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56화 (5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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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二章 혈오(血蜈) (1)

적벽 검문에는 고수가 많다.

검성과 혈천성을 적으로 돌릴망정 적벽검문과는 척을 지지 말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검성과 혈천성은 세력이다.

그들은 군대처럼 고수들이 있고, 물자가 있다. 상하 간에 직급에 따른 위계질서도 존재한다.

적벽검문은 문파다.

그들에게도 고수가 있지만 중원에서 손꼽히는 고수를 거론할라치면 열 손가락도 다 채우지 못한다.

적벽검문은 직급에 따른 위계질서가 없다. 배분에 따른 존경과 사랑만 존재한다. 자신이 먹을 것은 자신이 일궈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문도 모두가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른다. 그러니 물자라고 할 것도 없다.

적벽검문과 검성을 비교한다는 것은 터무니없어 보인다.

적벽검문주가 희대의 고수라고 해도 검성 성주에 비하면 한 수 뒤진다는 평가다.

당대에서 적벽검문의 최고수는 검왕으로 지칭된다.

검왕은 검성에서 장수 역할을 했다. 군왕이 아니라 군왕 밑에서 명령을 받고 싸움을 하는 선봉장 역할을 했다.

검왕도 검성에서는 제일고수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적벽검문은 그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문파로 생각되고 있다.

적벽검문만은 건드리지 마라!

실제로 적벽검문을 들여다보면 제일고수라고 해봐야 겨우 검문주와 검왕 정도인데…… 그 외에도 고수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있지만 십마 정도라고 판단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벽검문에는 고수가 많다고 한다.

그저 습관처럼 ‘적벽검문’하면 고수가 많은 것으로 생각되나?

그리고 이 부분…… 적벽검문에 고수가 많다는 부분…… 그녀는 이 부분에 절대 동의하지 못한다.

적벽검문에는 고수가 없다!

그녀가 아는 최고수는 검왕인데, 검왕마저도…… 고수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검왕이 고수라는 말은 중원에서만 통한다.

물론 이곳도 중원이다. 중원 어느 곳인지 모르지만 중원 땅인 것은 맞다.

여기, 아주 작은 공간, 협곡 하나.

이 속에서만큼은 절대로 검왕이 고수라고 할 수 없다.

‘너무 강해.’

진정 강한 고수들을 봤다. 그들을 볼 때마다 숨이 막힌다. 가슴이 답답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그저 물 한 모금 마실 뿐.

휘이이잉!

찬바람이 몰아친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때가 엊그제인데, 온 산에 하얀 눈이 수북이 쌓였다.

사박! 사박!

아무도 밟지 않은 땅에 작은 족적을 새겨놓는다.

좌우로 십여 장, 앞뒤로 십여 장.

아주 작은 공간에 토끼 발자국처럼 앙증맞은 발자국을 새겨놓는다.

사박! 사박! 파앗!

정확히 십 장…… 그리고 경고가 터진다.

더 이상 벗어나지 마라!

그녀는 무언의 경고를 온몸으로 느낀다. 한 걸음을 떼어놓기 전과 떼어놓은 후가 삶과 죽음으로 바뀌는 모습을 지켜본다. 공포를 절감한다.

“더 이상 벗어나지 않을 걸 알잖아요.”

“…….”

“꼭 이렇게 살기를 보내야 해요?”

“…….”

“아이가 많이 놀란 것 같아요.”

누미는 봉긋하게 솟구친 배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얼굴에 환한 미소를 베어물었다.

고수…… 이들이 고수다.

이들은 작은 모옥을 지키는 문지기에 불과하지만 개개인의 무공이 사부를 훨씬 뛰어넘는다. 아니, 어쩌면 십마와 버금갈지도 모르겠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일개 문지기가 십마와 버금간다.

이들 중에 한 명이 무림에 나가면 무림은 발칵 뒤집힐 것이다. 두 명이 나가면 경천동지할 것이고, 세 명이 나가면 검성이나 혈천성 중에 하나는 무너질 게다.

이들은 그럴 만한 힘을 지녔다.

사박! 사박!

그녀는 십 장 안을 맴돌았다.

십 장을 벗어나려고 하면 여지없이 살기가 쏘아지기 때문에…… 그리고 살기는 태아에게 좋지 않기 때문에 십 장 안에서만 사박사박 맴돌았다.

