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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三章 미동(微動) (5)
식사시간으로 반 시진은 너무 길다. 기껏해야 찬밥 덩이 집어먹는 게 고작인데 반 시진까지 소요될 이유가 없다.
잠자는 시간은 문제다.
잠은 반 시진으로 해결될 수 없다. 매번 움직일 때마다 취침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잠에 빠질 때면 최소한 두 시진 이상은 푹 자야 피로가 풀린다.
두 시진을 운용하는데 여러 가지 변수가 많다.
오귀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다.
“이건 최후의 수단이거든. 잡히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도망가는 거라 이 말이지. 그런 놈들이 찾아 먹을 것 다 찾아 먹을 수 있나. 잠은 반 시진으로 끝내.”
하루에 반 시진만 자라는 말이다.
살짝 눈만 감았다가 뜨면 족하다. 하루 온 종일 거의 뜬눈으로 지새워야 한다.
“이렇게 며칠이나 버텨?”
“습관이 되면 한 달도 버텨.”
“한 달…….”
“우린 한 달까지 필요 없잖아? 그 전에 군산에 도착하면 되니까.”
“자신 있는 말투네?”
“자신 있지. 흐흐!”
오귀는 마군에게 쫓긴다는데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검성, 혈천성. 우리를 쫓지 않은 문파가 있기나 한 줄 알아? 그래도 우리, 살아있잖아? 흐흐!”
오귀가 대장간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대장간은 문을 닫은 지 오래되는 듯 사람이 머물렀을 법한 화기(和氣)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귀는 안에 들어서자마자 대뜸 말했다.
“좀 쉬자.”
당연히 응답은 없었다.
유화아는 주의를 기울여 봤지만 아무런 기척도 탐지해내지 못했다.
그녀의 내공은 오귀보다 깊다. 짧은 시일에 얻어진 내공이지만 오귀보다 한 단계는 높다.
그녀는 보지 못하는데, 오귀는 본다?
일귀가 말했다.
“이봐, 좀 쉬자니까. 오랜만에 친구가 찾아왔는데, 정말 이러기야?”
그러자 대장간 안쪽에서 음침한 괴소와 함께 비루먹은 말처럼 잔뜩 쪼그라든 거지가 걸어 나왔다.
“크크! 친구? 엠병할 친구?”
“이봐, 왜 그래? 오랜만에 만났는데.”
일귀가 느물거리며 거지에게 걸어갔다.
“네놈들, 또 뭔 짓거리 한 거야?”
“짓거리는 무슨…… 우리를 그렇게 몰라? 큰일, 아니라고.”
“큰일이 아닌데 마군이 쫓아 다니냐?”
유화아와 오귀는 거지의 말에 서로를 쳐다봤다.
그들은 딱 두 시진만 쉬고 움직인다. 두 시진 이상 한 장소에 머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이었다. 마군이 빠르게 쫓아올 것이라는 건 예상했지만…….
“마군이 어디까지 왔는데?”
일귀가 웃음기를 거두고 물었다.
“네놈 턱주가리 밑에까지 왔다.”
“자세히 말해봐.”
“방금 전에 천표교(千瓢橋)를 들이쳤다. 됐냐?”
거지가 ‘너희들 다 죽었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유화아와 오귀는 또다시 서로를 마주 봤다.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그들은 방금 전에 천표교를 떠나왔다. 딱 두 시진만 쉬고 곧바로 움직였다.
그로부터 대장간에 들어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반 시진 정도다.
마군과의 거리 차이가 반 시진으로 좁혀졌다. 아니, 마군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질주해 오고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일다경 내지 이다경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잡혔군!’
모두들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움직였는데.”
“예상하지 못하기는…… 네놈들 움직이는 수법이야 뻔한 거 아냐? 이런 식으로 당한 놈이 한두 놈이야? 네놈들이 어떻게 움직인다는 것을 아는데 또 당하겠어?”
“우리가 두 시진마다 움직이는 것을 안다…… 빌어먹을! 어쩌라고!”
일귀가 먼지 풀썩이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밥은 먹었냐?”
