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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75화 (75/225)

# 75

第十五章 집마(集魔) (5)

마군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형체가 없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

“쩝! 섭섭하네. 저런 놈은 이거 하나로 충분한데.”

태황도마가 거도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흐흐흐!”

귀면사자가 옆에서 따라 웃었다.

유기청을 죽이는데 두 사람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 헌데 마군이 그러라고 하니…… 그렇게 한다.

스읏!

귀면사자가 미끄러지듯 앞으로 움직였다. 그때,

“가만…… 가만…….”

마군이 눈을 감은 채 속삭이듯 말했다.

귀면사자가 움직임을 멈췄다. 막 앞으로 쏘아가려던 태황도마도 의아한 눈길로 마군을 쳐다봤다.

마군은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

세상은 조용하다. 풀벌레조차도 울음을 멈췄다. 지나가는 바람도 소리를 잃었다.

마군은 세상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 그것들을 모두 넘겨버리고 저 너머에 있는 소리를 듣는다.

……

마군은 한참 동안 소리를 들었다.

“흠!”

마군이 미간을 찌푸렸다.

소리를 듣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만약 어떤 소리를 들었다면 미간을 찌푸리는 대신 눈에서 광망이 터져 나왔을 게다.

“뭐가 있습니까?”

태황도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심해라.”

마군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저 멀리 언덕에 앉아있는 유기청을 쳐다봤다.

유기청을 죽이는 데는 수하 중 한 명이면 족하다.

그는 두 명을 지명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확실하게 죽이겠다는 뜻이다.

헌데, 이제는 두 명으로도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왜지?

스으읏! 사사사삭!

태황도마와 귀면사자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지쳐 들어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여유로웠다. 하지만 마군이 ‘조심해라’ 한 마디를 한 후부터는 여유롭지 못했다. 마치 천군만마 앞에 단신으로 선 듯한 각오를 지녔다.

마군은 절대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마군이 어떤 징조를 읽었다면…… 그것은 반드시 사실이 되어서 나타난다.

유기청은 걱정하지 않는다. 마군으로 하여금 인상을 찡그리게 만든 그 무엇을 경계한다.

유기청이 그들을 발견하고 일어섰다.

당연하다. 그들은 유기청을 암습하지 않는다. 유기청 정도는 본신 무공만으로도 충분히 죽일 수 있다. 빠르게 달려갈망정 은신이나 엄폐물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내가 먼저!”

태황도마가 거도를 번쩍 치켜 들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다른 때 같으면 귀면사자도 벌써 신형을 쏘아냈을 게다. 사람 베는 손맛을 양보할 수는 없다.

지금은 참는다.

스읏!

귀면사자는 유기청을 버려두고 주위를 빙 맴돌았다.

태황도마가 유기청을 요리하는 동안 자신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불의의 기습에 대비한다.

‘괜히 손맛만 놓치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이 귀면사자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마군의 절대 감각은 믿어 의심치 않지만……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주위가 너무 조용하다.

까앙!

태황도마와 유기청이 일차 접전을 벌였다.

귀면사자는 살짝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쳐다봤다.

쒜엑! 쒜에엑! 쒜에에엑!

태황도마가 신이 나서 거도를 몰아친다. 거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이 광풍을 연상시킨다.

유기청은 고요하게 검을 쓴다.

그는 힘있게 움직이지 않는다. 바람에 휘날리는 가랑잎처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그러다가 가끔 잊지 않았다는 듯이 검을 쓴다.

유기청은 허점을 찌를 줄 안다.

허나 전반적으로 확실히 태황도마가 우세하다. 가끔 허점을 공격하는 상태로는 광풍폭우를 견뎌내지 못한다.

‘십 초 안에 끝나겠군.’

귀면사자는 싸움의 결과를 미리 내다봤다. 그리고 그 순간까지, 귀면사자는 그 어떤 느낌도 받지 않았다. 싸우는 두 사람을 제외하고 세상은 매우 고요했다. 평화로웠다. 헌데!

쉑! 깡!

문득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뭐……?’

귀면사자는 이상한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어떤 소리가 울린 것은 분명한데, 무슨 소리냐고 물으면 정확하게 짚어서 말하기가 힘들다.

귀면사자가 퍼뜩 고개를 돌려 태황도마를 쳐다봤다. 그리고,

“엇!”

귀면사자는 깜짝 놀라서 급히 신형을 쏘아냈다.

쒜에엑! 처억!

그는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면서 물러서는 태황도마의 등을 떠받쳤다.

“뭐야?”

“암습…….”

“암습이라고?”

귀면사자가 주위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다. 암습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허나 분명히 태황도마가 당했다. 그의 거도가 반 토막으로 부러진 채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다.

팔십 근 거도를 부러트린 일격!

쉬익! 쉬이익!

두 사람 곁에 마군이 내려섰다. 다른 사람들도 속속 다가왔다. 주위를 쏘아보면서.

확실히 암습은 있었다.

‘으…….’

마군은 부르르 치를 떨었다.

그는 부러진 태황도마의 거도를 살피는 중이었다. 유기청은 내버려두고.

거도는 부러지지 않았다. 베였다.

그 무엇이 묵강한철(墨剛寒鐵)로 만든 거도를 무 베듯이 싹둑 잘라낼 수 있단 말인가.

마군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마군은 부러진 칼을 본 게 아니다. 자신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절대고수의 무공을 봤다.

“누구냐?”

그가 조용히 물었다.

