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73화 (7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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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五章 집마(集魔) (3)

역공(逆功)!

하늘의 저주를 벗어던질 수 있는 천고의 절학!

혈루뇌옥은 이 공부에 큰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딱 한 글자, ‘거스를 역’자만 붙였다.

하늘이 내린 저주를 거스르겠다는 뜻이다.

헌데 이 말…… 이 역공이라는 말 속에는 묘한 생각이 함유되어 있다.

자신들에게 내려진 저주를 거스른다?

그 말을 곰곰이 되씹어 보면 혈루뇌옥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저주를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 왔다는 뜻이 된다.

하늘의 저주가 당연하다.

자신들에게 내려진 저주가 하늘의 섭리다.

헌데 그 섭리가 싫으니까 이제 한 번 거스르겠다는 것이다.

혈루뇌옥 사람들은 타인과 싸우기에 앞서서 자신들과 처절하게 싸워야 했던 사람들이다.

좌우지간 그들은 역공에 성공했고, 저주를 벗어던졌다.

딱 백 일, 백 일뿐인 자유가 주어졌다.

역공에 성공한 자들은 중원 땅을 밟을 수 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자유다. 하지만 백 일 안에는 반드시 혈루뇌옥으로 돌아와야 한다.

돌아온 자들은 혈루뇌옥에서 소진되었던 지력(地力)과 천력(天力)을 보충한다.

그 기간이 최소 이백 일이다.

백 일의 자유 후에는 이백 일의 구금 생활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게 어딘가? 평생 협곡을 벗어나지 못하고 일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태반인데.

현재, 혈루뇌옥에서 역공에 성공한 자는 열 명 안짝이다.

매우 적은 숫자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역공에 성공했다.

촌장은 그들 중에서 다섯 명을 데려가도 좋다고 했다.

중원 땅을 밟을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절반을 내놓은 것이다.

물론 누미가 태아만 출산해주면 혈루뇌옥 사람들 모두가 중원에 들어설 수 있다.

산사태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산사태가 일어나면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다. 피하지 못한다면 파묻히는 수밖에 없다.

혈루뇌옥은 산사태와 같다.

혈루뇌옥이 중원 땅을 밟으면…… 산사태가 일어난 것과 같다.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 거대한 힘!

‘누구를 데려간다…….’

화천은 고민했다.

촌장을 비롯해서 일월양장 모두가 그를 비난한다. 적벽검문과 검왕에게 당했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의 이면에는 혈오의 실패가 엿보인다.

촌장과 일월양장은 혈오의 탄생을 실패로 본다. 혈오가 탄생하든 탄생하지 않든 혈루마옥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미 예단해 버렸다.

그들의 그런 생각이 화천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혈오는 탄생한다.

혈루마옥의 모든 사람들이 중원 땅을 밟는다.

그 일을…… 자신이 해낸다.

다시 말해서 자신은 명을 받고 중원으로 다시 나간다고 해도, 누군가는 누미와 혈오를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혈오가 탄생하면 자신의 뜻에 맞게 약간의 수작을 부려주어야 한다.

그 일을 누가 해줄 수 있는가?

누미의 출산은 석대선생이 맡고 있다.

석대선생이 그 일을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그는 촌장 사람이다. 촌장이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고, 또 실제로도 그렇다.

그는 절대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허면 석대선생의 눈까지 가리면서 일을 진행시켜야 한다.

그의 머릿속에 한 여인이 떠올랐다.

그녀라면…… 해줄 수 있는데.

결국 그는 그녀를 찾았다.

며칠을 생각해도, 몇 번을 고쳐서 염두를 굴려봐도 그 일을 해줄 사람은 오직 한 명, 그녀뿐이다.

두 사람은 늘 만나는 곳에서 만났다.

협곡에는 작은 폭포가 있다.

높이가 세 길밖에 되지 않아서 폭포라고 말할 수도 없는데, 그래도 포말이 제법 하얗게 부서진다.

혈루뇌옥 사람들은 이곳을 비룡폭포라고 부른다.