“아직. 찬밥 남은 것 있으면 줘. 바로 움직여야 돼.”
“키키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끼니나 제대로 때우고 다녀라.”
거지는 자신이 나왔던 곳으로 흐느적거리며 걸어 들어갔다.
유화아는 거지가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인기척이 감지되지 않자 즉시 말했다.
“저 사람, 믿을 수 있어?”
“없지.”
“제압해.”
“뭐라고? 우리 그런 사이 아냐. 아무리 믿을 수 없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제압해. 사귀, 오귀. 바깥 동정.”
그녀가 매우 빨리 말하면서 그녀 스스로도 창문 곁으로 다가가 바깥 동정을 살폈다.
오귀는 너무도 단호한 말에 인상을 확 찡그렸다.
잠시……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아주 긴 듯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일귀가 신음하듯 말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지. 가자.”
일귀가 이귀에게 고갯짓을 했다.
“뭐하…… 윽!”
어둠 속에서 꽈리 터지는 듯한 신음이 터졌다.
오귀의 무공은 매우 단단해졌다. 성취도가 높아진 것은 아니지만 같은 수준에서는 능숙해지고, 깊어졌다.
그들은 예전의 오귀가 아니다.
예전의 오귀는 마군의 수하들조차 상대할 수 없는 미미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십마와 격투를 논할 정도로 강해졌지 않은가.
예전에 그들이 알던 자들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잠시 후, 일귀와 이귀가 축 늘어진 거지를 어깨에 떠메고 안으로 들어섰다.
“뭐 있어?”
일귀가 불편한 심정으로 사귀에게 물었다.
사귀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인데…….”
“쉿!”
유화아가 급히 말문을 제지시켰다. 그리고 말했다.
“마군. 마군이 여기 와있어.”
꽈앙! 꽝! 꽈앙!
사방에서 벽과 문짝이 터져나갔다.
대장간은 한순간에 대포에 맞은 움막처럼 걸레조각이 되어 버렸다.
쉬익! 쉬이잇! 쉬익!
사방에서 날카로운 창들이 들이쳤다.
“응?”
“이럴 리가 없는데?”
안으로 들어선 자들은 텅 빈 공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군의 수하들이다. 헌데 그중에 유화아가 만나지 못했던 사람이 있다.
그는 체형이 여인처럼 가냘프다.
분명히 사내인데, 살살 눈웃음을 치기도 하고, 허리를 비비 꼬기도 한다.
그가 말했다.
“하! 이러면 곤란한데. 이 오빠들 되게 속 썩이네.”
그가 여인처럼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들면서 대장간을 거닐기 시작했다
“호호! 여기 있었네. 이 언니, 냄새 좋다.”
그는 유화아가 잠시 머물렀던 창가에 서서 밖을 쳐다봤다.
“이 언니, 무척 답답했을 거야. 여기서 보면 우리가 보이지 않거든. 하! 깜깜한 어둠밖에 안 보여.”
“선자(仙子), 그놈들이 여기 있었던 건 맞아?”
“호호호! 이 오빠들은 이렇게 코가 무뎌서 어떻게 살아? 이 냄새가 안 맡아져?”
칠수선자(七手仙子)가 코를 허공에 대고 킁킁거리면서 말했다.
“흠! 그럼 한발 늦은 건가?”
“아니. 그것참 묘하네. 늦었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무슨 소리야? 알아듣기 쉽게 말해봐.”
“냄새가 여기 머물러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
“이건 또 무슨 소리? 점점 모를 소리만 하네. 그럼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말이야?”
“냄새는 그래. 떠나지 않았는데…… 보이지는 않아. 냄새는 여기 있는데, 기척이 없어. 어떻게 해석하지?”
칠수선자가 좌수비마를 향해 찡긋 눈웃음을 쳤다.
“음!”
좌수비마는 신음만 흘렸다.
그들은 칠수선자를 믿는다. 그녀의 후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인간보다 백 배나 발달했다는 늑대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그는 그런 후각을 바탕으로 독특한 추격술을 창안해 냈다.
그녀가 추격하면 누구든 찾아낸다.
어디로 도주했든 잡아챈다.
