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54화 (5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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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一章 산외유산(山外有山) (4)

“모엿!”

음악일귀가 촉급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사귀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쾌속하게 모였다.

일귀와 이귀, 삼귀가 삼방(三方)을 점하며 병기를 곧추세웠다.

칼과 검과 창이 공격자들을 노려보면서 번뜩인다.

삼귀와 오귀는 삼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세 명이 쳐놓은 삼재진(三才陣) 안에서 활에 화살을 재웠다. 그리고 무작위로 먼저 다가오는 자를 쏘겠다는 투로 허공을 향해 활을 겨눴다.

삼재진의 최고 중심에는 유화아가 있다.

음악일귀가 패황도마를 노려보며 말했다.

“막는 건 우리가 한다. 넌 공격해.”

음악오귀는 나름대로 무공을 구사하는 마인들이다. 크고 작은 싸움을 수십 차례씩 겪어온 싸움꾼들이다.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목숨이 붙어 있다.

음악오귀는 싸울 줄 안다.

유화아가 어떻게 해서 공격자들의 허점을 파고들 수 있는지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 현상을 싸움에 이용하는 방법쯤은 단번에 생각해 낼 수 있다.

유화아는 어떤 공격이든 한 번만 막아주면 허점을 찾아낸다.

허점만 찾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찾아낸 허점을 유효하게 공격할 수 있어야 한다.

공격할 만한 무공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유화아의 공격은 유효하다.

그녀가 공격하면 공격자들이 쩔쩔맨다. 즉시 공격을 거두고 물러선다.

첫째, 초식의 변화로 유화아의 공격을 차단하지 못한다.

둘째, 유화아는 저들의 공격권을 파고들 정도로 속도와 힘에 있어서 우월하다. 공격하는 순간만큼은 저들보다 더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정녕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지 않은가.

허나 유화아가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공격자들을 물리칠 수 있다면 당연히 이용해야지.

“허! 이거 고슴도치 같아서…….”

“마신천강기로 벽을 치고 안에서 공격한다. 좋군.”

“이렇게 되면…… 어떻게든 마신천강기를 부숴야 되는 건가? 그럼 부숴주지. 후후!”

공격자들이 웃음을 흘렸다.

사실, 음악오귀의 마신천강기는 고명하지 않다. 아직 그들의 공격을 막아낼 정도로 강하지 못하다. 절정에 이른 마신천강기는 철벽이겠지만, 지금은 그가 살짝 얼어붙은 얼음 정도다.

강한 힘으로 깨버린다.

“화살은 내가!”

쒜에에엑!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좌수비마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타앙! 탕탕!

음악사귀와 오귀는 거의 반사적으로 화살을 퉁겨냈다.

그들도 마신천강기가 철벽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직은 매우 많이 미흡하다.

원거리 병기, 활로 미흡한 점을 보충한다.

물론 그 화살은 좌수비마를 잡지 못한다. 그는 화살보다도 빠르게 움직인다.

슉! 슉!

화살 두 대가 허공으로 흘렀다.

허나 두 대의 화살은 제 몫을 다했다. 좌수비마가 화살을 피하기 위해 잠시 몸을 멈칫거리는 사이, 칼과 검과 창이 그를 향해 곧추세워졌다.

마신천강기가 응집되어 펼쳐진다.

“힘에는 힘!”

쉐에에엥!

패황도마가 버럭 일갈을 내지르면서 강도를 떨쳐냈다.

하늘에서 벼락 치는 소리가 울렸다. 허공에서 군마가 질주하는 듯 우렁찬 굉음이 울렸다.

우르르릉! 꽈앙!

벼락이 음악일귀를 향해 떨어졌다.

음악일귀는 패황도마와 병기를 맞댄 경험이 있다. 그래서 패황도마의 힘을 짐작한다.

“이익!”

음악일귀가 혼신의 힘을 끌어내어 강도와 부딪쳐갔다.

음악오귀는 피하지 못한다. 피할 생각도 없다. 미흡하기는 하지만 마신천강기가 저들의 공격을 막아준다. 그러니 이보다 더 안전한 방어는 없다.

직격(直擊)에 직격으로 응한다.

꽈아아앙!

두 사람의 강도가 부딪쳤다.

좌수비마가 두 대의 화살을 흘려보내고, 패황도마가 음악일귀의 강도를 쳐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촌각이다.

순간, 귀면사자가 불쑥 눈앞에 나타났다.

