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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一章 산외유산(山外有山) (5)
유화아는 공격자들이 뿜어내는 기운 중에 가장 강한 기운을 감지해냈다.
투살진기는 진기를 쏟아내어 상대를 격상시킨다.
세상의 그 어떤 무공보다도 자신의 내면을 깊이 관조해야 하는 공부다.
자신을 보면 타인도 보인다.
자신의 진기와 가장 충돌이 강하게 일어나는 진기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지금 같은 경우는 싸움에 전혀 개입하지 않은 패황도마가 그런 진기를 일으켰다. 그래서 그를 쏘라고 했다. 패황도마가 어떤 공격을 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헌데 그런 도박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듯하다.
유화아는 자신감을 얻었다.
음악오귀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자신감을 얻었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과 똑같지 않은가. 자신들이 일차 공격만 막아주면 유화아가 물리쳐준다.
이번 싸움에서 죽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뭉실 피어났다. 그런데,
“검왕, 이들을 죽일 셈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자가 단단한 음성으로 말했다.
“셋만 세지. 셋을 셀 동안 나타나지 않으면 이들은 죽는다. 뭐, 음악오귀 같은 자들을 쓴 것으로 보아서 죽어도 좋다는 심산으로 내보냈을 것이라고 짐작되기는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단단한 음성을 듣다 보면 마치 그 말이 사실이 된 것처럼 착각이 든다.
저자가 나타나서 공격하기 시작하면 모두 무너질 것이다.
마신천강기? 무너진다.
투살진기?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단단한 음성은 자신의 말이 현실이라는 착각을 들게 만들었다.
“뭐라는 거야!”
삼재진 안에서 활을 겨누고 있는 음악오귀가 불만인 듯 중얼거렸지만 그 음성은 크지 않았다.
단단한 음성이 수를 헤아렸다.
“셋!”
검왕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둘!”
검왕이 있을 리 없다. 아니, 주변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은 하지만 나타날 리 없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동행했을 게다.
“하나!”
역시 검왕은 나타나지 않았다.
“죽여도 좋다 이거군. 후후! 그럼 죽여야지.”
쒜에에엑!
순간적으로 좌수비마의 등 뒤에서 바람이 일어났다. 먼지가 풀썩 피어났다가 사라졌다.
“와욧!”
유화아가 즉시 고함쳤다. 매우 다급하게!
그러나 그 고함 소리조차 단단한 자의 쾌속함에 비하면 한발 늦고 말았다.
퍽! 퍽퍽!
음악일귀가 복부를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다.
음악이귀는 머리를 얻어맞았다. 마치 거대한 고목에 후려쳐진 듯 머리를 휘청! 하더니 풀썩 꼬꾸라졌다.
빠악!
음악사귀도 툭 무릎을 꿇었다.
유화아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이 우르르 무너져내렸다. 일각이 무너진 게 아니다. 다섯 명 중에 세 명이 쓰러졌으니, 성벽 전체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슈왓!
유화아는 즉시 검을 쳐냈다.
그녀는 공격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검을 쳐냈었다. 음악일귀와 이귀가 얻어맞을 때, 그녀의 검은 단단한 자를 찔러가고 있었다.
타앙!
유화아의 검이 거센 힘에 떠밀려 허공으로 쳐들려 졌다.
완갑(腕鉀)!
“웃!”
유화아가 놀라서 눈을 부릅뜰 때, 단단한 자의 손이 그녀의 목을 콱 움켜잡았다.
“이름은?”
단단한 자가 차디찬 눈으로 물었다.
유화아는 노기 띤 눈으로 쳐다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사내가 말했다.
“나, 도군악이다. 다시 묻는다. 이름은?”
유화아는 ‘도군악’이라는 말에 너무 놀라서 눈만 부릅떴다.
방금 전, 퉁방울만 하게 뜬 눈이 노기 띤 눈빛이라면 지금은 겁에 질린 눈빛이다.
십마 중에 일인, 도군악!
당금 무림에서 쌍첨수괴 도군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 유화아.”
유화아가 엉겁결에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유화아…… 후후! 과연 소문대로군.”
“…….”
“인정한다. 넌 중원에서 세 번째로 아름다운 여자다.”
