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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84화 (8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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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七章 탄생(誕生) (4)

“으앙! 으아아앙!”

아기가 탄생했다.

우렁찬 울음소리가 모옥 밖으로 흘러나온다. 세상에 처음으로 일성을 토해낸다.

혈오도 탄생의 순간만큼은 어느 아이와 다를 바 없다. 탯줄을 자르고, 엉덩이를 치니 울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입안에 물고 있던 오물을 질질 흘린다.

“아, 예쁘네.”

혈오를 받아든 산모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혈오라고 해서 피부색이 다른 게 아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도 아니다. 눈이 세 개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보통 아이들과 똑같다.

“꼬추야.”

산모가 누미에게 말했다.

“수고했네.”

석화선생도 누미의 손을 쥐며 말했다.

누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혈오가…… 사정을 봐줬다. 어미를 위해서 세상에 태어나주었다. 자진하려던 생각을 돌리고, 목에 감은 탯줄을 풀고, 스스로 탄생했다.

이 순간, 혈루마옥은 기적을 맞이했다.

혈오가 태어났다는 것은 혈루마옥 최대의 기적이다. 산이 사라지고, 바다가 마르는 것처럼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 단번에, 일순간에 일어났다.

혈오가 탄생했다는 소식은 울음을 터트리기도 전에 촌장에게 전해졌을 게다.

촌장은 소식을 기다린다. 그래서 소식을 접한 후에야 안다.

그런 점에서 녹천과 증평은 한발 빠르다. 그들은 모옥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촌장보다도 더 빨리 혈오의 탄생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은 바쁘게 움직일 게다.

혈오는 그들을 잠시도 지체하지 못하게 만든다. 지금 당장 혈오를 이용해서 혈루마옥의 저주를 벗겨낼 생각일 게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석화선생이 누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아이를 보겠나?”

누미는 석화선생을 쳐다봤다.

어미가 아이를 보는 것은 당연하다. 너무도 당연해서 물을 필요가 없다.

헌데도 석화선생은 아이를 보겠냐고 묻는다.

석화선생은 그녀의 손을 힘주어 잡는다. 부드럽게 잡고 있다가 갑자기 꽉 쥔다.

아이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있다.

누미는 석화선생의 뜻을 알아챘다.

앞으로 아이의 얼굴을 볼 기회가 없다. 이대로 헤어지면 끝이다. 혈루마옥이 아이를 어떻게 이용할지는 알지 못하나, 두 번 다시 혈오와 만나는 일은 없다.

그럴 바에는 아예 처음부터 보지 않는 게 어떤가. 아이를 보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생길 터, 아니면 모성애가 발동할 터, 아예 처음부터 감정을 끊는 게 어떤가.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살래살래 흔들었다.

“정말 안 봐도 괜찮겠는가?”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석화선생은 큼지막한 금구(金甌) 안에 붉은색 향수(香水)를 쏟아부었다.

차아아아아앙!

향수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일어나는 것 같다.

향수의 향은 너무 상쾌해서 오히려 날카롭다는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석화선생은 붉은색 물을 금구에 가득 채웠다. 그때,

“그 아이가 혈오인가?”

석화선생의 등 뒤에서 나직한 음성이 울렸다.

‘웃!’

석화선생은 깜짝 놀랐다.

그의 무공은 혈루마옥에서도 상위에 속한다. 헌데 등 뒤에서 음성이 들릴 때까지 그는 어떠한 기척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가 깜짝 놀라서 뒤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가 급히 포권을 취했다.

촌장, 녹천주, 증평주, 그리고 수신호위들…… 어림으로 십여 명쯤 서 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서 있다.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태연한 신색들이다. 그런데도 미세한 기척조차 감지하지 못했다. 정말 새카맣게 몰랐다.

이들의 무공은 석화선생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석화선생뿐만이 아니다. 혈루마옥에 있는 그 누구와도 차원이 다르다.

이들은 십여 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혈루마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구 할에 이른다. 아니, 이들이 혈루마옥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화선생이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경하드립니다. 혈오가 탄생했습니다.”

