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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章 전투서열(戰鬪序列) (4)
검왕은 유가장 삼문을 몰살시킬 생각이 없다.
다만 운이 나쁘게 누군가와 부딪친다면 비밀보장을 위해서 죽이라고 한다.
유화아는 그것조차도 할 수 없다.
사실, 그녀는 유가장 식솔들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한다.
워낙 어렸을 때 유가장을 떠난 탓에 하인이며 시녀들이 낯설기만 하다.
유가장 삼문은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남의 집 같다.
검왕처럼 검을 휘둘러야 할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면 서슴없이 휘둘렀을 게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이유조차도 없다.
그녀는 왜 검왕에게 무공을 배워야 했는지 알지 못한다. 음악오귀 같은 악도들이 어떻게 유가장 삼문의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 점을 이해하려다가 엉뚱한 일에 휘말렸다.
지금 그녀는 거센 풍랑에 휘말렸을 때처럼 본의 아니게 끌려간다. 생각이고 뭐고 할 겨를도 없다. 정신없이 일방적인 명령을 쫓아가야만 한다.
저벅! 저벅! 저벅!
그들은 어둠 속을 걸었다.
걸음걸이가 일정하다. 빛 한 점 어둠 속인 데도 망설임 없이 정확하게 걸어간다.
눈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귀는 열려있다.
앞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전후좌우를 짐작할 수 있다. 높이 올라가고 낮게 내려가는 고저도 파악된다.
그들은 작은 동혈을 걸어간다.
문득, 유화아는 자신이 어두컴컴한 동혈 속을 잘도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 같으면, 한 달 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검왕을 만나려고 밀실을 들어설 때만 해도 벽에 손을 짚고 살금살금 내려왔었다.
지금은 대낮에 넓은 관도를 걷듯이 편안하게 걷는다.
‘익숙해졌어.’
아니다.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 무공이 높아진 것이다.
슷!
앞장서서 걷던 검왕이 걸음을 멈췄다.
지금까지는 밀실을 걸어왔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나가려고 한다.
검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현재 상황을 짐작했다.
슷! 구르릉!
석문이 기름 위를 미끄러지는 듯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부드럽게 열렸다.
유화아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본 검왕은 매우 강하다. 아버지도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만약 검왕이 유가장 삼문을 몰살시킬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 그렇게 할 수 있다.
검왕이 아량을 베풀기만 바랄 수밖에.
그래도 그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검왕 옆으로 바싹 다가서며 말했다.
“정말 다 죽일 거예요.”
“…….”
검왕은 침묵했다.
“무공을 모르는 사람도요?”
“…….”
“그럴 수는 없잖아요!”
그때, 뒤따르던 음악사귀가 음침한 음성으로 말했다.
“흐흐! 하기는 힘들기는 하겠다. 나라도 내 집 식솔들을 죽이는 것은 쉽지 않지. 계집아, 넌 검도 제대로 쓰지 못할 테니, 차라리 뒤로 물러서 있는 게 어때?”
“쉿!”
검왕이 음악사귀에게 주의를 주었다.
음악사귀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음악사귀의 음성이 조금 컸다. 평상시 말하는 것처럼 편안히 한 말이지만, 늦은 밤이라서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검왕은 가급적 충돌을 회피하려고 한다.
‘휴우!
유화아는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어쩔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다행히도 전각 담을 넘어서서 길가로 내려설 때까지 아무도 마주치는 사람이 없었다.
‘후우!’
유화아는 긴장이 풀려서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스럽게도 피바람이 불지 않았다. 누구든 검왕을 만난 사람은 모두 죽을 텐데.
아니다. 길가에 사람이 있다.
“삼문 총관입니다.”
길가에 서 있던 사람이 검왕을 보고 머리를 숙였다.
“아저씨!”
유화아는 반가운 마음에 미소를 활짝 띠며 총관을 불렀다.
총관이 유화아에게 마주 웃음을 지어 보였다. 허나 곧 검왕에게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준비하신 물건들은 모두 준비됐습니다.”
“…….”
