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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五章 집마(集魔) (4)
휘이이잉!
찬바람이 몰아친다. 절벽 밑에서부터 회오리치며 올라선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지나간다.
그녀는 절벽 끝에 서서 끝없이 펼쳐진 천하를 쳐다봤다.
“검왕은 확실히 살아있습니다.”
“확인했어?”
“…….”
“확인은 못 했다 이건가?”
“…….”
“검왕, 도대체 얼마나 강해진 거야? 뭘 수련한 거야?”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마공관의 마서는 한 권도 빠짐없이 옮겨졌다. 마공관이 폭파될 당시, 마공관 텅텅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마공관의 마서는 그녀가 직접 옮겼다.
그녀가 아니고는…… 단언컨대 당금 중원에서 현음자가 설치한 기관진식을 파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마공관의 마서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비급 위에 켜켜이 쌓인 먼지가 기나긴 세월을 말해줄 뿐이다.
물론 그 속에는 검왕이 수련했다는 혈영마공이 포함되어 있다. 허나, 그녀가 기억하기로는 혈영마공이라는 비급 위에도 뿌연 먼지가 수북했다.
검왕이 혈영마공을 수련했을지는 모르지만 마공관의 마서를 통해서 수련한 것은 아니다.
그는 어디서 마공을 수련했나?
그가 왜 마공관의 기관동(機關洞) 속에 은거해 있었나?
어쨌든…… 그는 마군이 상대할 수 없는 거목으로 훌쩍 커버렸다.
그는 마군을 보고 싶으면 보고, 보기 싫으면 보지 않는다. 그가 마군을 만나지 않으려고 할 때, 마군이 그를 만날 방법은 없다. 귀선부가 가진 인력을 총동원해도 안 된다.
검왕은 꼬리도 보이지 않고 숨어버렸다.
“드러난 방군(幇群)이 얼마나 되지?”
그녀가 한참 만에 말했다.
“재고를!”
마군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즉시 부복하며 응답했다. 방군을 묻는 그녀의 의도를 짐작하겠기에.
“드러난 방군이 얼마나 돼?”
“재고를!”
“모두 치는 데 얼마나 걸릴까?”
“…….”
마군은 침묵했다.
그녀는 이미 뜻을 굳혔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결심이 되어서 토해진다.
“대답해. 기간을 얼마나 주면 돼?”
“한 달입니다.”
“한 달. 좋아. 쥐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서는 안 되겠지? 그러면 마군 체면이 말이 아닐 테니까.”
“재고를…… 부탁드립니다.”
마군이 힘들게 말했다.
그녀도 즉시 답했다.
“한 달 후, 검왕은 앙상한 뼈만 남아있어야 돼. 명심해.”
검왕의 방군…… 검왕을 도와주는 사람들…….
그들은 검성의 힘이다. 검성을 돕는 게 아니라 검왕을 돕는 것이지만 정도의 빛임에는 틀림없다.
검성도 알게 모르게 그들을 도왔다.
검왕을 돕는 자들이 누구이든 그들은 검성의 힘이다. 검왕의 뜻이 정도에 있는 한, 그들 역시 정도의 칼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검왕의 방군은 아흔여덟이다.
이것이 검성이 파악하고 있는 숫자다. 그러니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수 있다.
검왕은 무슨 방법으로 그 많은 자들을 휘하에 두었을까?
사실 방군을 ‘휘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은 검왕에게서 봉록을 받지 않는다. 검왕의 도움도 받지 않는다. 오직 검왕을 도와주기만 한다. 일방적으로.
흔히 생각할 수 없는 도움이다.
그래서 검성은 방군들이 적벽검문과 연관 있지 않을까 하고 추론한다.
그들을 모두 베어버린다.
검성은 검왕의 머리에 현상금을 내걸었다. 검왕은 마공관을 폭파하고 마서를 훔친 죄인이다.
공식적으로 검성은 검왕을 축출했다.
즉, 검왕은 마도에 든 자다. 그러니 그를 돕는 자들 역시 마도에 들었다고 봐야 한다.
검왕의 방군을 베는 데는 하자가 없다.
‘언제까지 버티는지 볼 거야.’