석화선생의 음성은 격동으로 덜덜 떨려 나왔다.

“그렇군.”

촌장은 동요 없는 눈빛으로 어느 아이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아이를 바라왔다.

“금구에 넣을 참이었군.”

“네. 바로 시전해야 합니다.”

“하던 일 하시게.”

촌장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혈오의 탄생은 혈루마옥의 숙원이다. 오랜 기다림이다. 하늘을 무너트리고서라도 얻고 싶은 기연이다.

그런 기적이 눈앞에서 벌어졌건만, 촌장은 담담하기만 하다.

촌장만 담담한 것이 아니다. 증평주, 녹천주…… 모두들 담담하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격동이 치밀고 있을 터인데, 겉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는 듯 태연하다.

이들의 담담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이들은 혈오를 믿지 못하고 있다.

이 아이가 진짜 혈오라는 것을 믿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정확하게 알고 싶어한다. 진짜 혈오인지 아닌지 직접 확인하고자 한다.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화천은 편법을 써서 혈오를 잉태시켰다.

혈오는 혈루마옥의 지기(地氣)를 받으면서 잉태되어야 한다. 헌데 마옥 밖에서 착상했다.

혈오의 잉태과정에 마(魔)가 끼었다.

두 번째로 어미는 일심으로 혈오의 탄생에 집중해야 한다. 올곧이 혈오만 생각해야 한다. 헌데 누미는 그렇지 못했다. 분노가 가슴 가득히 자리했다.

한 마디로 부정 탄 아이다.

이런 연유 때문에 화천이 혈오를 잉태했다고 했을 때도 반기지 않은 것이다. 화천을 뇌옥에 가두고 죄를 엄중하게 물은 것이다. 그렇지만 않았다면, 정상적인 관계로 혈오를 잉태했다면 혈루마옥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축복했을 터이다.

화천이 편법을 쓴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 너무 속이 빤히 보여서 생각할 것도 없는 이유이지만…….

셋째, 혈오가 자진하지 않고 탄생했다.

혈오의 탄생을 축하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중적인 마음이 든다.

혈오의 결심을 누가 바꿀 수 있단 말인가.

혈오는 한 번 결심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죽으려고 했다가 탄생한 적이 없다.

그래서 탄생한 아이가 혈오라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

어쨌든 화천은 누미라는 보물을 가져왔다.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탄생시킨다.

이번에 탄생한 아이가 혈오가 아니라면 다음에는 진정한 혈오를 탄생시킨다.

혈오를 지켜보는 눈에 기대와 아쉬움이 섞여 있다.

석화선생은 아이를 들어서 붉은색 향수가 찰랑거리는 금구 안에 눕혔다.

“까르르르르!”

혈오가 기분 좋은 듯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럴 수밖에…… 붉은색 향수는 혈각오(血角蜈)의 진액이다. 붉은 뿔을 가진 지네 수천 마리를 갈아서 만든 독액(毒液)이다. 하지만 혈오에게는 어미의 배 속처럼 편안하게 느껴질 게다.

석화 선생은 아이의 몸을 매미 날개처럼 얇은 금포로 덮었다. 그리고 돌아섰다.

“이제 나흘만 기다리면 됩니다.”

“흠…… 자네는 이 아이가 혈오라고 확신하는군.”

촌장이 혈오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확신합니다.”

석화선생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나흘은 금방 지나가지. 후후! 나흘…… 나흘만 기다려보면 자연히 알게 될 것.”

증평주가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아이가 진짜 혈오라면…… 붉은색 물, 혈각오의 진액은 말끔히 증발하고 없을 게다. 장정 수백 명을 일시에 죽일 수 있는 독액이 혈오의 피가 되고 골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

금포도 사라지고 없어야 한다.

금포는 아이의 피부가 된다.

체액이 빠져나가고 혈액이 빠져나가도 마르지 않는 피부를 제공한다. 그러니…… 아이는 언제나 지금처럼 탄력적인 피부를 가지게 된다.

아이는 죽어도 썩지 않는다.

