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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98화 (98/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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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章 차기(借氣) (3)

사지가 잘린 사람은 혼자서 움직이지 못한다.

발이 없으니 걸을 수 없다. 손이 없으니 땅을 짚고 나가지도 못한다.

그녀는 사지가 잘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몸은 있지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생각은 있지만 어디로도 갈 수가 없다.

사지가 잘린 사람처럼 자유를 잃었다.

혈루마옥에서 오는 순간부터 오늘 이때까지 그녀는 자유를 속박 당했다.

의지대로 한 것이 무엇이던가.

작은 모옥에 갇혀서 열 달을 보낸 것이 전부다.

그녀가 걸을 수 있는 곳,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작은 모옥이 전부였다. 간혹 모옥을 벗어날 수도 있지만 그녀에게는 항시 감시의 눈초리가 따라붙었다.

그녀는 아무 데도 가지 못했다.

하다 못해서 바람을 쐬러 숲으로 들어가는 데도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던 것이 혈오를 낳은 후…… 변했다.

이제는 아무도 그녀를 주시하지 않는다. 감시도 하지 않는다. 그녀가 필요 없어진 것인가?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그녀를 마을 사람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측면이 크다.

그녀는 혈루마옥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마을을 걸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산을 가고, 계곡으로 더듬어가도 만류하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그녀를 주시하지 않는다.

이곳을 떠나 버릴까?

문득문득 혈루마옥을 떠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치민다.

물론 떠나지 못한다.

그녀는 저들이 왜 자신을 자유롭게 방임해 놓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안다.

그녀는 숲을 벗어날 수 없다.

그녀 역시 혈루마옥 사람이 되었다. 혈루마옥의 저주를 받았다는 말이다. 그러니 굳이 감시를 하지 않아도 계곡을 벗어날 수 없지 않겠나.

단 한 걸음도 계곡을 벗어나지 못한다.

저들이 믿고 있는 것은 그것이고…… 그녀가 믿고 있는 것은 아직도 에전처럼, 이곳에 오기 전처럼 자유롭게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도대체 말이 되는가, 저주라니!

그녀는 숲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박! 사박!

치맛자락에 땅이 쓸린다.

혈루마옥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경계선이 있다. 누구든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는 구역이 있고, 약간의 감시가 필요한 구역이 있다.

그녀는 감시가 필요한 구역으로 들어섰다.

사박! 사박!

그녀는 계속해서 숲을 걸었다.

이제 곧 혈루마옥을 벗어난다. 계곡을 벗어난다.

물론 그녀를 가로막는 사람은 없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있다. 느낌으로 파악된 것이지만…… 적어도 십여 명은 넘게 은잠해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풋!”

그녀는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문득, 일 년 전 생각이 난다.

화천에 의해 혈루마옥으로 들어설 때, 그녀에게 던져진 것은 지옥 같은 삶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사지가 잘린 몸이라고.

그녀는 혈루마옥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었다.

길가에서 흙장난을 하는 어린아이도 그녀보다 무공이 높았다. 매일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보다 상수였다. 그녀는 힘으로 누구를 제압할 수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그녀는 팔다리를 얻었다.

그녀는 증평의 무공을 얻었다. 녹천의 무공도 섭렵했다.

무공을 다양하게 안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녀도 상당한 상수에 속할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상수다.

그녀가 혈루마옥에 와서 한 일이라고는 혈오를 낳은 것이다. 아이 한 명만 낳았다.

그 기간 동안, 임신 기간 동안 상당한 고수가 되었다.

임신 기간 동안 무공을 수련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어느 무림 여인도 임신 기간 동안에는 무공을 수련하지 않는다. 태아에게 무리가 가기 때문에.

그녀는 오히려 무공을 수련했다. 아주 극상, 아주 극렬한 무공을 수련했다.

이제 그녀는 바람을 읽는다.

눈이 커졌다. 귀가 활짝 열렸다.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거의 동물에 가깝다.

귓가로 바람이 흐른다.

예전 같으면 ‘아! 바람이구나’ 했겠지만 지금은 달리 느낀다. 바람의 강도, 세기, 방향…… 바람의 모든 것이 낱낱이, 손에 잡힌 듯이 읽힌다.

그녀는 바람은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이런 일들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녀가 고도의 집중력으로 감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웠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때가 되면 새싹이 트듯이 그녀 내부에서부터 어떤 기운이 충족되면서 이와 같은 현상들이 일어난다.

혈루마옥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생각지도 못한 무공 경지다.

저들…… 숲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 읽힌다.

저들 중에서 누군가가 앞을 가로막았으면 좋겠다. 무공을 시험해 보게.

그녀는 자신 있었다.

이곳에 들어올 때는 사지가 잘린 몸이었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튼튼한 팔다리를 가졌다.

숲을 걷는다. 헌데,

스읏!

그녀 앞으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안 돼.’

그녀는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앞을 가로막는 자가 생기는 순간, 그녀는 그와 자신 간의 간극을 감지했다.

상대는 강하다. 하지만 자신의 상대가 안 된다. 왜? 상대의 모든 행동이 낱낱이 보인다. 움직이기 전의 모습이 상상되고,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도 가늠된다.

“뭐예요?”

그녀가 다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나평(羅坪)이라고 합니다.”

나타난 자가 공손하게 두 손 모아 포권지례를 취했다.

상대는 나이가 꽤 지긋해 보인다. 머리가 희끗한 것을 보면 적어도 쉰은 넘은 것 같다. 하지만 마치 상관을 대하듯이 아주 공손하게 그녀를 대한다.

그가 말했다.

