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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六章 혈석(血石) (3)
‘막아야 한다!’
유화아의 지시가 아니다. 그들, 음악오귀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떠오른 생각이다.
상대는 극강의 초고수다.
그가 떨쳐낸 일격에는 집채만 한 바위도 부술 수 있는 거력이 담겨 있다.
실질적으로 신법을 펼쳐서 피하기는 어렵다.
남은 방법은 오직 하나, 막는 것뿐이다.
정면으로 부딪쳐서 뚫고 나가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달리 선택할 방법이 그 무엇도 없다.
헌데도 그들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하하하! 제길! 뼈마디가 단단히 부서지겠네. 하하하!”
삼귀가 앙천광소를 터트리면서 창을 찔러냈다.
쒝! 쒜쒜쉐쉐쉐쉑!
창 한 자루가 순식간에 십여 자루로 불어나서 물보라를 찔러간다.
쒜엑! 쒜엑!
삼귀가 찔러낸 창법과는 전혀 무관한 파공음도 울렸다.
사귀와 오귀가 후미에서 천중(天中)을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
그들은 물보라를 겨냥하지 않았다. 하늘…… 하늘 정중앙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한 발이 쏘아진다.
두 발이 쏘아진다.
시작은 느린 듯 보였다. 하지만 전통(箭筒)에 들어있던 십여 대의 화살이 모두 허공을 나는 데 걸린 시간은 촌각에 불과하다.
쒜쒜쒜쒜쒜쒝!
화살 스무 대가 허공에 걸렸다.
스읏! 슷!
일귀와 이귀도 칼과 도끼를 단단히 꼬나 잡았다.
적을 맞이할 준비는 끝났다. 아니, 지금! 싸움이 시작된다.
꽈직!
제일 먼저, 삼귀의 장창이 분질러졌다.
삼귀의 십수연환창은 절정에 이르러 있다. 십수연환창을 전개하면서 마신천강기를 펼쳤기 때문에 창에서 일어나는 바람 소리가 천둥소리를 능가한다.
창이 찔러오는 게 아니라 거대한 철주(鐵柱)가 들이치는 것 같다.
그런데도 수수깡처럼 가볍게 분질러졌다.
파라라라락!
물보라가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사귀와 오귀가 날린 화살은 천중으로 날아올랐다가 힘을 잃고 멈칫거렸다. 아니다. 방향을 틀고 있다. 하늘에서 땅으로…… 그리고 날아오를 때보다 두 배는 더 빠른 속도로 내리꽂혔다.
그가 일으킨 물보라가 내리꽂히는 화살들을 맞이했다.
타타탁! 타타타타탁!
화살들이 맥없이 나가떨어진다.
마신천강기를 실어서 쏘아낸 화살들인데…… 황소가 종이로 만든 화살을 들이받는 것 같다.
꽈직!
대부도 분질러졌다.
광부목자의 일압부에는 천근의 거력이 실려있다. 천력파혈단을 복용한 지금은 더욱 강하다. 장담하건대 이 세상에서 힘으로 일압부를 상대할 사람은 없다.
아니, 있다!
“헉!”
이귀가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가 지금 떨쳐낸 힘은 지상 최강이다. 이전에도 이런 힘을 떨쳐낸 적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전생에서는 물론이고 내생에서도 이런 힘은 보지 못할 것이다. 이귀 자신에게 또 한 번 이런 힘을 떨쳐낼 수 있냐고 물으면 고개를 흔들 것이다.
천력파혈단이 만들어 낸 힘이다.
마신천강기가 두 배로 불어나서 떨쳐진다.
헌데도 그가 떨쳐낸 대부는 자루 한가운데가 부러져서 멀리 날아간다. 풍덩! 동정호의 호수 속으로 평생을 같이 살아온 도끼가 떨어진다.
타앙!
둔탁한 소리도 울렸다.
일귀의 인상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대도를 들고 있는 손에서는 붉은 피가 화악! 분수처럼 뿜어진다.
손아귀가 찢어진 것 같은데…… 뼈는 무사할까?
그러나 그들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개개인이 떨쳐낸 무공은 깨졌지만 다섯 명이 합심해서 형성한 오방진은 건재하다. 극심한 충격을 받은 지금도 오방진은 깨지지 않았다.
꽈직! 꽈지직!
사귀와 오귀가 달려들어서 일격을 후려쳤다.
