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76화 (7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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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六章 혈석(血石) (1)

“군산이다.”

일귀가 감회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동정호의 물빛은 맑지 않다. 혼탁하다. 뿌옇게…… 그래서 회색에 가깝다.

물안개도 자욱하게 피어난다.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는 군산이 희끄무레하게 보일 뿐이다.

그래도 군산이 지척이다. 이제 배를 타고 한두 시진만 가면 군산도(群山島)에 도착한다.

동정호에는 많은 배가 떠 있다.

밤에는 유흥을 즐기는 유람선이 대부분이지만, 낮에는 고기를 잡는 어선들이다.

그들도 저런 배를 타고 군산도에 들어가야 한다.

일귀는 자신도 모르게 품을 더듬어 천력파혈단을 만지작거렸다.

다행스럽게도 천력파혈단을 사용하지 않고 군산에 도착했다. 마군이, 혈천혈도 진구량이 공격해 왔을 때가 가장 위험했는데…… 그때도 천력파혈단을 사용하지 않았다.

천력파혈단을 사용하면 무적고수가 되지만, 두 시진만에 죽는다.

언제 사용하게 될까?

누가 나타날까?

군산에 도착할 때까지 늘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곧 검왕과의 약속이 끝난다.

검왕은 수선화의 해독단을 내놓아야 한다. 그가 준다고 했고, 그 말을 믿는다.

검왕이 해독단을 주지 않는다면?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만은…… 해독단을 주지 않는다거나, 다른 제재를 가해도 할 말이 없다.

그들은 검왕을 거역하지 못한다.

“해독단을 줄까?”

삼귀가 불안한 듯 말했다.

“주겠지.”

일귀가 무심히 대답했다.

수선화의 해독단은 줄 것이다. 그러나 검왕이 말한 것, 속박을 풀어주겠다는 말까지 믿지는 않는다.

그들은 마신천강기를 수련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검왕 자신이 스스로 가르쳐 주었다. 마공관의 마학을.

마신천강기를 칠 성 이상으로 수련한 마인들인데…… 얌전히 보내줄까?

“사(四)!”

문득 유화아가 말했다.

그러자 사귀가 즉시 몸을 움직였다. 많이 움직인 것은 아니고…… 유화아 쪽으로 반 보 정도 이동했다.

아주 짧은 거리다.

그 정도의 거리는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헌데도 유화아는 말했고, 사귀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즉시 움직였다.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있다는 듯.

텅!

사귀가 움직이자 무언의 소리가 울렸다.

귀로 들리는 소리는 아니다. 진공을 떨쳐 울리는 묘한 파장인데, 오귀만이 감지할 수 있다.

“거참, 이거…… 떨어져 나갈 때도 느낄 수 있으면 좋은데.”

오귀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오귀가 이루는 마신천강기의 합벽진은 그야말로 철옹성을 연상시킬 정도로 단단하다.

유화아를 중심으로 해서 쇠로 만든 방패 다섯 개가 오방(五方)을 차지하고 있다. 방패와 방패 사이에 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방어막이다.

다만…… 이 방어막은 움직임에 따라서 다소 유동한다.

그들이 위치를 지키고 서 있을 때는 완벽하지만 이동할 때는 불완전해진다.

텅! 하는 울림, 방어막이 완전해졌다는 울림이다.

오귀는 이 소리를 듣는다. 방어막이 밀밀해졌을 때, 그들 스스로 완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허나 방어막에 틈이 생길 때는 느낌이 없다.

완벽이 깨질 때는 느낌이 없고, 불완전한 것이 완벽해질 때만 느낌이 온다.

완벽함이 깨질 때도 모종의 느낌을 받는다면 오귀는 그들 스스로 완벽함을 추구할 수 있다. 이탈이 일어나는 부분을 즉시 알아채고 보완할 수 있다.

지금은 그것이 되지 않기 때문에 투살진기에 의존한다.

유화아는 전체적인 균형감각을 파악하는데 전문가다. 투살진기가 그녀에게 그런 힘을 준다.

유화아는 완벽함이 깨지는 것을 감지한다.

“그런데 우리 어디로 가야 되지?”