유화아는 도군악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군악은 강남제일미녀 만화일취 유화아를 우습게도 세 번째 미녀로 지칭했다.
첫 번째는 누구이며, 두 번째는 누구인가.
도군악이 입가에 조소를 머금으면서 말했다.
“헌데…… 우습군. 첫 번째 여인도 검왕의 여자. 두 번째도 검왕의 여자. 너도 검왕의 여자인가?”
“무, 무슨 소리를…… 난 검왕과는 아무 관계도…….”
도군악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허공을 노려보면서 빽 소리 질렀다.
“검왕! 마지막이다. 셋을 센다!”
검왕이 응답할 리 없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응답까지 기대하나.
“하나!”
“켁!”
유화아는 거센 힘에 숨이 막혀서 거센 기침을 쏟아냈다.
도군악은 정말 그녀를 죽일 심산인지 목을 잡은 손에 일점 사정도 남기지 않고 옭아왔다.
“둘!”
“켁!”
이번에는 더욱 거세다. 두 손으로 힘껏 목을 조르는 것 같다.
유화아는 얼굴색이 샛노랗게 변색되어서 거센 기침만 쏟아냈다.
“검왕!”
도군악이 쩌렁 일갈을 내질렀다.
그래도 검왕은 대답이 없다. 대답을 해줄 사람이 아니다.
그때…… 그때…… 그때 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한 줄기 글귀가 스쳐 지나갔다.
- …… 앙망적중심(仰望的中心), 단해(單解), 송기(松氣)…….
투살진기 속에 적혀 있던 글귀다.
중심을 쳐다보라. 하나의 마음으로, 기운을 풀어라.
송기란 ‘기운을 푼다’는 뜻으로 쓰이지 않는다. 맥이 빠진 상태, 축 늘어진 상태를 뜻한다. 기운을 일부러 풀어놓은 것이 아니라 기운을 차리고 싶어도 차릴 수 없는 상태다.
투살진기는 이완의 정도가 송기에 이른다.
유화아는 글귀가 머릿속을 휘젓는 순간, 즉시 투살진기를 일으켰다.
그녀의 신형이 축 늘어졌다.
이상한 현상이다. 다른 무공 같으면 진기를 일으키면 기운이 생성한다. 전신 근육이 가장 강한 상태로 유지되고,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투살진기는 정반대다.
근육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흐물거린다. 신경이 잠들었을 때처럼 늘어진다.
일반적인 이완과 다른 점이라면 이 순간에 그녀의 정신은 가장 맑고 뚜렷하다는 것이다.
“셋!”
도군악이 마지막 수를 헤아리면서 손에 힘을 주었다.
우둑!
유화아의 목이 꺾이는 소리다. 아니…… 그 소리가 흘러나와야 되는데…….
퍽!
예상과는 전혀 다른 소리가 울렸다.
유화아가 관수(貫手)로 도군악의 맥문을 찔렀다. 도군악이 일시 손가락에 힘이 풀리면서 그녀의 목을 놓아버렸고, 유화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뒤로 주르륵 물러섰다.
도군악이 놀란 눈으로 유화아를 쳐다봤다.
유화아가 즉시 말했다.
“삼귀! 오귀!”
그녀는 자신의 오른쪽에 삼귀를 세웠다.
음악삼귀가 즉시 달려와 그녀의 오른쪽에 섰다. 장창을 거머쥐고.
음악오귀는 왼쪽에 섰다.
유화아는 그들의 두 손을 나누어서 두 사람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원을 그리면서 돈다. 빙글, 빙글…… 공격자들을 노려보면서 돈다.
도군악은 다소 놀란 눈으로 유화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실거력량(失去力量). 투살진기를 육성이나 수련한 것인가. 대단하군.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육성까지는 아니었는데?”
좌수비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투살진기 육성이면 능히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 마신천강기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일대일의 승부를 겨뤄도 승패를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유화아는 분명히 그런 상태가 아니었지 않은가.
“제가 다시…….”
패황도마가 강도를 움켜쥐고 앞으로 나섰다. 헌데 그 순간,
팟!
도군악이 불현듯 신형을 띄워 올렸다.
