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93화 (9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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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九章 혈벽(血壁) (3)

빽빽한 밀림 속을 매우 빠르게 날아다니는 새!

공간을 누빔에 있어서 영혼까지 자유로운 새여야 한다. 일체의 걸림이 없이 움직여야 한다.

이런 움직임은…… 머릿속으로 이해했다고 해서 바로 시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련을 거듭해서 몸에 찰싹 달라붙어야 비로소 펼칠 수 있다.

모르는 사람은 절정무공을 찾아서 헤맨다.

여기서 절정무공이라고 함은 대체로 비급을 의미한다. 절정무공이 수록된 비급!

그들은 비급만 탐독하면 단박에 절정무인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도 어느 정도는 맞다.

마공관의 무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강함을 준다. 이름없는 삼류 무인을 일류무인으로 탈바꿈시켜 놓는다. 인정한다. 비급은 그 정도의 힘을 준다.

혈루마옥의 무공은 체득의 무공이다.

매우 간단하다. 무리도 간단하고, 초식도 매우 쉽다. 어느 정도 기본공을 갖춘 사람이 배우려고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도 배울 수 있다.

이해는 어린아이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혈루마옥 무공을 정통으로 펼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혈루마옥의 무공이 강한 것은 이해를 넘어서 체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혈루마옥은 절곡이다.

빠져나갈 길이 없는, 사방이 꽉 막힌 곳에서 세월이 흘러가기만 기다리며 산다.

그들은 할 일이 없다.

솔직히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혈루마옥 사람들이 특이해서가 아니다. 누구라도, 세상 사람들도 혈루마옥 사람들만큼 할 일이 없다면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오직 무공에만 전념할 게다.

혈루마옥의 무공은 그래서 강하다.

무공 자체가 강한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보다 훨씬 오랫동안, 깊이 있게, 주의를 기울여서, 오직 무공을 수련한다는 일심만으로 무공을 수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 낸 무공이 체득의 무공이다.

체득의 무공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수련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수련한 시간과 비례해서 강해진다. 오성(悟性)도 한몫을 하지만 수련시간이 절대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 월등히 강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누가 더 열심히 수련했는가!

거기에 녹천은 효율이라는 부분을 추가했다.

같은 노력이라면 조금 더 깊이, 더 빨리 성취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가? 일(一)의 노력을 기울여서 이삼(二三)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그래서 찾아냈다.

파월역금공(播越力金功)!

엄밀히 말하면 파월역금공은 녹천의 무공이 아니다. 혈루마옥의 무공도 아니다. 이는 화천의 무공이다. 아니, 화천을 비롯한 몇몇 무인들만의 비밀스러운 연공이다.

화천은 같은 또래의 다른 젊은이들보다 월등히 강하다. 장년(長年)보다도 강하다.

파월역금공 덕분이다.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최대 성과는 무아의 상태에서 나온다.

무아지경에서 행하는 수련이야말로 최대의 성과를 불러온다. 하나를 수련하면, 둘 혹은 셋의 효과가 일어난다. 그리고 그 체험들이 몸에 바싹 달라붙는다.

파월역금공은 바로 이 무아의 상태, 나를 잊어버리고, 오직 살아서 움직이는 상태로 만들어준다.

누구라도 호적수와 싸우게 되면 긴장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 두려움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허나 파월역금공을 펼치면, 무아지경이 되면 말끔하게 잊힌다. 정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무념의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오직 체득한 무공만 펼치는 순간을 맞이한다.

화천은 무공을 수련할 때부터 이 파월역금공을 사용해 왔다.

혈루마옥에는 이런 공부가 또 있다.

중평에도 있다. 촌장도 이런 수법을 가지고 있다.

촌장이 가진 수법은 파월역금공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러니 그가 촌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파월역금공은 이런 부분에서 겨우 삼위 내지 사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중원에서는 역시 가공할 무공이 된다. 전심(全心)의 상태에서 싸우기 때문에.

츠으으으읏!

화천이 파월역금공을 일으켰다.

일시, 세상이 정지한다.

세상이 적막 속에 휘감긴다.

그는 텅 빈 세상에 단 두 명, 자신과 검왕만 놓았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두 사람만 남았다.

검왕이 펼칠 무공은 혈영마공 중에 인사다.

