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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五章 집마(集魔) (1)
폭우에 강물이 불어났다.
강에 놓인 작은 목교(木橋)가 금방이라도 쓸려 내려갈 듯 위태롭다.
이럴 때, 사람들은 강을 건너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불어난 강물은 폭군보다도 위험하기 때문에 발길을 멈춰 세운다. 무리해서 강을 건너지 않는다.
스읏!
그는 목교에 발을 내디뎠다.
멀리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쳐다본다.
강을 건너지 못해서 발길을 멈춰 세운 사람들인데…… 그들이라고 해서 강을 건너고 싶지 않겠나. 한시라도 빨리 강을 건너서 가던 길을 마저 가고 싶을 게다.
강 건너에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을 수 있다.
강 건너에 연인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누구라도 무사히 목교를 건넌다면, 다리가 무사하다는 것이 확인되면 조심해서 시도해볼 생각이 있다.
“저거 위험한데.”
“다리가 많이 휘어졌잖아. 저걸 어떻게 건넌다는 거야?”
“무인이잖아. 달마는 갈대를 밟고 강을 건넜다는데, 무인이 저까짓 다리 하나 못 건너겠어?”
“무인은 물살에 휩쓸려도 살아난다던?”
사람들은 기대에 찬 눈으로, 또는 염려스러운 눈으로 그를 주시했다.
스읏!
목교에 발을 내디뎠다.
발밑으로 진한 흙탕물이 발광하듯 거세게 휘몰아치며 흘러간다.
그는 강풍도 폭우도 염려하지 않는다. 목교가 부서지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저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무인이 아니다.
날개 달린 새처럼 하늘을 훨훨 날아다닐 수는 없지만, 적어도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다.
꾸르르르릉!
거칠게 부딪쳐 오는 물살을 바라보면서 목교를 건넌다.
한 걸음, 두 걸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태연히 목교를 밟는다. 순간!
꽈앙!
눈앞에서 불이 번쩍 튀기는가 싶더니 목교 중심 어림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꽈앙!
두 번째 폭발이 그가 막 걸어온 목교에서 일어났다.
앞길을 막고, 뒤로 물러설 길조차 막는다.
그 후, 순차적으로 세 번쯤 폭발이 더 일어났다.
목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묘하게도…… 그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 딱 한 곳, 나무 기둥과 기둥 사이의 발판 한 개만 건재했다.
목교를 순차적으로 날려버린 폭발인데…… 그가 서 있는 곳은 안전지대인 듯 멀쩡했다.
“하! 운 좋네.”
“어느 썩을 놈이 다리를 폭발시킨 거야! 우린 어떻게 건너가라고!”
“쉿! 이 사람아, 조용히 해! 저게 다리나 부수겠다고 일으킨 폭발 같은가?”
“누군가 저 사람을 노린 게 분명해. 하! 운 좋지 않아? 딱 저기만 남겨두고 모두 날아가 버렸어. 화약이 물살에 젖은 것 같은데, 하필이면 딱 저기만 남았다고.”
“한 마디로 용궁 갔다 온 거지.”
사람들이 강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를 쳐다보면서 수군거렸다.
그는 일부러 그런 것처럼 강 한복판에 서 있다.
사방이 굽이치는 물결인데, 엄청나게 불어난 강물이 용트림을 하면서 흘러가는데…….
그는 밤이 깊을 때까지 강 한복판에 서 있었다.
다행히도 밤이 깊을 무렵까지는 잔교가 부서지지 않고 굳세게 버텨주었다.
자정이 조금 넘었을까?
모두들 깊은 잠에 혼곤히 빠져있을 무렵, 강 한복판에서 조용한 울림이 일어났다.
꾸르르릉! 쿠웅!
잔교가 무너지는 소리다.
이튿날 아침, 사람들이 일어났을 때는 잔교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물론 잔교에 서 있던 청년까지도.
폭우가 사흘 연속 쏟아진다.
‘비를 피할만한 곳이…….’
