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51화 (51/225)

# 51

第十一章 산외유산(山外有山) (1)

“하나만 묻자.”

문득, 음악일귀가 말했다.

“너, 그때 왜 하필 우리 눈에 띈 건데?”

“뭐라고?”

“그날 말이야. 왜 우리 눈에 띄었냐고.”

“그것도 말이라고 하는 거야!”

유화아가 인상을 찡그린 채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고, 실없이 농을 거는 것도 아니다. 워낙 이상해서 묻는 거야. 그때 우리가 파릉에서 만난 것, 아무래도 우연이 아닐 것 같아서 말이다.”

“…….”

유화아는 음악일귀의 말을 흘려듣지 못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 점이 이상하다. 왜 하필 그 자리에서 음악오귀와 마주쳤을까?

아니, 그녀의 의문은 더욱 안쪽으로 들어간다.

봉황검법이 하산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굳이 말하자면 어린아이가 과도를 쥐고 있는 정도다.

무공을 모르는 사람에게 과도 든 아이는 위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무공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깟 어린아이의 장난질 정도는 가볍게 흘려버릴 수 있다.

그녀의 봉황검법은 딱 그 정도 수준이다.

무림에 나가면 당장 먹잇감이 될 정도로 약하다는 것을 그녀 자신이 알고 있다.

그런데 하산해도 좋다는 말을 하셨다.

그때는 그 말씀을 가볍게 흘려들었다. 아! 집에 잠시 들러보라는 말이구나.

그녀의 의문은 그 시점부터 시작된다.

사부님이 왜 하산 명령을 내렸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그녀는 음악오귀와 만난 일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재수가 없어서 만났을 뿐이라고 여겼다.

‘정말 그때 왜 하필이면 이 사람들과 만났지?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기는 하지만…….’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선뜻 말하지 못하는 걸 보니 너도 잘 모르는 모양인데…… 생각이나 해 봐. 왜 우리가 그날 그 자리에서 만난 건지. 참고로 난, 파릉이 그때 처음이었다.”

“…….”

“계집을 만나러 간 것도 아니고, 혼자 나다니는 계집 어찌 해보려고 간 것도 아니다. 단지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어. 우리끼리 잡담이나 늘어놓으면서.”

“…….”

“그런데 네가 눈에 띄었고, 무척 예뻤고, 주위에 신경 쓸 사람도 없었다. 상황이 그 정도면 이건 마치 ‘나 좀 건드려달라’고 애원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냐?”

“미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말이 없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우리 만남이 잘 짜여진 한 편의 각본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나 지금부터 운공할 거야.”

“해라. 시간 나면 생각 좀 해보고.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것, 죽으나 사나 한솥밥을 먹긴 먹는데…… 만남 자체가 찜찜해서 말이야. 검왕 그 새끼한테 농락당하는 기분이랄까?”

음악일귀가 툴툴 웃으면서 눈을 감았다.

밤이 깊었지만…… 촌각도 아껴서 운공수련을 해야 할 상황이지 않은가. 잠들기 전에 한 번 더 운공하려는 것 같다.

‘웃!’

유화아는 음산한 기운에 짓눌려 눈을 번쩍 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새까만 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들이다.

달의 위치를 찾아서 시각을 가늠해 봤다.

대략 축시(丑時)에서 인시(寅時)로 넘어갈 무렵인 것 같다. 아직 날을 밝지 않았지만 밤이 생명을 다하고 있다.

두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은…… 아주 조금씩, 지극히 은밀하게 움직이는 손들이다.

음악오귀가 움직이지 않는 듯 움직이면서 병기를 잡아간다.

‘공격!’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다.

그녀는 음산한 기운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무엇인가 스멀거리면서 몸을 훑고 있다는 느낌만 들 뿐, 실체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녀는 눈만 뜬 채 꼼짝하지 않았다.

지금은 움직이는 것이 득인지 실인지 판단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검왕이 말한 바로 그 공격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 잠시 후,

파르르릉!

갑자기 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파공음이 터졌다.

이 공격,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음악오귀는 누웠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 무섭게 사방으로 비산했다.

퍼억!

음악삼귀가 누워있던 자리에서 둔중한 타격음이 들렸다. 땅이 들썩였고,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났다.

‘대단한 내공!’

