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90화 (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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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八章 태동(胎動) (5)

‘고작 열두 명…….’

그 중에 몇 명을 벨 것인가, 말 것인가?

‘말자. 죽일 놈들은 얼마든지 있어.’

그는 허리에 찬 한검(寒劍)을 톡톡 건드렸다. 피가 몹시 그립겠지만 조금만 참으라는 듯.

무인 열두 명, 그리고 분타 한 개.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쏟아져 내릴 무수한 주검에 비하면 아주 작은 희생일 뿐이다.

그래도 그나마 개방 분타를 공격하는 것은 제법 짭짤하게 손맛을 즐길 수 있다.

그들은 이백여 명에 이른다.

개방 무공은 중원에서도 정통이 나 있다. 걸개 개개인의 무공은 보잘것없어도, 그들이 합심하여 펼치는 타구진은 초고수도 방심하지 못한다.

나루터까지 가는 길목에서 유일하게 흥미 있는 곳이다.

헌데 개방 분타를 점찍은 놈이 있다.

‘새끼!’

그를 생각하지 눈가에 살기가 감돈다.

놈은 녹천오수(綠天五手) 중에 일인이다. 화천이 제일 아끼는 벗이자 수하다.

놈은 피에 굶주린 혈귀다. 혈루마옥에서부터 그랬다. 곱상한 얼굴을 보고 방심하면 큰코다친다. 놈의 뱃속에는 제 어미도 고개를 돌려버릴 정도로 크나큰 악심(惡心)이 숨겨져 있다. 거기에 녹천오수로 불릴 만큼 무공도 강하다.

놈은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다면 서슴없이 검을 뽑을 기세였다.

놈이 무섭거나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중원 초출에 괜히 충돌을 일으킬 필요가 있나.

첫 번째 먹이는 놈에게 양보한다.

개방 분타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흥미가 없다. 피를 보고 싶은 마음까지 밥맛 떨어지듯 뚝 떨어져 버린다.

그 열두 놈 중에 도대체 제대로 된 놈이 한 놈이라도 있어야 말이지. 칼만 들었다뿐이지 일초반식 상대라도 되어야 검을 뽑든가 말든가 하지.

잔인하게 죽여서 혈루마옥의 출현을 알리라고?

죽이는 것도 어느 정도 저항을 하는 놈이라야 죽일 맛이 나는 것이다.

철모르는 어린아이를 죽이는 것과 똑같은 짓을 하는 게 뭐 흥미 있겠나. 길가는 아이에게 칼질하는 것과 그들을 찾아가 죽이는 것이 똑같다고 느껴진다.

화천은 내기를 걸었지만, 그 내기에 응할 마음이 없다.

‘이것도 좋군.’

그는 중원의 맑은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켰다.

중원의 공기에서는 단맛이 난다.

혈루마옥의 공기는 칼로 폐부를 찌르는 듯 날카로운데, 중원의 공기에서는 무엇인가 풋풋한 벼 냄새? 향기로운 냄새? 정겨운 냄새가 섞여 있다.

공기 맛이 아주 좋다.

이 공기를 음미하면서 천천히 걷는다.

그냥 어기적어기적 걸어서 여강 나루터에 도착한다.

강을 건너면 많은 피와 죽음이 기다린다. 죽일 놈들은 천지에 널려있다.

열두 놈? 누군가가 죽이겠지.

어떤 놈이 재수 없게도 자신 앞에 나타나면 그때는 관절도 풀어볼 겸 가볍게 한 수 쓰면 되고.

서두를 이유가 없다.

“아주 좋아.”

그는 맑은 공기와 수려한 중원 풍경을 즐겼다.

험한 산비탈과 빽빽하게 들어찬 수림만 쳐다보다가 확 트인 하늘을 보고, 너른 들판을 직접 두 발로 걷고 있으니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곳이 정말 중원인가? 혈루마옥을 벗어나서 중원에 나왔나? 꿈은 아니지? 헌데.

“누구냐?”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인기척이 없다!’

생명체가 감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피부로 감지하지 못하는 것을 감지한다.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다.

누군가 있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쪽 사람은 아니고…… 호오! 놀랍군. 중원에 이런 고수가 있었나? 솔직히 여강까지는 아무 방해 없이 걸을 줄 알았는데. 그만하면 됐다. 충분히 놀랐어.”

“…….”

상대는 대답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분명히 있는데, 개미 기어가는 소리조차 흘리지 않는다.