“토산(土山) 쪽으로 삼 리 정도 달리시면 마차가 준비되어 있을 겁니다. 마차 안에 말씀하신 물건들이 모두…….”
“알았소.”
검왕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검왕의 음성에는 정이 묻어 있지 않다. 냉혈한이 말하는 것처럼 살기가 뚝뚝 묻어난다.
“아씨께 편지 한 통 전해도 되겠습니까?”
“그럴 가치가 있소?”
검왕이 역시 차디찬 음성으로 말했다.
“어쩌면 아씨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는 일. 문주님의 은혜를 입은 처지에 어찌 가치를 논하겠습니까.”
“전하시오.”
“감사합니다.”
총관은 두 손 모아 읍했다.
그녀에게 밀봉된 서찰 한 통이 쥐어졌다.
“나중에. 나중에 읽어보시라는 전갈입니다.”
“나중에요?”
“진퇴양난이다 싶을 때 뜯어보십시오.”
‘지금이 진퇴양난이에요.’
유화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검왕을 따라가고 싶지가 않다. 단지 아버지가 어떤 일에 휘말렸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위험한 처지라면 딸의 도리로써 같이 위험을 맞이하고 싶었다.
헌데 일이 엉뚱하게 진행된다.
“잊지 마시고…… 잘 보관하세요.”
총관이 진중한 표정으로 신신당부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는 편안하게 말했다.
편지를 주고받았다. 여기에 무슨 일이 있는가? 나중에 뜯어보란다. 그래서 품에 간직했다.
진중하게 주고받을 말도 없다.
검왕이 총관을 쳐다봤다.
“걱정마십시오.”
총관이 웃으면서 말했다.
“잘 가시오.”
“부디 대원을 이루시길.”
총관이 다시 한 번 두 손 모아 읍했다. 아니, 읍을 한다 싶은 순간, 툭 무릎을 꿇더니 풀썩 쓰러졌다.
“엇! 아저씨!”
유화아가 깜짝 놀라서 총관을 부축하려는 순간, 검왕이 그녀의 팔을 움켜잡았다.
“이미 절명했다.”
“뭐예요? 아니, 그럴 리 없어요!”
“총관이 준 편지, 잘 간직해. 그 편지를 건네주기 위해서 목숨을 내놨으니까.”
“뭐라고요!”
유화아는 그제야 총관과 검왕이 주고받은 말이 떠올랐다.
- 그럴 가치가 있나?
- 문주님의 은혜를 입은 처지에 어찌 가치를 논하겠습니까.
그때부터 두 사람은 한 사람의 죽음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총관이 죽을 것임을.
“이게, 이게 뭔데!”
그녀는 품속에 찔러넣었던 서신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행동도 중간에서 차단되었다.
“삼문주가 총관을 버리면서 건넨 편지다.”
검왕의 음성이 너무 싸늘해서 유화아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총관 말대로 어쩌면 네 목숨을 한 번은 구해줄 수도 있는 편지, 경거망동하지 마라.”
유화아는 얼어붙었다.
지금 자신이, 아버지가 어떤 일에 휘말린 것인가?
토산 방향으로 삼 리 정도 치달렸다.
마을 공동 우물인 듯싶은 곳에 총관이 말한 대로 이두마차와 말 네 필이 묶여 있었다.
“오귀, 마차를 몰아.”
음악오귀는 검왕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자석에 앉았다.
“안에 타라.”
유화아는 군소리 없이 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지금부터 저 여자를 군산(君山)까지 호송한다.”
“동정호 군산 말입니까?”
검왕은 음악일귀의 반문에 대답하지 않고 마차 안에 있는 유화아에게 말했다. 아니, 특정하게 누구를 지목해서 한 말이 아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유화아, 안에서 나오지 마라. 마차 안에 누가 탔는지 전혀 몰라야 한다.”
“알았어요.”
“가는 동안 공부를 육성 이상으로 끌어올려라.”
“육성까지! 무슨 수로 육성까지…….”
음악삼귀가 말을 잇다가 뚝 그쳐버렸다.
