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57화 (5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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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二章 혈오(血蜈) (2)

“욱!”

누미는 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아무 이유 없이 솟구치는 토악질을 참아냈다.

노인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혈오는 잠시 움직임을 멈췄을 뿐, 악행을 멈춘 게 아니었다. 더 힘껏 도약하기 위해서 잠시 숨을 골랐던 것 같다.

“운공!”

노인이 쩌렁 일갈을 내질렀다.

누미는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급히 운공을 시도했다.

대체로 세간에서는 임신 중에 운공을 지양한다. 천하제일의 무인도 임신 중에는 운공을 하지 않는다.

운공은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

운공을 하면 진기가 움직이게 되고, 어떤 형태로든 날카로운 예기가 태아를 건드린다.

무공을 모르는 여인들은 깊은 호흡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도움이 된다. 의념(意念)으로 내기(內氣)를 조절하지 않는 호흡은 태아에게 편안함을 안겨준다.

헌데 이들은 본격적으로 심공을 운용하여 태아를 억누른다.

중원의 모든 의원들이, 또 무인들이 질색을 하고도 남을 위험한 행동이다.

누미는 즉시 진기를 이끌었다.

쏴아아아아!

맑고 찬 진기가 전신을 일주한다. 답답하게 꽉 막혔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고, 이유없이 치솟던 토악질도 단숨에 멈춰준다. 순식간에 심신이 편안해진다.

“어떠냐?”

“좋아요.”

“좋지 않다.”

“네?”

“아이 상태가 이상해. 이 정도 운기로는…….”

노인은 말을 마치지 않았지만 말속에 깃든 의미는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그녀의 심공은 매우 낮은 상태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인들은 철이 들 무렵부터 압반심공(壓般心功)을 수련한다.

압반심공이란 단단한 반석을 더욱 단단하게 짓누른다는 뜻이다.

단단한 반석이란 오장육부를 의미하며, 자궁에 자리 잡은 태아도 포함한다.

압반심공으로 태아를 쓰다듬을 수 있다.

압반심공으로 태아의 발작을 억누를 수 있다.

압반심공은 어미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 난 망나니로부터 어미를 보호하는 유일한 도구다.

그렇기에 이곳 여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압반심공을 수련한다.

가임기에 이른 여인들은 압반심공이 거의 팔구 성을 넘어섰다고 보면 된다.

누미는 매우 늦게 시작했다.

그녀는 임신을 한 후에야 압반심공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것도 정성을 쏟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의 예측대로라면 그녀는 거의 초주검이 되었어야 한다.

그녀는 매우 편안하다.

아니, 편안하지는 않다. 일반적인 임신에 비하여 입덧이 무척 심하다. 중원에서라면 그렇게 입덧이 심하면 어떻게 사냐, 밥이냐 먹을 수 있냐는 말을 들었을 게다.

이곳 여인들의 일반적인 임신에 비해서 편안하다는 게다.

그녀는 입덧을 하지만 심공을 운영하면 곧 편안해진다.

팔구 성에 이른 압반심공으로도 제어하지 못하는 혈오를 아주 미약한 힘으로 제어한다.

아이가 무척 순하다.

노인은 이 ‘순하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혈오는 절대로 순하지 않다. 순할 수가 없다. 태아의 성질에 관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입덧은 임신 오 주에서 시작하여 십이 주에 끝난다.

물론 개인차가 심하니 단정지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거의 대부분 그렇다.

허면 입덧은 왜 하는 것일까?

임신 오 주에서 십이 주는 태아가 사람 형상을 갖추는 시기다. 오장육부가 형성되는 시기다. 허나 태반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아서 외부 물질을 걸러내는 기능이 부족하다.

즉, 입덧이란 태아가 자신에게 좋지 않다 싶은 음식이나 냄새를 거부하는 행동이라는 거다.

이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혈오의 반응도 이런 부분으로 해석해야 한다.

혈오는 외부의 모든 음식, 모든 냄새를 혐오한다. 태반이 형성된 이후에도 혐오한다. 외부의 어떤 물질도 가산되는 것을 막으려고 발버둥 친다.