“여기까지입니다.”

“…….”

“이제 곧 중원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아주시겠습니까?”

“더 가지 말라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정중하지만 단호한 말이다.

“내가 간다면, 어떻게 할 건데요?”

“저희는 막지 않습니다. 가십시오.”

그가 실제로 옆으로 물러섰다.

그가 그녀 앞을 가로막은 것은 형식적이다. 그는 가로막을 생각이 없었다. 다만 약간의 경고? 뭐라고 해야 하나? 어떤 사실을 알려준다고 할까?

그녀를 가로막는 모습에서 어떤 악의도 읽히지 않는다.

이런 점도 예전에는 감지하지 못했던 감정이다. 그녀 앞에 선 사람이 선의를 품고 있는지, 악의를 품고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알지 못했다.

이제는 적어도 공격적인가, 공격적이지 않은가 하는 부분만은 읽을 수 있다.

상대는 공격적이지 않다. 그녀와 다투고자 하는 마음이 애초부터 없었다.

스읏!

그녀는 숲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내와 어깨를 부딪칠 듯 스치며 지나쳤다.

그는 여전히 남아 있고, 그녀는 걸었다.

혈루마옥을 벗어날 생각은 없다. 이곳에 미련이 남아서?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이곳은 강하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

이들은 중원을 노린다. 지금이라도 중원 땅을 밟지 못해서 안달을 한다.

이들이 필요하다.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은 사람은 화천이다. 그것을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녀를 이곳으로 밀어넣은 사람은…… 검왕이다. 그녀의 사문, 적벽검문이다. 그들은 그녀를 이용하면서 그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다.

그녀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이제 그 도끼를 부셔버린다.

적벽검문을 부수는데 혈루마옥처럼 든든한 원군은 없을 것이다. 이들을 이용하기만 하면, 이들을 부리기만 하면…… 그 무엇도 무섭지 않다.

그녀에게는 이들을 부릴 자신이 있었다.

아들, 자신이 낳은 아들, 혈오를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혈오가 그녀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리라.

이곳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럴 생각조차도 없다. 다만 숲을 벗어날 수 있는지 없는지 그것만 확인하려고 한다. 왜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는지.

스읏!

마지막이라고 말한 곳에서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아무렇지도 않다. 그 어떤 반응도 오지 않는다.

‘괜히 엄살은…….’

그녀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계속 내디뎠지만 혈루마옥의 저주라고 일컬어질 만한 어떤 증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유롭다.

‘그럼, 그렇지. 저주라니! 풋!’

하기는…… 말이 안 되지 않나. 어떻게 사람이 이 계곡에만 들어서면 나가지 못한단 말인가. 몸을 속박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됐어.’

그녀는 만족했다.

그녀에게 저주 따위는 내리지 않았다. 언제든 나가고 싶을 때는 나가면 된다.

그녀는 웃으면서 뒤돌아서려다가…… 문득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작은 옹달샘인데, 샘물 송송 솟는 웅덩이인데…… 물이 맑고 싱그럽다.

물을 봐서일까? 갑자기 갈증이 치민다.

‘한 모금 마시고 가자.’

그녀는 옹달샘을 향해서 걸었다. 헌데 그 순간,

“억!”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나직한 비명을 토해내면서 풀썩 허리를 숙였다.

갑자기 창자가 끊어질 듯이 아파왔다.

“으윽! 이게…….”

그녀는 안색마저 하얗게 탈색되었다.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다. 미치 칼로 복부를 푹 쑤신 듯 아파서 꼼짝을 못하겠다.

‘이게……이게 저주…….’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이게 말이 되는가! 멀쩡하던 몸이 왜 갑자기 아파오는가. 주변에 독초라도 있는게 아닐까? 아니면 누가 독을 뿌렸거나.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아픔을 참으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으윽!”

통증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치민다.

그때, 등 뒤에서 그녀를 가로막았던 사내가 말해왔다.

“무리하시면 기혈이 뒤집힙니다.”

“…….”

“역혈이 일어납니다. 그때는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저희 의술을 아실 겁니다. 석화선생이 어느 정도로 고명한지도. 하지만 우리 모두 손을 쓰지 못합니다. 일단 역혈이 일어나면 손을 쓸 방법이 없습니다.”

‘이래서?’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혈루마옥 사람들이 말하는 저주를 알았다. 왜 혈루마옥을 떠나지 못하는지.

그녀가 고통을 참으면서 말했다.

“손을 쓰지 못한다는 말이 뭐죠?”

“즉사합니다.”

“즉사…….”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서 저희가 저주라고 하는 겁니다.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저주 맞군요.”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뒤로 몇 걸음 옮겼다. 그러자 복통이 거짓말처럼 가셨다.

‘어떤 이유가 있을 거야!’

그녀는 아직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믿지 못했다. 멀쩡하던 몸이 갑자기 복통을 일으킬 때는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렇다.

그녀는 다시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또 배를 움켜잡으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비명은 참을 수 있지만 인상이 찡그러지는 것까지는 참지 못했다.

그녀에게 말을 건넸던 사내는 이런 일에 익숙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복통이 세 번 일어난 후에는 고통이 다리로 옮아갑니다. 경련이 일어나죠. 경련은 한 시진 정도 계속되다가 멈춥니다. 시험은 그 정도에 그치는 게 좋습니다.”

그의 말투로 미루어보아 이런 시험을 했던 사람이 꽤 많았던 것 같다.

“방법이 전혀 없나요? 이곳을 벗어날?”

“혈오가 방법을 찾아줄 겁니다. 하하! 우리 모두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가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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