황도직참이 고스란히 머리에서 터졌다.

뚜렷한 내공 차이!

어떻게 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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