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96화 (96/225)

# 96

第二十章 차기(借氣) (1)

짹짹! 짹짹짹!

나무 위에서 산새가 운다.

산새는 평화로워 보인다. 산새를 어깨 위에 앉힌 나무도 매우 평화롭다.

세상이 고요하다.

허나 그들은 고요하지 못했다.

몸은 고요한 채로 앉아있지만, 마음만은 전쟁터를 질주하는 듯 크게 요동쳤다.

혈루마옥을 벗어날 수 있는가?

혈오가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어찌 보면 역사적인 순간일 수도 있는 현장에서 마음이 들뜨는 것은 당연한지 모른다.

“고놈 참.”

촌장이 말했다.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 신기롭다고 해야 하나, 영악하다고 해야 하나? 갓난아이이니 어지간하면 예쁘다거나 귀엽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증평주가 미간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넓은 대청에 네 명이 앉아있다.

삼사십 명이 둘러앉아도 충분할 공간에 단 네 명만 앉아있으니 고적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들, 네 사람이 강보에 싸인 갓난아기를 지켜봤다.

꼼지락! 꼼지락!

강보에 싸인 갓난아기는 연신 손을 움직인다.

헌데 그 모습이 전혀 귀엽지 않다. 아니, 귀엽기는커녕 무섭게까지 느껴진다.

눈[目]!

아이가 촌장을 쳐다보고 있다.

아이, 혈오는 오직 촌장만 쳐다본다. 녹천주와 증평주, 석화선생이 옆에 있는데 그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오직 촌장만…… 노려보듯이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 눈, 촌장을 쳐다보는 눈 때문에…… 귀엽게 보여야 할 모든 것이 귀엽지 않다.

아이의 눈은 맑다.

흰자위와 검은 동공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고, 광채도 서늘한 달빛처럼 맑다.

혈오의 눈은 아름답다.

헌데 그 눈이 신기할 정도로 강자를 알아낸다. 그리고 쳐다본다.

이 자리에 있는 네 사람 중에서 최강자는 단연 촌장이다. 그러니 촌장을 쳐다본다.

만약 촌장이 없다면…… 혈오는 증평주와 녹천주 중 한 사람을 쳐다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상대보다 강할 것임은 자명하다. 눈길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인정하지 못하겠지만.

혈오는 또 다른 특징도 지녔다.

울지 않는다!

그 날 이후, 태어난 날 이후에 울어본 적이 없다.

보통 아이들은 운다. 배가 고파도 울고, 대소변을 지려도 울고…… 조그만 불편만 생겨도 운다. 하지만 혈오는 울지 않는다. 배가 고파도, 대소변을 지려도 울지 않는다.

이 두 가지 색다른 특징은 혈오를 한낱 갓난아기가 아니라 악마의 화신으로 여기게 만들어준다.

촌장이 말했다.

“자네 의견부터 듣지.”

촌장의 눈길이 석화선생에게 향했다.

“신체적인 면에서…… 아이입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조금도 없습니다.”

석화선생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의술적인 판단에서, 인간의 신체적인 면에서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외형적인 면이 똑같다.

혈오는 손이 두 개, 발이 두 개다. 눈도 두 개, 귀도 두 개, 코와 입이 하나다.

기형적인 면은 티끌만치도 발견할 수 없다.

체내에 대한 조사 결과, 동일한 판단을 얻었다. 혈오는 보통 아이들과 차이점이 없다.

혈오의 피는 보통 인간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심장, 간, 폐, 창자 등등 내부 장기들의 크기나 움직임을 면밀히 내관한 결과다.

당연한 일이다. 혈오는 인간이다. 그리고 다르지 않다.

촌장이 여전히 자신만 쳐다보고 있는 혈오를 쳐다보며 침중한 음성으로 물었다.

“아이를 점검하는 동안 이상한 점은 느끼지 못했나?”

“못했습니다.”

“조금도?”

“네. 조금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감각적인 면, 느낌적인 면에서도 이상이 없었나요?”

증평주가 답답한 듯 되물었다.

촌장이 물은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느낌상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는가?

석화선생은 느끼지 못했다고 답했다.

헌데…… 어찌 그런 대답이 나올 수 있나? 최강자를 단숨에 알아보고, 전혀 울지 않는 아이가 어떻게 보통 갓난아기와 똑같을 수 있단 말인가.

