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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63화 (6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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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三章 미동(微動) (3)

서녘으로 해가 떨어진다.

세상이 붉은 노을에 휘감겼다. 푸르던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시퍼렇던 나무도 붉은색과 어울린다.

오늘따라 노을이 참 좋다.

“쉴까?”

음악일귀가 유화아를 쳐다보며 물었다.

유화아는 대답하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앞쪽에 있네. 벌써 보고 물은 거야.”

음악일귀가 고갯짓으로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히죽 웃으면서.

유화아는 그가 가리킨 곳을 쳐다봤다.

‘폐가(廢家).’

심하게 허물어져서 지붕조차 없는, 간신히 벽만 남아서 옛날 이곳에 집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집터다.

“아! 오늘은 뭐가 있으려나.”

“그러게. 따끈한 국물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한다니까.”

음악삼귀와 사귀가 말을 주고받았다.

유화아는 벌써 폐가를 향해 발을 떼어놓고 있었다.

“제길! 이제 그만 화를 풀 때도 됐잖아?”

“그러게. 이제 그만 화 풀어. 잘못했다니까.”

음악일귀와 이귀가 쪼르르 옆으로 달려와 함께 걸었다.

“제 버릇 개 못 줘.”

“개 준다니까.”

“난 벌써 줬다. 요 앞에앞에 마을 있었지? 거기 있던 누런 개. 고놈이 내 버릇 가져갔다.”

“…….”

“제발 그러지 말고 화 좀 풀라니까.”

“그래, 잘못했다. 앞으로는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할게. 뭐든지. 뭐든지 다 할게.”

음악일귀와 이귀가 연신 사정을 했다.

그래도 유화아는 콧방귀도 안 뀌었다. 옆에서 뭐라고 하건 말건 폐가를 향해 걸어갔다.

그들은 안 좋은 인연으로 만났다.

한쪽은 겁탈을 하려고 했고, 한쪽은 당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그때 마침 검왕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일생일대 최대의 곤욕을 치를 뻔했다.

그 악몽은 검왕이 그들에게 수선화를 복용시킬 때까지 지속되었다.

음악오귀는 유화아를 보면서 항시 군침을 삼켰다. 툭 하면 지분덕거렸다.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다.

유화아는 투살진기를 수련했다. 그리고 그녀의 성취가 음악오귀보다 한발 앞선다.

물론 지금은 그들끼리 승패를 저울질하지 못한다.

유화아는 한 명이고, 음악오귀는 다섯 명이다. 다섯 명이 펼치는 연수합격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그들은 서로 다른 병기를 지녔다.

음악오귀는 방패를 가졌다. 유화아는 창을 지녔다. 창이 전혀 없는 방패, 방어막이 전혀 없는 창이다.

그들은 서로를 시험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마군의 공격이 끝난 게 아니다. 그들은 잠시 물러갔을 뿐, 언제든 다시 덮쳐들 수 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정말 위험할 것이다.

음악오귀는 유화아가 필요했다.

그녀와 손발을 맞춰야지만 마군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절감했다.

헌데 유화아가 동조하지 않는다. 그들과는 말도 섞지 않는다. 길을 가면서도 아예 본체만체,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잠을 잘 때도, 무엇을 먹을 때도 혼자서 한다.

유화아도 마군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음악오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길을 함께 간다.

운공조식도 같이 취한다. 음악오귀와 그녀의 운공법은 완전히 다르지만, 같은 시간대에 같이 수련한다.

그들은 조금 더 효율적으로 무공을 수련할 수 있다.

그들의 장단점은 마군과의 싸움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음악오귀가 일차 공격을 막아주고, 유화아가 이차 공격을 주도해야 한다.

답은 딱 이 한 가지뿐이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공격방법에 대해서 서로 손발을 맞출 필요가 있다. 언제 어떤 식으로 합격진을 운용할지 시험해봐서 나쁠 게 없지 않은가.