산길을 더듬어가는 그의 눈에 작은 폐가(廢家)가 눈에 들어왔다.
폐가라고 할 수도 없는…… 산에 지어놓은 작은 산신각 같은 곳인데, 그마저도 버려진 지 오래되어서 지붕도 무너져 내려앉았고, 벽에도 바람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그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폐가라고는 하지만 비바람을 피하기에는 충분한 곳이다. 하지만 그는 저곳에서 쉬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노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폐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
꽈앙!
느닷없이 폐가가 폭발해 버렸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데…… 심지가 타들어 가는 냄새도 없었는데…… 마치 포탄이 날아와서 산신각을 명중시킨 것처럼……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발길을 돌렸다. 아니,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어지간히 화났군.’
산에는 물이 없다. 아니, 물은 많다. 폭우가 거세게 대지를 두들기고 있으니 사방천지가 물이다.
그래도 그가 마실 물은 없다.
그가 발길을 옮겨놓는 곳, 그의 앞에 놓인 물길에는 빠짐없이 독이 함유되어 있다.
짐작했겠지만 음식도 없다.
동물도 없고, 식물도 없다. 먹을 만한 것은 모두 치워져 있다.
어쩌면 그리 깔끔하게 치웠는지…….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려야 한다.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먹기 위해서. 그렇지 않고 땅 위에 떨어진 물을 마시려고 했다가는…….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짐승도 먹지 않는 독초를 뜯어 먹어야 한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치워졌다. 하다못해 잡풀까지도 독이 뿌려져 있다.
한 사람의 앞길을 철저하게 사지(死地)로 만들어 놓았다.
누군가가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에 한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절대적인 금력(金力)이다.
수많은 사람을 동원할 수 있는 은자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조직이거나.
이 세상 전체를 독 천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독이 필요하다. 작은 산 하나만 독지로 만들려고 해도 천석지기의 재산쯤은 손쉽게 날아간다.
은자가 많아도 보통 많아야 하는 게 아니다.
남은 한 가지…… 이런 류의 살공을 수련한 사람이라면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가능하다.
산 전체를 독지로 만들 필요는 없다. 목표가 움직이려고 하는 곳을 정확하게 예상해 내기만 하면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사지를 만들 수 있다.
사람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어야 한다.
쉬고 싶을 곳에 화약을 설치한다. 물을 마시고 싶은 곳에 독약을 푼다. 배를 채워야겠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독을 풀어놓는다. 동식물을 모조리 없애 버린다.
그럼 옆길로 비틀어서 올라가면 어떻게 되나? 정해진 길을 버리고 무작위로 다른 길을 택해서 움직인다면?
상대는 그것까지도 계산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어떻게 사람 심리를 그토록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나?
일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중원에는 그런 살법은 연구한 살문이 있다.
배가 고프던 참에 버섯을 봤고, 막 따서 먹으려는 순간…… 버섯의 갓에 묻어있는 빨간 점을 봤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점.
허나 그 점 하나에 장정 백 명을 죽일만한 독성이 숨겨져 있다.
점 하나가 한 생물을 중독시킨다. 중독된 생물을 복용하면 신선이 와도 살려낼 수 없게 된다.
사발만 한 독분 정도만 지니고 있다면 산 전체를 독 천지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말은 들었는데…… 신경질 나도록 지독하군.’
그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작은 늑대굴을 발견했다.
늑대도 버리고 떠난 듯한 굴인데, 비바람 정도는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허나 그곳 역시 그의 차지는 아니다.
‘저곳에서 쉬고 싶은데…… 후후! 다른 곳은 쉴만한 곳이 없지?’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바위 밑이라도 비를 피할만한 곳만 있으면 두 다리를 뻗을 생각이다. 헌데 없다.
그는 늑대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 아니나 다를까!
꽈앙!
늑대굴에서 작은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땅이 노한 듯 우르릉거리더니 작은 굴이 풀썩 무너져버렸다.
역시 늑대굴은 그의 차지가 되지 못했다.
