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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70화 (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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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四章 돈명(沌鳴) (5)

덜컹!

기나긴 침묵을 깨고 뇌옥 문이 열렸다.

‘왔군.’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뇌옥은 공간이 세 평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일어서서 두어 걸음 걸으면 반대쪽 벽에 닿는다.

무척 답답하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습기와 벌레다.

등을 벽에 기대면 축축한 물기가 스며든다. 잠을 자다 보면 노래미 같은 벌레들이 얼굴 위로 기어간다.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무엇보다도 공기가 문제다.

뇌옥이 지상에 있다면 그나마 맑은 공기가 흐를 터인데, 지하뇌옥은 공기 속에서 곰팡내가 묻어난다.

여기까지가…… 배부른 소리다.

뇌옥에 갇히면 목숨을 염려해야 한다. 혈루마옥은 죽일 자가 아니면 뇌옥에 가두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하면 뇌옥에 가둔 자는 반드시 처형한다.

그가 갇힌 곳은 혈루마옥의 처형지다.

만약 밖에 나가서 습기나 벌레, 곰팡내 나는 공기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하면 기가 막혀서 말들을 못할 게다.

끼이익!

중문(中門)도 열렸다.

사앗! 사앗! 사앗!

돌바닥에 옷자락 끌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또다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여인의 치맛자락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그 소리의 주인이 천하미인일 경우에는 더 그렇다. 다만…… 성질머리가 지랄 같아서 탈이지만.

화악!

뇌옥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횃불을 손에 든 그녀가 모습을 비쳤다.

그녀가 사박사박 걸어와 문 앞에 섰다.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한 마디 해봐.”

그녀가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길을 가는데 나무 위에서 독거미가 뚝 떨어져 목 뒤에 달라붙었을 때처럼…… 섬뜩한 느낌이 든다. 소름이 돋는다.

그는 여인을 쳐다봤다.

“여전하군.”

“나에게 할 말, 없어?”

“미안.”

“…….”

“네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당신 결국…… 야망을 택했다 이거지?”

“야망이 아니라…… 뭐라고 할까? 배 속에서 일어나는 열불? 참을 수 없는 분노?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 그런 쪽으로 이해해 주면 고맙겠다.”

“이해 못 해.”

“…….”

휙! 툭!

여인의 그의 발치에 열쇠를 던졌다.

“열고 나와. 분명히 말하는데, 난 당신 용서하지 않아.”

여인이 몸을 돌려 걸어나갔다.

횃불이 중문 밖으로 사라지고, 뇌옥에는 다시 어둠이 덮였다.

그는 열쇠를 집을 생각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앉아있었다.

이런 경우…… 예상했다. 결단코 외도를 용서할 여자가 아니지 않은가.

그녀 말이 맞다.

자신은 야망을 선택했다. 한 사람이 떠나갈 것을 예상하면서도.

그로부터 한 시진 후, 그는 허름한 초옥 안마당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마당에는 평상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세 사람이 앉아있다.

중년 사내 두 명과 중년 여인 한 명이다.

그들의 신태는 몹시 고요하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힘든 일이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듯하다.

그는 세 사람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했다.

“중원에 나가보니 좋더냐?”

중년 사내가 부드럽게 말했다.

“황송합니다.”

“누미……저 아이, 마음에 들더냐?”

“마음에 들어서 취한 것이 아니라…….”

“갈(喝)!”

느닷없이 중년 사내가 일갈을 터트렸다.

그는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중년 사내가 노기 띤 눈으로 그를 쏘아보다가 가벼운 한숨과 함께 화를 풀었다.

“모름지기 사내란…… 진정을 담은 후에 여인을 취해야 하는 법. 네놈이 한 짓은 금수와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좋은 후사를 얻기 위해서 여인을 취했다는 게…….”

중년 사내는 또다시 화가 치미는지 말을 중도에서 끊었다. 그리고 그를 쏘아봤다.

“그만.”

중년 사내를 다른 중년 사내가 막았다.