유화아는 비쾌하게 신형을 쏘아내어 공격권에서 벗어났다.

공격자는 창을 사용하는 창수(槍手)다. 기다란 창대로 음악삼귀를 후려쳤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공격이라서 음악삼귀는 비교적 가볍게 피해냈는데…… 그가 누워있던 자리가 움푹 패버렸다. 적어도 어린아이 머리만 한 구멍이 생겼다.

“후후후! 거봐, 이 정도로는 안 된다니까.”

일차 공격이 실패한 창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도 이런 결과를 예상한 듯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음악오귀가 아니라는 말이지.”

창수의 뒤쪽에서 음침한 음성과 함께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칼을 들고 있다. 커다란 대도를 들고 있는 모습에서 웅장한 힘이 느껴진다.

그가 주위를 쓸어보면서 말했다.

“예전의 음악오귀라면 이 공격을 피하지 못해. 피하는 게 뭐야? 인기척도 감지하지 못해. 헌데 이놈들…… 우리가 오기 전에 알아챘거든. 무공이 무섭게 정진했다는 뜻이야.”

그 말을 듣고 창수가 창을 들어 음악일귀를 가리켰다. 그리고 물었다.

“너, 말해봐. 기연이라도 얻은 거냐?”

“호, 혹시…… 귀하가 백살마창……?”

음악일귀가 창수의 창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말했다.

“하하! 맞다. 내가 백살마창이다.”

백살마창은 음악일귀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럼 귀하는 태황도마?”

음악일귀가 다른 자를 보면서 말했다.

“영약을 복용한 것 같지는 않고…… 뭘 수련한 게냐?”

태황도마로 짐작되는 자가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것을 물어왔다.

“으음!”

음악일귀가 나직이 신음을 쏟아냈다.

검왕에게 언질을 듣기는 했지만…… 마군이 공격해 왔다. 이들이 백살마창과 태황도마가 맞는다면 마군도 지척에 있다. 어쩌면 지금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 마군께서도 오셨소?”

음악일귀가 지극히 존경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알량한 잔재주 몇 개 배웠다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보군. 묻는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이거지?”

태황도마가 대도를 들어 올렸다. 아니, 들어 올렸다 싶은 순간, 어느새 그의 신형은 음악일귀 앞에 바짝 다가서 있었다.

쒜에엑!

대도가 허공을 가른다.

“어찌 이리 핍박이시오!”

음악일귀가 버럭 고함을 지르면서 마주 검을 떨쳐냈다.

까앙!

검과 대도가 허공에서 부딪치며 불똥을 튀겨냈다.

이번 한 수, 태황도마는 작심하고 펼쳐낸 것이다. 음악일귀는 피할 수 있는 시간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주친 것이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파르르르릉!

대도와 검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격렬한 떨림을 토해냈다.

“응?”

태황도마가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어!’

음악일귀는 태황도마보다 더 놀란 듯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입까지 살짝 벌어져 있었다.

“후후! 한 수 배우긴 배웠군.”

휘루루루룽!

태황도마가 눈가에 흉광을 띠며 대도에 진기를 더욱 강하게 주입시켰다. 그리고 음악일귀를 밀어냈다.

음악일귀도 진기를 증폭시켰다.

마신천강기를 일으킨다. 검에 주입한다. 태황도마가 밀어내는 힘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끼익! 끼이익!

검과 대도가 몸싸움을 하면서 바르르 떨었다.

음악일귀는 태황도마에게 밀리지 않았다. 오직 진기로만 승부를 벌이고 있는데…… 팽팽하다.

‘응?’

‘저것 봐라?’

음악일귀와 태황도마의 싸움을 지켜본 음악사귀의 눈에 흉흉한 살광이 맴돌았다.

태황도마와 음악오귀, 이 둘의 이름을 한 자리에 놓을 수 없다.

태황도마는 음악오귀가 쫓아가기에는 한참 높은 곳에 위치한 거물이다. 그가 비록 마군의 수족 노릇을 하고 있을망정 음악오귀가 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헌데 지금은 어떤가? 팽팽하다.

그들은 마신천강기에 자신을 얻었다.

“후후! 백살마창, 구경만 하고 있을 건가? 우리도 붙어보는 게 어때?”

음악삼귀가 낄낄거리면서 창을 겨눴다.

