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61화 (6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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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三章 미동(微動) (1)

‘따뜻해.’

공기는 열기를 전파한다.

누군가가 불을 피웠다면, 열기를 퍼트리는 것은 당연하다.

산불은 열기가 강하고, 모닥불은 약하다. 딱 그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산불이 일으킨 열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감지한다.

산불이 일어난 곳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도 후끈후끈한 열기를 온몸으로 느낀다.

모닥불이 일으킨 열기는 그렇지 않다. 주위에 있는 몇몇 사람들만이 열기를 느낄 수 있다. 모닥불 크기에 따라서 열기를 느끼는 범위도 달라지겠지만, 대략 오륙 장 안팎이 될 게다.

공기 중에서 따뜻한 열기를 느낀다.

기온은 영하로 뚝 떨어졌다.

낮 동안 펑펑 쏟아져 내린 함박눈이 온 세상을 하얀 이불로 뒤덮었다.

밤이 되어도 세상은 하얗다. 허나 무척 춥다. 손이 꽁꽁 얼어붙고, 입이 뒤틀릴 정도로 춥다.

이런 날씨에는 미약한 온기조차도 반가울 게다.

그러나 그가 온기를 느낀 것은 날씨가 춥기 때문이 아니다. 또 산불 같은 큰불이 아닌 이상 산속 한복판에서 따뜻한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는 느낀다.

한겨울,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에도 야외에서 편안하게 노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딱 두 명 있다.

검왕과 귀타(鬼打)!

검왕은 노숙하는 방법을 상당히 많이 안다.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편안한 침상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늘 밖으로 돌아다녔고, 싸웠다. 그러다보니 밖에서 지내는 방법에 능숙하다.

귀타는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는다. 싸우지도 않는다. 다만 온기를 느끼는 감각이 동물적으로 예민하고, 그래서 이런 특이한 감각을 이용해 사람을 찾아낸다.

‘검왕이 아니다.’

검왕은 아무리 추워도 불을 피우지 않는다.

야외에서 불을 피우는 행동은 세상 사람들에게 ‘나 여기 있다!’라고 고함치는 행동과 다를 바 없다.

검왕 같은 사람은 얼어 죽을지언정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따뜻하다. 열기가 느껴진다.

피부에 와 닿는 열기의 강도로 미루어보면…… 오십여 장쯤 떨어진 곳에 누군가가 있다. 꽁꽁 언 손을 녹일 수 있게끔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그야말로 작은 모닥불이다.

불씨 위에 작은 나무 십여 개 정도 쌓아놓고, 이제 막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아니면 그 정도의 모닥불만 피워놓고 간신히 손만 녹이고 있다.

어쨌든 검왕은 아니다.

‘어떤 놈이지?’

그의 눈가에 파르르 경련이 일어났다.

쌍첨수괴 도군악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만 쫓아간다. 유화아 뒤에 숨어 있던 검왕을 찾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추적에는 실패했다.

그는 지금 엉뚱한 곳을 뒤지고 있다.

이쪽 산이 아니라 건너편에 있는 산…… 새끼손톱만 하게 빛나는 노란 빛은 쌍첨수괴 일당이 피워놓은 모닥불일 게다. 저들은 모닥불 없이 지내는 방법을 모르니까.

저들의 추적도 일리는 있다. 저들은 족적(足跡)을 쫓는다.

그는 열기를 쫓아서 이쪽 산으로 들어섰다.

쌍첨수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쪽 산으로 쫓아 들어갈 때, 그는 이쪽 산으로 발길을 들여놓았다.

검왕은 이 산에 있다.

하지만 열기는 아니다. 검왕은 절대로 열기를 피워내지 않는다. 검왕이 얼마나 독한 사람인데.

스으읏!

그는 열기를 쫓아서 신형을 띄웠다.

상대가 검왕이 아닐지라도 누군지 확인은 해야 한다.

이 산에는 검왕밖에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도대체 어느 누가 이런 날씨에 산에서 야숙을 하는가. 얼어 죽기 딱 좋은 날씨에, 저런 모닥불로.

‘검왕!’

대번에 느낌이 온다.

다른 사람이 아니다. 검왕이다. 바로 그다.

