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60화 (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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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二章 혈오(血蜈) (5)

탁!

비급을 덮었다.

대낮부터 시작해서 밤이 늦은 시각까지…… 날이 어두워지는 것도 잊은 채 비급을 탐독했다.

적어도 열 번 이상은 읽었다.

‘똑같아.’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월중수가 전수해준 구수 오십사초는 진공(眞功)이다.

월중수는 어떤 거짓도 말하지 않았다. 진실되게 무공을 전수해 주었다.

월중수가 전수한 화혈역심공과 비급에 적힌 무공이 똑같다.

그녀가 이미 알고 있는 무공, 몸에 붙어버린 무공이기에 이해를 따로 할 필요도 없다.

화혈역심공은 읽는 즉시 이해된다.

그 말은 비급을 읽어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혹여 놓친 게 있을까 싶어서 탐독하고, 탐독했는데 얻은 게 없다. 머릿속이 텅 빈다.

‘너무 간단해.’

화혈역심공은 녹천의 비전비급이다.

저주받은 사람들만 모여 사는 마을에서도 가장 최악으로 저주받았다는 사람들이 수련하는 공부다.

마중마(魔中魔)!

헌데 반나절에 걸쳐서 읽어본 화혈역심공은 매우 평범하다. 특별하다 싶은 것이 없다.

녹천은 이런 무공을 왜 비전으로 선정했을까.

들리는 말로는 평범한 사람이 이 무공을 수련하면 반드시 주화입마를 당한다고 한다.

여기서 평범한 사람들이란 마중마가 아닌 사람들을 뜻한다. 협곡 밖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협곡에 있는 사람들도 특별하게 저주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수련하지 못한다.

자신은 평범한 사람에 속한다.

협곡에 머무는 사람도 아니고, 바깥에서 흘러들어왔다. 이들 기준에 따르면 너무도 평범해서 아무 무공도 수련해서는 안 되는 부류로 분류된다.

원칙대로라면 주화입마에 걸릴 것이다.

화혈역심공이 뭐가 특별한가?

‘수련해 보면 알겠지.’

비급을 통해서 깨닫지 못한 부분이 있는지 알고 싶었으나, 그런 것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화혈역심공에 정통하다는 말은 아니다. 자신은 이제 막 입문을 마친 상태다.

화혈역심공을 알기 위해서는 깊은 수련을 해야 한다.

화혈역심공이 몸에 작용할 수 있게끔, 뼛속에서 우러나온 기운이 느껴질 수 있게끔.

그녀는 비급을 탁자 서랍에 넣었다.

중평에서 보내온 한음천강기는 들춰보지도 않았다. 그것 역시 비급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겠다 싶어서.

하루를 둘로 나눠서 수련한다.

낮에는 화혈역심공을 수련하고, 밤에는 한음천강기를 수련한다.

화혈역심공은 동공인지라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 반면에 한음천강기는 정공인지라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내부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의 육신에 물과 불을 함께 휘돌린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도하지 않을 매우 위험한 수련이다.

불이 달리던 길을 얼음이 달린다. 얼음이 꽁꽁 얼려놓은 길을 불길이 태워버린다.

이건 마치 주화입마를 당하지 못해서 안달 났다고 고함치는 것과 진배없다.

“약간이라도 이상한 증세가 일어나면 즉각 말해야 할 것이야.”

석화선생이 허공에 대고 말했다.

“주의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주의 정도로는 안 될 것이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

“알고 있습니다.”

대답소리가 차분했다.

운공에 어떤 차질이 빚어지면 제일 먼저 안색이 변화할 것이다.

지극히 미미한 변화…… 얼굴색이 노랗게 뜬다거나, 붉은 반점이 생긴다거나 하는……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지 않으면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난다.

주화입마의 전조증상이다.

그다음으로는 피부에 변화가 일어난다.

이때는 지켜보는 사람도 ‘아! 뭐가 잘못됐구나!’하는 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된다.