정녕 그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언제 어떻게 다가왔는지…….

음악일귀는 눈을 부릅떴다.

그는 아직도 패황도마와 부딪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한 충격에 오장육부가 미미하게 진탕되어 헛구역질까지 치미는 판국이다.

귀면사자가 손을 번뜩인다. 방비할 틈도, 여력도 없는데.

촤라라라락!

눈앞에서 귀면사자의 손이 열 개로 불어난다. 오른팔 다섯 개, 왼팔 다섯 개…… 열 개의 손이 환상적으로 움직이면서 각기 다른 곳을 공격해 온다.

‘천환마장(千幻魔掌)!’

음악일귀는 눈만 부릅떴다.

지금 그는 귀면사자의 공격에 대응할 여력이 없다. 힘도 없고, 시간도 없다. 설혹 그런 것이 다 있다고 해도, 준비가 완벽한 상태라고 해도 천환마장을 상대할 방법이 없다.

천환마장은 환장(幻掌)이다.

아홉 개가 허초고, 한 개가 실초다.

어쩌면 열 개 모두 허초일 수도 있다. 반대로 열 개 모두 실초일 수도 있다.

천환마장을 상대하려면 열 개 모두를 막아야 한다. 그것도 실초로 막아야 한다. 어떤 것이 실초인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음악일귀에게는 그런 빠름과 힘이 없다. 그때,

슈우욱!

음악일귀의 등 뒤에서 검 한 자루가 삐죽 삐져나왔다.

검은 옆구리를 스치듯이 지나가더니 불쑥 하늘을 향해 검 끝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찔러간다.

턱!

음악일귀의 등에 봉긋한 가슴이 닿았다.

유화아가 검을 찔러내면서 급히 달려든 것이다.

그녀는 귀면사자를 향해 달려나갔다. 허나 앞길을 음악일귀가 가로막고 있다. 그는 그녀를 보호하는 입장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공격에 방해가 된다.

음악일귀는 유화아가 빠져나갈 수 있게끔 몸을 살짝 비틀었다.

슈아아악!

유화아의 검이 거침없이 찔러간다.

순간, 귀면사자가 연기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그리고 물러섰던 좌수비마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이럴 줄 알았어!”

음악일귀가 재빨리 유화아의 목덜미를 낚아채서 삼재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강도를 쳐들었다.

“하하하! 빠르네.”

좌수비마가 웃으면서 물러섰다.

그들은 급히 서둘 생각이 없다. 어차피 음악오귀와 유화아는 껍질 얇은 고슴도치에 불과하다. 두들기고 또 두들기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

시간만 약간 쏟으면 무너질 수 있는 자들을 힘들게 건드릴 이유가 없다.

가볍게 툭툭 건드리기만 할 생각인 듯하다.

음악오귀도 이런 식의 싸움을 안다. 매우 치사하지만 또 매우 효과적이기도 하다. 웅크린 상태에서 방어만 해야 하니…… 그렇다고 자신들이 싸움의 양상을 바꿀 방법도 없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해볼까?”

백살마창이 창을 꽉 잡았다. 그때,

“투살진기다.”

그들 뒤쪽에서 매우 단단한 음성이 들려왔다.

음성이 단단하다? 그렇다. 단단하다. 음성만 들어도 상대가 얼마나 단단한지 짐작이 된다.

금방 공격해 올 듯하던 백살마창이 움찔거리더니 진기를 풀면서 말했다.

“투살…… 진기…… 입니까?”

백살마창 뒤쪽에서 차분하면서도 단단한 음성이 이어졌다.

“마신천강기에 투살진기. 절묘한 조합이군.”

“투살진기라면…… 저희들이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좌수비마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마기가 없다.”

“…….”

일순, 침묵이 흘렀다.

공격자들은 매서운 눈길로 유화아의 전신을 쓸어내렸다.

마기가 없는 상태에서 투살진기를 펼친다? 그게 가능한가? 그게 어떻게 투살진기가 되지? 투살진기라면 마기의 결정체인데, 마기 없이 전개해?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알아보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

이 순간, 음악오귀도 침묵했다.

그들은 공격자들처럼 유화아를 쓸어보지는 않았지만…… 생각은 그들과 같다.

마기 없이 투살진기를 펼쳐? 그게 가능해?

그들은 유화아가 어떤 무공을 수련했는지 안다. 밀실에서 그녀가 마공을 접하는 순간부터 지켜봤으니까. 그리고 자신들과 똑같이 검왕에게 수련을 받았으니까.

