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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100화 (1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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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章 차기(借氣) (5)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흘러간다.

해가 뜨고 진다. 달이 뜨고 진다. 낮과 밤이 교차된다.

“촌장님은?”

“안에 계시지.”

“오늘도?”

“때가 되면 말씀해 주시겠지.”

“하하! 그래. 그렇겠지. 그럼 수고!”

여느 때처럼 아침인사를 주고받는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내용의 인사를 한다.

주고받는 말에 기대감이 가득하다.

하지만 인사를 건네는 표정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지금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석화선생은 무표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어두운 마음을 완벽하게 감추지는 못했다. 그는 난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하기 때문에 얼굴이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그 표정을 보고 ‘무엇인가 잘못되었구나!’하는 것을 감지했다.

그래도 혈루마옥 사람들은 차분하게 기다렸다.

때가 되면, 정말 일이 잘못되었다면 촌장이나 일월양장이 무슨 말인가를 해줄 게다.

정말로 혈오가 잘못되었다면? 혈오가 혈루마옥을 저주를 풀지 못한다면?

이런 점은 충분히 고려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혈오는 저주를 푸는 방책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이제는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물론 지금으로써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향후 백 년, 이백 년…… 저주를 풀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지 않겠나.

그럼 자신들의 인생은? 절곡을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은? 평생 이 좁디좁은 골짜기에서 산과 하늘만 쳐다보다가 생을 마쳐야 한단 말인가?

이것도 어쩔 수 없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할 일을 다한 다음에, 털끝만치도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한 후에, 결과를 하늘에 맡기고 기다리라는 말이다.

혈오가 딱 그 격이다.

혈루마옥의 저주는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풀지 못한다.

그렇기에 동요하지 않는다. 혈오가 잘못되었다면 운이 없구나 하고 쓴웃음 한 번 짓고 만다. 물론 결코 그럴 수 없겠지만, 실망이 뼛속까지 저며 들겠지만…… 혈루마옥 사람들 모두가 같은 심정일 테니, 서로가 부둥켜안고 실망을 삭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촌장의 정식발표가 없다는 점이다.

일이 틀어졌다면 촌장이 정식으로 말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희망이 있다.

혈루마옥 사람들은 묵묵히 기다렸다.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감지했으면서도, 마지막 한 줄기 희망만은 놓지 않았다. 어떻게 놓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오늘도 기다린다.

‘훗!’

누미는 실소를 터트렸다.

그녀는 혈오를 품에 안자마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단박에 깨달았다.

‘바보들만 모였나? 호호!’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머금어졌다.

이곳에는 그녀보다 무공이 강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단지 무공만 놓고 판단한다면 그녀는 열 손가락 안에도 들기가 힘들 것이다.

열 손가락이 무엇인가. 스무 손가락 안에나 들 수 있으려나?

혈루마옥 사람들은 오랜 시간 무공을 연마해왔다. 싸움에 대한 경험도 풍부하다. 비록 비무 형식을 빌렸지만, 정작 살상을 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지만…… 그래도 진짜 살육에 버금가는 경험을 쌓아두고 있다.

생사를 걸고 무공을 겨룬다면 그녀는 살아남기 힘들다.

촌장, 일월양장, 석화선생.

이들 네 명은 단연 최강자다. 혈우마옥에서만 최강자가 아니라 중원 무림 전체를 뒤져봐도 이들과 겨룰 수 있는 사람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상대가 안 된다.

헌데 그런 최강자들이 혈오의 상태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무공만 강한 게 아니다. 의술에서도 신의 영역을 넘볼 수 있다고 공언하는 자들이다.

오판, 오판, 오판!

그들은 오판했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 석화선생의 진단이 틀렸다. 석화 선생이 혈오를 보기 전에 촌장과 일월양장이 진맥을 했을 터인데, 그들도 틀렸다.

바보들인가? 아니면 혈오가 감쪽같이 속여서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저들이 바보여서도, 혈오가 영특하게 속여 넘겨서도 아니다.

혈오는 실제로 위중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위중하면서도 위중하지 않다. 현재는 위중하지만 약간만 손을 쓰면 전혀 위중하지 않다. 정말로 원인을 알고 보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게다.