스릉!

그는 두말 않고 검을 뽑았다.

상대는 화천이 말한 열두 명 중에 한 명이 아니다. 직감이지만 분명히 그렇다.

이자는 고수다.

자신도 상대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만 했다. 실제로 존재를 찾아낸 것은 아니다. 이런 자에게 밀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긴장할 만한 고수인 것은 틀림없다.

아니다. 긴장감은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흥미롭다.

중원에 이런 고수가 있다니!

그렇다면 자신은 행운아다. 무림에 첫 출도하자마자 이런 자를 죽일 수 있었으니…… 검이 운이 좋은 건가? 여강을 지날 때까지 피 맛을 보지 못할 줄 알았더니.

스읏!

진기를 일으켜 검에 주입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차디찬 한기가 하늘을 가린다. 땅을 덮는다. 십면밀벽(十面密壁)이라. 십방(十方)에 바늘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촘촘한 진기의 그물이 깔린다.

녹천의 절기, 한음천강기가 줄줄 뿜어져 나간다.

한음천강기에는 눈이 달려있다.

진기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건드리게 되면 즉각 존재를 눈치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기, 단지 차갑기만 한 진기가 쭉쭉 뻗어 나가며 사방을 살핀다.

툭!

드디어 한음천강기가 땅 위 한 부분을 건드렸다.

나무, 돌, 흙…… 모두 딱딱하다. 하지만 방금 건드린 곳은 딱딱하지 않다. 마치 금방 쪄낸 떡처럼 물렁거린다. 따뜻한 온기마저 감지된다.

쓔각!

그는 즉각 검을 떨쳐냈다.

한음천강기가 실린 와살검법(渦殺劍法)이다.

검신이 회오리가 일어나듯 빙빙 휘돈다. 진기가 와류를 타고 줄기줄기 뻗어 나간다.

화살검법은 강검(剛劍)이다.

어떤 방패도 와살검법을 견디지 못한다. 철벽도 무너진다. 진기의 폭증을 견뎌낼 물체는 없다.

화살검법은 극강의 검초로 혈루마옥 무인들도 감히 방심하지 못한다. 어설프게 검초를 떨쳐내는 것이 아니라 진공(眞功)을 전력으로 펼쳐내는 게다.

슈각!

와살검법이 땅 위 한 부분을 쳤다.

팟!

피가 튄다. 빨간 피가 허공을 솟구친다.

‘내가 너무 긴장했나? 너무 쉬운데?’

그는 붉게 솟구치는 피 무리를 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적을 죽였다는 희열보다 실망감이 앞섰다. 헌데,

“웃!”

그는 검을 회수하다 말고 갑자기 깜짝 놀라 경악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급히 신형을 비틀었다.

비룡번신(飛龍翻身)!

그의 신형이 허공에서 네 번이나 방향을 비틀었다.

슈가가가각!

그 순간, 장검 한 자루가 그의 몸을 스치며 흘러갔다.

‘웃!’

이번에는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짜릿한 전율이 흐른다.

그만큼 상대의 검기는 날카롭다. 검이 살갗을 스쳐 지나가면서 솜털까지 곤두세운다.

적은 있었다. 자신이 검을 쳐낸 자리에 분명히 있었다. 그는 분명히 검을 맞았고, 피를 흘렸다. 그런데 죽지 않고 되살아나서 다시 검을 쏟아냈다.

믿지 못할 일이지만 사실이다.

슈웃!

그는 기민하게 반응하며 땅에 내려섰다.

상대는 따라붙지 않았다. 대체로 기선을 잡으면 이차, 삼차 공격을 이어가는 법이다. 허나 상대는 기습으로 만족했는데 두 번째 검을 긋지 않았다.

‘당할…… 뻔했다!’

믿지 못할 일이다. 자신이 오히려 당할 뻔하다니. 실로 초감각적인 경계심이 아니었다면, 약간이라도 마음이 느슨했다면 여지없이 패할 뻔했다.

이자, 누군가!

그는 자신이 공격한 곳을 쳐다봤다. 그리고 어처구니없어서 피식 웃어버렸다.

그곳에는 개 한 마리가 죽어있다.

놈은 개로 자신을 유인했다. 자신이 개를 죽이는 동안 진짜 살초를 펼쳐왔다.

‘겨우 개로…….’

아니다. 그는 ‘겨우’라는 생각을 하다 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갑자기 소름이 쫙 끼친다. 두려워서 떠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너무 치밀해서 소름이 끼친 게다.