석화선생이 증평주를 쳐다보며 확언하듯 또박또박 말했다.

“전혀, 전혀 이상이 없었습니다. 어떤 점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혈오가 어떻게 해서 최강자를 알아보고, 왜 울지 않는지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은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보통 아이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는 점은 확신합니다.”

“이상한데 이상하지 않다…….”

녹천주가 혈오를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사실 이런 말은 석화선생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들 또한 석화선생이 말하기 전에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었다.

혈오를 관찰한 것은 석화선생뿐만이 아니다. 의술을 아는 사람이 석화선생만이 아니다. 녹천주나 증평주도 몇 번에 걸쳐서 혈오를 관찰했다.

심맥을 깊게 짚어봤다.

피를 뽑아서 혈액응고 상태를 지켜봤다. 다른 약재들과 혼합해서 변화하는 모습도 봤다.

온갖 검사를 다 했다.

석화선생도 했고, 증평도 했고, 녹천도 했다.

그들은 모두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혈오는 보통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물론 신체적인 면에 국한해서.

하지만 혈오는 분명히 다르다.

무엇이라고 꼭 짚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다르다.

“다르지 않다…….”

촌장이 중얼거렸다.

혈오가 다르다는 점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의원이 진맥을 해보지 않아도, 혈오를 일견(一見)하기만 해도 혈오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은 단박에 느낀다.

다르지 않으면서 다르다.

촌장이 말했다.

“시작하지.”

녹천주가 양손으로 혈오의 오른발을 움켜잡았다.

두 손으로 작은 발을 감싸듯이…… 하지만 양손 엄지손가락은 정확하게 용천혈(湧泉穴)을 짚는다.

증편주는 왼발을 감싸 쥐었다.

촌장은 혈오의 머리 위에 앉았다.

그러자 혈오가 촌장을 쳐다보기 위해 눈을 위로 치켜떴다.

갓난아기의 눈동자에서 검은 동자가 사라졌다. 눈 전체에 흰자위만 남아서 요악하게 번들거린다.

머리 위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려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겠지만…… 마치 저승의 악귀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공연히 등줄기가 섬뜩해진다.

촌장은 두 손을 내밀어 혈오의 정수리를 감싸 쥐었다.

녹천주와 증평주처럼 손바닥으로는 머리를 감싸 쥐고, 엄지손가락만 백회혈(百會穴)에 살짝 댔다.

혈오는 울지 않는다. 촌장만 쳐다본다.

촌장이 말했다.

“시작하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녹천주와 증평주가 진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혈오의 작은 발이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음과 양, 각기 다른 두 종류의 진기가 용천혈로 스며든다.

츠으으읏!

석화선생은 두 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진기를 조심스럽게 지켜봤다.

‘지금!’

석화선생의 눈이 저절로 부릅떠졌다.

두 다리를 타고 올라간 음과 양의 진기가 회음혈(會陰穴)로 모인다. 충돌한다!

꽈앙!

그들 네 사람은 소리 없는 격돌음을 들었다.

두 진기가 부딪치는 힘은 매우 강렬하다. 두 사람이 쏟아 넣는 진기는 매우 강력하다. 어른이라고 해도 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강한 진기가 밀려간다.

아주 강한 두 종류의 진기가 갓난아기의 몸속에서 충돌했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아이는 즉사한다. 내부의 격탕을 견디지 못하고 오장육부가 터져서 죽는다.

혈오는 조용했다.

두 사람의 진기가 격돌했는데, 분명히 강한 충돌을 일으켰는데…… 두 가닥의 진기가 마치 거대한 바다에 조약돌을 던진 듯 작은 풍랑만 일으킨 채 소멸되었다.

더 이상 진기를 읽을 수 없다.

회음혈을 통과한 진기는 이미 그들의 것이 아니다. 혈오의 진기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두 사람은 계속해서 진기를 불어넣었다.

“시작하겠네.”

촌장이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석화선생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너무 긴장되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츠으으으읏!

촌장의 진기가 혈오의 머리에, 백회혈에 스며든다.

팟!

석화선생은 아주 강렬한 빛을 봤다.