그런 싱거운 병인(病因)을 저들이 알아채지 못했다.

누미는 저들의 오판이 더 신기했다. 어떻게 이런 것을 알아채지 못한 거지?

안자마자.

그렇다. 안자마자다. 혈오를 품에 안는 순간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읽혀졌다.

혈오는 아프다! 혈오는 푹 쉬어야 한다!

혈오에게는 약이 필요 없다. 무엇을 하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쉬게만 해주면 된다.

혈오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혈오는 죽어가고 있는 게 아니다. 자진 같은 것을 스스로 선택해서 행동에 옮겼다는…… 이건 정말 터무니없는 망상이다.

혈오는 지쳤을 뿐이다.

태중에 있을 때, 혈오는 영성을 띄었다. 요미검체의 영향을 받아서 태아치고는 매우 똑똑했다. 아니, 똑똑하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영험스럽다고 해야 한다.

혈오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 속에서 나온 후에는, 세상에 태어난 후에는 한낱 갓난아기일 뿐이다.

혈오는 스스로 자진하지 못한다. 그러기에는 너무 어리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못하니 자진 같은 것을 선택할 수도 없다. 자진이 무엇인지도 모를 게다.

갓난아기가 스스로 자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혈오는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혈오는 영성을 잃었다.

물론 지금도 특수하기는 하다. 혈루마옥의 저주를 풀 수 있는 특이한 신체를 지녔으니.

그러나 그것은 신체적인 기능일 뿐이다.

혈오는 전혀 남다르지 않다. 조금 특이한 체질을 타고 태어난 것뿐이다.

그것만 제외하면 어느 갓난아이들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 아이에게 절정 고수 네 명이 집중적으로 진기를 퍼부었다.

어떤 아이라도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

혈오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단지 그것뿐이다. 푹 쉬게 하면 된다. 먹지도 않고 있는 것은 위장으로 흘러 들어간 젖을 소화시킬 수도 없을 정도로 피곤해 있다는 뜻이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 느낌이다.

어미와 자식만이 느낄 수 있는, 혈육 간에만 감지할 수 있는 독특한 느낌이다.

혈오를 만져서 안 것이 아니다. 진맥 같은 것을 해보지도 않았다. 진맥 쪽이라면 석화선생을 능가할 수 없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저 안기만 했다.

단지 안아보는 것만으로, 느낌만으로 혈오에 대해서 낱낱이 알게 되었다.

‘어떻게든 살아야지.’

누구에게 한 말인가? 혈오에게? 아니면 그녀 자신에게?

누미는 약지를 입으로 입에 물고 꽉 깨물었다.

꽉!

손끝에서 짜릿한 아픔이 일어난다.

‘살아라. 어떻게든 살아야 해.’

누미는 손가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혈오의 입에 넣어주었다.

‘젖을 먹을 수 없으니 우선은 이거라도 먹고…… 힘내. 이 어미에게 힘을 보태줘야지?’

혈오가 그녀 손에 들어왔다.

이상하지만…… 혈오가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단지 이용할 수 있는 도구라는 생각만 든다. 자신이 낳은 아이이건만 털끝만 한 애정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그녀는 혈루마옥 사람들에게 혈오를 순순히 내어줄 수 없다는 생각만 했다.

혈오를 이용해서 혈루마옥을 움켜쥔다.

충분히 가능하다. 잘하면 촌장과 버금가는 힘을 거머쥘 수도 있다. 혈루마옥의 실권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예전에는 이런 일을 꿈도 꾸지 않았지만, 지금은 충분히 가능하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이든 벌일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혈루마옥을 이끌고 적벽검문을 몰아친다.

그녀는 오직 그 생각만 했다.

촌장이나 일월양장이 그녀에게 도움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괜찮다. 이곳 사람들은 터무니없이 강하니 몇몇만 가담해도 적벽검문 정도는 충분히 칠 수 있다.

몇몇, 딱 그 정도만 모을 생각이다.

그때까지 혈오를 철저하게 이용한다.

‘네가 나에게 큰 힘을 안겨줄 거야. 자식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그렇지?’

누미는 혈오를 내려다보면서 쌩긋 웃었다.

‘음! ’

석화선생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까지 피어났다.

누미가 정성스럽게 혈오를 대한다.