태아는 산모에게는 핏빛 지네이지만 태아 자체는 순수함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혈오가 혈오답지 못할 때…… 이곳 사람의 특질이 아니라 외부 인간의 특질을 지닌다는 뜻은 아닐까? 그것이 이곳 사람들의 저주를 벗어난 것이라면 좋으련만…… 지금까지 중원 여인들을 납치해와서 임신을 시켜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노인이 누미의 맥을 짚었다.

“음!”

노인이 미간을 찡그리면서 신음을 흘렸다.

“나쁜가요?”

“너무 평안해서 탈이다. 절대로 이럴 리 없는데.”

협곡에는 의원이 많다.

협곡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모두 저주에 걸려있기 때문에 의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마을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일반적인 의술을 안다.

침을 놓을 줄 알고, 뜸을 뜰 줄 안다. 증상에 맞춰서 약재를 배합할 줄 안다.

바깥 세상에 나가면 의원 간판을 내걸어도 손색이 없다.

허나 그 정도 의술로는 이곳에서는 의원이라고 불리지 못한다.

마을 사람들 중 삼 할 가량이 의원으로 불린다.

의원이라고 해서 약방을 차려놓고 의술만 행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농사짓고, 무공 수련을 한다. 다만 의술이 더 깊을 뿐이다.

이곳에서 의원(醫院)은 있다.

협곡 사람들 대부분이 의술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의원을 찾아와 드러눕는 환자는 없는 형편이다.

일 년 열두 달 텅 빈 의원.

이곳을 석화(石花) 양청(梁淸)이 운용한다.

사람들은 그를 석화선생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석화선생의 의술이야말로 단연 제일, 단단한 돌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는 신재(神材)라고 하며 존경한다.

석화선생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아가 자진 중입니다.”

“……!”

순간, 깊은 정적이 흘렀다.

석화선생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은 모두 다섯 명이다. 사내 셋과 여인 둘.

그들의 미간이 일시에 찌푸려졌다.

“휴우! 어쩌다가…….”

중년 여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뿐이다. 모두 침묵한다. 아무도 입을 열고 말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다 못해서 무슨 방법이 없겠냐,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말조차도 하지 않는다.

간혹 혈오가 생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산모를 괴롭히지 않는다. 입덧도 없고, 움직임도 적다.

그러나 그런 아이는 백중백 사산(死産)한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산모를 편안하게 한 태아치고 살아서 나온 아이가 없다.

그래서 이런 경우를 ‘자진한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진’을 고쳐보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써봤다. 침도, 뜸도, 약도 썼다.

사람 몸을 환히 꿰뚫고 있는 그들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방도를 모두 사용해봤고, 오류를 고쳐봤다. 허나 모두 실패했다.

태아가 자진하면 사산한다.

이 말은 어느 덧 협곡의 규칙이 되었다. 하늘이 그들에게 내린 율법이 되었다.

아이가 자진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있는가. 받아들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천하제일의 의원이 만고의 영약을 사용한다고 해도 사산을 막을 길이 없다.

“그 아이는?”

중년 사내가 묵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모릅니다.”

“기다려보자.”

“무슨 말씀이신지?”

석화선생, 노인이 의아한 눈으로 중년사내를 쳐다봤다.

“그 아이, 요미검체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건 맞습니다.”

“요미검체라면 뭔가 다른 게 있겠지.”

“아무리 요미검체라고 천리는 거스를 수…….”

“기다린다.”

“알겠습니다.”

석화선생은 즉시 의견을 접었다.

중년 사내의 한 마디는 법이다. 반드시 받들어야 한다. 이의제기나 불복은 항명이다.

“최선을 다해서 보살펴라. 변수를 잘 살펴보고.”

“기록도 빼놓지 마세요.”

아주 젊은 여인,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앵도같은 입술을 달싹거리면서 말했다.

“딱히 기록할 것도…….”

