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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103화 (103/225)

# 103

第二十一章 운집(雲集) (3)

이슬방울이 나뭇잎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때……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슬을 보게 된다. 크기, 무게, 영롱함…… 생김새에 대해서 소상히 말할 수 있다.

이슬방울이 또르륵 굴러떨어진다.

이슬은 대지로 떨어지기도 하고, 바다로 떨어지기도 하며, 다른 이슬과 합쳐질 수도 있다.

그 순간부터 이슬은 존재를 잃는다.

이제 아무도 이슬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땅에 떨어진 이슬의 모양은 어떠한가. 무게는? 바다로 떨어진 이슬을 찾을 수 있는가? 어디쯤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가? 이슬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슬은 대지에 녹아들었다.

바다의 일부분이 되었다.

유지자문의 신법이 이와 똑같다.

그들은 단지 숨는 것, 은폐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잘 가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완벽하게 녹아든다.

누구도 그들이 어디 숨어있다고 말하지 못한다. 누구도 그들을 찾지 못하고, 감지하지 못한다. 티끌만 한 느낌조차도 들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녹아든다.

그들이 녹아들었을 때, 이슬이 대지로 흡수되었을 때, 존재는 사라진다.

헌데…… 그들을 찾아내는 방법이 있다.

바다에 떨어진 이슬을 완벽하게 분리해서 다시 나뭇잎 위로 올려놓는 방법.

가아아아아!

대지 위로 오직 시전한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진동이 흐른다.

나뭇잎은 진동에 흔들리지 않는다.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진동은 빠르고 강하게 흘러가지만, 그 무엇도 이상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훅!’

그는 이상을 느꼈다.

그의 귓가로 바로 옆에서 말한 듯, 또렷한 음성이 들려왔다.

“항상 이 부근에 누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왠지 모르지만 기분이 나빴거든.”

‘발각됐다!’

본능적으로 위기가 감지되었다.

“어떻게 할래? 계속 누워있을래, 일어나서 손이라도 크게 한 번 휘둘러볼래?”

잠깐 동안 망설임이 일어났다.

저 여자, 자신을 찾아낸 것 같다.

진동 같기도 하고, 바람 같기도 한 것이 몸을 쓸고 지나갔을 때…… 발각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헌데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정말 발각되었는지 의심이 든다. 유지자문은 세상 사람들이 찾아낼 수 없는 것이니까.

‘누구냐!’

그는 행동을 정하기 전에 나타난 여인을 살폈다.

여인은 마흔 살에서 쉰 살 정도 되어 보인다. 실제 나이는 쉰 살을 넘은 듯한데, 워낙 얼굴과 몸매를 잘 가꿔서 마흔 살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다. 밤에 화장까지 하면 스무 살 정도로까지 내려가지 않을까 싶다.

혈루마옥에는 이 정도 연배의 여인들이 많다.

하지만 여인의 매우 품위 있어 보인다. 허드렛일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

혈루마옥은 절곡이다. 그래서 혈루마옥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구하고 모두 일을 한다. 나무도 하고, 물도 긷고, 산비탈에 마련한 밭에서 일도 한다.

여인들이라고 해도 거의 대부분 피부가 새카맣다.

여인은 피부가 새하얗다. 산골 여인의 모습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혈루마옥에 살면서 이토록 피부를 가꿀 수 있는 사람은…… 증평주뿐이다.

‘설마 증평주가!’

그는 혈루마옥을 지켜본 지 사 년이 넘어간다. 하지만 증평주를 본 적은 없다. 녹천주도, 촌장이라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절곡 경계를 얼씬거리지 않는다.

여인은 그가 늘 보아왔던 혈루마옥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

‘확실히 증평주다!’

증평 핵심부에 있는 단 몇 명만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피부를 가꿀 수 있다.

‘그렇다면…… 들킨 게 확실하군.’

상대가 증평주라면 그는 지상 최강의 여인을 만난 것이다.

그는 미련을 버리고 일어섰다.

여인은 그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도 놀라지 않았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지켜본다.

역시 알고 있었다.

그가 난생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증평주, 미지 속의 인물에게 물었다.

“증평주요?”

“짐작하고 있잖아.”

“날 찾아낸 방법, 뭐요?”