끈끈함, 늪의 음침함, 아교의 끈적거림…….

이런 공부를 깨는 방법은 매우 쉽다. 막강한 힘으로 단번에 잘라내는 것이다.

아교가 달라붙을 틈이 없을 정도로 빠르게, 어떤 끈끈함도 붙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잘라버린다. 눈에 보이지 않을 빠름과 막강한 힘 앞에서는 끈끈함도 달라붙지 못한다.

츠으으윽!

나뭇가지에 한음천강기를 실었다.

파월역금공을 기반으로 한음천강기의 한기가 풀풀 피어난다.

두 발은 월음천라보를 밟는다. 기름 위를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당을 떠다닌다. 한쪽 발이 땅을 밟기 전에 다른 발이 착지할 곳을 찾아서 떠난다.

두 발이 함께 땅을 딛고 있는 순간이 없다. 땅을 밟고 있는 발도 찰나 밖에 멈추어 있지 않는다. 착지하고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순간이라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당연히 월음천라보를 밟으면 진기소모가 극심하다. 항상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우 빠르고 현란해서 상대가 종적을 찾지 못한다는 장점이 생긴다.

형체가 눈앞에 환히 보이는데, 검으로 찔러낼 존재는 없는 것과 같다. 있기는 있는데 공격하거나 베어낼 존재는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된다.

마치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린다.

극강의 검공으로는 방금 전에 펼친 와살검법을 사용한다.

사실 그는 월음천라보로 수비를 삼고, 와살검법으로 공격을 취하는 형태를 좋아한다.

이런 검공으로 바위를 잘라보았다. 어른 서너 명이 빙 둘러 감아야 간신히 감길 커다란 고목도 베어봤다. 그것도 단숨에, 정확히 두 쪽으로 쪼개냈다.

파파파파팟!

두 발이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검왕을 향해 쏘아져 갔다.

파앙!

검왕의 무복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역시 인사!’

같은 수법에 두 번 당한 무인이 어디 있는가. 인사는 알고도 당한다는 수법이지만, 그것은 중원 무인들에게나 해당하는 일,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즉참!’

단칼에 베어낸다. 일검에 싹둑 잘라낸다.

쒜에에에엑!

나뭇가지에서 거센 파공음을 일으켰다.

순간, 검왕의 검도 꿈틀거렸다. 검 끝이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린다 싶었다.

검왕이 들고 있는 검은 원래 그의 검이다.

그의 검은 조용, 무심함을 근거로 한다. 한음천강기는 음(陰)의 정화, 차디찬 얼음 속에서 살아온 검은 철의 기운을 놓아버리고 냉기를 실었다.

그래서 한검은 늘 고요하다.

헌데…… 그 검이 매우 간사하게 날름거린다. 요사하게 꿈틀거린다. 검첨(劍尖)이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두 눈을 현혹한다. 진동이 일어나 마구 떤다.

한순간, 화천의 머릿속에 천축(天竺) 무공인 요마랍기(幺麽磖氣)가 떠올랐다.

요마랍기를 수련하면 전신에서 끊임없는 파장이 일어난다.

작은 떨림이라고나 할까? 벌새의 날갯짓처럼 작은 떨림이 일어나는 가운데…… 그러고 보니 그가 펼쳐낸 월음천라보와 거의 흡사한 효력을 일으킨다.

있는 듯 없는 듯…… 실체가 눈에 보이는데도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다.

월음천라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월음천라보는 몸을 가려주는데, 요마랍기는 검을 가려준다는 것이다. 공격 무기를 정확하게 볼 수 없게끔 만든다.

‘설마!’

요마랍기는 마공관의 무학이 아니다.

검왕이 천축 무공까지 섭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마공관 무학을 수련한 것만도 적벽검문 입장에서는 파문당해 마땅한 일이거늘, 천축이라니.

쒜에에엑!

화천은 곧 다시 무아지경이 되어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검왕이 어떤 무공을 펼치든…… 그를 단숨에 무너트린다. 일검양단의 기세로 검세를 떨친다.

파라라라락!

검왕의 검도 흔들렸다. 그리고 그를 향해 쏘아져 왔다.

까앙!