그 빛은 너무 밝아서 두 눈을 뜨고 지켜볼 수 없었다. 너무 빨리 스쳐 지나가서 착각이 아니었나 싶다.

이것이 촌장의 진기다. 촌장의 무공이다. 순간,

꽈르르르릉!

혈오가 강렬한 진동을 느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촌장의 진기는 벼락이 되어서 터져나갔다. 혈오를 머리에서부터 짓뭉개 갔다. 그리고 한순간,

꽈앙!

한 가닥 번갯불이, 벼락이 혈오의 몸을 강타했다.

꽈앙! 꽝! 꽝! 꽝!

벼락은 연속해서 터졌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증평주와 녹천주의 진기가 다시 되살아났다.

회음혈에서 사라진 진기가 다시 보인다.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어느 경맥을 통과하고 있는지 감지된다. 잃어버린 진기를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조율까지 가능하다.

강력한 양강의 진기가 전신을 휘돈다.

얼음처럼 차디찬 진기가 전신 곳곳을 누빈다.

혈오가 용천혈에서 밀려온 진기를 상대하는 동안 촌장의 진기가 금계를 깨트려버렸다.

이제 혈오는 없다. 혈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능력한,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는 육신만 남았다.

츠으으읏!

촌장은 벼락같이 혈오의 전신을 훑었다.

백회혈에서 발바닥까지, 발끝까지, 손끝까지, 세맥(細脈)을 남김없이 휘저은 후에 다시 정수리로 돌아왔다.

츠으으으읏!

촌장은 내뿜었던 진기를 다시 거뒀다.

“후우!”

촌장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녹천주와 증평주도 이런 과정을 이어갔다.

진기를 불어내어 혈오의 전신을 한 바퀴 휘돈다. 구경한다. 그런 후에 다시 진기를 거둬들인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깊이 운기조식을 취한다.

혈오는 울지 않는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지도 않다는 듯 계속 촌장만 쳐다본다. 흰자위만 남은 눈으로 노려보듯이 쳐다본다.

“미안하지만…….”

석화선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혈오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혈오를 낳은 누미보다도 더 오랫동안 혈오를 돌보면서 지내왔다.

그는 혈오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이라는 것도 들었다.

그러나…… 중원에 대한 열망은 일말의 인정을 미련없이 날려버렸다.

‘미안하구나.’

석화선생은 혈오의 단전에 양손을 붙였다.

츠으으읏!

혈오의 단전으로 진기가 밀려들어 간다.

혈오의 경맥은 어린아이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넓고 크다. 촌장과 양천주가 충분할 정도로 경맥을 넓혀놓았기 때문에 쉽게 흘러들 수 있다.

석화선생은 세 사람이 그랬듯이 혈오의 전신을 구석구석 여행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갓난아기의 경맥은 맑고, 크고, 시원하다. 깨끗하고, 순수하다.

진기가 끝없이 밀려들어 간다. 그의 진기와 혈오의 잠력(潛力)이 뒤섞인다. 그리고 다시 그에게 돌아온다. 한 손에서는 진기가 밀려나가고, 다른 손에서는 돌아온다.

‘아!’

석화선생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진기가 변했다.

혈오의 몸을 여행한 진기가 회수되는 순간, 자신의 진기가 다시 돌아오는 순간, 경맥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 즉시 진기가 변했다는 것을 감지했다.

확실히 진기가 변했다.

무엇이라고 꼭 짚어서 말할 수는 없는데, 진기가 달라졌다.

얼음이었던 진기가 불길로 바뀌었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진기는 자신의 진기다. 혈오를 경험한 진기와 예전의 진기가 다르지 않다. 똑같이 자신의 진기다.

헌데 변했다.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히 변했다.

‘음!’

신음이 절로 쏟아진다.

이것이 기적인가. 기적이 일어나는가.

다시 돌아온 진기는 조금 불안한 듯하다. 심장이 떨린다. 몸이 후들후들 떨린다. 더불어서 마음도 불안해진다. 세상이 마구 뒤틀리는 듯한 환상도 일어난다.

운기조식 중에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들이다.

아니다. 운기가 불안할 때, 주화입마가 찾아올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는 즉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공조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촌장, 녹천주와 증평주…… 그들이 왜 진기를 회수하자마자 운기조식부터 취했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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