열기는 오소리 굴 같은 작은 굴에서 흘러나왔다.

땅에 바짝 엎드린 후에야 간신히 기어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입구가 좁다. 그러나 안은 무척 넓은 것이다. 적어도 두 발을 쭉 뻗고 누울 정도는 될 게다.

그만한 공간이라면 작은 나뭇가지 서너 개만 태워도 충분히 훈훈해진다.

그러나 이것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검왕이라면 더더욱 불을 피우지 않는다. 검왕이 저런 공간을 발견했다면 두 번 다시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잠에 빠질 게다. 불을 피우지 않아도 얼어 죽을 염려는 전혀 없으니까.

검왕 같은 자가 저런 곳을 발견하고, 불까지 피운다는 것은 사치다.

헌데도 그는 저곳에 검왕이 있다고 확신한다. 무엇에 근거한 확신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느낌이 든다.

스으읏!

그는 굴 입구에 바싹 다가섰다. 그때,

“귀타, 들어와.”

굴 안에서 침침한…… 너무 낮게 가라앉아서 머리칼이 쭈뼛 곤두서는 음성이 들려왔다.

‘검왕!’

그의 짐작대로 굴은 넓다.

검왕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치렁한 머리를 풀어헤치고 가부좌로 앉아있다.

굴 안으로 들어가자 따뜻한 열기가 후끈하고 몰아쳤다.

작은 나뭇가지 몇 개로 이만한 열기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게다.

“살아있었군.”

스읏!

검왕이 건포를 건넸다.

“요기는 했네.”

그러자 검왕이 건포를 다시 거뒀다.

“성주님께서 궁금해하셔서 말이지.”

“귀타.”

“말해보게.”

“넌 돌아가지 못해.”

“…….”

“그러니 성주님 이야기, 그만해.”

“돌아가지 못한다…… 날 죽이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유인한 겐가?”

귀타는 아주 작은 모닥불을 가리켰다.

“후후! 그건 호의지.”

“호의?”

“앞으로 풍찬노숙을 밥 먹듯 해야 할 것이니 오늘만이라도 따뜻하게 지내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귀타, 넌…… 성주님이 내게 보낸 선물이란 뜻이야.”

“…….”

검왕은 귀타의 의문에 가득 찬 눈길을 접하자 무뚝뚝하게 눈을 감아 버렸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게다. 이미 침묵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으니까. 검왕이 이런 상태일 때는 그 누구도 말을 붙이지 못했으니까.

‘성주님이 보낸 선물이라고? 그럼!’

성주는 자신을 보낼 때부터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았단 말인가? 그러면서 보낸 것인가?

‘이런 바보, 멍청이!’

그는 손을 들어서 자신의 머리를 툭 쳤다.

검왕은 죽음을 가장한 상태다. 중원 모든 무인이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

지금도 그렇다. 길 가는 나그네를 잡고 검왕에 대해서 물어보면 백중백 죽었다고 대답할 게다.

검왕은 죽었다.

검왕이 죽음을 가장하고 지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필히 있을 것이다.

검성 성주는 그런 상태를 캐내라고 지시한 것이다.

허면 검왕 입장에서는 어떨까? 자신이 아직도 죽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면?

자신을 본 모든 사람을 처리해야 한다.

그들 입에서 검왕이 살아있다는 말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살인멸구(殺人滅口)가 예상된다.

검왕을 확인한 사람이 무인이라면 더더욱 용서를 바랄 수 없다.

그는 검왕이 ‘돌아가지 못한다’고 말한 말뜻을 알았다.

그는 검성 성주에게 돌아가지 못한다. 돌아가서 검왕이 살아있다고 보고하지 못한다. 직접 말로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서나 기타 형태로 전하지도 못한다.

검왕의 선택은 둘 중 하나, 죽이거나 데리고 있는 것이다.

검왕은 후자를 선택했다. 차마 죽일 수는 없으니 곁에 거두겠다는 뜻이다.

‘앞으로 풍찬노숙을 밥 먹듯 해야 한다고? 후후!’

그는 쓰게 웃었다.

검왕은 그의 양심에 말하고 있다.