나뭇가지와 검이 부딪쳤는데 쇠와 쇠가 격돌하는 듯한 소리를 울린다. 허공에서 벼락 치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거센 경풍이 일어난다.

“역시 요마랍기인가?”

화천이 중얼거렸다.

그는 마주쳐오는 자신의 검, 검왕이 들고 있는 독사처럼 날름거리는 검을 피해서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검왕의 손목을 노리고 쏘아갔다.

형체를 보지 못하는 검이라면 보지 않는다. 대신 뚜렷하게 보이는 부분, 손목을 절단한다. 그 후, 연이어 초식을 펼쳐내서 검왕을 벤다. 잘라버린다.

그런데…… 그가 두드린 것은 손목이 아니다. 정확하게 검배(劍背)를 두들겼다. 검신에서 가장 강한 곳을.

손목을 잘라내는 대신에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내공도 검왕에게 밀렸다.

파월역금공으로 집중을 한 내공, 전신 내공을 일점에 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내공이 검왕에게 말렸다.

검왕의 내공이 그렇게 강했나?

아니다. 검왕도 파월역금공 같은 수단을 구사했다. 그것은 요마랍기, 요마랍기의 어느 부분이 일점 집중과 같은 효능을 이끌어내면서 그를 밀쳐냈다.

완벽하게 졌다.

검왕이 들고 있던 검을 화천에게 던지며 말했다.

“마옥으로 돌아가라.”

“뭐라고?”

“죽이지 않는다고 했잖나. 혈오의 아비를 죽일 수는 없는 일…… 그건 애당초 불가능한 것.”

검왕이 우울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후후!”

화천이 툴툴거리면서 웃었다.

혈루마옥으로부터, 촌장으로부터 명을 받았다. 중원을 짓뭉개라는 절대 명령을 받았다. 혈루마옥이 정식으로 무림에 나갈 테니 그동안 기반을 마련하라고.

중원에 대한 선전포고 역할이다.

그는 그 일을 충실히 행할 생각이었다.

헌데 초반부터 막혔다. 자신이 검왕이라는 하수에게 무너졌다. 검왕에게 질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그런 하찮은 자에게 무너졌다.

문제는 자신이 패배했다는 것만이 아니다.

이 순간 다른 자들은…… 아마 같이 혈루마옥을 나선 다른 자들은 피를 흘리면서 쓰러지고 있을 것이다.

검왕이 한 말은 사실로 이루어진다.

그가 자신을 가로막겠다고 했을 때, 그 말을 믿지 않았는데, 이제는 믿는다. 검왕은 그럼 말을 할 자격이 있다. 그만한 무공을 숨겨두고 있었다.

화천이 땅에 떨어진 검을 주워들며 말했다.

“하나만 묻자. 그때, 죽었나?”

“죽었다.”

“죽은 놈이 어떻게 살아났지?”

“혈천성.”

“혈천성?”

“중원의 무공은 환히 꿰뚫어보고 있는 줄 안다. 잘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

“아!”

화천은 검왕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탄사부터 터트렸다.

“혈천성주 진구량! 아! 아! 음혼차류환시사! 혈천성! 하하하! 음혼차류환시사!”

화천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검왕이 모험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모험이라는 말에 깃든 진의를 깨달았다.

검왕은 진실로 모험을 했다.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일…… 정상적으로 깨어날 수 없는 일, 아니 깨어난다는 사실 자체를 확신할 수 없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는 분명히 검왕을 죽였다.

당시 검왕은 조금도 움칫거리지 않았다. 떨린다거나 망설인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털끝만치라도 그런 느낌이 있었다면 당장 의심했을 터인데.

허면 검왕은 왜 모험을 하면서까지 죽어야만 했나.

누미! 혈오!

그에게 누미를 건네주기 위해서였다. 마음껏 누미를 취하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렇다면 혈오! 혈오도 음모다.

검왕이 자신 스스로를 죽음에 몰아넣으면서까지 누미를 내준 것이라면…… 혈오가 탄생한 것이 음모의 한 부분이라면…… 무엇인가, 문제가!

화천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검왕이 다시 보인다. 그가 매우 음침하고 무섭게 느껴진다.

검왕이 뒤돌아서며 말했다.

“혈루마옥으로 돌아가라. 돌아가지 않아도 무방하나, 네게 더 이상의 자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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