음악오귀가 하자는 것은 그것인데 유화아가 하기 싫단다.

슷!

유화아가 폐가 안으로 들어섰다.

폐가 안에는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 거나한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침상도 준비되어 있었고. 비록 하늘은 툭 터져 있지만.

“머, 먹어도 될까?”

음악삼귀가 군침을 삼키면서 유화아를 흘깃 쳐다봤다.

유화아는 역시 대답을 하지 않고 음식상을 지나쳐서 한쪽 벽으로 갔다.

그것이 허락 신호다.

음악오귀는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이것저것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하루 중에서 유일하게 밥다운 밥을 먹는 시간이다.

벽에는 어린아이 낙서가 그려져 있다.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 굼벵이인지 지렁이인지 알 수 없는 선이 구불구불 그려져 있다.

유가장의 밀마다.

유가장은 마군과 접전을 벌인 이후부터 그녀를 보살피기 시작했다.

이것도 아마 검왕의 지시인 것 같은데…… 그들이 움직이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먹을 것과 잠자리를 살펴주었다.

지금처럼 밀마를 전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인적 드문 곳을 골라서 움직이고 있지만 당금 무림에서 벌어지는 일을 환히 꿰뚫고 있다.

유가장의 밀마는 비교적 상세한 편이다.

유화아는 지렁이 맨 끝자락에서 손으로 거리를 쟀다.

한 뼘, 두 뼘, 세 뼘.

세 뼘 밑 흙을 팠다.

흙 속에서 작은 죽통이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죽통을 집어 두 쪽으로 쪼갠 후, 안에 들어있던 밀서(密書)를 꺼냈다.

밀서를 읽는다.

- 마군, 추적 중.

밀서는 매우 짤막했다.

‘추적 중이라고?’

그녀는 밀서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사실은 밀서를 보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하는 것이지만.

생각을 해본다.

마군은 그들을 버려두고 검왕을 쫓아갔다. 헌데 다시 추적 중이라고?

자신들에게 다시 돌아와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납치, 살육.

명확하다. 이유는 모르지만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서 추격하고 있는 게다.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마군이 추적 중이네.”

순간,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고 있던 음악오귀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뚝 멈췄다.

“이게 여기 묻힌 게…….”

그녀는 지렁이처럼 생긴 낙서를 다시 쳐다봤다.

선이 구불구불 구부러져 있다.

하나, 둘, 셋…… 여섯.

“정오 무렵. 우리 눈은 백 리 밖에서 관찰할 수 있으니…… 두 시진 동안 얼마나 주파할 수 있을까?”

“오십 리!”

음악사귀가 고기를 입안 가득히 문 채 말했다.

마군과 그의 휘하들이 지닌 무공이라면, 그들이 전력을 다해서 달려온다면…… 오십 리는 주파할 수 있다.

저들과 자신들의 거리는 불과 오십 리다.

일반인들에게는 한참 떨어져 있다고 생각되는 거리지만, 그들에게는 코앞이나 진배없다.

“내일이나 모레……?”

음악오귀가 말했다.

“밀서에 탈출할 방도는 적혀 있지 않은가?”

음악일귀가 물었다.

유화아는 여전히 그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밀서만 노려보면서 생각했다.

‘검왕도 이런 사정을 알 거야.’

마군과의 싸움…… 승부가 결정되기 직전에 검왕이 기척을 흘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들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쌍첨수괴를 누가 막는단 말인가.

마군과의 싸움이 끝난 후부터 최대한의 배려가 이어진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무공 정진에만 몰두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군산으로 가라니 간다. 군산에 가야만 수선화를 해독할 수 있으니 무조건 간다. 허나 그냥 가서는 안 된다. 군산에 도착할 때까지 마공을 최대한으로 수련해야 한다.

검왕이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검왕도 알고 있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녀는 밀서를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일어서.”

그녀가 먼저 검을 들고 일어서면서 말했다.

“우리 싸워야겠어.”

“뭐라고?”