면사 여인은 마군이 떠난 후에도 절벽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세상을 굽어본다. 그 속에서 검왕을 본다.
방군들이 죽어가기 시작하면 검왕은 자신을 찾아올 것이다.
마군을 치는 것은 답이 아니다. 마군이 죽으면 또 다른 자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마군은 끝없이 탄생하는 소모품이다.
검왕도 이 정도는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러니 틀림없이 자신을 찾아온다.
‘검왕…… 성품까지 변하지 않았다면……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지.’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여인의 뜻을 짐작하지 못한다면 바보천치다.
‘검왕을 직접 불러서 무엇을 하겠다고…….’
이미 검왕은 떠나간 배다. 자신들과는 함께 호흡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강 건너로 건너가 버렸고, 이제는 서로를 향해 활을 겨눈다.
적과 적!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선부와 검왕이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눌 것이라고는 짐작하지도 못했는데.
“유가 삼문을 친다!”
마군이 빠르게 말했다.
“그건 너무 노골적인데요?”
백살마창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방군을 다 죽여야겠나!”
마군은 백살마창에게 되물었다.
백살마창이 입을 다물었다.
검왕을 돕는 자, 방군들은 거의 대부분이 무림 명숙이다. 정도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유가삼문주처럼 뼛속까지 정(正)이 각인된 협사들이다.
마군이 정도인들을 걱정한다는 것은 얼핏 보면 모순처럼 여겨진다.
십마 중에 일인인 마군이 정도인을 걱정하다니. 그럼 마군이 마인이 아니라는 것인가?
아니다. 그는 틀림없는 마인이다. 결코 정도 편에 설 수 없는 골수 마인이다.
귀선부, 그리고 면사 여인이 아니라면 결코 검성에 발을 들이밀지도 않았을 게다. 검왕과 한솥밥을 먹는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게다.
그는 방군을 걱정하지 않는다. 염려하지 않는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무림명숙들이 암살되어 갈 때 드러날 혼란이다. 아니, 추격이다.
검성은 방군들의 죽음 뒤에 마군이 있다는 것을 곧 알아낼 게다.
검성은 여지없이 공격해 온다. 지금은 죽은 듯이 엎드려 있지만 곧 발톱을 드러낸다. 그리고 검성이 발톱을 드러낼 때, 십마 중에 절반은 한순간에 소멸된다.
검성은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이 마군과 그의 휘하들에게 집중되면…… 끝장난다.
마군도 그런 위험은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좋게 좋게 풀어나가고 싶다.
검성이 이해하는 선에서 방군을 죽인다.
단지 방군 몇몇 정도 죽이는 것은 검성 성주도 이해할 것이다. 그 정도로는 발톱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검성은 발톱을 훨씬 거대한 적을 위해서 숨겨둔 것이니까.
“유가삼문으로 간다. 방비할 틈도 없이 들이친다.”
“기습도 하시겠다는 말씀?”
“죽이는 게 목적이다.”
“헉! 정말 기습을 하실 생각이시네.”
“…….”
마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하나마나, 그는 수하들보다 먼저 신형을 띄워냈다.
쒸이이익!
마군이 비조처럼 날아간다.
“어찌 이거…… 점점 불구덩이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기분인데?”
좌수비마가 협검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유가는 각 성(省)에 하나씩 일곱 성(省)에 무관(武館)을 열었다.
그래서 유가 형제들은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다. 유가 십 형제가 한자리에 모이기 위해서는 서로 서신을 주고받아서 특별히 날짜를 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날, 유가장 십 형제는 유가삼문에 모였다.
“삼주…….”
유가주…… 유가 십 형제 중 제일좌(第一座), 장남, 대숙(大潚)이 유기청을 애잔한 눈으로 쳐다봤다.
“죄송합니다.”
유기청이 큰 형에게 편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질녀에게 투살진기를…… 후회하지 않으시는가?”
“검왕이 그 아이를 버리지 않을 겁니다.”
“검왕은 믿지.”
“인사드립니다.”
제삼주 유기청이 큰 형을 향해 절을 했다. 그리고 둘째 형을 향해서도.
