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72화 (72/225)

# 72

第十五章 집마(集魔) (2)

두 사람은 잘 구워진 토끼고기를 나눠 먹었다.

비형은잠은 홍은사를 해독할 수 있다. 고기를 먹기 전에 미리 해독제를 복용했으니 중독될 염려가 없다.

그래도 홍은사의 맛은 매우 쓰다.

“크으!”

해독제를 복용했지만 고기가 혀에 닿을 때마다 칼로 도려내는 듯 아려온다.

검왕은 해독제도 복용하지 않고 태연히 먹는다.

“뭘 쓴 건데?”

비형은잠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홍은사는 사문의 독이다. 헌데 사문의 독에 대해서 외인에게 묻고 있다.

“혈(血).”

검왕은 짧게 말했다.

“음!”

비형은잠은 신음을 흘리고는 더 묻지 않았다.

검왕이 홍은사를 해독할 수 있는 이유는…… 혈영마공에 있다.

혈영마공의 그 무엇이 중원제일독이라는 홍은사의 독성마저도 잠재워버린다.

그렇다면 혈영마공은 결코 좋은 공부가 아니다.

인체를 순식간에 갉아먹어 버리는 독이 홍은사인데, 그런 독이 독성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라면…… 검왕의 몸은 홍은사 정도는 침범하지 못할 정도로 지독하게 변해있다는 뜻이다.

홍은사가 독성을 드러내지 못할 정도로 중독되어 있다?

중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역할을 혈영마공이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홍은사가 침범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침범하기는 하는데 제 독성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만큼 검왕의 몸이 지독하다.

비형은잠이 화제를 돌렸다.

“널 죽인 그놈…… 아니지. 네가 살아있으니 죽였다고 할 수도 없고…… 좌우지간 널 쓰러트린 그 인간하고 누미…… 그 두 사람, 남녀지정을 나눴는데…….”

비형은잠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검왕은 그에게 누미를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누미를 보호하기는커녕 시종인 듯싶은 자에게 목숨의 위협까지 당했다.

“그놈, 쌍마환령을…… 준비 중인 것 같았어.”

비형은잠이 힘들게 말했다.

미공자가 쌍마환령…… 음기가 가득한 여인의 몸에 양기를 불어넣은 후, 두 기운을 일시에 흡취하는 수법을 사용했다면…… 지금쯤 누미는 죽었다.

“그놈이 설마 쌍마환령을 사용할 줄은…….”

“쌍마환령이 아냐.”

“뭐라고!”

비형은잠이 그럴 리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쌍마환령하고 비슷하긴 한데, 그보다 더 지독하지.”

“쌍, 쌍마환령보다 더, 더 지독, 지독해?”

“쌍마환령은 여인을 죽이는 것으로 끝나지만 이건…… 후후후! 태태환사(胎胎幻邪)라고 들어봤나?”

“태…….”

비형은잠이 입을 쩍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도 하지 못했다.

“태태환사. 저들이 하려는 것은 태태환사야.”

검왕이 독 묻은 토끼고기를 덥석 베어 물었다.

검왕이 바위에 등을 기대고 누워서 잠을 잔다.

검왕은 잠들어 있어도 깨어있는 것 같다.

그는 분명히 자고 있다. 하지만 멀쩡히 두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빌어먹을!’

비형은잠은 잠들지 못했다.

태태환사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지금 이 시간, 저주받은 악령의 사법이 행해지고 있다.

중원에 나온 자들이 유지자문 사람인 줄 알았다.

틀렸다. 혈루마옥이다.

그들이 중원에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오고 말았다.

혈루마옥이 행하고 있는 게 쌍마환령인 줄 알았다.

틀렸다. 태태환사란다.

쌍마환령은 마인 한 명의 욕망이다. 불사신체를 이루고 싶은 욕구로 본다.

한 여인을 희생시켜서 중원의 최강자가 된다? 있을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

쌍마환령은 순음의 여인이 극양지기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한다.

물과 불이 만나면 당연히 충돌이 일어날 진데…… 이 세상에 오직 한 명, 요미검체만은 물과 불을 충돌시키지 않고 온전히 보존시킬 수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는데…… 그럴 수 있다.