그들이 들고 있던 활이 호선을 그리면서 타격점을 향해 쏘아졌다.
타타타타탁! 파앗!
창이 부러져 나간 삼귀도 재빨리 다음 공격을 준비했고, 떨쳐냈다.
그는 남은 창대를 잘게 썰었다. 아니, 부러트렸다.
남은 창대가 순식간에 이십여 개의 목침(木針)으로 변했다. 크기가 손가락 두 개를 합쳐 놓은 것만 한 큰 목침이다.
목침이 상대를 향해 쏘아졌다.
삼귀의 숨겨진 비기, 최후의 비초 난수강침술(亂手剛針術)이다.
그는 지금까지 난수강침술을 펼친 적이 없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상대를 만났을 때 펼치려고 수련만 해 놓은 비기다.
난수강침술이 상대를 향해 쏘아진다.
타탁! 탁!
먼저 사귀와 오귀의 활이 허공으로 되튕겨졌다.
투투투투툭!
삼귀가 날린 난수강침들은 생명을 다한 낙엽처럼 힘없이 떨어졌다.
‘합(合)!’
음악오귀는 한순간에 같은 생각을 했다.
사귀와 오귀가 이귀의 등에 장심을 붙였다. 그리고 마신천강기를 물밀 듯이 밀어 넣었다.
삼귀는 뒤로 쭉 빠지면서 일귀의 등에 장심을 붙였다. 그리고 그도 삼귀와 사귀처럼 진기 전도를 시작했다.
꽝! 꽝!
벼락이 두 번 터졌다.
한 번은 이귀를 거칠게 밀어내는 소리였고, 또 한 번은 일귀를 무릎 꿇게 만드는 소리였다.
사귀와 오귀가 뒤로 날아가는 이귀을 낚아챘다. 삼귀는 무릎 꿇는 일귀를 안아 들었다.
그들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사실…… 일귀와 이귀가 받은 타격은 고스란히 그들에게도 전달되었다. 진기전도를 하면 이신일체가 된다. 내 몸이 상대방의 몸에 합체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직접 타격이냐, 간접 타격이냐가 다를 뿐이지 타격은 똑같이 받는다. 그 순간,
슈웃!
무엇인가가 그들을 스치면서 지나갔다.
그들의 등 뒤에서 나타난 힘은 부드럽게 밀려 나간다. 지금 전장을 휩싸고 있는 강한 힘들과는 전혀 다른…… 아주 부드럽고 섬세한 바람이 일어난다.
꽈아앙!
지금까지 일어난 그 어떤 소리보다도 강한 소리가 터졌다. 그 어떤 충격보다도 강한 충격이 일어났다.
물보라가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솟구쳤다.
“제길! 더럽게 강하네.”
사귀가 툭 떨어진 유화아를 받아들면서 중얼거렸다.
유화아의 공격은 핵심을 겨냥했다.
상대방은 오귀를 상대하기 위해서 전력을 쏟아냈다. 그의 진기가 모두 소진될 정도로 강한 힘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한순간, 그는 공백 상태가 되었다.
유화아는 이 점을 공격했다.
그는 움직일 수 없다. 방어할 수 없다. 대응할 수 없다.
이 순간은 찰나를 열 개로 쪼갠 것만큼이나 지극히 짧은 순간 동안만 노출된다.
투살진기는 이 순간을 노렸다.
절정의 감각이 최약체가 되는 순간을 찾아냈다. 그리고 최적의 공격이 이어졌다.
헌데 상대가 오히려 유화아를 낚아챘다.
그녀의 손목을 비틀어서 하늘 높이 던져버렸다.
더 이상 사용할 만한 방법이 없다. 공격수단이 없다.
“후후후! 좋군.”
상대가 말했다.
비웃음인가? 조롱인가? 무엇이든 좋다. 음악오귀는 상대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뿌듯했다.
상대는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했다.
“아쉬운 건…… 마신천강기의 오의를 깨우치지 못했다는 것. 그것만 깨우쳤어도…….”
음악오귀는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눈을 부릅떴다.
뭐라고? 마신천강기의 오의를 깨우치지 못했다고?
그렇다. 그들은 아직 마신천강가의 오의를 깨우치지 못한 상태다. 마신천강기가 두 배로 강해지기는 했지만 진기가 강해졌을 뿐이지 오의까지 깨우친 것은 아니다.
그들이 그렇다면 유화아도 그렇다.