“요미검체잖아요. 뭔가 다른 게 있어야 제 자존심이 상하지 않죠. 안 그래요? 다른 여자들과 똑같다면…… 간을 갈아 닭 모이로 줄 것들이 한둘 아니죠.”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섬뜩한 핏빛 살기가 묻어나왔다.

석화선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렸던 중년 사내도, 중년 여인도…… 젊고 예쁜 여인의 말을 무표정하게 들었다.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알겠습니다. 기록도 빼놓지 않겠습니다.”

석화선생은 두 손 모아 읍했다.

‘요미검체를 이런데 찍어붙이면…….’

석화선생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요미검체는 무공에 특화된 체질을 말한다. 무공을 매우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하늘의 선물이다.

허나 천하의 요미검체라고 해도 새 생명을 잉태하는 것은 다른 여인과 다를 바 없다.

무공에 특화된 체질과 임신이 무슨 상관인가!

혈오는 산모의 체질을 가리지 않는다. 혈오가 발광을 하는 것은 사내의 씨앗 탓이지 여인 탓이 아니다. 발광할 수밖에 없는 씨앗을 내놓고 발광하지 말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협곡 사람들은 그런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저주받은 유전자!

달리 말하면 인간이 품어서는 안 되는 성스러운 유전자라고 할 수 있다.

허면…… 허면…… 누가 잉태해야 한단 말인가.

요미검체가 대상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누미는 임신에 관한한 보통 여인이다. 입덧을 하고, 고통을 받고, 태아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다. 물론 그녀의 모든 것도 태아에게 영향을 주고.

누미는 특별하지 않다.

‘사산을 하면 저 아이는 죽는다.’

그는 암울한 눈으로 산책을 하고 있는 누미를 쳐다봤다.

누미는 가벼운 걸음으로 울타리 안을 서성거린다. 한 발짝, 한 발짝 눈을 밟는다.

그녀는 태아를 사랑한다.

원치 않은 임신이고, 아이 아버지와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있지만…… 태동이 느껴지는 순간,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아이에게 흠뻑 빠져버렸다.

그런 것보다도…… 그는 누미를 살려야 한다. 아니, 아이를 살려야 한다.

‘저 아이는 태어나야만 해.’

어떤 약을 써야 자진하는 아이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그의 머릿속에 지금까지 실패했던 온갖 방법들이 떠올랐다.

물론 실패한 방법들이다. 두 번 다시 사용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아이를 살릴 방법이 없다.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지금 머릿속에 생각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로는 안돼.’

석화선생은 의술의 한계를 절감했다.

‘방법을 찾아야 되는데…….’

“얼굴이 많이 어두워요.”

“그래? 아무렇지도 않다.”

“좋지 않은 말을 들으셨나 봐요?”

“…….”

“오시는 걸 봤어요. 생각이 많으시죠?”

“심공은?”

“아이가 잘 따라줘요. 특별히 심공을 운용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벌써!’

석화선생의 얼굴이 더욱 우울해졌다.

산모가 편안하다는 것은 아이의 생명력이 급격하게 소진된다는 뜻이다.

이러다가는 곧 유산할 가능성이 높다.

“움직임은?”

“좋아요. 아주 활기차요.”

“그래도 심공은 수련하는 게 좋아.”

석화선생은 누미의 맥을 짚었다. 그리고 크게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여, 역살(逆殺)! 역살이다!’

맥을 잡고 있는 석화선생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역살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는데…….

역살은 자진의 극한이다. 아이가 자신의 생명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산모까지 죽이겠다는 거다.

탯줄로 목을 칭칭 감아서 절대로 출산하지 못하게 만든다.

몸에서 독기를 흘러내어 산모에게 독성을 주입시킨다. 임신중독증을 유발시킨다.

아주 지독한 경우는 병균을 뿜어내어 산모의 뇌에 침투시킨다. 허면 산모는 영문도 모른 체 미치고 만다. 이럴 경우,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여도 심한 우울증에 성격파탄을 일으킨다.

태아가 역살까지 진행시키고 있다.

‘이 일을…… 이 일을 어쩐다…….’

석화선생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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