대청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누가 올 것 같은가?”
둘째 형이 인사를 받자마자 물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를 무너트릴 수 있는 자인 것만은 틀림없을 겁니다.”
“검왕이 야속하군.”
큰 형이 탄식을 불어냈다.
검왕은 유기청의 죽음을 원한다.
검왕이 서신을 보내왔다. 누군가가 유기청을 죽일 것이라고,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올 것이라고.
그런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살 수 있는 방책을 강구해 줄 수도 있지 않은가.
검왕은 사실만 알려왔을 뿐, 방책은 일러주지 않았다.
유기청의 죽음을 원한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니면 숨기를 바라거나.
유기청은 죽음을 택했다.
그는 숨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를 피해서 은둔하거나 은신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검왕도 유기청의 성격을 알고 있다.
즉, 검왕은 서신을 보낼 때부터 유기청이 죽을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이곳은 팔제(八弟)에게 맡길까 합니다.”
그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유기청은 일어나서 절하는 동생들을 부드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일일이, 한 명씩.
마지막 동생이 절을 마치자, 그는 검을 들고 일어섰다.
누군가가 그를 죽이려고 한다면…… 유가 삼문을 멸절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검왕의 서신에서 암살의 냄새를 맡으려고 했지만 그런 냄새는 풍기지 않았다.
그를 죽일 사람은 초강자다.
암살로 죽이려는 것이 아니다. 강공으로 몰아쳐 온다.
삼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다가는 삼문 전체가 날아가는 불운을 맞이한다.
다른 형제들이 함께 나설 생각도 했다.
허나 그 생각은 삼문주가 제지했다.
“방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검왕을 돕는 사람들인데…… 저들이 아주 잘못 생각했어요. 저들 목적이 방군 제거라면…… 한 명을 죽이는 대신 아홉 명이 새롭게 생겨납니다. 형님, 검왕을 부탁합니다. 동생들, 사력을 다해주게.”
유가삼문주는 검왕이 무엇을 하려는지 말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목숨을 수천 개 늘어놔도 검왕이 행하려는 행동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화아가 투살진기를 수련했다.
정도인이 마공을 수련했다.
그 일을 유가삼문주가 인정했다. 자신의 손으로 딸을 밀어 넣었다. 밀어 넣고 싶지 않았지만.
저벅! 저벅!
검을 든 유기청이 대청을 벗어났다.
유가의 아홉 형제는 피눈물을 삼키면서 유기청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그들은 믿는다. 유기청이 결코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아님을. 그리고 유기청이 결코 섣부른 판단을 하는 사람도 아님을. 마(魔)를 얼마나 증오하고 미워하는지를.
지금 무엇인가 아주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홉 형제는 그런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유기청을 홀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형님! 부디 몸 보중하십시오!”
칠제가 유기청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마군은 유기청이 삼문에 없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삼문을 벗어나? 한가롭게 유람을 즐긴다고?’
좋지 않은 느낌이 든다.
이건 마치…… 자신의 목숨을 줄 테니 삼문은 건드리지 말라는 포고 같지 않은가.
유기청이 어떻게 위험을 눈치챘지?
그렇다면 귀선부 이령의 계획은 수정되어야 한다. 유기청을 죽인다고 해도 검왕은 돌아보지 않는다. 방군 모두를 죽인다고 해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는 우연, 둘도 우연, 셋은 필연. 셋까지 죽여보면 알겠지.’
그는 귀면사자와 태황도마에게 눈짓을 했다.
“우리 둘요? 유기청 정도는 저 혼자서도…….”
마군은 귀면사자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이미 눈을 감고 유기청의 생각을 읽기에 몰두했다.
유기청이 어떻게 위험을 알았을까?
아니다. 유기청만 죽이면 더 이상 방군을 죽이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두 명 정도 더 죽여야겠다. 다음은 누구를 죽이는 것이 효과적일까? 어떤 자를 죽여야 검왕이 반응할까? 자신이 마음속으로 점찍은 자 역시 사전에 위험을 탐지했을까?
그는 머릿속에 유기청 다음으로 죽일 자를 떠올렸다. 혼자만 알게끔 입도 벙긋하지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