중원에 툭 하면 있는 비룡이라는 말이 혈루뇌옥에도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리 부른다.

또 비룡폭포는 사랑의 둥지이기도 하다.

많은 청년, 처자들이 비룡폭포 앞에서 밀어를 속삭인다. 사랑을 나눈다.

젊은이들의 성지.

두 사람은 그곳에서 만났다.

여인은 취옥빛 치마를 입고 있다. 매끈한 다리가 환히 보일 정도로 얇은 치마다.

머리는 길게 늘어트렸고, 단정하게 묶었다.

그를 만난 후로는 궁장으로 틀어 올렸었는데, 뇌옥을 방문할 때도 궁장머리였는데…… 그를 만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상큼하고 매혹적인 모습이다.

“잊고 있었군. 그 모습.”

그가 웃었다.

“사내는 모두 그렇게 뻔뻔해?”

“미안.”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음부터는 이런 식으로 불러내지 마. 용건은?”

여인이 차게 말했다.

“혈오…….”

“그만!”

여인은 그가 혈오라는 말을 하자마자 말문을 막아버렸다.

“역시 그것 때문이야?”

“…….”

“정말 뻔뻔하네. 하기는…… 더 이상 뭘 기대해.”

화천은 여인의 말에서 한 가닥 희망을 붙잡았다.

기대한 것이 있었나? 그렇다면…… 아직도 사랑이 남아있나? 그래, 쉽게 잊을 수 없지.

“널 포기하고…… 혈오를 택했다.”

“잘했어.”

“그만큼 절실했다고 받아들여 주면 안 되겠나.”

“안 돼.”

“혈오가 이대로 죽으면 넌 어찌 되나. 난 어찌 되고. 우리는 뭐가 되는 건가? 한낱 물거품 때문에 우리 사랑만…… 혈오가 어떤 존재인지 봐주면 안 되겠나.”

“…….”

“내가 선택을 할 만했는지 봐줘.”

“할 말 다했어?”

“…….”

“간다. 분명히 말하는데 이게 마지막이야. 두 번 다시 불러내지 마. 그리고 세수 좀 하고 다녀.”

여인이 되돌아섰다. 그리고 무척 빠르게 신형을 날려 사라져 갔다.

‘세수라. 후후!’

그는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세수를 하지 않아서 낯짝이 두껍다는 말이다. 뻔뻔한 일을 했을 때, 그런 말을 했을 때, 그녀가 사용하던…… 애교 있는 말이다. 또 그 말은 그의 뻔뻔한 일이나 말을 해주겠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번 일도 해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안다. 혈루뇌옥 사람치고 혈오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 혈오에 취해야 할 다양한 조치법도 안다.

그중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그녀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다.

석대선생을 제치고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도 이미 짐작했을 것이다.

“후후후!”

그는 가는 웃음을 흘렸다.

역시 여자란…… 이 얼마나 미련한 인간인가. 몇 번을 속아도 사랑이란 이름이면 뒤돌아서니. 그렇지. 그녀가 아무리 냉랭하게 돌아서도 자신만 한 사내를 찾기는 힘들겠지.

저 여자, 영원한 자신의 여자다.

자신의 마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후후후!”

웃음이 절로 흘러나온다.

여인은 죽림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운공조식을 취한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화천에 대한 생각이 소멸되고 없다. 오직 맑은 이성뿐이다.

사내는 정말 이상한 동물이다.

그들은 왜 절교라는 말을 믿지 않는 거지?

여인이 돌아서면 얼마나 냉정하게 돌아서는지 그렇게도 모르는 것인가?

단언하건대 사랑이라는 밧줄을 싹둑 끊어버릴 수 있는 결단력은 여인만이 가진 것 같다.

한때는 화천이 이 세상의 중심이었다.

화천이 잘 될 수만 있다면 어떤 궂은일도 기꺼이 해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누미만 해도 그렇다.

혈오에 대해서 본심을 말하고 누미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면 받아들여 줄 수도 있었다.

혈루뇌옥 사람치고 혈오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헌데 화천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누미를 취했다. 혈오를 잉태시켰다. 혈오를 잉태시키기 위해서는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정사를 벌여야 하는데…… 그것을 했다.