목내이(木乃伊)가 될지언정 한 줌 부토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물론 혈오가 아니라면 어떤 것도 흡수하지 못한다. 혈각오의 진액과 미노송(黴老松)의 수액(樹液)은 혈오에게 특화되어 있다. 혈오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고, 혈오가 아니라면 한 줌도 빨아들일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혈오가 아니라면…… 아이는 녹아버린다.

아이가 혈오인지 아닌지는 단번에 파악된다.

그 상황은 나흘째 일어난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진액과 수액이 사라진다.

마지막 운명의 시간이다.

“잘 지켜보게.”

촌장이 혈오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감시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녀를 지켜보던 눈들이 일제히 거둬졌다. 대신 그들의 눈길은 혈오를 쫓는다.

혈오를 지켜보는 눈들이 족히 수십 쌍은 된다.

누미의 곁에는 시녀 한 명밖에 없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루 세 번 석화선생이 방문한다.

그는 그녀의 맥을 짚는다. 산후조리에 필요한 약들을 챙겨주고, 헛헛한 마음을 위로해 준다.

그가 유일한 방문객이다.

이제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는다.

‘자유야!’

그녀는 자신이 해방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이 찾아오지 않으면 섭섭한 법일 텐데…… 아니다. 때로는 반가울 때도 있다.

지금이 그렇다.

혈루마옥의 모든 눈들이 걷혀졌다.

그녀를 주시하는 사람은 없다. 촌장과 증평, 녹천 모두들 주시하지 않는다.

물론 완전히 자유롭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는 녹천과 증평, 양쪽의 무공을 모두 알고 있다.

그녀는 여전히 탐욕의 대상, 탈취의 대상이다. 양쪽 모두 손에 넣고 싶어하는 보물이다.

그럼에도 그녀를 자유롭게 내버려둔다.

뛰어봤자 벼룩,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탈출할 수 없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혈루마옥은 자신만만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을 것이다.

저들 중에는 그녀의 무공을 정심하게 꿰뚫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 틀림없이 있다. 고수 아닌 사람이 없는 이곳에서 그녀의 무공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녀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무공을 섭렵했지만, 급진전했지만…… 저들은 그 깊이를 정확하게 꿰뚫어 본다.

그럼에도 방치한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이다.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녀는 서둘지 않는다.

이제 겨우 아이를 낳았을 뿐이다. 아직도 산후조리를 끝내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적법하게 누워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서둘 필요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

한 사흘 정도만 조리라면 움직일 수 있고, 닷새나 엿새 정도만 조리하면 간단한 무공도 펼칠 수 있다.

급할 때는 아이를 낳자마자 움직인 사례도 많다.

여인은 급하면 무엇이든지 한다. 여인의 몸이 얼마나 많은 기적을 행했는지 아는가?

그래도 침착하게 행동한다. 서둘지 않는다. 굳이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으니, 완벽하게 조리를 한다. 몸을 완벽하게 만드는 데 집중한다.

그녀가 서둘지 않는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이곳에서 떠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떠나지 않는다.

이 생각은 혈루마옥 사람들의 판단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저들은 그녀가 한시바삐 이곳을 벗어나려고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틀린 생각이다.

자신을 이런 곳에 함부로 밀어 넣은 적벽검문, 용서하지 않는다.

여인을 이용했다. 여인의 정조를 한낱 자신들의 방패막이로 이용했다. 원하지 않는 사내에게 순결을 빼앗겼다. 원하지 않는 아이를 낳았다.

치욕적인 삶을 무려 백일이나 견뎠다.

아이를 가진 후는 따지지 않는다. 아이를 갖게 될 때까지의 과정, 결코 잊지 않는다.

그 원한, 반드시 갚는다.

이 일에 관계된 사람들…… 검왕, 화천…… 모두…… 호호호!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없다면 녹천, 증평을 이용한다. 어떤 힘이라도 빌린다. 몸뚱이로 촌장을 유혹해서라도 반드시 이 일에 관계한 자들을 멸살하리라.

다행히 자신에게는 복수를 할 만한 무공이 있다.

녹천과 증평의 무공을 모두 지녔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누미는 흰 이를 드러내며 요악하게 웃었다.

“호호호! 호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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