물음의 대상은 한쪽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유기청이다.

유기청에게 물었다. 널 도와주는 놈이 누구냐고!

그러나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유기청도 무림고수다. 그도 지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안다. 그리고 매우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돌아본다.

그에게서 말을 듣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다.

‘검왕도 이 정도는 아니다.’

그는 마공관에서 검왕에게 패했다. 그의 절정 무공인 혈무기가 파해되었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처럼 전율스럽지는 않았다. 적어도 검왕은 언제든 이길 수 있는 인간이다.

지금 이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유령처럼 나타나서 태황도마의 칼을 잘라버린 후,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가 그런 행동을 하는 동안, 그를 본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유령이나 귀신…… 귀신!’

마군의 머릿속에 퍼뜩 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면…… 죽은 귀신이라면…… 그렇다. 무림에는 그런 존재들이 있다. 모두들 망각하고 있지만, 언제든 곁에 나타날 수 있는 절대 존재들이 있다.

유지자문!

일명 유계의 귀신들!

유지자문은 유계를 떠도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인간이 상대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정말 유지자문인가?

이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파앗!

마군의 눈가에 혈광이 피어올랐다.

양손 손끝이 파르르 떨리면서, 목구멍에서는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가르릉 하는 소리가 울려 나왔다.

“가공스럽군.”

유기청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검을 들어 올렸다.

“죽는다!”

쒜에에에엑!

마군은 유기청을 향해 쏘아갔다.

혈무기는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이다. 유기청 같은 자는 격전을 벌이는 순간 당한다. 그때!

쉑! 파앗! 퍽!

인간 세상의 소리가 아닌 듯한…… 유계에서 빠져나오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짧은 격타음과 함께.

퉁! 퉁! 퉁!

마군은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섰다.

주위에는 마군의 수하들이 늘어서 있지만 그 누구도 마군을 막아주지 못했다.

마군은 혈무기를 풀지 않은 상태다. 누구라도 근접하기만 한다면 혈무기에 당할 우려가 있다. 그러니…… 마군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와주지 못한다.

파아아앗!

마군은 간신히 중심을 잡은 후에야 혈무기를 풀었다.

“유지자문이 나왔는가!”

마군이 허공에 대고 말했다.

물론 대답이 들릴 리 없다. 대답을 할 것 같았으면 벌써 형체를 보였다.

“방금 그것, 은형마강술(隱形魔疆術)이었다. 맞나?”

대답은 없다. 마군도 대답을 들을 생각까지는 없었다는 듯 바로 등을 돌렸다.

유기청을 죽이려고 왔다. 그가 눈앞에 있고,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군은 등을 돌린다. 귀선부 이령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 두 번째 사례가 될 것이다. 검왕의 진면목을 직접 확인하라는 명령에 이어서.

마군이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유지자문이라는 이름이 있어서 한 번은 양보해준다. 이놈을 눈앞에서 치워라. 내일도 눈에 띈다면 여지없이 죽일 터, 그때는 유지자문이라고 해도 분질러버린다.”

마군이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었다.

무엇이 다가왔다는 느낌도 없었다.

문득 그것이 생겨났다. 느닷없이 발밑에서 힘이 꽉 들어간 글씨가 드러났다.

- 君山行

이것이 무슨 말일까?

유기청은 잠시 글씨만 쳐다보았다.

딸이 군산으로 향하고 있다. 딸이 삼문을 떠날 때는 뒷모습조차 보지 못했지만…… 그간의 행로로 보아서 군산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쯤은 짐작한다.

군산행이라. 군산으로 가라는 말인가?

마군은 이 보이지 않는 조력자를 유지자문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 생각이 옳을까?

검왕은 유지자문과 연계되어 있지 않다. 적벽검문과 유지자문은 일면식도 없다.

갑자기 왜 유지자문이 나타나서 자신을 도와주는 거지?

유지자문이 아니었다면 벌써 패황도마의 칼날 아래 피를 토하고 쓰러졌으련만…… 유기청은 유지자문의 도움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마치 큰 짐을 하나 안은 것 같은 느낌이다.

군산으로 가라는 말도 유지자문의 말이다.

이것은 검왕의 말이 아니다.

‘검왕의 뜻은 내 죽음에 있었는데…….’

자신이 죽어야 딸이 강해진다.

자신의 죽음이 투살진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려 줄 게다. 복수심만큼 강한 원력도 없으니까.

그는 검왕의 뜻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검왕과 얼굴을 맞대고 말을 나눈 것이 아니니 그의 뜻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척 하면 착이지 않은가. 한 마디만 들으면 열 마디를 알아듣는다.

어쨌든 유지자문이 중원에 들어왔다는 것은 크게 놀랄 일이다.

이 사실은…… 어쩌면 혈루마옥이 출현한 것보다 더 큰 사건인지도 모른다.

‘일단은 알려야겠지.’

유지자문이 중원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전할 생각이다.

물론 군산으로 갈 생각은 없다. 단지 소식만 전하고는 검왕의 뜻대로 죽어줄 심산이다. 그것도 반드시 마군에게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검왕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안다. 누구에게 말을 해야 하는지 안다.

쉬이이익!

그는 신형을 쏘아냈다.

꾸루룩!

이상한 소리가 울리면서 공기가 미약하게 흔들렸다.

마군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수하들도 사라졌다. 유기청도 떠나갔다.

꾸루룩!

잠시 공기가 더 크게 꿈틀거렸다.

그리고 조용했다. 처음부터 조용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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