화천에게 노기를 터트리던 중년인은 급히 머리를 숙여 보였다.

촌장과 일월양장.

일월양장은 혈루마옥의 신이며, 촌장은 신 중의 신이다.

신 중의 신, 촌장이 말했다.

“천아, 네가 이번에는 아주 미련한 짓을 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화천은 더욱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허나 그의 눈길을 고요했다. 촌장이 잘못을 꾸짖고 있어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런 일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 모두 예상하고 있었다.

그때, 촌장이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검왕이 살아있다.”

“……!”

화천은 한순간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나 싶어서 촌장의 말을 다시 곱씹었다.

‘검왕이…… 살아…… 있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나?

촌장이 말했다.

“이제야 네가 우둔했다는 것을 알겠느냐?”

“…….”

화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텅 비어서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적벽검문은 혈루마옥을 주시한다.

오랜 세월 동안…… 혈루마옥이라는 존재가 중원에 드러난 순간부터 적벽검문의 눈길이 달라붙었다.

놈들은 혈루마옥의 감시자다.

혈루마옥을 나설 때, 적벽검문 놈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미라는 여인이 나타났을 때, 적벽검문이 자신에게 던진 미끼라는 것을 알았다. 요미검체야말로 혈루마옥이 원하고 또 원했던 여인이니까.

누미는 적벽검문이 가져가라고 내놓은 미끼다.

그런 것을 다 알면서 취했다.

상대방의 머릿속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다면 상대가 꾸민 계략쯤은 우습게 보이니까.

무엇보다…… 적벽검문은 혈루마옥을 상대하지 못한다.

잔꾀가 아무리 즐비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무공이다.

적벽검문은 혈루마옥을 상대할 만한 무공이 없다.

적벽검문에서 탄생시킨 불세출의 기재, 검왕조차도 일초지적에 불과했다.

검왕을 죽임으로써 적벽검문에 경고장을 보냈다.

검왕보다 더 뛰어난 놈이 있는가? 얼마든지 보내라. 기꺼이 상대해 주마.

누미는 잘 가져가마.

이번 중원행은 대성공이다.

혈루마옥을 벗어나 중원을 노닐었다. 혈루마옥의 금제를 무너트렸다. 중원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다소 짧기는 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훌륭하다.

더군다나 누미를 가져왔다.

누미가 생각했던 아이만 낳아준다면…… 혈루마옥은 모든 금제를 풀 수 있다.

촌장? 일월양장?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

하물며 자신을 죽이겠는가? 잠시 뇌옥에 가둔 정도로 그치는 것이 당연하다.

헌데…… 검왕이 살아있어?

“이놈아, 선후를 정확하게 해야지! 네가 먼저냐, 누미가 먼저냐!”

녹천주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무슨 말인지 모를 말…… 허나 화천은 알아듣는다.

‘누미…… 내가…… 함정에 빠진 건가?’

화천은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녹천주는 화천의 중원행이 먼저인지, 중원에 요미검체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안 것이 먼저인지 묻고 있다.

중원에 나간 후에 요미검체를 알았나? 아니면 중원에 나가기 전에 요미검체를 알았나?

후자다.

그는 중원에 요미검체가 나타났다는 소리를 먼저 들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중원행을 서둘렀다.

혈루마옥 사람이…… 저주받은 사람이…… 혈루마옥을 떠날 수 없는 사람이…… 혈루마옥을 벗어나 중원을 마음껏 노닐었다. 무공도 선보이면서.

혈루마옥이 저주를 풀었다고 적벽검문에 알려준 꼴이다.

더군다나 그는 중원을 돌아다닐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되는 지까지 알려주었다.

그는 혈오를 탄생시킬 생각이다.

요미검체는 혈오를 탄생시킬 수 있는 최적의 몸이다.

헌데 혈오를 탄생시키려면 임신도 시켜야 하지만, 그전에 화혈역심공을 수련시켜야 한다.

구수 오십사초를 전수하는데 한 달이 소요된다.