여인의 몸에서 순음진기와 극양지기가 조화를 이루면, 흡인기공으로 단숨에 흡취한다.

요미검체가 부릴 수 있는 조화를 고스란히 옮겨오는 것이다.

이를 쌍마환령이라고 하며, 쌍마환령을 이룬 자는 음양의 완벽한 조화로 불사신체를 이룬다.

여인의 목숨쯤 아랑곳하지 않는 마인이라면 얼마든지 추구할 수 있는 사법이다.

태태환사는 다르다.

태태환사는 태중의 태아를 노린다.

요미검체의 여인을 임신시키고, 여인이 취한 음양이기를 태아에게 몰아넣는다.

요미검체가 가져야 할 음양이기를 태아가 온전히 갖는다.

헌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원래 태아는 음양이기를 온전히 갖지 못하게 되어 있다. 완벽하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완벽하지 못한 상태에서 태어나야 정상이다.

음양을 완벽하게 반반씩 지닌다는 것은 사내도 아니고 여아도 아니라는 뜻이다.

당연히 태아는 사산(死産)한다.

허나 만약…… 천에 하나, 만에 하나…… 태아가 사산하지 않고 태어난다면, 그럴 수 있다면…… 어떤 아이가 태어나게 될지 가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태태환사란 바로 이 방법이다. 태아를 사산시키지 않고 탄생시키는 사술이다.

허면 이토록 공을 들여서 음양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태아를 낳았다고 치자. 그 아이를 어디에 사용하려는 것일까? 목적이 뭘까? 아이를 잘 키워서 천하제일인이라도 만들겠다는 것인가?

천만에!

태아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알려진 바로는…… 약(藥)이다.

아이가 약이다.

아이를 삶아 먹는 것도 아니고, 쌍마환령을 취할 때처럼 기운을 흡취하는 것도 아닐 테고,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는 모르겠다. 허나 약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마인조차도 소름이 끼친다.

사실 태태환사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태태환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낱 전설 정도로만 떠돌 뿐이다.

헌데 정말로 그것이 가능했다.

‘태태환사라니! 제길!’

비형은잠은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혈루마옥이 태태환사를 원하는 것은…… 그들의 저주받은 삶을 고치기 위해서일 게다.

태아를 약으로 써서 저주를 풀려는 게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도대체 중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제길!’

비형은잠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몸만 뒤척였다.

“밤새 한잠도 못 자던데.”

“내가 자는지 못 자는지 어찌 알았다고. 그러는 사람도 잠을 못 잔 것 같네.”

“검성으로 가줘.”

“뭐라고?”

“성주님을 만나서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것, 그대로 말해.”

“검왕,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비형은잠이 어이가 없어서 말도 하지 못했다.

십마의 최대 적은 검성이다.

표면적으로 검성의 최대 적수는 혈천성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원 무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중원은 검성이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인물들로 십마를 손꼽는다.

마를 척결하려면 십마부터!

검왕이 검성에서 날뛸 때부터 검성 무인들이 부르짖던 구호다.

십마를 만나면 이유 불문하고 공격하라.

수단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 사악한 공격이라고 지탄받아도 좋다. 십마만 죽일 수 있다면…….

검성이 십마를 보는 눈은 증오에 가깝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십마에게 검성은 지옥의 불바다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그런 곳으로 가라고? 그것도 검성 성주를 만나라고?

검왕은 말없이 꺼져가는 모닥불에 잔가지를 넣었다.

폭우가 아직도 그치지 않았다. 장대처럼 굵은 비가 주룩주룩 쏟아진다.

작은 모닥불도 불이라고, 그것이나마 있으니 약간 온기가 느껴진다.

검왕이 손을 내밀어 모닥불을 쬐며 말했다.

“누미를 보호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뒤쫓지 않을 테니까.”

“뭐야!”

“혈루마옥의 위치를 파악했잖아.”

“그럼 내게 그런 일을 부탁한 것이!”

“…….”

“사악하다사악하다 내 너처럼 사악한 인간은 처음이다.”

비형은잠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가 사문의 살법을 정통으로 구사해서 검왕을 공격한 것은 검왕이 괘씸했기 때문이다.

검왕은 그런 수에 죽지 않는다.