쒜엑! 쒜에엑!
앞으로 나서던 패황도마도 도군악을 따라서 신형을 띄웠다.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좌수비마, 백살마창…… 그들 모두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장래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뭐야?”
음악삼귀가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검왕이야.”
“뭐?”
“검왕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인기척을 흘렸어.”
“난 못 들었는데…… 그렇군. 네가 우리보다 층이 높아졌군. 운 좋은 놈은 넘어져도 돈을 줍는다더니…….”
음악오귀가 부러운 듯 유화아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들은 유화아의 무공 정도를 잘 안다. 누구보다도 잘 안다. 헌데 지금은 모르게 되었다. 유화아가 도군악에게 목줄을 잡히기 전과 잡힌 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유화아는 싸움 도중에 기연을 얻었다.
음악오귀는 그런 사정을 짐작하기에 부러운 눈길로 쳐다봤다.
“음! 다행히 목숨은 건진 것 같아. 제길! 도군악이라니. 도군악을 만나고도 목숨을 건졌어.”
음악삼귀가 쓰러진 자들을 살펴보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은 마신천강기의 효용성을 알았다.
마신천강기를 일대의 거마들과도 싸우게 만들어준다. 도군악의 손길로부터도 목숨을 구해주었다.
도군악은 손속에 사정을 담지 않았다. 그는 즉사할 수 있는 힘으로 내리쳤다.
도군악은 그들을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도 목숨을 구한 것은 모두 마신천강기 덕분이다.
마신천강기는 마치 거미줄과 같다. 전신 근육을 거미줄처럼 풀었다가 좁혔다가 한다.
마신천강기는 생명의 끈도 끈끈하게 만들어 놓는다.
그래서 한때는 금강불괴(金剛不壞)를 만들어 준다고 믿기도 했다. 지금도 금강불괴에 가장 근접한 무공이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음악일귀, 이귀, 사귀…… 정말 요행히 목숨을 구했다.
또 그들은 유화아가 도군악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는 모습도 봤다.
도군악은 낭패를 당한 후에 말했다. 투살진기를 육성이나 수련한 것이냐고.
육성!
이것은 검왕이 요구한 수준이다.
검왕은 군산에 닿기 전까지 무슨 수를 쓰든지 육성 이상을 성취하라고 말했다.
육성이 이르지 못하면…… 글쎄, 아마도 목숨을 잃지 않을까?
이제 그들은 표적이 되었다.
일단 도군악의 표적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도군악이 지금은 검왕을 쫓아서 떠나고 없지만 앞으로 언제든 그들 앞에 나타나서 손속을 휘두를 여지가 있다.
검왕이 말한 공격자들 중에는 검성도 있다.
어떤 면에서 검성은 도군악보다도 더 지독할 게다. 악을 원수처럼 미워한다는 점에서.
도군악을 만나면 살 수 있을지언정 검성과 부딪치면 살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앞으로 그들 목숨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무공뿐이다.
“이걸 어떻게 육성까지 올리지?”
“아무리 수련해도 성취가 없어. 제길! 내공이 어디 하루 이틀에 얻어지는 건가.”
“무슨 방법이 없겠냐?”
결국 음악오귀는 유화아에게 도움을 청했다.
유화아는 투살진기를 육성으로 성취했다. 그 점은 도군악이 증명해 주었다.
유화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내가 세 번째라고?’
그녀는 이제야 도군악의 말을 떠올렸다.
별것 아닌 말인데…… 묘하게 신경을 거슬린다.
검왕에게는 여인이 있었다. 다른 여인들은 곁눈질도 받지 못할 만큼 오로지 성심을 받은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이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일 것이고…… 또 다른 여자는 누구지? 얼마나 예쁘기에 강남제일미녀 만화일취를 세 번째로 밀어내린 거야?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음악오귀의 질문을 받고 얼굴을 확 붉혔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아무 필요도 없는 일인데.’
“우리 말, 못 들었어?”
음악오귀가 불쾌한 듯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유화아가 엉겁결에 말했다.
“검왕은 불가능한 일은 시키지 않아. 할 수 있으니까 시킨 거야. 우리가 방법을 모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