내가 너를 어떻게 감시하겠나. 네가 성주에게 돌아가고자 한다면 어떻게 말릴 수 있겠나. 너를 어떻게 죽일 수 있겠나. 어떻게 항시 감시하겠나.

다만 지금은 성주에게 돌아가지 못한다.

지금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믿어야 한다. 죽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네가 그렇게 만들어다오.

검왕은 살수 대신에 양심을 선택했다.

보통 대부분의 무인들은 이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검왕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모르지만, 상황을 이 정도까지 유지하는 걸 보면 대단히 큰일인 것 같은데…… 이토록 큰일이라면 살인멸구쯤은 당연하게 생각한다.

검왕은 한순간만 삐끗해도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위급한 순간에 놓여 있을 게다.

‘검왕 곁에 있으면 제 명에 못 죽는데…… 제길!’

그는 피식 웃음을 흘리면서 두 다리를 쭉 뻗고 드러누웠다.

검왕이 잠시 눈을 뜨고 그를 쳐다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 * *

“적벽검문! 참 교묘해.”

바람도 없는데 면사가 파르르 떨렸다.

적벽검문은 그녀로 하여금 마공관을 부수게 만들었다.

마공관을 부술 수밖에 없었다. 검왕을 끄집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그 상태로 몰아넣은 곳이 적벽검문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도 뚜렷한 증거는 없는데 그럴 것이라는 느낌이 온다.

마공관을 부순 일로 누미가 크게 드러났다.

사실, 마공관이 부서졌으면 마공관의 마서가 부각되어야 한다. 수많은 마인들이 마서를 쫓아서 혈안이 되어야 한다. 그랬다면 당금 무림은 피바다로 변해 있을 것이다.

헌데…… 조용하다.

마공관이 부서진 사건으로 가장 주목을 받은 사람은 누미다.

요미검체 누미!

지금도 누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몇몇 사람만 요미검체라는 말을 안다. 하지만 저들…… 저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누미가 저들 손에 들어간 이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저들은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밀서 한 장을 건네받은 후에야 저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임신? 호호! 호호호!’

난데없는 임신이라니!

허나 그 임신이 저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임신이라면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릴 이유가 없다.

저들은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기다린다.

이것이 우연일까?

단순히 누미의 임신만 가지고 보면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일과 겹쳐서 생각하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유화아와 음악오귀가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마공관의 마서를 수련하면서 움직인다.

숨어서 움직이는 게 아니다. 버젓하게 존재를 드러내놓고 무척 빠르게 이동하는 중이다.

그들도 그들만 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어떻게 마공관의 마서를 손에 넣었고, 무공에 욕심이 나서 수련하고 있다는 정도이지 않은가.

허나 그들을 누미와 연관시키면…… 적벽검문이 생각난다.

누미는 저들을 적어도 열 달은 잡아놓을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저들은 꼼짝하지 않는다.

저들의 시선이 중원으로 돌려졌을 때…… 중원에는 마공관의 마서를 수련한 자가 있을 게다.

그들은 단 열 달 만에 아주 무서운 고수로 탈바꿈했다.

유화아가 음악오귀가 그만한 고수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그렇게 되어 있을 것이다.

저들의 무공보다 훨씬 빠른 진전이다.

무엇이 이름도 없던 자들을 절대 고수로 만들었나?

단순히 마공관의 마서 때문이 아니다. 마공관의 마서가 지독하기는 해도 저들의 무공을 감당하지 못한다. 저들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마서 자체가 절대 무공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저들을 상대할 만한 무인이 만들어진다?

물론 유화아와 음악오귀가 저들을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장담하건대 절대로 그만한 고수로까지 성장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 불쑥 나타났으니.

누미에게서 돌려진 저들의 눈길은 유화아에게 붙잡힌다.

누미, 유화아…… 검왕이다.

이 두 사람이 모두 검왕과 연관되어져 있다. 그리고 검왕은 적벽검문 사람이다. 적벽검문의 허락 없이 한 여인을 임신까지 시키고, 또 미끼로 내놓고…… 그렇게 할 사람이 아니다.

검왕은 적벽검문의 조정을 받고 있다.

‘적벽검문!’

그녀의 눈빛이 새파랗게 빛났다.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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