검왕이 검성에 몸을 담고 있을 때, 그 수를 써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정말로 피 말려서 죽이려고 했고, 그래서 그가 가는 길에 있던 모든 생명체를 말살시켰다.

헌데도 검왕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가 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그가 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괴롭게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공격했다.

검왕은 자신을 혈루마옥 앞에 내던진 것이다.

누미를 잡아가는 사람들이 혈루마옥 사람이라는 것을 진작 알았다면…… 아마도 쫓아가지 않았을 게다.

검왕은 그들이 혈루마옥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알면서도 자신에게 누미를 보호하라고 맡겼다. 절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기를 바랐던 거다.

저들이 쌍마환령을 시도한다. 아니, 태태환사를 시도한다. 그 현장을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검왕은 그다음 수도 생각했을 게다.

쌍마환령까지 목격했는데 뒤를 쫓지 않겠나. 누미는 보호하지 못한다고 해도 저들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끝까지 뒤를 쫓아야 마땅하지 않겠나.

뒤를 쫓는다. 혈루마옥의 위치를 파악한다. 그리고 저들이 혈루마옥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한다.

그는 이 모든 일을 마쳤다.

검왕이 실질적으로 바라던 일을 모두 마쳤다.

그리고 검왕은…… 이 사악한 인간은…… 자신을 또 불러냈다.

놈은 자신의 비선(秘線)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비선 앞을 태연히 걸어갔겠지.

비선이 자신에게 보고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신은 놈을 괴롭히기 위해 살법을 사용한 것이고…… 이 모든 게 놈이 자신을 불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당하고 있다.

헌데 뭐? 이번에는 검성으로 가라고? 성주를 만나라고? 왜?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해줘야 하는데?

검왕이 품에서 작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내밀었다.

“밀도(密圖).”

“밀도?”

“귀타가 드나드는 암도를 그려놓은 것이니까…… 검성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고 편안하게 들어갈 수 있을 거야.”

“흥! 그까짓 놈들이 두려워서 그러는 줄 알아! 도대체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줘야 하는데!”

“혈루마옥이 나온다.”

“…….”

비형은잠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검왕의 입에서 그 말을 듣고 나니 전신에 힘이 쫙 풀렸다.

혈루마옥이 나온다는 말은…… 얼마 전에 잠깐 중원에 들러서 검왕을 묵사발로 만든 미공자, 그 같은 절대고수가 우수수 풀려나온다는 소리다.

검성, 혈천성, 십마가 설 자리는 없다.

그들이 나오면 제일 먼저 척살될 사람들이 바로 검성 성주요, 혈천성 성주요, 십마다.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다.

검왕이 말했다.

“가면서 몇 사람을 더 모을 생각이야. 정사마를 떠나서 모두 사력을 다해야 해. 저들 눈에는 병기를 지닌 사람은 모두 죽여야 할 사람으로 보일 테니까.”

비형은잠은 검왕의 뜻을 알았다.

검성 성주의 뜻도 대략 짐작했다.

“혈천혈도, 그놈도 알고 있나?”

검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지. 검성에 가주겠어. 가만히 있으면 모두 뒈진다는데 뭔들 못하나.”

이 말은 쌍마환령을 봤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혈루마옥을 목도했기에.

“검성에 가는 건 좋은데…… 영 찜찜해. 그쪽 사람들과는 말도 섞어보지 않아서…… 내가 조심해야 할 게 있나?”

“귀선부.”

“뭐야!”

비형은잠이 깜짝 놀라서 고함쳤다.

도대체 오늘 얼마나 놀라야 하나?

검왕이 태연히 말했다.

“귀선부를 조심하고, 마군도 조심하고…… 후후후! 사실 누구를 조심해야 할지…….”

검왕이 말끝을 흐렸다.

‘귀선부를 조심하라고?’

비형은잠은 검왕을 망연히 쳐다봤다.

귀선부 이령과 검왕은 한때 연인이었다. 중원 사람들 모두가 두 사람이 혼인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헌데 지금 검왕의 말을 빌리면…… 귀선부는 혈루마옥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러면 검왕과는 적대관계가 된다. 서로 검을 겨누는 관계가 되었다.

어쩌다가?

‘너도 참…… 피곤하겠다.’

비형은잠의 눈에 검왕의 혼돈이 보이는 듯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