상대는 개를 미리 준비해왔다.

개가 짖지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거나 기절시켜놓거나…… 어떤 조치를 취했든 산 채로 준비해왔다.

한음천강기는 온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당연히 개를 사람인 줄 알았다. 아주 큰 착각이지만 지금 같은 경우에는…… 거기에 개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짐작했겠나. 생명체가 있으니 사람이겠거니 했지.

이 사실은 세 가지를 말해준다.

첫째, 놈은 한음천강기를 안다.

한음천강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진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가다가 온기에 닿을 것을 예상한 게다.

놈은 이런 사실을 예견하고 개를 준비한 것이다.

두 번째, 놈은 그곳에 숨어있었다.

숨어있었다…… 숨어있었는데 발견하지 못했다. 한음천강기가 개의 온기에 속기는 했지만…… 그래도 놈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놈은 자신이 일검을 펼쳐내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놈의 은신술이 기가 막힐 정도로 절묘하다.

셋째, 놈의 일격이 매우 매서웠다.

월음천라보(月陰天羅步)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땅 위에 몸을 눕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놈은 자신 못지않은 극강의 고수다.

누군가! 누구이기에 감히 녹천오수 중에 한 명인 자신을 이토록 궁지에 몰아넣는가.

그는 아직도 놈을 찾지 못했다.

스읏!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놈이 이곳에 있다. 찾지 못할 뿐.

그가 말했다.

“네게 감사하고 싶다. 할 일 없이 중원을 소요할 줄 알았는데, 오늘 제대로 힘을 쓰게 해주네. 후후! 아주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검을 써주마.”

파파파파팟!

다시 한음천강기를 쏟아낸다.

진기가 오 장쯤 밀려갔을까? 이번에도 한음천강기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감지해냈다.

허나 이번에는 방금 전처럼 즉각 쳐나가지 않는다. 대신 한음천강기를 밀집시켜서 탐지해낸 생명체를 살핀다.

파팟! 파파팟! 파파파팟!

크기와 길이가 단번에 읽힌다.

역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다.

‘개를 두 마리나?’

그는 미간을 깊이 찡그렸다.

상대는 같은 수법을 두 번 연속해서 사용하고 있다.

자신이 바보도 아니고…… 같은 수에 두 번씩이나 넘어갈 줄 알았던 것인가?

아니다. 상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한음천강기로 개를 탐지해주기만 바랐다.

적은 개를 두 마리씩이나 준비했다.

헌데 방금 전에는 한 마리밖에 탐지하지 못했다. 그가 쳐 죽인 개…… 그 개를 탐지하는 동안, 방금 탐지한 이 개는…… 온기를 잃은 상태로 누워있었다.

놈은 너무도 정확하게 한음천강기를 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놈은 왜 개를 시간차로…….

‘위험!’

파앗! 파파파팟!

그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즉시 신형을 솟구쳤다.

월음천라보다 부드럽게 펼쳐졌다. 아니, 현란하게…… 아니다. 매우 빠르게…… 아니, 아니, 환영처럼…… 어떤 형태의 신법인지 종잡을 수 없는 신법이 전개되었다. 순간,

파파파파팟!

방금 전에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뿌연 흙먼지가 피어났다.

역시 놈이다. 놈이 개를 이용해서 선제적으로 공격을 가해오고 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상대의 공격 형태를 살폈다.

역시 감지되지 않는다. 신형도 보이지 않는다. 완벽하게 숨어있는 상태에서 공격한다.

이토록 완벽한 은신술이라니!

‘유지자문!’

그는 즉각 한 곳을 떠올렸다.

그렇다. 유자지문이 아니면 이처럼, 유령처럼, 귀신처럼 움직일 수 없다. 이런 은신술은 오직 유지자문만 가능하다. 유지자문만이 혈루마옥의 무공을 짐작한다.

“후후! 상황이 조금 안 좋군.”

그는 입가에 잔소를 베어물었다.

상황이 안 좋지만…… 그럴수록 싸울 맛은 더 난다. 더 재미있어진다.

츠으으읏!

진기를 검에 운집했다.

상대가 유지자문이라는 것을 짐작한 이상, 다음 살초는 조금 더 강력해야 한다. 어떤 은신술로도 피할 수 없는 강검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검공을 펼칠 수 있다.

츠읏!

검에서 수증기처럼 뿌연 연기가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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