이귀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군산도는 넓지 않다. 그렇다고 좁지도 않다.

“월노궁(月老宮).”

유화아가 툭 말했다.

“월노궁? 검왕이…… 월노궁으로 가라고 했던가?”

일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월노궁과 무림…… 전혀 선이 그어지지 않는다. 하기는 군산 자체가 무림과는 인연이 멀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무공을 모른다.

그들은 차를 재배한다. 신을 숭배한다. 군산을 찾는 시인묵객을 위해서 차와 음식을 판다.

무공을 수련하는 사람이나 문파는 없다.

처음부터 검왕이 군산으로 가라고 할 때, 그리고 군산에 가면 수선화의 해독약을 준다고 할 때…… 그때 왜? 누가? 와 같은 의문이 들었어야 한다.

군산에는 왜 가지? 무슨 목적으로?

군산에 가면 누가 수선화의 해독약을 준다는 거지? 수선화의 해독약을 지참할 정도라면 무인이어야 하는데…… 무인이 해독약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군산에 오르나?

한 마디로 군산에 갈 이유가 전혀 없는데 간다.

그런데도 유화아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듯 도교사원인 월노궁을 말한다.

“삼(三)!”

삼귀가 느닷없는 부름에 불쑥 뒤로 반 보 물러섰다.

방금…… 완벽함이 깨졌다. 삼귀가 무심히 움직인 반 보가 방어막을 일그러트렸다.

그들은 언제 어느 때든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수련 중이다.

그것은 생존에 관계된 것,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모든 것에 앞서서 최우선 한다.

“군산 가자.”

“네? 군산요? 못 가는 데요.”

“제길! 왜 못 간다는 거야!”

이귀가 신경질적으로 빽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어부는 겁에 질린 듯 어깨를 움츠렸다.

어부는 얼굴을 마주 쳐다보면 혹여 시빗거리라도 제공할까봐 고민스러운가 보다. 얼굴을 아예 밑으로 숙여 버린다.

“왜 못 가!”

이귀가 버럭 고함질렀다.

“죄송합니다. 제 배는 고기 잡는 배인지라 사람을 실어나를 수 없습니다.”

어부가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한두 시진…… 군산에 도착하는 시간으로 한두 시진을 예상했다. 허나 배를 구하는 데만 벌써 그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좀처럼 배가 구해지지 않는다.

아니, 동정호에 정박해 있는 배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배를 띄우지 않는다.

“누가 압박이라도 한 건가요?”

유화아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나요. 다만 제 배는 고기 잡는 배라서…….”

어부가 당황해서 급히 손을 내둘렀다.

확실하다! 누군가가 입김을 불어넣었다. 이들에게 배를 띄우지 말라고 공갈협박했다.

“흐흐흐!”

일귀가 음충맞게 웃으면서 한 발 앞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유화아가 즉시 말했다.

“일(一)!”

일귀는 그 말에 몸이 석상처럼 굳어졌다.

그가 움직이면 방어막이 깨진다. 허나 움직이지 않으면 배를 구할 수 없다.

지금 특별한 위험도 없는데…… 굳이 엄밀한 방어막을 형성할 필요가 있을까? 배를 구하는 동안만 잠깐 움직인다는데 특별하게 위험할 일이 있나?

일귀의 머릿속에 순간 오만가지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허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못했다. 유화아가 추구하는 완벽한 방어막을 깨기가 싫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자신도 모르지만.

유화아가 말했다.

“빈 배를 훔쳐야겠어요.”

“흐흐흐! 진작 그러자니까.”

이귀가 기분 좋은 듯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

유화아는 드넓게 펼쳐진 동정호를 쳐다봤다.

동정의 물결은 매우 잔잔하다.

또 군산까지는 지척이다. 눈에 빤히 보이는 곳이라서 배를 저을 줄 모르는 사람이 노를 잡아도 금방 도착할 것 같다. 더군다나 사귀가 배를 다룰 줄 안단다.

커다란 위험은 없어 보인다.

헌데 자꾸…… 투살진기가 곤두선다.

투살진기는 공격적인 진기가 아니다. 공격과는 정반대로, 매우 순종적인 진기다.

투살진기는 먼저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면 그에 반응하여 일어난다.