피부가 울긋불긋하게 변하고, 푸르뎅뎅하게 변하기도 하고, 핏기가 싹 가셔서 회색빛을 띠기도 한다.

이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허나 이때는 이미 늦었다. 이상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주화입마가 진행된 후이다.

주화입마는 다른 증세로 드러나기도 한다.

괜히 이상한 말을 혼자 중얼거린다거나, 고개를 심하게 흔든다거나…… 이상 행동을 한다.

헌데 이런 행동도 처음에는 잘 파악되지 않는다.

수련자가 밀실에서 은밀히 수련할 때는 더더욱 파악할 수 없다.

석화선생이 말한 것은 이런 부분이다. 그리고 모옥을 지켜보는 눈들도 그런 점을 안다.

“휴우!”

석화선생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누미는 섶을 지고 불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몸에 불이 붙자, 아예 섶을 덮어쓰고 더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몸을 던졌다.

석화선생에게는, 아니 협곡사람들 전부에게 누미의 행동은 아주 큰 도박처럼 보였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도 희망을 걸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휴우!”

석화선생의 긴 한숨 소리가 울려 나갔다.

츠으읏!

갑자기 몸 한구석에서 불똥이 튀었다.

가슴? 배? 허파? 심장? 위치가 어딘지 가늠이 되지 않는데…… 좌우지간 너무 뜨거워서 저절로 눈이 번쩍 뜨였다.

‘아!’

뜨거움은 제어가 되지 않는다.

가슴 어디에선가 불꽃이 확 당겨지더니 곧 오른쪽 다리로, 왼쪽 다리로, 그리고 곧바로 등 뒤로 타고 올라온다.

그 속도가 무척 빠르다.

의식으로도 움직임을 따라갈 수가 없다.

빨간 불꽃이 몸을 휘젓고 지나간 후에야 어디를 어떻게 통과했는지 느낀다.

누미는 황급히 운공을 중단했다.

그러자 통증이 일어나지 않는다. 뜨거움이 휘몰아쳤던 경락도 멀쩡하다.

‘뭐지? 이게 부작용인가?’

진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통제된 상태에서 운기되어야 한다.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일탈이 일어나면 즉시 주화입마로 이어진다.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통제하지 못했다.

뜨거움이 느껴지는 순간부터 사라질 때까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별개의 불똥이 몸속을 자유자재로 휘젓고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감히 다시 운공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뜨거움은 상상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아주 뜨거운 불이 일어났고, 육신에 통증을 주었다.

운공 중에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현상이다.

그녀는 비급을 넣어둔 탁자에 눈길이 갔다.

비급에 이런 현상을 기재해 놓은 부분이 있었나? 이런 현상이 부작용의 일환으로 생긴 것이라면 주의해야 할 항목이나 기타 등등에 기재해 놓았을 텐데.

그녀는 탁자로 걸어갔다.

‘없어!’

비급에는 뜨거운 불길에 해당하는 대목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너무 강렬해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느낌인데…… 그런 현상을 다룬 대목이 전혀 없다.

‘이러면…… 다시 해보는 수밖에.’

비급을 덮고 일어섰다. 두 발을 나란히 하고, 두 손은 곧게 모아 단전에 대고…… 운기를 시작했다. 구수 오십사초를 천천히 펼쳐갔다. 뜨거운 불길에 유의하면서.

‘너무 늦다!’

하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것이 비정상적인 것인가? 주화입마의 전조인가?

구수 오십사초를 전개하는 데는 반 시진이 걸린다.

빠르게 움직이면 일다경도 걸리지 않을 터이지만, 운기를 하면서 움직이면 무척 느리게 움직여야 한다. 손끝에서 일어나는 진기까지도 관찰해야 한다.

화혈역심공 전체를 운기하는 데는 딱 반시진이 적당하다.

헌데 누미는 그보다 훨씬 길게 끈다. 반시진이 지났는데 이제 겨우 십여 초를 흘리고 있을 뿐이다.

