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53화 (5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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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一章 산외유산(山外有山) (3)

유화아는 싸움의 대상이 아니다.

백살마창을 비롯한 일련의 공격자들은 그녀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녀를 쳐다보기는 하지만 특별하게 경계한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그녀와 싸움을 하려는 사람도 없다.

좌수비마가 호기심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곧 걷어냈다.

그들 같은 고수의 입장에서 유화아는 특별하게 경계할 만한 대상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유화아는 음악오귀보다도 약하다.

우선 그녀가 뿜어내는 기운이 그렇다. 눈빛도 약하고, 내공도 약해 보인다.

무인은 상대를 보는 순간 무공의 경지를 가늠한다.

어떤 무공을 사용하는지,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까지는 알지 못해도 나보다 강하다 약하다 하는 정도는 가늠한다.

그런 가늠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순전한 느낌…… 느낌일 뿐이다.

느낌상으로 유화아는 매우 약하다. 음악오귀들보다도 훨씬 약하다. 그러니 경계를 할 필요가 없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다.

음악오귀는 마신천강기를 전력으로 수련했다.

마신천강기는 마공이다. 마인들의 체질이나 습성에 딱 맞는 익숙한 무공이다.

음악오귀가 전력을 다해서 수련하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에 그녀는 투살진기가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다.

신공이란 기운을 북돋고 경맥을 강화시켜주어야 한다. 정신이 어지러울 때, 산만할 때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 무공증진보다도 심신평안이 최우선이다.

투살진기는 그런 효과가 없다.

아니, 아니…… 정 반대 기능이 나타난다. 투살진기를 수련하면 차분했던 마음도 흥분된다. 피가 빨리 도는 느낌이 들고, 무엇인가를 때려 부수고 싶은 생각이 치민다.

평생 신공만 수련해온 그녀에게는 맞지 않는 공부다.

그녀는 어쩔 수 없어서 투살진기를 수련했다. 검왕에게 맞지 않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악착같이 마신천강기를 수련한 음악오귀와 마지못해서 깔짝거린 그녀의 무공이 어찌 같을까.

백살마창 같은 고수의 눈에 그런 점이 보이지 않을 리 없다.

헌데…… 헌데…… 음악오귀보다 훨씬 무공이 미약한 그녀의 눈에 화도(火刀)의 구멍이 보인다.

‘빈 곳이 있는데, 왜 공격하지 않지?’

그녀는 음악일귀의 행동이 의아했다. 빈 곳을 내버려두고 무지막지하게 달려드는 강함만 상대한다. 힘을 힘으로 밀어낼 생각인 듯한데…… 힘겨워 보인다.

‘저렇게 해서는 상대가 안 되지.’

그녀는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스읏!

그 누구도 그녀를 안중에 두고 있지 않지만, 그녀는 신형을 쏘아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쉿! 슈아악!

검을 뽑아서 눈에 환히 보이는 구멍을 찔렀다.

화도를 접하는 사람은 불길의 맹렬함에 압도된다.

멀쩡한 강도에서 어떻게 불길이 일어날까? 저렇게 병기를 흔들어대는데도 어떻게 불길이 꺼지지 않는 것일까? 아니, 왜 시간이 지날수록 뜨거움이 강성해지는가.

담이 약한 사람은 감히 화도를 쳐다보지도 못한다.

이런 화도의 맹점은…… 불길을 보지 않으면 평범한 초식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상대가 도법을 구사해오면 누구든 반드시 대응한다. 대응의 효과 여부는 차지하고 일단 대응하기는 한다. 속도, 변화, 파괴력 면에서 모두 뒤지는 한이 있어도.

화도는 그런 대응조차도 불가능한 심리 상태를 유도한다.

불길을 보지 말아야 한다. 뜨거움을 느끼지 말고 차분하게 상대해야 한다.

‘차분하게!’

슈우웃!

싸늘한 검이 불길을 뚫고 안으로 침습했다.

“웃!”

패황도마가 의외인 듯 눈을 부릅떴다. 그뿐만 아니다. 화도를 접고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유화아가 내지른 검은 묘하게도 화도의 맥점을 짚었다.

패황도마가 계속 화도를 전개했다면 음악일귀를 격상시킬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무사하지 못한다. 묘하게 틈을 노리고 찔러든 검에 자상을 입게 된다.