그래서 어느 한순간도 그녀가 마기 없이 투살진기를 전개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투살진기를 펼친다. 마공을 사용한다.

당연한 생각이지 않은가.

“돼지 오줌보를 생각해라.”

“돼지 오줌보요?”

“바람 든 돼지 오줌보.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불거진다. 진기도 마찬가지. 어느 한쪽에 집중되면 다른 쪽이 약해진다. 한쪽에 아홉을 주면 다른 쪽은 하나밖에 남지 않아. 투살진기를 수련하면 진기가 흘러드는 위치를 알게 된다.”

“아!”

백살마창이 비로소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화아는 절묘하게 그들의 허점을 파고든다. 피할 수 없는 각도, 속도, 힘으로 밀어온다.

진기가 텅 빈 곳을 감각적으로 알 수 있기에 가능한 공격이다.

그녀는 실제로 그만큼 빠르지 않다. 그만큼 강하지도 않다. 다만 방어할 수 없는 허점을 파고들기 때문에 강하고 빠르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투살진기…… 묘한 무공이네요.”

“듣기에 투살진기의 최대 극성은 마신천강기라던데…… 후후! 마신천강기도 알겠습니다.”

귀면사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들 네 명은 아직 얼굴도 비치지 않은 미지의 인물을 극도로 존중한다.

투살진기는 진기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모습을 파악한다. 그래서 허점이 단번에 파악된다.

헌데 투살진기의 최대 극성이 마신천강기라면…….

마신천강기는 진기가 밀려오지도 밀려가지도 않는다. 전신을 모두 같은 힘으로 막아낸다. 일반적으로 공격하거나 방어할 때 힘의 집중이 필요한 법인데, 집중을 하지 않는다.

아니다. 집중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고도로 집약된 집중을 한다.

일차로 진기를 전신에 분산시킨다. 전신 구석구석에 같은 힘이 배분된다.

이차로, 집중이 필요한 부위에 진기를 투여한다.

열 명이 한 명을 하늘로 떠받쳐 올리듯이 전신 구석구석에 번져있는 진기가 집중 부위를 떠받든다.

얼핏 생각하면 전신 진기를 한 곳에 집약시킨 것에 비해서 훨씬 미약한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한 곳에 전신진기를 집약시킨다고 해도 집중되는 진기는 본신진기의 삼할 내지 사할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진기는 신법을 사용하는 데 쓰인다. 몸을 움직이는 데 쓴다.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반사신경을 유도하는 데, 상대의 공격을 파악하는 데 쓰인다.

일점에 집중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마신천강기는 이 순서를 뒤바꿨다.

먼저 전신을 운용하고, 그 힘으로 일점집중을 이룬다.

진결(眞訣)까지는 알 수 없지만 무공의 요체는 한눈에 파악된다.

“저놈들, 우리 둘이면 되겠는데?”

좌수비마가 귀면사자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저 둘.”

귀면사자가 음악이귀와 삼귀를 지목했다.

“그럼 내가 셋인가?”

좌수비마가 음악일귀를 쳐다봤다.

“투살은 내가 맡지.”

백살마창이 웃음을 흘렸다.

그들은 마신천강기와 투살진기를 이해했다. 그래서 음악오귀와 유화아가 어떤 식으로 반격해 올지 짐작한다. 전에는 모르고 당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들은 이 조합을 무너트릴 자신이 있었다.

그들의 뒤에서 단단한 음성이 울렸다.

“다섯은 죽인다. 저 아이는…… 데려간다.”

좌수비마와 귀면사자가 걸어왔다.

그들은 서둘지 않았다. 한 호흡에 사오 장을 미끄러지는 신법의 대가들이지만 산보라도 하듯 여유 있게 다가왔다.

스읏! 스으읏!

음악사귀와 오귀가 활을 쳐들었다. 그때,

“내가 말할 때 쏴. 사귀는 좌수비마를, 그리고 오귀는…….”

유화아가 잠시 말문을 닫고 공격자들을 쓸어봤다. 그리고 결정한 듯 말했다.

“패황도마를 쏴. 내가 말할 때.”

“패황도마?”

모두들 아무 움직임도 없는 패황도마를 쳐다봤다.

그는 이번 싸움에 가담할 뜻을 비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있다.

그를 쏘라고? 헌데!

“하하하!”

“후후후! 들켰네. 후후!”

“귀엽군. 하하하하!”

공격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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