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80화 (8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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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六章 혈석(血石) (5)

차는 영약이 아니다. 극독이다.

아니, 아니다. 아직은 극독인지 영약인지 구분을 할 수 없다.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처음 겪어보는 것이라고 해서 극독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이독제독(以毒制毒)!

수선화가 극독이니 아마도 독으로써 독을 제거하려는 것일 게다.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른다.

진기로 불덩이를 달래본다. 꾹 억눌러 본다. 그러나 진기는 큰 힘을 쓰지 못한다. 불길이 타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불길이 진기를 말려버린다. 점점 위로 치솟는다.

‘으으…….’

운공 중인지라 말은 하지 못하고 신음만 흘린다.

이대로 가면 주화입마(走火入魔)도 의심스럽다.

진기가 말라버리면 침습해오는 마(魔)를 막을 수 없다. 정확하게 주화입마다.

독에 죽기 전에 먼저 진기가 뒤틀려서 죽을 판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는 어떠한 움직임도 일으킬 수 없다.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다. 의식을 다른 것으로 돌리는 순간, 불길이 진기를 와락 덮칠 것이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 움직일 수도 없고, 일어나는 불길을 막을 수도 없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앞사람이 ‘이것은 독약이다!’라고 말했다면 뒷사람은 차를 마시지 않았을 게다.

앞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운공조식만 취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여전히 고요하게 흔들림 없이 운공조식을 취한다.

그 모습이 꼭 해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뒷사람은 의심의 여지도 없이 차를 마셨고, 똑같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음악오귀가 불길에 휩싸여 쩔쩔맨다.

그들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새빨간 색칠을 해놓은 것처럼…… 징그러울 정도로 섬뜩한 모습이다.

입술은 검게 타들어 갔다.

두 눈에서는 회색빛인지 검은빛인지 모를 탁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들은 죽어가고 있다.

죽지 않은 사람은 혼절해 있는 유화아뿐이다.

화복 중년인은 유화아도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시녀들에게 말했다.

“하아! 곤란하게 됐는데. 그거 식으면 약효가 떨어지잖아? 할 수 없지. 가서 복용시켜라.”

“네.”

시녀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시녀가 거부할 리 없다. 누구의 명령이라고……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찻잔을 들고 유화아에게 걸어갔다.

그녀는 혼절해 있는 유화아의 입을 벌리고 찻물을 들이부었다.

유화아는 혼절한 상태인지라 찻물을 입안에 머금기만 할 뿐 삼키지 못한다.

시녀는 목젖을 지그시 눌러서 기도를 열었다. 그러자 입안에 머금고 있던 찻물이 꾸르륵 하는 소리를 내면서 사라진다. 목구멍 안으로 사라진다.

시녀는 무공을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차 한 잔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으음!”

유화아가 몸을 뒤척이면서 신음을 흘렸다.

그녀는 의식을 잃은 상태다. 하지만 인상을 찡그리면서 몸을 비비 틀어댄다.

몸이 뜨거움에 반응한다.

그녀는 경련을 일으키듯이 뒤척이다가 끝내는 극심한 복통을 일으킨 사람처럼 마구 뒹굴기 시작했다.

시녀는 그 모습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차를 복용시키라는 명령은 차를 용해시키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녀가 차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명령이 암묵적으로 포함된다.

시녀는 유화아를 일으켜 앉혔다. 그리고 등 뒤에 장심을 붙이고 진기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한낱 시녀가 진기전도(眞氣傳導)를 한다.

츠으으읏!

시녀의 이마에서 가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힐끔 본 화복 중년인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쯧! 그러게 평소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거늘. 그렇게 게을러서 어디다 쓰노? 쯧쯧! 가서 도와주어라. 저거 가만 놔두면 되려 당하겠다.”

“네.”

다른 시녀가 무릎을 살짝 굽히면서 애교 있게 대답했다.

그녀도 유화아에게 다가와서 등에 장심을 붙인다. 진기전도를 시작한다.

그러자 먼저 진기전도를 시작한 시녀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츠읏! 츠르릇!

시녀들의 진기가 유화아의 전신으로 스며든다.

유화아의 얼굴 표정은 음악오귀와는 사뭇 다르다. 그녀는 매우 편안해 보인다.

얼굴색도 붉게 물들지 않았다.

처음 차를 복용할 때는 피부색이 빨갛게 변하면서 마구 데굴데굴 굴렀는데, 지금은 고요하다. 피부색도 새하얗다. 아무 문제도 없이 고요하게 앉아있다.