그녀에게는 어떠한 선택의 여지도 없다.

사박! 사박!

눈을 밟으며 걷는다.

그때…… 초로의 노인이 불쑥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

노인은 이마에 무명끈을 불끈 동여매고 있다. 옷도 누렇게 바랜 무명옷이다. 허리에는 약초가 담긴 망태를 찼고, 손에는 녹이 잔뜩 슨 호미를 들고 있다.

“찬 바람은 좋지 않다니까 말을 듣지 않는구나.”

햇볕에 그을려 건강한 구릿빛 얼굴을 한 노인이 다소 못마땅한 투로 말했다.

“안에만 있는 게 더 안 좋아요. 가끔 이렇게 걸어주는 게 좋아요.”

“한기가 뭉쳤다. 들어가거라.”

“네.”

그녀는 노인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것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말을 듣지 않으면 당장 혈이 제압될 것이고, 잠시 후에는 화로 옆에 앉혀질 게다. 차라리 자의적으로 말을 듣는 게 낫다.

“이런 날씨에도 산에 다녀오세요?”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그렇군요.”

“오늘은 얼굴이 편해 보이는구나.”

“얘가 어미를 살려주네요.”

그녀는 불룩 나온 배를 쓰다듬었다.

“후후후! 살려주는 게 아니다. 얼마나 고약한 씨앗인데. 잠시 숨을 고르는 것일 뿐이니 너무 좋아하지 마라.”

“들었어요.”

그녀가 피식 웃었다.

살모사라는 뱀이 있다. 이 뱀은 주로 쥐, 도마뱀, 다른 뱀, 새 등을 잡아먹는데, 때에 따라서는 지네를 잡아먹기도 한다. 삼킬 수만 있다면 먹이를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숲을 거닐다 보면 종종 배가 터져 죽은 살모사를 보게 된다.

다른 먹이를 먹었을 때는 아무 이상이 없지만, 지네를 먹으면 종종 탈이 난다.

성체가 된 지네는 쉽게 죽지 않는다.

살모사가 지네를 먹는데, 먹힌 지네가 오히려 살모사의 내장을 파먹고 배를 뚫고 나와버린다.

살모사와 지네.

이곳 아이들은 혈오(血蜈)라고 불린다. 핏빛 지네라는 뜻이다.

더 분명히 말하면 아이들이 아니라 태아들이다. 이곳 사내들의 씨앗을 받아서 임신하면 태아가 아니라 혈오가 탄생한다. 살모사의 배를 뚫고 나올 지네다.

후후! 태아를 혈오라고 부를 만큼…… 태아는 어미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준다.

먼저 입덧이 상상을 초월한다.

보통 입덧이라고 하면 임신 초기에 일어나곤 하는데, 혈오의 입덧은 임신기간 내내 지속된다. 임신 초기에는 밥을 먹지 못하는 선에서 그치지만, 산달이 가까워지면 온 세상 모든 냄새가 역겨워서 견딜 수 없게 만든다.

그녀도 혈오의 입덧에 시달렸다.

눈을 뜨면서부터 지쳐 잠이 들 때까지 물 한 모금 먹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이 고통이 너무 심하기에 이곳 여인들은 아이를 갖지 않는다.

설혹 아이를 가졌어도 중간에서 지워버리기 일쑤다. 그렇지 않으면 산모가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아이를 핏빛 지네라고 부르는 것은 그런 까닭도 있다. 언제 한 줌 핏덩어리가 되어서 쏟아질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 독한 약초에 녹아버릴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연유 때문인가? 산모 곁에는 항상 담당 의원이 배치된다.

노인이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심법(心法)은?”

“수련하고 있어요.”

“수련하고 있어요가 뭔가! 어찌 심법을 장난삼아 수련해! 심법에 목숨이 달렸다고 그리 누누이 말했건만!”

“갈근이 꽤 좋아 보여요.”

그녀가 노인의 망태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딴소리는…… 조금만 기다려라. 따끈하게 끓여줄 테니. 들어가서 불기를 쬐고 있어.”

노인이 바닥에 망태를 툭 던지며 말했다.

팟! 팍!

노인이 장작을 쪼갠다.

노인이 장작을 쪼갤 때 쓰는 도구는…… 호미다.