“숨고, 찾아내고, 숨고, 찾아내고. 이런 것들이 반복되어서 나타나는 게 무림 순리라는 거지. 너희가 하도 잘 숨으니까 찾아내는 방법을 강구해 낸 거고, 우리가 이런 것을 강구해 냈으니 너흰 또 다른 수를 찾아내겠지?”

“그럴 거요?”

“그러니 그 전에 씨를 말리려고 해.”

증평주라고 짐작되는 여인이 환하게 웃었다.

예쁘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앞에 섰는데, 전혀 살의를 느끼지 못하겠다. 누이의 따뜻함만 느껴진다.

‘아! 화혈역심공이란.’

그는 고개를 내둘렀다.

증평의 성명절기인 화혈역심공은 사람을 온화하게 만든다.

심성이 어떨지라도 겉모습만은 온화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나이 어린 여자는 청초하게 보이고, 나이 많은 여인은 현숙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준다.

화혈역심공에 속으면 안 된다.

스릉!

그는 검을 뽑았다.

다른 상대 같으면 이토록 일찍 검을 뽑지 않는다. 신형을 움직이면서 병기를 뽑아도 충분하다. 하지만 상대는 지상 최강의 여인이라는 증평주, 지금도 늦다.

여인이 말했다.

“유지자문이 얼마나 컸는지 볼까?”

“얼마든지!”

사라라랑!

순간, 그의 신형이 희뿌연 연기에 감싸였다.

연기는 무려 오 장여 거리를 뭉실뭉실 피워내며 퍼져갔다. 그리고 더 이상 벽에 막혀서 퍼지지 못한다는 듯, 안으로 안으로 뭉쳐서 점점 농도가 짙어졌다.

“운중도로는 안 된다는 거 알잖아. 그런 건 코흘리개도 깨트릴 줄 알아.”

“운중도는 식상하나 사도는 생경할 거요.”

“그럴까?”

당연한 소리!

사도는 자신도 처음 펼쳐 보이는 것일 터이고, 맞이하는 사람도 처음 겪는 것이 될 게다.

그가 어떠한 무공을 펼쳐도 증평주는 상대하지 못한다. 그럴 바에는 자신이 수련한 최대 절학을 펼쳐내고, 그것으로도 안 될 터이니 마지막 수라도 써보련다. 헌데!

가가가가각!

짙은 운무로 몸을 가리고 있던 그는 이상한 진동을 느끼고 몸을 흠칫 떨었다.

자신이 대지에 녹아있을 때, 이런 기운을 느꼈다.

이번에 또 느낀다. 운무로 몸을 감추고 있는데, 정확하게 전신을 더듬어 온다.

증평주가 자신을 똑바로 견지한다.

‘어떤 수도 무용지물…….’

변초(變招)는 통하지 않는다. 환술(幻術)도 통하지 않는다. 증평주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단 한 수, 가장 강력한 힘으로 짓뭉개는 수밖에 없다.

쒜에에엑!

그가 신형을 솟구쳤다.

삼척장검이 허공을 가른다. 전신 진력을 모두 담은 검광이 증평주를 갈라간다.

스릇!

일순, 증평주의 신형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이건!’

그는 몹시 당황했다.

증평주가 펼친 것은 바로 유지자문의 절학인 운중도다. 그것도 자신들보다 훨씬 정교하게 펼친다. 유지자문의 운중도보다 한 단계 발전한 운중도다.

팟!

그가 느낄 사이도 없이 가슴에서 뜨거운 느낌이 작열했다.

마치 가슴에 팔팔 끓는 기름을 뒤집어쓴 느낌…… 그리고 전신 기력이 일시에 빨려 나가는 느낌…….

그는 그런 느낌을 경험한 이후에야 증평주를 찾아냈다.

그녀는 눈앞에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한 신색으로 혈검을 쳐다본다. 언제 뽑아들었는지 모를 검에 누군가의 피가 새빨갛게 묻어 있다.

“우, 운중도…….”

“아! 사도를 펼치지 못했네? 사도를 왜 안 펼쳤어? 마지막으로 그걸 믿었던 거잖아?”

“으…….”

그는 침음했다.