어미가 자식을 위해서 손가락을 깨물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아이에게 자신의 피를 먹인다.

이 모습…… 더 없이 평화롭지 않은가. 이보다 더 보기 좋은 광경이 또 있던가.

사실 혈오에게는 피를 먹여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다. 피가 젖만큼 살을 찌우지도 못하고, 영양분을 공급해주지도 않는다. 다만 입안에 강한 자극을 줄 수는 있다.

젖을 토해버리니 피맛으로 입을 헹구는 것도 괜찮다.

어쨌든 그는 안심했다.

누미가 혈오에게 정성을 쏟고 있으니 적어도 죽지는 않을 것 같다.

테중에 있을 때도 그랬지 않은가. 혈오는 자진을 택했는데, 누미가 생각을 돌려놨지 않은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그 일을 해냈지 않은가.

누미가 지금도 해내고 있다.

‘고비는 지나갔어. 이토록 쉬웠던 것을…… 휴우!’

그는 안심하고 자리를 떴다.

혈오가 젖을 토하지 않는다.

누미는 누구의 젖인지도 모를 모유를 혈오의 입 안에 흘려넣었다.

주르르륵!

누렇고 탁한 젖이 혈오의 입안으로 흘러든다.

혈오는 잠시 눈을 찡그리는 듯 하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입안으로 흘러든 젖을 삼킨다.

젖을 받아먹고 있다.

그녀의 정성이 하늘에 닿은 것인가? 그래서 아이가 젖을 받아먹기 시작하나?

천만에! 이제 젖을 배 속으로 흘려 넣을 수 있을 만큼 기력을 회한 것뿐이다.

혈오는 회복을 선택했다.

안색이 정상적으로 변해간다. 검은색이던 안색이 점점 옅어진다. 전신이 아직도 멍든 것처럼 푸르뎅뎅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다.

혈오가 젖을 먹는다.

모유도 먹고, 염소젖도 먹는다.

죽음 대신 삶을 택한 것만은 분명하다.

석화선생이 혈오의 맥을 짚었다.

예전처럼 강한 벼락을 내리치지 않는다. 아무런 반동도 일으키지 않는다. 너무 평범해서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됐군.”

석화선생이 만족한 듯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혈루마옥 사람들이 혈오를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가. 오직 혈오만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때, 누미가 말했다.

“아직 안 됐어요.”

“……? 그게 무슨 말인가?”

“아기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요.”

석화선생은 말을 못하고 눈만 끔뻑였다.

혈오의 신체는 완벽해졌다. 물론 완전하게 회복되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 도인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도인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누미가 말한 것도 이 부분을 말한 것은 아니다.

신체적으로는 곧 준비가 끝난다는 것을 누미도 그도 안다.

누미가 말한 것은 다른 부분이다. 그리고 그 부분을 석화선생은 언뜻 이해하지 못했다.

누미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누미가 혈오를 안으면서 말했다.

“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묻지 않겠어요. 하지만 이 아이에게 또 그런 일을 하면 반드시 탈이 날 거예요. 이 아이는 또 죽음을 선택할 것이고, 그때는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음!”

“촌장님과 상의해 보세요. 이 아이를 이용해서 저주를 풀 것인지 아니면…….”

“아니면?”

“이 아이의 허락을 받든지.”

“허……락이라고 했나?”

“네. 허락요. 이 아이가 좋다고 할 때, 그때 하면 되지 않겠어요?”

혈오의 허락은 말로 떨어지지 않는다. 몸으로, 느낌으로 전해줄 것이다.

누미가 말했다.

“그 전에…… 저도 알고 싶어요. 도대체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을 한 건지. 제게서 이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지 않는다고 했죠? 그럼 말해주세요. 어떻게 해야 혈루마옥의 저주를 풀 수 있는지. 약속을 어기고 억지로 데려가도 좋아요. 하지만 그런 일을 또 하시면…… 그때는 제가 죽음을 택하겠어요. 그럼 혈오에게 탈이 나도 또다시 안쓰러운 마음에 뒤치다꺼리나 하지는 않겠죠.”

“음!”

“말해주세요. 이 아이에게 뭘 한 건지.”

누미의 표정은 자식에 대한 염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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