“최선을 다해줘.”

“너…… 진심이냐? 네가 무서워서 피하는 줄 아냐? 우리도 만만치 않아.”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하네. 이 정도 사정했으면 눈감아 줄만도 하잖아. 그까짓 일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평생 우려먹으려고 그래. 정말 할 거야!”

음악오귀가 쌍심지를 돋궜다.

유화아는 냉정했다. 차분하게 검을 들어 올리면서 검 끝에 시선을 주었다.

츠으으으읏!

검에 투살진기가 담긴다.

“어엇! 저거 진짜 싸우려고 작정했네.”

“이 미친!”

음악오귀는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유화아가 내뿜는 진기가 매우 날카롭다. 아니, 살기가 그득하다.

“그렇다면!”

음악사귀와 오귀가 재빨리 화살을 꺼내 활에 재웠다.

유화아를 쓰러트리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무조건 첫 번째 공격에서 격살시켜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유화아는 첫 번째 공격을 잘 막지 못한다.

두 번째? 두 번째로 이어지면 큰일 난다. 그때는 무조건 격살당한다. 그러니 첫 번째에서 실패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주해야 한다.

“정말 싸울 거냐!”

음악일귀가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츠으읏!

유화아는 진기를 더욱 강하게 돋웠다. 검에서 일격필살의 기운이 물씬 풍긴다.

그녀는 정말 싸울 생각이다.

“이러면 서로 좋지 않잖아. 어느 쪽이 이기든 심하게 다친다고. 우리…… 비무하자는 거지?”

츠으읏! 츠읏!

“수련하자는 거면 고개만 끄덕이고.”

유화아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검 끝을 보면서 서서히 진기를 높여간다.

그녀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원래 그녀가 수련한 신공은 정종무공이다. 헌데 마공을 섞어버리니 충돌이 일어난다.

그녀의 몸 안에서 본신진기와 마공이 충돌하고 있다.

마공이 본신진기를 억누르고 지배한다. 그래서 얼굴색이 불게 물든다. 혼신을 다해서 투살진기를 끌어올릴 때 일어나는 그녀만의 신체반응이다.

“저, 거거 미쳤네!”

“이건…… 생사를 가르겠다는 거잖아!”

음악오귀가 그제야 긴장했다. 아니, 긴장은 벌써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유화아가 하자는 것이 수련이겠거니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그게 아니다. 생사를 가르자고 한다.

스릉!

음악일귀가 강도를 뽑아들었다.

장창도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신천강기가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정 싸우고 싶다면…… 싸워주지. 미친년!”

음악일귀가 유화아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츠으읏!

투살진기가 풀려나간다. 저들의 틈바구니를 굽이굽이 넘나든다.

마신천강기는 철옹성이다. 다만 저들은 아직 수련경지가 낮아서 군데군데 허점이 보인다.

성벽이기는 하되 튼튼하지가 않다.

‘쌍첨수괴라면 무너트릴 거야.’

그녀가 보고 있는 것, 쌍첨수괴도 볼 것이다. 자신이 치고자 하는 곳, 마군도 칠 것이다.

저들이 막아낼 수 있나?

파라라랑! 파라라라랑!

음악오귀가 마신천강기를 극성까지 끌어올린다.

유화아는 실눈을 뜨고 그들을 쳐다봤다. 목숨을 건 실전에서 저들이 운용하는 마신천강기의 실체를 낱낱이 살폈다.

구멍이 너무 많다.

그녀는 마군이 자신들을 단 일 초에 무력화시킨 원인을 찾아냈다.

이토록 무기력한 마신천강기라면…… 그녀도 무너트릴 수 있을 것 같다. 투살진기가 지금보다 이 성 정도 더 높다면.

결국 마군은 그녀보다 이 성 정도 더 높은 곳에 있다는 뜻이다.

그녀는 십마와 자신들의 역량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안 돼. 싸우면 죽어. 피해야 돼!’

아직은…… 마군과 싸울 단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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