투살진기는 종이다. 깃발이다. 나뭇잎이다. 바람이 불어오면 그제야 흔들린다.

반응이 느릴 때, 투살진기는 바람이 스쳐 지나간 후에야 바람을 감지한다. 종이는, 깃발은, 나뭇잎은 바람이 일어남에 따라서 움직였지만, 그 사실 자체를 인지하는 속도는 늦다.

이런 연유로 유화아는 일차 공격을 막지 못했다.

오귀가 마신천강기로 일차 공격을 막아준 후에야 바람의 존재를 감지하고, 바람의 유동성을 파악하고, 바람의 세기와 종류를 알아내고 대처했다.

지금도 완벽하지는 않다.

칠 성에 이른 투살진기로는 바람이 일어남과 동시에 눈치채지 못한다. 무엇이 일어남과 동시에 알아채기 위해서는 궁극, 십성에 도달해야 한다.

현재, 투살진기가 자극을 받고 있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녀가 눈치채지는 못하지만 어떤 위험이 투살진기를 자극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위험이 도사렸을 만한 곳을 살펴봤다.

없다.

드넓은 동정호는 안전한 곳처럼 보인다. 나루터 인근에도 위험한 사람은 없다.

오귀가 빈 배에 오르려고 한다. 무방비 상태로.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자리에 어떤 무인이 있어도 긴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위험 같은 것은 전혀 엿보이지 않으니까. 세상이 무척 평온하니까.

유화아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일(一), 삼(三), 사(四)!”

“여기서는 괜찮지 않나?”

“배 안에서도 균형을 유지해. 느낌이 안 좋아.”

음악오귀는 유화아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녀가 안 좋다고 하면 안 좋다. 그들의 마신천강기가 발달하는 만큼 투살진기의 위력도 인정한다.

음악오귀는 즉시 배 안에서 오방에 위치했다.

유화아는 중심이 되는 천중(天中)에 앉았다. 그리고 투살진기를 관찰했다.

츠으으읏! 츠으으읏! 츠읏!

투살진기가 가늘게 떨린다.

역시 무엇인가에 반응하고 있다.

‘느낌이 안 좋아.’

텅!

첫 번째 충격, 배를 뒤흔든다.

“뭐야!”

오귀가 즉시 활을 재워 물속을 겨눴다.

사귀는 노를 멈췄다. 언제라도 즉시 움직일 수 있는 모습으로 귀를 기울였다.

물속에서 무엇인가가 배를 건드렸다.

잠시 후, 아무런 이상이 없자 오귀들의 눈빛이 유화아에게 쏠렸다. 그리고 얼굴색이 새하얗게 변한 그녀를 보게 되었다.

“뭐냐?”

일귀가 대뜸 물었다.

유화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품에 손을 찔러넣어 검왕이 내주었던 천려파혈단을 꺼내 들었다.

“웃!”

“그, 그걸 왜?”

오귀들이 일제히 눈을 부릅떴다.

“이게 필요할 것 같아.”

“뭐라고?”

“투살진기가…… 겁을 집어먹고 있네. 밖으로 뻗어 나가지 못하고 안으로 움츠러들어.”

“으음!”

“아무래도 이게 필요할 것 같아.”

유화아는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천력파혈단을 입안에 넣었다.

복용하면 두 시진 밖에 살 수 없는 독단!

“엇! 너, 너!”

“준비해. 아주 위험할 거야. 솔직히 난 무서워.”

유화아가 물속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 말에 음악오귀도 한 명, 또 한 명…… 품에 손을 넣었다. 천력파혈단을 만지작거렸다.

정말 이 독단을 복용해야 하나? 괜히 서두르는 게 아닌가? 적이 누군지 파악한 후에 복용해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나 그들은 독단을 꺼냈고, 복용했다.

투살진기…… 그들의 마공인 마신천강기만큼 믿는다. 투살진기로 파악하고 한 말이라면 틀림없다.

“제길! 군산이 코 앞인데.”

제일 마지막으로 일 귀가 천력파혈단을 복용하며 중얼거렸다.

군산이 코 앞인데…… 다 왔는데…… 이제 곧 자유의 몸이 되는데……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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