화복 중년인이 나무 의자에 편안하게 등을 기대며 동정호 물결을 바라봤다.

“나도 차 한 잔 해야겠다.”

“넷!”

하인들이 즉시 새 주담자를 꺼내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화르륵!

끝내 불길이 모든 진기를 삼켜버렸다.

음악오귀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런 경우는 처음부터 예상했다. 진기로 극독을 밀어낸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독에 중독된 적도 없지만, 그럴 수 있다고 믿지도 않았다.

간혹 내가고수들 중에는 진기로 독을 밀어내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일을 하려면 아주 강한 내력을 가져야 한다.

지금은 마신천강기를 수련했다. 천력파혈단까지 복용했다.

현재 그들의 내력은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 하지만 독을 밀어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다. 천력파렬단은 이미 소진되었다.

그들은 온전히 본신진기로만 새로운 극독, 화독(火毒)과 맞서 싸워야 한다.

진기가 점차 소멸된다. 당연하다.

완전히 소멸된다. 그럴 줄 알았다.

이제는 한 줌의 진기도 끌어올리지 못하겠다. 전신 구석구석을 뒤져도 진기는 보이지 않는다.

텅 빈 경맥만 남아서 불길에 타들어 간다.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화르르르르륵!

맹렬하게 일어난 화독이 두 눈 사이, 미간을 향해 돌진했다.

경맥은 화독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저 경맥을 태워버리면서 지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미간에 화독이 모인다. 집중된다.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다.

‘터진다!’

미간이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니, 정말로 터졌다. 화독이 살을 뚫고 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맹렬하게 운집하던 화독이 미간을 뻥 뚫어 버렸다. 그리고 뚫린 구멍을 통해서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그들은 확실하게 보았다. 뜨거운 불길이 두 눈 사이로 빠져나간다. 저 밖으로 흘러나간다. 화룡(火龍)이 입에서 불을 뿜는 것처럼 미간이 불을 뿜는다.

다른 때 같으면 ‘이게 뭐지?’라는 의문이 치밀었을 게다.

지금은 아무 의문도 갖지 못한다.

그들의 진기는 모두 소진되어서 남아있지 않다. 의식 자체가 텅 비어 있다.

그들은 불길이 빠져나가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지켜볼 뿐이다.

터엉!

화독이 빠져나갔다.

이제 몸속에 불길이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혼절한 것도 아니다. 정신을 잃지는 않았는데,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냥 멍하니 지켜보기만 한다.

그들이 조용히 있는 사이, 몸 곳곳에서 수증기 같은 김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뿌연 연기가 쏟아져 나온다.

경맥 어디에 물기가 숨어있었지? 이게 뭐지?

그것은 물이 아니다. 진기다. 세맥 구석구석으로 밀려들었던 진기가 서서히 빠져나와 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본신 진기 자리를 채운다. 차곡차곡 쌓인다.

그들의 진기는 곧 회복되었다.

스르르륵!

그들이 진기를 운용한다.

진기를 일주천(一周天)한다. 훌륭하다. 썩 잘 돌았다. 다시 한 바퀴 휘돌린다. 이주천한다. 이번에도 막힘없이 잘 돈다. 마신천강기가 활로를 찾아간다.

진기는 막힘없이 흘렀다.

천력파혈단이 일으킨 막강한 진기는 모두 소진되었다.

지금 경맥에 흐르는 진기는 온전히 그들의 진기다. 천력파혈단을 복용하기 전과 다름없는. 언제 그런 진기가 존재했었나 싶게 나약한 진기가 흐른다.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

수선화도 사라졌다.

수선화는 운공시마다 약간씩 통증을 주어왔다. 수선화에 걸린 이후, 운공을 하면 항시 명치 부근이 딱딱하게 걸리곤 했다. 그곳에 수선화의 독액이 마치 못처럼 틀어박혀 있었다.

이제는 그런 느낌도 없다.

운기를 한다. 아주 잘 흐른다. 막힘없이 전신에 유포된다.

“후우웁!”

그들은 진기를 단전에 거두고 눈을 떴다.

맑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켠다.

그들은 해독되었다. 말끔하게, 천력파혈단의 독효에서도 벗어났다. 죽지 않는다.

검왕은 약속을 지켰다.

유화아의 등 뒤에서 진기를 밀어 넣던 두 시녀가 손을 떼고 물러섰다.