검왕이 하라면 해야 한다. 이유는 없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검왕 말대로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하다.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위험했다.
검왕이 말을 이었다.
“군산에 당도할 즈음, 검성의 공격이 있을 것이다.”
“거, 검성!”
“마군. 쌍첨수괴 도군악이 공격해 올 것이라고 생각된다.”
“도, 도군악!”
음악오귀는 너무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놀라기는 유화아도 마찬가지다. 어찌나 놀랐는지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된다.
그녀는 검왕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방금 전에는 검성이 공격해 온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십마 중에 한 명인 마군이 공격해 온단다. 허면 검성과 마군의 공격을 동시에 받는 것인가? 왜?
“하, 함께 안 가십니까?”
음악삼귀가 검왕을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검왕이 당부하는 것으로 보아서 검왕은 그들과 함께 가지 않는다. 하지만 검성도 그렇고 마군도 그렇고 검왕이 없으면 상대하지 못할 대흉겁이다.
검왕이 음악삼귀의 말에 대답하기도 전, 음악일귀가 다시 물었다.
“그, 그들이 공격해 오면 우린……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싸워라.”
“싸워요?”
“도주할 수 있으면 하고.”
“…….”
“단, 군산까지 당도해야 한다. 군산에 당도한 후에는 너희들 마음대로. 속박을 풀어주겠다.”
“알겠습니다.”
음악일귀가 순순히 대답했다.
검왕은 함께 동행하지 않는다. 맡은 일은 유화아를 군산까지 호송하는 것이다. 유화아의 존재가 한 달 전에 나타난 만큼 그녀가 중요한 인물은 아닐 것이고…… 이것은 미끼 작전이다.
마신천강기, 투살진기…… 두 무공 모두 마공관의 무공이다.
검왕은 동행하지 않지만 마차를 호송하는 자들이 마공관의 무공을 배웠다고 소문낼 것이다. 그래서 무림의 이목이 마차에 쏠리도록 하는 게다.
검왕이 무엇을 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차는 전 무림의 공격 대상이 된다.
검성? 마군? 웃기지 마라. 전 무림의 표적이 된다.
이래서 천력파혈단까지 준 건가? 검성이나 마군이 공격해 오면 최선을 다해서 막으라고?
막아? 그들을 어떻게 막아? 이제 갓 입문한 마공으로 어떻게?
한 마디로 천력파혈단을 복용하고 죽으라는 말이다.
이런 일을 할 생각은 없다.
다행히 검왕이 동행하지 않는다니 기회를 보아서 도주해야 한다. 군산까지 당도하면 속박을 풀어주겠다고? 웃기지 마라. 그 전에 도주한다.
음악일귀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럼 우리는 어디서 만나는 겁니까? 군산까지 가면 알게 되나요?”
검왕은 동문서답, 엉뚱한 말을 했다.
“수선화라고 아나?”
유화아는 하얀 잎에 노란 술이 달린 수선화꽃을 떠올렸다.
‘갑자기 수선화는 왜?’
헌데 음악오귀는 그녀와 다른 것을 생각한 모양이다.
“헉! 수, 수, 수선화!
“수, 수선화를…… 왜?”
음악오귀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되물었다.
검왕이 짤막하게 말했다.
“군산에 도착하면 해독약을 얻을 수 있다. 해독약을 복용하는 순간이 속박을 풀어주는 시간이다. 그때까지 살아남기를 바란다. 명심해라. 군산에 도착할 때까지 육성 이상, 수련해라.”
음악오귀는 검왕이 떠난 후에도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어쩌면 떠나가는 모습조차도 보지 못한 듯했다.
“우리…… 엿 된 것 맞지?”
음악삼귀가 중얼거렸다.
“엿만 돼? 아예 풀죽이 됐다.”
음악이귀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살아남을 수는 있겠소?”
음악사귀가 말했다.
“제길!”
음악일귀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인상만 구겼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영문이나 알고 당하면 속이라도 편할 텐데.
영문은 모르고 고난이 닥쳐올 것만 안다. 그것도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고난이.
“제길!”