상대는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가 늑대굴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화약을 터트릴 수도 있다. 아니면 버섯 윗부분에 독분을 뿌릴 게 아니라 갓 밑쪽에 뿌릴 수도 있다. 그러면 상당히 곤란했을 게다.
상대는 죽이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무조건 피 말려 죽인다. 쫄쫄 굶게 만들고, 물도 마시지 못하게 만들고, 한시도 다리를 뻗지 못하게 만들고, 잠도 자지 못하게 만들고, 미치고 환장하게 만든다.
나흘째가 되었다.
그는 상대가 원한 대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먹지도 않았고, 잠도 자지 않았다.
폭우를 전신으로 흠뻑 맞았다.
목교가 폭파되었을 때처럼 좁은 산길이 폭파되어서 벼랑을 타고 올라간 적도 있다.
끊임없이 괴롭혀 왔다.
그렇게 나흘째 되는 날 아침이 밝았을 때, 그는 잡풀 더미 속에 죽어 있는 토끼를 집어 들었다.
토끼는 괜히 죽은 것이 아니다. 토끼의 입가에 검은 피가 잔뜩 묻어있다.
독에 중독되어서 내장이 녹아버렸다.
그는 죽은 토끼의 껍질을 벗기고, 배를 갈라서 녹아버린 내장을 훑어냈다. 그리고 불을 피웠다.
그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잠시 후, 모닥불이 타올랐다.
그가 손질한 죽은 토끼는 나무 꼬챙이에 꿰여 모닥불 위에 놓여졌다.
타탁! 타타탁!
모닥불이 기세 좋게 타올랐다.
물론 이 순간, 그는 불가에 앉아있다. 편히 앉아서 따뜻한 불을 쬔다.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때 같으면 그가 앉을 자리에 화약이 설치되어 있었을 게다. 아니면 모닥불을 피우는 곳에라도.
불길을 일으키면 저절로 폭발이 일어났다.
피 말려 죽이는 살법은 상대를 편히 앉아서 쉬게 하지도 않는다.
“화 좀 풀렸나?”
그가 모닥불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의도가 뭐냐?”
숲 안쪽에서 음침한 음성이 들려왔다.
“미행은?”
“못했다.”
“보호는?”
“못했다.”
“아무것도 못 했군.”
“아무것도 못 할 줄 알았잖아!”
“아무것도 못 해놓고 왜 내게 신경질이지?”
“뭐라고?”
“그렇잖아. 맡긴 일을 못 한 것은 당신인데, 당신이 왜 내게 화를 내는 거야?”
“야, 이 죽은 귀신아!”
숲 안쪽에서 쩌렁 일갈이 터져 나왔다.
“나와. 맛있게 익었다.”
그는 잘 구워진 토끼고기를 들어서 반으로 쭉 찢었다.
“그걸 정말 먹을 셈이냐?”
“배고파. 먹고 죽더라도 당장은 먹어야겠어.”
“너…… 내가 알고 있는 검왕…… 맞냐?”
검왕은 상대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토끼고기를 덥석 입 안에 넣었다.
“어! 어! 아, 안돼!”
숲에서 경악에 찬 소리가 울리더니 한 인형이 쒹 나타나 토끼고기를 낚아챘다.
그러나 이미 검왕은 고기를 입으로 물어뜯은 후였다.
“홍인사(紅燐死), 지독한 독인 것은 아는데…… 이 정도로는 날 죽이지 못해. 그동안 홍인사가 묻은 것을 먹지 않은 것은…… 그동안 먼 길 다녀온 데 대한 대가라고 할까? 일을 잘했든 못했든 먼 길을 다녀오긴 했으니까.”
검왕은 입에 물고 있던 고기를 으적으적 씹어먹었다.
“그, 그걸 진짜…… 엇! 정말 홍인사가 아무렇지도 않은 거냐?”
십마 중에 일인, 비형은잠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홍인사는 그가 자신하는 중원제일독이었다. 이 세상 누구도 죽일 수 있다고 자부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