조금 늦은 게 아니다. 남들은 이미 도착해 있을 때, 그녀는 이제 달리기 시작한 것이나 진배없다.

화혈역심공은 양기의 정화, 불꽃이 일어난 속도에 유의해야 한다. 불꽃이 움직이는 속도보다 너무 늦게 움직이면 반드시 신체에 이상이 생긴다.

누미는 너무 늦다.

‘저렇게 늦어도 되나?’

누미가 더딘 운기를 하는 시기도 의문이다.

그녀는 방금 전까지 평범한 속도로 운기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중도에서 뚝 그쳐버렸다.

운기를 마무리할 때는 최대한 천천히 진기를 추스른 후에 마치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진기가 들끓게 된다. 주화입마까지는 아니더라도 경맥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누미는 모든 것을 생략하고 뚝 그쳤다.

그런 후에 저리 늦게 운기한다. 아주 늦게…….

‘이건 보고해야 돼!’

스스스스스!

어둠이 약간 출렁거렸다.

화혈역심공은 동공인지라 운기 속도가 단번에 파악된다.

누미는 정말 늦다.

“이런 경우를 봤느냐?”

“…….”

중평에서 나온 감시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허!”

“못 봤습니다.”

감시자는 석화선생이 매섭게 노려본 후에야 마지못한 듯 말했다.

“중평에서는 무슨 말을 하더냐?”

“그것까지 말해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자네 정말!”

석화선생이 노기 찬 눈으로 감시자를 노려봤다.

“음…… 짐작하신 대로입니다.”

감시자는 정말 말하기 싫은 듯 몹시 못마땅한 어투로 말했다.

“주화입마의 전조란 말이냐?”

“운기가 느려졌다는 것은 뭔가 이상이 발견되었다는 뜻입니다. 허니 내부에 집중할 필요가 있고…… 이토록 느린 운기라면 증상이 아주 뚜렷했다는 뜻이라고…….”

중평의 판단이 이렇다면 틀림없을 것이다.

누미의 내부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

중평도 녹천도…… 협곡 사람들 모두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말려야 하나?

제일 먼저 머릿속을 스쳐 간 생각은 지금 이 시점에서 운공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허면? 그러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시킬 것인가? 아이가 자살하도록 내버려둘까?

이 세상은 누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

“음! 낭패로군.”

석화선생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츠으으읏!

차가운 한기가 경맥을 훑고 지나간다.

헌데…… 아주 이상한 느낌이 전해진다. 붉게 달궈진 길을 시원하게 식히면서 가는 게 아니다. 불길이 휩쓸고 가서 황폐해진 자갈길을 더듬어가는 느낌이다.

진기를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억지로 확 밀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경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아서 하지 못했다.

경맥이 약화되었다. 진기가 마음대로 나아가지 못한다.

뜨거운 불길을 느낀 것은 아주 잠깐인데, 그 잠깐동안 경맥이 많이 손상되었다.

이대로는 한음천강기를 운용하지 못한다.

‘어떻게 하지?’

하루 푹 쉴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순간,

“으……!”

그녀는 갑자기 극심한 추위를 느끼면서 이를 달달 떨었다.

그 느낌은 아주 잠깐 동안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아주 잠깐…… 너무 잠깐 동안이라서 추위란 게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분명히…… 추웠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현상은 낮에 느꼈던 뜨거움과 대별된다.

뜨거움이 먼저 일어났고, 차가움이 일어났다.

뜨거움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느리게 운기를 했지만 그 느낌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한기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한음천강기를 휘돌린다.

먼저 경험이 있어서 당황하지 않는다. 어려워하지도 않는다. 편한 마음으로 운기한다.

차가운 얼음들이 찢기고 갈라진 길을 걸어간다.

화혈역심공을 운기할 때는 경맥이 이토록 손상되는 줄 몰랐는데…… 한음천강기를 운기하다 보니 육신이 멀쩡한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츠츠읏! 츠으읏!

힘들이지 않고, 서둘지 않고…… 운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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