삼귀는 음악오귀 중에서 유일한 창수다. 병기로 창을 선택했고…… 그가 존경하는 창수는 백살마창이다.

헌데 지금은 비등한 싸움을 할 자신이 있다.

평소 흠모하던 창수와 맞수로 싸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흥분이 치밀었고, 가슴이 떨려왔다.

“후후후! 자신을 얻었다 이건가?”

“뭐 딱히 자신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하는 거니까.”

“건방진!”

“그런 말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니까.”

휘리리리리릭!

이번에는 음악삼귀가 먼저 창법을 전개했다.

쏜살같이 뛰쳐나가서 창을 찔러낸다. 한 손으로 푹 찌르고, 곧바로 다른 손으로 옮겨 잡아 다시 찌른다.

십수연환창(十手連環槍)!

왼손, 오른손, 왼손, 오른손…… 창 한 자루를 열 번 옮겨 잡는다. 창을 옮겨 잡을 때마다 새로운 진기를 맹렬히 투입한다. 더욱 빠르게, 강하게 찔러낸다.

창에 깃든 진기가 증폭된다.

이 모든 것은 촌각만에 이루어진다.

마지막 십수가 완전히 충족된 창은 무적의 강창(强槍)이 된다. 바위를 부수고, 철갑을 꿰뚫는 파괴력을 지닌다.

예전, 그는 겨우 사창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마신천강기를 수련한 지금은 팔창까지 사용한다. 어제저녁, 잠들기 전에 팔창수련을 마쳤다.

“받아봐!”

음악삼귀가 자신 있게 창을 떨쳐냈다.

“후후! 십수연환창인가!”

과연 백살마창은 음악삼귀의 창법을 알아봤다.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창을 찔러왔다. 허나 그의 창마저 담담한 것은 아니다. 그의 창에는 세상을 부술 듯한 힘이 담겨 있다.

휘루루루룽!

두 창에서 강맹한 힘이 넘쳐난다. 마치 우레가 허공을 가르면서 터져나가는 것 같다.

까앙!

삼귀의 창과 백살마창의 창이 허공에서 어울렸다. 질주하는 말과 말이 정면으로 머리를 들이받았다. 순간,

“크윽!”

음악삼귀가 먼저 신음을 토해냈다. 인상도 심하게 찡그렸다.

그는 창을 놓쳤다. 손아귀를 찢으면서 날아가는 창을 잡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충격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뒤뚱뒤뚱 물러서기까지 했다.

백살마창은 여전히 창을 움켜잡고 있다. 하지만 연타를 날리지 못하고 멀뚱하게 서 있기만 한다.

그도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음악삼귀처럼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충격은 아니지만, 몸을 쾌속하게 떨쳐내지는 못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로 이어진 연수가 음악삼귀의 목을 꿰뚫고 있을 것이다.

“마신…… 마신…… 천강기!”

백살마창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면서 중얼거렸다.

“후후후! 태황도마, 백살마창. 별것 아니잖아? 괜히 허명만 높아가지고는.”

음악사귀와 오귀가 활을 꺼내 살을 재웠다.

원래 그들은 살만 들고 있었다.

근접전을 각오했다. 그리고 궁수의 경우에는 근접전에서 화살을 단창 대용으로 사용한다.

화살로 근접전을 벌일 때는 장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화살은 단창만큼 여러 가지 수법을 펼쳐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찌르는 데는 아주 유용하다. 화살은 상대의 병기를 막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보다 훨씬 빠른 수법이 필요하다.

쾌(快)!

속도에서 상대보다 훨씬 앞설 경우에만 화살을 타격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활을 꺼내 살을 재운다.

백살마창의 몸이 굳어있고, 태황도마가 음악일귀에게 접혀 있으니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 지금은 활의 제 기능을 사용해서 화살을 쏘는 것이 훨씬 유용하다.

두 사람은 활에 살을 재우면서 웃었다.

“오늘 마군 졸개 중에서 두 명이 날아가는군. 이놈들, 우리가 죽였다고 소문이나 나려나?”

“소문이 안 나면 우리가 알려야지. 저놈 창을 몇 토막으로 분질러서 저잣거리에 전시해 놓자고. 킥킥킥!”

두 사람은 활에 살을 재운 후, 힘껏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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