이게 우연일까?

“후후! 뭐야? 숨은 고인이라는 거야?”

패황도마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유화아를 쏘아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의 도는 말보다 훨씬 빨랐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도에서 불길이 솟구치더니 대뜸 유화아를 향해 강렬한 용암줄기를 쏘아냈다.

파아앗!

불길이 그녀를 향해 밀려온다.

‘뜨거워!’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화도의 강렬함에 정신을 놓아버렸다.

대응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패황도마는 보이지 않고 오직 불길만 보인다. 온 세상이 불길에 휘감긴 듯한 착각이 든다. 그때!

“뭐해! 뒈지려고 환장했어!”

매서운 일갈과 함께 투박한 손이 뒷덜미를 움켜쥐더니 뒤쪽으로 쑥 잡아당겼다.

음악일귀다.

그는 유화아를 잡아당김과 동시에 마신천강기를 운용해 패황도마를 맞이해갔다.

역시 투박하게, 역시 강렬한 힘에 힘으로 부딪치면서.

그 순간, 유화아의 눈에 또다시 화도의 맹점이 보였다. 분명하게, 선명하게.

쉬잇! 슈아아악!

그녀는 서슴없이 신형을 쏘아냈다. 일검을 내질렀다.

“웃!”

이번에도 패황도마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아니, 먼젓번보다 더 크게 놀랐다.

유화아의 공격은 우연이 아니다. 정확하게 보고 내지른 검이다.

“뭐, 뭐야!”

패황도마가 놀란 눈으로 유화아를 쳐다봤다.

놀라기는 음악일귀도 마찬가지다. 화도 앞에 곧 목숨을 내줄 것 같아서 뒤로 끌어냈는데, 그런 그녀가 자신도 상대하기 버거운 화도를 가볍게 밀어냈다.

아니다. 패황도마가 화도를 거두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가 큰 곤욕을 치렀을 게다.

유화아는 정확하게 화도의 맹점을 찔렀다.

“너…… 뭐, 뭐냐? 봉, 봉황검법이냐?”

패황도마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기만 하고, 오히려 음악일귀가 더듬거리면서 물었다.

유화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찌른 거야. 검법이 아냐.’

음악일귀의 물음에 마음속으로 혼자 답했다.

“봉황검법일 리가 없지. 봉황검법이 어찌 화도를…….”

음악일귀는 자신이 묻고 자신이 답했다.

“후후! 이거 재미있는데. 화도를 이런 식으로 밀어낼 사람이 있다고는 믿지 않았는데. 내가 해볼까?”

좌수비마가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장내의 싸움은 일단 중지된 상태다.

공격자들이 유화아의 검법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화도가 밀려나는 순간, 아주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래서 공격을 미루고 유화아를 쳐다본다.

음악오귀 쪽에서는 천만다행이다.

“와욧!”

유화아는 검을 곧추세웠다.

습관처럼 몸에 붙어 있는 봉황검법의 기수식이다.

헌데 그 모습을 본 좌수비마는 어이없다는 듯 패황도마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봐준 거 아니지?”

패황도마는 고개를 저었다.

좌수비마가 손을 들어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 여자, 극과 극을 달리네. 화도를 밀어냈다면 극상인데 지금은 형편없잖아? 이거 정말 손대야 하는 거야?”

“순간순간 극상이 나오는 것 같아.”

패황도마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순간순간이라…… 후후! 결국 시험해 봐야 알 수 있다는 거네. 그럼 뭐 해보지.”

슈와왁!

좌수비마의 신형이 번뜩였다.

유화아는 눈앞에서 가느다란 아지랑이가 피어난다 싶었다. 그것밖에는 보지 못했다. 헌데,

슈각!

어느새 귀밑으로 검광이 흘렀다.

언제 다가왔는가. 언제 어떤 초식을 사용했는가.

좌수비마는 벌써 검을 뽑아들었고, 그녀를 공격했다. 검광을 귀밑으로 흘려내어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잘라냈다.

좌수비마가 움직이는 동안 그녀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완전 무방비!

좌수비마가 그녀를 공격한 이유는 그녀가 어떻게 화도를 물리쳤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만약 공격 목적이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것이었다면 벌써 죽었다.

공격자들은 ‘뭐야?’하는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음악일귀가 이번 공격에 화들짝 놀라서 급히 유화아를 끌어당겼다.