유화아는 어느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공조식을 취하고 있었다.

혼절에서 깨어나 그녀 스스로 운공을 취한다. 운공을 취하는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무아지경에 빠져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수고했다.”

화복 중년인이 두 시녀를 보고 말했다.

두 시녀는 고개만 까딱하고는 다시 화복 중년인의 등 뒤로 가서 시립했다.

“어떻더냐?”

화복 중년인이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정심했습니다.”

시녀가 공손하게 답했다.

“쯧! 그걸 물은 게 아니라는 정도는 알잖아!”

화복 중년인이 핀잔조로 말했다.

시녀가 급히 대답했다.

“소녀들이 판단할 수 없는 정도였습니다.”

“그래? 호오! 그것 참…… 검왕이 단단히 한 건 했구나. 하하!”

화복 중년인은 정녕 기쁜 듯 환하게 웃었다.

“누구시오?”

음악일귀가 다소 공손하게 물었다.

화복 중년인이 내준 차는 독약인 것 같다. 비록 독이 해독되기는 했지만 정상적인 해독방법은 아니었다. 틀림없이 극독이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화복 중년인이 내준 차를 마시고 해독이 되었다.

그는 검왕의 사자(使者)이니 말투도 격하게 할 수 없다. 가급적이면 공손하게. 헌데,

“네놈들 운명도 참…… 네놈들, 얻어걸린 거 알아?”

화복 중년인이 얄밉게 웃으면서 말했다.

음악오귀는 인상을 확 찡그렸다.

네놈들? 놈? 얻어걸려?

중년인의 말투가 신경을 건드린다.

그들은 옛날의 음악오귀가 아니다. 이제는 마도제일방패라는 마신천강기를 수련한 몸이다.

그래도 감히 발작을 하지 못한다.

화복 중년인은 웃으면서 말할 뿐인데, 자신도 모르게 위축된다. 마치 거대한 산과 마주 선 느낌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돈 많은 부호처럼만 봤는데…… 뭔가가 있는 고수다.

그때, 유화아가 눈을 떴다.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잠시 혼란스러운 듯했다.

화복 중년인이 유화아를 보더니 말했다.

“허! 허허! 유가삼문주, 그놈과 쏙 빼닮았구나. 그놈이 딸내미 하나는 잘 낳았어. 하하하! 이리 오너라.”

화복 중년인, 뚱뚱해서 데굴데굴 굴러갈 것 같은 중년인이 유화아를 향해 손짓했다.

유화아는 영문을 몰랐다. 화복 중년인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아버지를 이놈 저놈 하면서 하대하는 데는 불끈 노기가 치솟았다.

“당신, 누구야?”

오는 말투를 곱게 받아들이지 못한 탓에 가는 말투도 곱지 않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오랜만에 기분 좋은 말을 들어보네. 하하! 이 얼마나 신선한 말인가. 하하하!”

화복 중년인은 유화아의 싸늘한 말이 오히려 기분 좋은 듯 활짝 웃었다. 그러다가 말했다.

“나, 적벽검문에서 왔다.”

적벽검문!

적벽검문이라느 말을 듣자 음악오귀와 유화아는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들의 눈동자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입도 쩍 벌어졌다.

화복 중년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검왕이 직접 고른 인재가 어떨까 궁금했는데…… 괜찮구나. 너, 성씨 바꾸지 않을래? 내 양녀로 삼고 싶은데.”

“서, 성씨……요?”

유화아가 한순간 머리가 텅 비었다.

상대가 적벽검문에서 왔으니 함부로 할 수 없다. 그가 아버지를 이놈 저놈 한다면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을 것이다. 아버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고.

성씨를 바꾼다.

적벽검문의 제자가 되라는 말이다.

대단한 영광이다. 최상의 무공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허나, 아버지가 물려주신 성을……

“너무 급작스러워서…….”

그녀가 말을 더듬거렸다.

“하기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너무 급작스럽겠지. 그래, 그건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하자. 하하하하! 야! 너희! 주워온 놈들! 뭐해? 와서 차 한 잔씩 해. 독기를 뺀 다음에는 따뜻한 차가 제일이야.”

그 말이 떨어지자 하인들이 재빨리 새로 끓인 차를 그들에게 건넸다. 하지만 음악오귀 중에서 찻잔을 선뜻 집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유화아만 무심히 찻잔을 건네받았다. 음악오귀의 부릅뜬 눈을 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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