음악오귀는 언제나 돌출행동을 한다. 추격을 뿌리칠 때는 더욱 그렇다.
과거, 검성은 그들의 악행을 징치하려고 했다. 그래서 수많은 무인들을 파견했다. 음악한 자들을 징치하지 않는다면 검성 체면이 서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음악오귀는 살아남았다.
혈천성도 그들을 노렸다.
음악오귀는 혈천성에 굴복하지 않았다. 같은 마인이면서 십마, 더 강한 자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고 제들 멋대로 쏘다니며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을 징계하지 않으면 혈천성의 면목이 서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살아남았다.
꼼짝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밀어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달려가 보면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음악오귀는 언제나 추격자들보다 한발 앞서서 도주했다.
추격자들은 고민했다.
음악오귀의 움직임을 분석해 본 결과, 그들은 한 장소에 두 시진 이상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두 시진만 쉬고 움직인다.
잠도 자야 하고, 체력도 회복해야 하고…… 두 시진마다 움직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만……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런데도 그들은 그렇게 움직였다.
이런 행동 분석을 알아냈으니 그들을 잡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들이 머물러 있는 곳을 안다. 그들이 머문 지 얼마나 지났는지도 알아냈다. 허면 그들이 언제 떠날지도 짐작할 수 있다. 허니 길목만 차단하면 된다.
십방(十方)을 차단해 봤다.
그래도 그들을 빠져나갔다.
결국 음악오귀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천라지망(天羅之網)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헌데…… 쥐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다는 말이 있다. 겨우 음악오귀 같은 자들을 잡기 위해서 수천 명이 동원되는 천라지망을 펼쳐야 하겠는가.
검성이고, 혈천성이고 허허! 웃으며 지나가 버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음악오귀를 잡기 위해서 천라지망을 펼칠 수는 없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그들에게는 천라지망도 우습게 여기는 칠수선자가 있다.
그들은 느긋하게 음악오귀를 뒤쫓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척 바쁘게 쫓아온 것 같지만, 천만에. 웃으면서, 즐길 것 즐기면서, 쉴 것 다 쉬어가면서 일직선으로 쭉 달려오기만 했다.
전혀 서둘 이유가 없다.
그리고 오늘, 놈들을 잡는 날이다. 그런데 없다!
“여기 있는 거야, 떠난 거야?”
백살마창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멋! 오빠, 짜증 났나 보다. 쉬이쉬이…… 화내면 몸만 상하는 법이에요.”
“놈들이나 찾아내.”
“흠! 냄새는 분명히 이 안에 있는데…… 밖으로 벗어난 흔적은 없고……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칠수선자의 말에 태황도마가 털썩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고요히 운공을 시작했다.
촤아아아아!
그가 기감을 넓혀간다.
운공을 하면서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척을 탐지해간다.
칠수선자가 하는 말은 진실이다. 그의 말을 종합해 보면 놈들은 분명히 이 안에 있다.
츠으으읏!
귀를 활짝 연다. 감각을 활짝 연다.
태황도마는 일다경 동안 운공을 지속했다. 그가 그러는 동안 남은 사람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숨소리까지 안으로 삼켰다. 태황도마의 기감에 방해되지 않도록.
츠으읏!
태황도마가 고루 퍼져나갔던 진기를 단전으로 거두어들였다.
“없지?”
백살마창이 이미 짐작하고 물었다.
태황도마는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무공으로는 숨은 자들을 찾아내지 못한다. 너무도 완벽하게 숨어서 찾아낼 길이 없다.
공은 칠수선자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칠수선자도 여기서부터는 대책이 없다.
그는 찾아 나설 곳이 없다.
“여기서 끝났어. 냄새가. 분명히 여기 있어야 돼.”
그녀는 다시 대장간을 거닐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웃음기마저 거두고, 태황도마가 그랬던 것처럼 긴기를 가득 돋구고 걷는다. 공간을 잘게 쪼개서 각각의 공간에 존재하는 냄새를 맡는다.
그녀가 넓지 않은 대장간을 한 바퀴 돌았다.
“못 찾겠네. 여기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