“너 죽으려고 환장했어! 왜 멍청하게 서 있는 거야!”

‘보지 못했어.’

그녀는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노기를 드러내는 음악일귀를 토끼 같은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어휴! 못산다.”

음악일귀가 그녀를 옆으로 밀어냈다.

‘한 번 더 해봐.’

‘그럴까? 해봤자 똑같을 것 같은데?’

공격자들이 의사교환을 했다.

유화아가 화도를 밀어낸 솜씨는 매우 고명한 것이다. 무공이 절정에 이른 사람이 아니면 펼쳐낼 수 없는 절초다. 아니면 신공 중의 신공이다.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가지. 막아봐.”

좌수비마가 아예 선전포고를 하고 스릉! 검까지 뽑아들었다.

좌수비마는 공격 전에 검을 뽑지 않는다. 신형을 쏘아내면서 검을 뽑고, 검이 뽑힘과 동시에 초식이 전개된다. 그 순간, 한 사람의 목숨이 떨궈진다.

이번에는 사전에 검을 완전히 뽑았다.

스으읏!

그는 신형도 느리게 펼쳐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여전히 빠른 공격이지만, 그가 펼쳐낼 수 있는 신법에 비하면 현저히 느리다.

슈아아악!

검초가 펼쳐졌다. 보인다!

‘봉황악구주(鳳凰握九珠)!’

유화아는 상대할 검초가 떠올랐다. 아니, 벌써 그녀의 몸은 봉황악구주를 펼쳐내고 있었다. 순간,

“피햇!”

슈와아아악!

무척 다급한 경악성이 터짐과 동시에 한 줄기 파공음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까앙!

좌수비마가 번개처럼 쏘아진 화살을 퉁겨냈다.

좌수미바의 공격은 신랄했다. 비록 신법과 초식을 늦추기는 했지만 공격 자체는 악랄했다.

그는 이번 공격으로 유화아의 목숨을 취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죽여야 할 여자이고,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면 이쯤에서 정리할 생각이었다.

음악사귀가 그런 기세를 읽고 화살을 쏘아냈다.

유화아가 검초를 펼쳐내고 있지만 좌수비마의 공격 앞에서는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롭다.

봉황검법으로는 좌수비마를 이길 수 없다. 패황도마도 이길 수 없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음악오귀조차도 이길 수 없다. 아직 정상에 오르지 못한 무공으로는.

그때, 유화아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녀는 틈을 봤다. 빠름 속에 허점이 있다.

‘빠르다는 것은 전신을 비워놓는다는 것. 누구보다도 빈틈이 많아. 구석구석이 빈틈이야.’

슈아아아악!

화살을 쳐낸 좌수비마가 신경질적으로 공격해 왔다.

유화아는 천천히…… 몸은 빠르지만 마음은 평온한 상태에서 검을 찔러냈다.

검초를 전개할 필요가 없다.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황소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황소와 버금가는 힘으로 맞상대할 수가 있다. 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대응책은 피하는 것이다. 돌격을 피하고 스쳐 지나가는 황소의 옆구리에 칼을 찔러넣는다.

스읏!

몸을 피한다. 좌수비마의 빠름을 가볍게 피해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검을 찔러낸다.

좌수비마를 겨냥한 검이 아니다. 그저 검을 들어 올렸는데, 마침 좌수비마가 그곳을 지나간다.

“헉!”

좌수비마가 경악성을 내지르면서 급히 신형을 뒤틀었다.

찌이익!

좌수비마는 무척 빠르다. 너무 빠르다. 그가 급히 신형을 뒤틀기는 했지만 그의 빠름이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되었다. 몸을 상하지는 않았지만 옷이 찢기도 말았다.

슈웃! 슈우우웃!

두 사람의 공방은 번갯불보다도 빨랐다.

“뭐, 뭐야!”

“우!”

공격자들, 그리고 음악오귀…… 모두들 멍청해진 표정으로 유화아를 쳐다봤다.

음악사귀가 화살을 쏘아서 구해줄 때만 해도 쉽게 쓰러트릴 수 있는 정도였는데, 한순간이 지나고 나니 느닷없이 절정고수가 되어서 검을 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 그들은 이런 기현상에 눈만 끔뻑거렸다.

이게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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