그리고 용서해달라고?

사내 얼굴은 도대체 얼마나 두꺼운 것인지.

아니, 왜 아직도 자신이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용서하지 못한다는 말뜻을 그렇게도 모르나?

스으으으으!

부드러운 미풍이 대나무 사이를 휘돌아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화천이 떠났습니다.”

담담한 음성이 들려왔다.

“뒤를 밟을까요?”

“아니.”

“괜찮으십니까?”

“…….”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혈루뇌옥 사람치고 그녀와 화천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현재 그들이 이별 상태에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이렇게 다독여주는 것인가?

“혈오를 살펴봐.”

“그 말씀은……?”

“석대선생의 눈을 한순간만 가려줘.”

“정말 곤란한 말씀.”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은류(隱流)가 곧바로 거절의 뜻을 전해왔다.

석대선생과 은류는 모두 촌장의 사람이다.

그들은 사내들이니 녹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촌장 직속이다.

은류는 그녀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 선의로 부탁을 들어줄 뿐이다.

“곤란해?”

그녀가 되물었다.

“하하! 그렇게까지 몰아붙이시면…….”

은류가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알았어.”

그녀는 다시 운공조식으로 몰입해 들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은류가 다시 말을 건네왔다.

“정말 혈오를 살펴주실 생각이신지?”

그는 자신과 화천이 나는 말을 들었다. 비룡폭포에서 나눈 말을 모두 들었다.

은류가 그 말을 촌장에게 전할 수도 있다.

아니다. 은류는 절대로 전하지 않는다. 그녀와 화천과의 사이에 일어난 일, 나눈 말은 모두 함구한다.

“소신, 그나마 충고라는 것을 드리자면…… 아무것도 하시지 마시라, 이대로 있으시라.”

“알았어.”

“하! 정말 곤란하신 분.”

은류가 다시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여인의 모습에서 결코 혈오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직감을 받았다.

여인은 화천이 말한 대로 할 생각인가?

여인이 혈오를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석대선생의 눈을 가리는 것은 배신이니 할 수 없고…… 양해를 구해보는 것은 어떤지?”

“양해해 줄까?”

“말은 제가 하는 것으로.”

“고마워.”

“그럼.”

스으으으읏!

미풍이 죽림을 휩쓸면서 지나갔다.

은류는 화천을 쫓아서 중원을 다녀왔다. 화천이 중원에서 벌인 모든 일을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은류는 그녀에게 호의적이다.

호의? 아니다. 그가 촌장 사람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은류는 그녀에게 호의를 베푸는 척하면서 촌장의 지시를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석대선생에게 양해를 구한다…….

모두들 혈오의 탄생을 기대한다. 어찌 기대하지 않겠나, 저주받은 땅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인데.

다만 혈오가 누구 손에 들어가는지, 그게 변수다.

방금 은류가 전해주고 간 말 속에 촌장의 입김이 스며있다면…… 촌장도 혈오에게 약간의 손질을 가한다면…… 일월양장도 그날은 조용히 있지 못할 것이고…….

‘혈오가 보물덩어리가 됐군. 그 사실을 화천만 몰라.’

촌장과 일월양장은 화천을 혈오에게서 끊어냈다.

핏줄과 핏줄의 당김을 끊어버렸다.

화천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겠지만, 그래서 촌장이 시키는 대로 멍청하게 중원 땅을 신나게 밟고 있지만…… 그녀는 여인이기에 단박 깨닫는다.

촌장과 일월양장은 혈오가 가장 근접한 화천부터 끊어냈다.

그다음은 모두 동등하다. 같은 위치에서 수작을 부린다.

그 누구든 촌장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는 곳이지만…… 암중에 부리는 수작까지야 막을 수 있나.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동등해졌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녀도 포함되어 있다.

화천에 대한 애정은 없다. 화천이 그랬듯이 그녀도 자신을 위해서 혈오를 취하련다.

스으으으읏!

그녀는 운공조식에 깊이 심취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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