즉, 그가 중원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이 한 달이 채 못 된다면 절대로 누미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욕심은 나지만 꾹 참고 얌전히 물러갈 게다.

누미를 건드린다는 것은 중원 체류 기간이 최소한 한 달이 넘는다는 뜻이다.

화천은 혈루마옥에 당도하기 직전에 혈오를 완성시킬 생각이다.

이 말은…… 누미를 납치할 때, 그녀와 동침을 시작할 때…… 그때로부터 한 달이라는 기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원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허면 그다음은 간단하다. 그동안 그가 중원에 돌아다닌 기간에 한 달을 더하면 혈루마옥 사람들이 중원에 머물 수 있는 최장 체류 기간이 나온다.

적벽검문은 이미 이 사실까지 알고 있을 게다.

검왕이 살아있다…… 검왕이 진실로 그와 싸우지 않았다. 혈루마옥을 상대할 만한 무공이 존재한다. 적벽검문에!

그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허면 누미는…… 혈오는…….”

“혈오는 탄생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혈오는 아닐 것이야. 적벽검문이 원하는 혈오겠지.”

중년 여인이 한없이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화천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지금껏 자신이 이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낱 놀림감이 되고 있었던 겐가?

녹천주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누미든 혈오든 네놈은 신경 쓸 필요 없다. 그 정도 짐작하지 못하고 안에 들인 것은 아니니까. 한심한 것은 네놈이다. 어찌 그리 앞뒤 생각이 없어!”

“죄, 죄송합니다!”

화천은 머리를 들지 못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입지가 땅 밑으로 꺼지고 있다는 느낌만은 분명하게 들었다.

녹천주가 말했다.

“네놈은 이 길로 중원으로 나가라.”

“주, 중원에 말입니까?”

“중원에 마공관의 마서가 나타났다. 마군과 혈천성주가 들이쳤는데 죽이지 못했다.”

“마공관의 마서가 그 정도는 아닌 것으로 압니다만.”

“그래서 하는 말이다. 가서 진위를 알아봐라.”

“넷!”

화천이 머리를 땅에 댔다.

그때, 잠자코 있던 촌장이 말했다.

“나간 김에 분풀이도 하고.”

“……?”

화천이 고개를 들어 촌장을 쳐다봤다. 무슨 뜻이냐는 듯이.

“네놈, 검왕에게 당했잖아. 그러니 분풀이를 하란 말이다. 마음껏 해봐.”

“분풀이 속에…… 적벽검문도 해당됩니까?”

“쯧! 마음껏이라는 말뜻도 모르는 게냐?”

“압니다.”

그는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혈루마옥의 분풀이는 중원 전 무림에 해당한다. 혈루마옥 바깥 경계는 모두 분풀이 대상이다. 혈루마옥 사람들은 안에 갇혀 있는데, 저들은 마음껏 돌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별로 잘나지도 못한 인간들이 말이다.

언젠가 마음껏 도륙할 거야.

마음껏 검을 휘두를 날이 오겠지.

흐흐흐! 우리가 분풀이를 시작하면…… 저놈들, 지옥이 따로 없을 거야. 흐흐흐!

마음껏, 분풀이…… 이 모든 것의 대상은 혈루마옥 바깥 경계다.

촌장이 바로 그 분풀이를 허락한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말해서 중원을 피바다로 만들어도 좋다는 뜻이다. 아니, 피바다로 만들라는 명령이다.

화천이 말했다.

“중원에 나가는 사람은 저뿐입니까?”

녹천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역공(逆功)에 성공한 자들 중에서 다섯 명 정도 추리거라. 손발은 있어야지.”

증평주도 한 마디 거들었다.

“우리 중평에도 쓸 만한 아이들이 있으니까 골라보는 게 어때? 아무래도 여인이 필요하지 않겠어?”

화천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시작! 시작이다!

이것은 계획된 파괴다.

촌장은 중원을 피바다로 만들 생각이다. 그 첫발을 자신이 디디는 것이다.

‘내가…… 선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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