호미를 파리 쫓아내듯 가볍게 휘두르면 큼지막한 장작이 쩍쩍 갈라진다.

노인이 무공을 자랑하나?

충분히 자랑할 만하다. 지금 하는 일은 단지 장작을 쪼개는 일일 뿐이지만, 단순한 동작 하나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리가 깃들어 있다.

저 호미질로 사람을 치면 막아낼 수 있는 무인이 몇 명이나 될까?

누미는 몇 번이고 대응 초식을 생각해 봤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무공 중에는 해답이 없었다.

‘어떻게 피하든 당해.’

그녀는 무심히 노인의 손을 쳐다봤다.

처음에는 아주 주의 깊게 살펴봤었다. 손짓 하나에 깃든 무리를 배우고자 열심히 지켜봤다.

헌데 이곳 사람들은…… 모두가 저런 식이다.

이곳에서는 무공이 생활에 녹아있다. 무공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펼치고, 사용한다.

나무를 자를 때, 부법(斧法)을 사용한다.

밥을 먹을 때, 공수의 묘리가 깃들어 있다.

단순히 저금을 들어서 야채를 집는 동작에도 수백 가지의 경계심이 녹아있다.

이들은 언제 어디서 기습을 받아도 태연히 막아낸다.

이곳 사람들은 잠을 잘 때는 눈을 반개(半開)하는 사람이 많다.

눈꺼풀이 완전히 감기지 않아서가 아니다. 일부러 반개를 한다. 그리고 의식도 깊이 떨어트리지 않는다.

허면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이들은 쉬고 있는 의식만으로도 충분히 숙면한다. 절반은 경계하고, 절반은 쉬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모든 게 무공이다.

그녀는 한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명이 다하여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노인조차도 공격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녀는 적벽검문에서 이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모두들 생활과 무공을 분리한다. 생활 속에서 무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들은 모든 생활이 무공이다.

퍽! 퍽!

노인이 장작 한 아름을 팼다.

그녀를 위해 갈근탕을 끓여주고, 방에 불까지 넣어줄 화목이다.

“방금 그건 이름이 뭐예요?”

“냉전류(冷電流)라고 동영(東瀛) 검술이다.”

노인은 누미에게 이런 종류의 질문을 많이 받아봤기 때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냉전류요? 무척 빠르겠네요?”

“허나 아주 큰 단점이 있지.”

“뭐예요? 제 눈에는 보이지 않던데.”

“필살검이라는 거다.”

“필살검이 나쁜가요?”

“아주 나쁘지. 후후! 필살이란, 죽이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에 처한다는 것이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인데, 후후!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나.”

“죽이면 되잖아요.”

“네가 이걸 배우면 누구에게 쓸 수 있겠냐?”

“…….”

누미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냉전류, 필살검을 배우면 누구에게 쓸 수 있을까?

냉전류는 무척 빠를 것이다. 누구든 쉽게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이 텅 비어졌다.

그녀는 이곳 사람들 중에서 대상을 찾아야 한다. 헌데 아무도 없다. 이곳 사람들이라면 냉전류 정도는 누구든 가볍게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전(全) 의(醫)께서는 누구에게 쓸 수 있어요?”

“나? 허허! 누구에게든 쓸 수 있지.”

“촌장님께도요?”

“그렇다.”

“촌장님이 냉전류를 피하지 못하신다고요?”

“피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쓸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거지.”

“다른 무공도 아시잖아요?”

“필살검이라고 했지?”

“네.”

“그 말을 허투루 들었구나. 여기 있는 놈들과 싸운다면 필살검이 아니면 안 되는 거야. 허허! 설마 살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냐? 그럼 이미 진 거고.”

“풋!”

누미는 웃었다.

이런 이야기 많이 들었다. 이곳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사즉생(死卽生)!

먼저 죽고자 한다. 삶은 부수적으로 챙기는 수확물일 뿐이다.

노인이 칡을 잘라 주담자에 넣는다.

주담자는 침묵한다. 물이 있고, 칡이 들어가지만 어떤 소리도 흘리지 않는다.

칡과 물이 섞이는데 저항이 없다.

누미는 편안한 눈으로 노인을 지켜봤다.

이런 모습들…… 이런 무공들…… 너무 많이 봐서 이제는 익숙하게까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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