증평주의 무공은 그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손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증평주는 그를 쳤다. 목숨을 부지시켜 놓은 채 죽음의 검을 썼다.

자신은 죽는다. 이 사실은 변함없다. 단지 지금 당장 죽지 않을 뿐이다.

사도는 죽는 순간에 펼쳐진다. 진기의 변형은 이승에서 내뱉는 마지막 호흡과 함께 일어난다.

혈루마옥은 운중도만 깬 것이 아니다. 사도마저 파해했다.

털썩!

그는 무릎을 꿇었다.

완전히 졌다. 유지자문 무공으로는 어찌할 방법이 없다.

“아씨께서 곡감으로 가셨습니다.”

어디에서 음성이 들려오는지 파악되지 않는다. 사방에서 동시에 소리가 일어난다.

회성음(廻聲音)!

그러나 여인은 똑바로 한 곳을 주시하며 말했다.

“곡감? 곡감에는 왜?”

“검왕이 그곳으로 십마를 부른 듯합니다. 유지오혼이 십마들에게 길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호호호!”

여인이 크게 웃었다.

“그 아이 성격에 가만있었을 리 없고…… 유지오혼 중에 몇 명이나 나가떨어졌어?”

“한 명입니다.”

“호호호!”

여인이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신형은 이미 유성처럼 흘러나가고 있었다.

중원을 향해.

“흠!”

몸집이 단단해 보이는 중년인이 유지자문 고수의 시신을 세심하게 살폈다.

“증평이 운중도를 파해해 냈군요.”

중년인은 뒤따르던 젊은 사내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운중도로 운중도를 깬다. 하하하! 역시 증평주야. 하하! 증평주다운 발상이야.”

사내는 젊은 사내의 말을 귓가로 흘려들으며 웃었다.

“증평주께서 곡감으로 갔습니다. 그럼 우리도 늦기 전에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이 늦는다는 말이냐?”

“네?”

“네가 곡감으로 달려가려는 이유가 뭐냐?”

“그거야…….”

젊은 사내가 잠시 침묵했다.

검왕이 화천을 무너트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검왕만은 우리 손으로 베어야지요.

그의 속마음이 눈빛을 통해 흘러나왔다.

녹천에는 녹천오수가 있다. 그중에 한 명이 곤욕을 치렀다면 그 복수는 녹천오수가 해주어야 한다. 증평이나 촌장이 해서는 면이 서지 않는다.

녹천주는 젊은 사내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 시신이나 잘 살펴봐라.”

“살펴봤습니다.”

“무엇을 얻었느냐?”

“…….”

“이 시신을 살펴보면 증평을 얻을 수 있다. 유지자문도 얻을 수 있다. 운중도는 말할 것도 없고. 난 이 시신을 보고 그런 것을 얻었는데, 넌 무엇을 얻었느냐?”

“…….”

젊은 사내는 대답하지 못했다.

중년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 우리는 보름 후에 간다. 중원을 가볍게 보지 마라. 중원은 없는 듯, 텅 빈 듯하면서도 꽉 찬 곳이다. 녹천오수가 모두 이곳을 떠날 수 있을 때…….”

중년인의 마지막 말은 들리지 않았다.

중년인은 벌써 계곡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저 멀리, 계속 깊숙이 묻히는 중이었다.

녹천주는 녹천오수 전부가 혈루마옥의 저주를 풀고 나올 때까지 기다릴 심산이다. 녹천오수뿐만이 아니라 녹천의 고수들 중에서 상당수가 저주를 풀어낼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녹천주는 단단한 돌다리도 두들겨 본 후에야 건너는 사람인가.

사내에게는 사부가 그렇게 보였다. 너무 신중해서 실기를 할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그는 사부를 어기지 못한다.

그는 사부가 말한 대로 유지자문 고수의 시신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부처럼 증평을 얻어야 한다. 유지자문을 얻고, 운중도를 얻어야 한다. 실제로 무엇을 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얻을 것이 있으니까 살펴보라고 한 게다.

시신을 살펴본다.

그래도 그의 마음은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중원을 달려간다.

‘검왕을 빼앗길 거야. 증평주가 직접 나섰는데, 빼앗기지 않을 리 없어. 도대체 사부님은 무엇을 기다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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