그들은 잠시 착각했다. 순간적으로 힘이 강해지자 마신천강기를 십 할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상대가 그 점을 지적하자, 음악오귀는 단박에 알아챘다.
“우리가 마신천강기를 완벽하게 수련했다면…… 귀하와 싸울 수 있겠소?”
“하하하!”
상대는 일귀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마신천강기를 완벽하게 수련한다. 하하하! 하하하하!”
“…….”
음악오귀를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상대가 웃는 뜻은…… 비웃는 게다. 비웃음이다. 완벽하게 수련할 수 없다는 뜻이다.
상대가 말했다.
“오만이 지나치군.”
“우리가 말이오? 무엇이 오만이오?”
“누가 무엇을 완벽하게 수련할 수 있단 말인가. 완벽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 줄이나 알고 함부로 사용하는가? 후후후! 완벽하려고 하지 마라. ‘완벽’이라는 틀에 사로잡히면 우리처럼 될 것이니. 하하하! 하하하하!”
사내가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음악오귀는 멍청하게 서서 사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싸울 힘도, 투지도 잃었다. 그들이 펼쳐낸 최강의 공격을 단숨에 흘려버렸다. 또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사내는 더 이상 공격해 오지 않았다. 굳이 그들을 죽일 생각이 없는 듯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그가 등을 돌렸다.
아니다. 그는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발목이 물속으로 들어가고, 정강이가 들어간다. 무릎이 보이지 않고, 허리도 잠긴다.
꼬르르륵!
그가 들어간 자리에서 물방울 하나가 솟구쳐 나왔다.
물방울 하나…… 그는 그것만 남기고 사라졌다.
음악오귀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빨리!”
삼귀와 사귀는 오귀의 말을 들음과 동시에 신형을 쏘아냈다.
쒜에에엑!
그들이 작은 나무 조각 하나에 신형을 싣고 군산을 향해 쏘아갔다.
천력파혈단의 약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 곧 죽음의 사신이 그들을 덮쳐올 게다. 하지만 죽을 때는 죽더라도 땅 위에서 죽어야 하지 않겠나.
일귀와 이귀는 곧 정신을 수습했다.
문제는 유화아다. 그녀는 기식이 엄연하다. 짧은 순간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다.
천력파혈단은 정신이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는다.
“두 시진이 얼마나 남았지?”
“곧.”
“우리가 할 일은…….”
“…….”
그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군산에 도착했지만 그들을 마중 나온 사람은 없다. 군산에도 사람이 살고 있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다가서지 않는다.
그들은 회색빛 물결, 동정호를 쳐다봤다.
“하늘에 구름이 없네.”
“무슨 소리야?”
“구름이 없다고.”
그들은 새삼 하늘을 쳐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저 하늘을 쳐다본 게 얼마 만인지.
“아!”
이귀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 불쑥 탄식을 토해냈다.
이귀가 왜 탄식을 했는지…… 다른 사람들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들에게도 이귀와 같은 증상이 일어나고 있다.
몸에서 무엇인가가 빠져나간다.
스르르르르륵!
바람에 모래가 흩어지듯……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힘이 빠져나간다.
다리에서 힘이 풀린다.
피가 급격하게 빨려 나갈 때처럼 현기증도 치민다.
“고마웠소.”
오귀가 불쑥 말했다.
“나도. 무공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줄 알았다면…….”
삼귀가 말을 하다가 멈췄다.
그들은 지상 최고의 재미로 색(色)을 선택했다.
여색을 취하는 것보다 재미있는 일은 없었다. 무공을 수련하는 것보다 여색이 더 좋았다.
여인을 품에 안을 때 지상 최고의 쾌락을 느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별종들이라고 생각했다. 머릿속에 오직 여색밖에 들어있지 않은.
그러나 그런 생각들이 목숨의 위협 앞에서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죽을래?
검왕이 말한 한 마디가 가슴에 틀어박혔다.
여색보다 강한 것이 죽음에 대한 겁박이다.
그러나…… 죽음으로도 말릴 수 없는 것이 있다. 무공에 대한 재미가 그렇다.
그들은 이런 점을 처음 알았다.
“우리…… 이대로 죽지 맙시다. 죽을 때는 죽더라도 한바탕 멋지게 어우러지다가 갑시다.”
삼귀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하하하! 형님, 좋소. 내가 상대해 드리리다.”
오귀가 활을 들고 일어섰다. 맑게 웃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